<김명삼의 맛있는 정치> 라이칭더 대만 총통 시대

2024.03.20 13:00:59 호수 0호

양안 관계와 대 한국 파장

올해 전 세계 76개국서 거행되는 선거의 서막을 열면서 지난 1월13일 거행된 대만 총통 선거가 현 집권 민진당(民進黨) 라이칭더(賴淸德) 후보의 당선으로 막을 내렸다. 이로써 과거 8년간 대만을 통치했던 민진당은 비록 40.05%라는 저조한 득표율이지만 4년 집권을 연장했다.



이번 선거가 세계적 주목을 집중시킨 이유는 ‘하나의 중국’과 대만해협의 안정과 평화가 미·중 관계의 핵심 의제로 떠오르면서 대만 내 반중과 친중 세력 간의 대결로 비쳤기 때문이다. 또 2000년 이후 8년마다 선거에 의해 이뤄진 대만식 민주적 정권교체 전통을 다시 실현할 수 있을까에도 관심이 쏠렸다.

또 탈(脫)중국 독립 지향의 민진당보다는 안정적인 양안 관계를 통해 대만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상대적 친중 성향의 국민당(國民黨) 후보의 당선을 바라면서 상당한 선거개입으로 민진당 후보의 당선을 저지하려 했던 중국 당국이 과연 선거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라이칭더 당선의 함의

대만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는 ‘항중보대’(抗中保臺), 즉 중국에 대항해 대만을 수호해야 한다면서 이번 선거를 ‘민주와 독재’의 대항으로 규정했다. 국민당의 집권 시 중국과의 협력 강화라는 미명(美名)하에 대만의 독자성이 말살될 것이며 이는 곧 중국 독재와의 타협이라고 본 것이다.

이에 반해 국민당은 양안 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민진당 정권의 재연장은 중국으로부터의 안전 확보는 물론 향후 대만의 장기적 발전에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면서 ‘전쟁과 평화’를 선택하는 선거로 규정했고 33.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중도 없는 중도’라는 평을 들었던 제3의 후보인 민중당(民衆黨)의 커원저(柯文哲) 후보는 양당 정치에 싫증 난 유권자들, 특히 젊은 층을 겨냥해 ‘양안 평화와 대만 자주’라는 실용주의 중도노선을 강조하면서 26.46%의 득표율로 3위를 기록했다.

이는 민진당 통치의 종식이라는 60%대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2, 3위 후보 간의 단일화 실패는 예상대로 민진당의 승리로 이어졌다. 동시에 실시된 총 113석의 입법위원 선거에서는 국민당이 지난 회기보다 14석을 더 획득해 제1당을 탈환했고, 민진당은 10석을 잃어 제2당으로 전락했다.

민중당은 비례대표로만 8석을 획득해 캐스팅보트가 됐다. 나머지 무소속 2석은 국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한 당선자들로 실질적으로 국민당은 54석을 확보했다. 결과적으로 대만 유권자들은 총통 선거에선 민진당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의회는 어느 당에도 과반수 57석을 주지 않는 절묘한 견제와 균형을 나타냈다.

민중당이 성향으로 민진당에 편향돼 실질적인 집권 연대가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커원저의 민중당은 민진당의 신조류파(新潮쐎派) 전횡 반대를 내세우면서 독자 세력을 구축했으므로 민진당과 민중당 간의 협력도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지난달 1일 개원한 입법원 입법원장 선출서 민중당은 최종 기권을 했고, 지난 대선후보였던 국민당 비례대표 1번 한궈위(韓國瑜)가 입법원장으로 선출돼 향후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정책 협력도 어려워 보인다.

사실 미·중 간의 대리전으로 각인됐지만 대만 선거는 전통적으로 친중 대 친미 구도로 설명하기 어렵다. 현재 대만 정당 지도자들은 독립 지향적이든, 통합 지향적이든 기본적으로 80% 이상이 현상 유지가 우선이다. 친미도 현상 유지를 위한 친미고, 친중도 현상 유지를 위한 친중일 뿐이다.

민진당의 친미는 상대적 왜소성에 시달리는 대만의 안전 확보에 미국이 더 필요하다는 논리다. 국민당의 친중은 ‘한 국가, 두 체제’, 즉 ‘일국양제’(一國싓制)에는 반대하지만 협력관계 구축을 통해 현상 유지를 강조하는 상대적 친중이기 때문이다.

민중당은 이 두 정당의 중간 점을 정책으로 표방하면서 안정적인 양안 관계를 위해 친중과 친미가 모두 필요하다는 논리를 강조한다. 따라서 이번 대만 선거는 친중 친미 색채에 대해서는 논점을 상실했고, 유권자들의 관심은 민생 문제로 옮겨갔다.

그 결과 차별 없는 양안 정책을 둘러싼 콘크리트 지지층 간의 밋밋한 박스권 투표로 당락이 결정된 꼴이다.

미·중 간의 대리전?


사실 라이칭더 당선자는 자신을 ‘대만 독립을 집행하는 실무자’로 칭했을 만큼 강력한 독립 성향을 보이고 있으며, 민진당 내 강경노선을 이끄는 신조류파의 명맥을 잇는 핵심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만의 현실정치를 앞에 두고 중국과 각을 세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또 대만 정치지도자들은 일단 미국과의 관계 설정에 공을 들인다. 미국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국내 정치는 물론 대중 관계서 공간을 만들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도 인·태 전략서 대만에 일정한 역할을 부여하면서 대중 견제를 실행하고 대만도 보호하는 이중정책을 펼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과 대만의 지도자들은 대만해협의 안정과 평화에 상호공동이익(common interest)이 있음을 항상 강조한다. 이번 선거전서도 각 당의 후보는 모두 미국을 방문해 자신들의 대중 정책을 설명했고 안정적인 양안 관계와 현상 유지를 강조하는 대동소이한 모습을 보였다.

라이칭더 역시 대만해협 평화를 위한 국방 억지력과 경제안보 강화, 글로벌 민주주의 국가와의 동반관계 구축, 그리고 안정적이고 원칙적인 양안 지배력을 제시하면서 자신이 극단적인 대만 독립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강조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특히 자신의 대중 정책과 외교 노선이 현 차이잉원 총통과 다르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면서 워싱턴의 신뢰를 도모하고자 했다. 워싱턴으로서는 중국과 일정한 각을 세우면서 양안 정책을 추진하는 민진당이 중국과의 안정적 관계를 내세우면서 양안 협력을 강조하는 국민당보다는 구미에 더 맞을 것이다.

국민당 후보의 당선으로 초래될 수 있는 양안 관계의 불확실성보다는 기존 민진당의 대중 정책 및 양안 관계 노선이 미국의 대중 정책 전개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이칭더가 맞닥뜨린 대만의 국내·외 상황은 그다지 녹록지 않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서 만일 트럼프가 다시 당선된다면 대만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대중국 압박 정책은 변함이 없겠지만 트럼프의 접근 방식은 분명히 다를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기술을 가져갔다면서 대만에 대해 지원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라이칭더 시대의 대만과 한국

그러나 미국의 대만 중시는 중국의 부상을 압박하기 위한 미국적 필요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며 대만 경제가 중국서 벗어날 수 없는 점도 문제다.


라이칭더는 경제와 관련 5대 신뢰 산업 구축, 즉 반도체산업, 인공지능산업, 방위산업, 보안산업, 통신산업 발전을 제시하면서 안전하고 강인한 반도체 산업체인 구축으로 대중국 차입 투자를 확보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지만, 과연 중국의 입김서 독자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숙제 거리다.

전체적으로 이번 선거는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 않았으며 양안 문제에 관한 새로운 논쟁거리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양안 관계와 미·중 갈등의 완화가 기대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는 5월20일 거행되는 라이칭더 총통 취임식서 대만 정부가 어떤 대중국 정책을 밝힐지 주목되지만, 중국과 대만 모두 미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현재의 추세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지난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거행된 미·중 정상회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당분간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이 없을 것임을 밝혔고,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 선거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충돌로 비화하지 않도록 양국 상황을 관리하자’는 데 다시 합의했다.

중국도 단순히 라이칭더 후보 당선만으로 당장 압박을 강화하기는 어렵지만, 지난 8년 통치에 이어 독립 성향의 민진당 정권의 지속 집권은 중국의 조바심을 자극할만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으로서는 라이칭더 당선인이 이례적으로 한국과의 관계 강화와 더불어 공급망 협력을 언급한 점은 주목할 만하지만, 문제는 한국도 양안 관계의 파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대만해협의 안전 문제는 한국의 안보 상황과 직결되며, 양안 갈등이 미·중 관계의 악화로 이어질 수 있어 한반도 정세에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게다가 미·중 갈등의 핵심 현장인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은 통상 국가 한국 물동량의 45%를 담당하는 주요 수송로(SLOC)기도 하다.

양안 간의 무력 충돌은 미·중 군사 충돌을 일으킬 수 있으며, 북한의 오판을 초래할 수도 있다. 게다가 중동 원유의 80%가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을 통과해야 하는 상황은 우리를 긴장시키고 있다.

미·중 사이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출현할 수 있고, 한·중 관계 개선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양안 문제에 너무 깊숙이 개입할 필요는 없지만, ‘어느 일방의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 반대’라는 국제주의 원칙 강조와 철저한 자기방어 역량 확보가 핵심이다.

김명삼 대기자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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