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아산사회복지재단이 현대중공업그룹 지주사 주식을 사들이는 데 여념이 없다. 올해 들어 주식 매입에 나선 것만 해도 수십 차례고, 불과 반년 사이에 지분율을 두 배 가까이 끌어올린 모습이다. 현금배당이라는 눈앞의 이익은 물론이고, 황태자의 우군 역할을 충족시키는 쓰임새가 돋보인다.
지난 18일 HD현대(옛 현대중공업지주)는 아산사회복지재단(이하 아산재단)이 지난 14일부터 18일 사이에 세 차례에 걸쳐 보통주 총 16만7337주를 사들였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아산재단이 보유한 HD현대 주식 수는 298만146주로 확대됐다.
쉴 틈 없이…
아산재단은 1977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현대건설 창립 3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공익재단이다. 서울아산병원 운영 등 의료사업을 비롯한 복지사업을 영위하며, 정기선 HD현대 대표이사 사장의 부친인 정몽준 이사장이 이끌고 있다.
아산재단의 HD현대 주식 취득 공시는 이달에만 벌써 네 번째다. 앞서 아산재단은 지난 1~5일(세 차례 14만5632주), 지난 6~8일(세 차례 22만6177주), 지난 11~13일(세 차례 15만4768주)에 주식 추가 매입에 나섰다.
활발한 주식 매입은 올 초부터 계속됐다. 아산재단은 지난 3월부터 최근까지 HD현대 보통주를 공격적으로 사들였고, 그 결과 올해 들어 아산재단이 HD현대 주식을 사들인 횟수만 수십 차례에 달했다.
연이은 주식 매입에 힘입어 지난해 말 기준 1.92%(152만895주)에 불과했던 아산재단의 HD현대 지분율은 지난 18일 기준 3.77%로 높아졌다. 이 과정에서 아산재단은 900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투자했다.
한국조선해양 주식을 매각해 거둬들인 종잣돈 역할을 한 모양새다. 아산재단은 지난 2월24일 한국조선해양 주식 99만주를 858억원에 매도했다. 이에 따라 재단이 보유한 한국조선해양 주식은 168만4436주에서 69만4436주로 감소했고, 지분율은 기존 2.38%에서 0.98%로 하락했다.
아산재단, 숨 가쁜 HD현대 주식 매입
올해 수십 차례…현금·지배력 ‘일석이조’
아산재단 입장에서 그룹 지주사(HD현대) 주식은 여러모로 그룹 조선 부문 중간 지주사(한국조선해양) 주식보다 쏠쏠한 쓰임새가 부각된다. 일단 현금배당이라는 단기 이득이 뒤따른다는 점이 크다.
한국조선해양은 수익성 악화의 여파로 오랫동안 현금배당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2019년 연결기준 순이익 1641억원을 기록했던 한국조선해양은 이듬해 8338억원 손실로 돌아선 데 이어, 지난해에는 적자 규모가 9000억원대로 불어난 상황이다.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했던 2019년에도 별도 기준 적용하면 747억원 적자였다.
올해 역시 현금배당을 기대하기 힘든 분위기다. 한국조선해양은 올해 1분기에만 연결기준 영업손실 3964억원, 순손실을 2932억원을 기록하면서 전년 동기(영업이익 675억원, 순이익 636억원) 대비 적자 전환했다.
반면 HD현대는 자회사인 현대오일뱅크 등의 호실적에 힘입어 2018~2020년 3년간 액면분할 후로 환산해 1주당 3700원을 배당했다. 지난해에는 현대글로벌서비스의 IPO로 확보한 자금 일부를 추가로 투입해 1주당 5550원을 배당했다.
올해도 통 큰 배당 계획을 내놓은 상황이다. 지난 2월 중장기 현금배당 전략을 통해 별도 기준 순이익의 70% 이상을 배당하고 연 1회 중간배당을 실시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힌 상태다.
아산재단의 지주사 지분율 상승은 궁극적으로 정 사장 우호세력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아산재단의 HD현대 주식 보유량이 많아질수록 정 사장의 상속·증여세 부담이 축소됨을 뜻하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기준 정 이사장의 HD현대 지분율은 26.60%(2101만1330주)로, 주식 가치만 약 1조1115억원에 달한다. 정 사장이 경영권 승계 차원에서 정 이사장이 보유한 주식 일체를 물려받을 경우 수천억원대 상속·증여세 납부가 불가피하다.
확실한 우군
일각에서는 아산재단을 통한 HD현대의 주식 보유가 정 사장의 지배력을 높이는 데 큰 영향이 없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동일인의 특수관계인에 해당하는 공익법인은 동일인이 지배하는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규정하기 때문이다.
다만 아산재단이 경영승계 과정에서 보유 주식을 우회 사용할 경우 우호세력을 규합하는 역할을 맡게 될 수 있다. 보유 지분을 정 사장에게 우호적인 법인 및 개인에게 매각하는 절차가 뒤따를 수 있다는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