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370년 문예사조와 37년 6공화국

2024.02.13 16:19:03 호수 1466호

한 시대의 일반적인 사상의 흐름을 사조(思潮)라고 부른다. 그래서 세계사의 흐름을 정리할 때 분야별로 정치 사조, 경제 사조, 사회 사조, 문화사조, 문예사조 등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유독 문예사조는 명확하게 정리돼 전 세계가 공유하고 있지만, 다른 사조는 그 분야의 전문가만 공유하고 있다.



문예사조는 문학과 예술이 지닌 공통적인 사상의 시대적·정신적 흐름을 일컫는 의미로, 문학과 예술이 한 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사상의 가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사상 면에서 더 깊이 있는 철학 사조도 있지만, 대중의 사상을 대변할 순 없다.   

17세기 말 서유럽 사회를 기점으로 시작된 문예사조는 고전주의, 계몽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상징주의, 현대주의,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순으로 지난 370년 동안 이어왔다. 

세계사는 현재 진행형인 포스트모더니즘을 제외한 문예사조를 크게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실존주의 5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문예사조 5단계서 빠진 계몽주의는 종교개혁으로 신에 대한 체계가 무너지고 이성주의가 등장했으나 여전히 절대왕정으로 유지되고 있던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주관적이고 개성적이며 미래지향적인 특성을 지닌 낭만주의가 등장하기 전, 짧은 기간 동안 구습의 사상을 타파하기 위해 생긴 혁신적 사상운동의 사조다. 


정치권서 정권교체를 외칠 때마다 계몽주의 사상을 자주 인용하는 이유가 바로 계몽주의가 혁신적 사상운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나 의미보다는 상징성을 중시하는 상징주의 역시 사실주의의 뒤를 이어 실증 사상을 배경으로 예술 행위의 기본이 되는 원리를 자연이라고 보는 자연주의와 실존의 부정적 측면들이 인간 현실의 본질적 특징으로 대두되는 실존주의의 중간에 짧은 기간 동안 유지돼 문예사조 5단계서 빠졌다. 

필자는 우리나라 6공화국 5년짜리 각 정권도 당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사상이 문학과 예술로 나타난 시대적 산물인 문예사조 5단계 프레임과 같은 기조에 의해 운영됐다고 생각한다.

6공화국 노태우정권부터 문재인정권까지 각 정권의 기조를 보면, 집권 1년 차는 고전주의처럼 대통령 친정체제를 구축하고, 2년 차는 낭만주의처럼 주관적인 정부를 표방하며 장밋빛 미래 비전을 만들고, 3년 차는 사실주의처럼 있는 그대로의 정부 모습을 보여주고, 4년 차는 자연주의처럼 자연친화적 정부를 내세우고, 5년 차는 실존주의처럼 실제 존재 상황을 인식하는 순으로 국정운영이 추진됐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현재 2년 차의 윤석열정권은 역대 정권처럼 2년 차 낭만주의 가치관답게 윤 정권만의 독창적인 모습을 보이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미래 비전을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윤 정권을 도와야 하는 국민의힘도 정당으로서 정체성도 비전도 없어 보인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문예사조 5단계에 끼지 못한 계몽주의처럼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지적하며 이를 타파하기 위해 혁신적인 정책으로 야당다운 정치 기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민주당 역시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제3지대 신당도 신당답지 못하다. 제3지대 신당이야말로 상징주의처럼 양대 정당의 이미지나 양대 정당이 얘기하는 정치적 의미를 뛰어넘어 새로운 정치 형태로 출범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국민은 제3지대 신당을 지지하려는데, 정작 지지를 받아야 할 신당은 준비가 덜 된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윤정권은 이번 총선이 끝나고 3년 차가 되면 사실주의처럼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의 정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대통령과 국무위원이 기자회견도 국민과의 대담도 자주 가져야 한다. 그리고 내후년 4년 차엔 자연주의처럼 안정적인 모습의 정부가 돼야 하고, 마지막 5년 차엔 국정운영 4년 경력을 살려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가치까지 찾아내 국민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


역대 정권도 문예사조 5단계에 맞게 운영되진 못했다. 그러나 최소한 5단계 프레임의 가치를 추구하긴 했다.

윤정권이 계몽주의와 상징주의 가치로 야당이 대응할지라도 당당하게 문예사조를 닮은 정권의 기조를 굳건하게 만들어가야 국민으로부터 박수받을 수 있다.

우리 정치가 발전하려면 4월 총선 결과에 상관없이 총선이 끝난 후, 국민의힘은 사실주의 가치를, 민주당은 계몽주의 가치를, 제3지대 신당은 상징주의 가치를 정당의 기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역대 대통령의 공적을 평가할 때 문예사조 5단계처럼 각 정권이 1년 차엔 고전주의 가치를, 2년 차엔 상징주의 가치를, 3년 차엔 사실주의 가치를, 4년 차엔 자연주의 가치를, 5년 차엔 실존주의 가치를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지난 370년 동안 인류가 문학과 예술을 통해 압축해 놓은 사상의 흐름, 즉 세계 문예사조와 최근 37년 동안 우리나라 6공화국 각 정권의 기조가 닮았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문예사조가 향후 우리나라 정권을 평가하는 바로미터가 되기를 바란다.  

현대 정치인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나 예술로 인정되는 다중사회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살고 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을 정권 기조에 포함시키진 않고 있다. 무정부시대가 아직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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