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새 생명 주고 떠난 소율이

2021.11.08 17:27:04 호수 1348호

기적처럼 찾아와 천사처럼 떠났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얻어 2년간 투병하다 뇌사에 빠진 다섯 살 아이 전소율양. 어린이 환자 3명에게 장기를 기증해 새 생명을 선물한 뒤 짧은 생을 마치고 하늘의 별이 됐다. 소아 장기기증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인 상황에서 보여준 소율이와 가족의 숭고한 선택이 안타까움과 감동을 주고 있다.



뇌사상태에 빠져있던 전소율(5)양이 지난달 28일 서울대병원에서 심장과 좌우 신장을 환자 3명에게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3명 살리고 
엄마 곁으로

소율이는 임신이 어려웠던 전기섭(43)씨 부부에게 결혼 3년 만에 찾아온 기적이었다. 부부는 기적처럼 찾아온 소율이를 애지중지 키웠다. 평소 놀이터를 좋아했던 소율이는 그곳에서 2~3시간을 놀 정도로 활동적이었고 특히 그네를 타면서 까르르 웃어대던 명랑한 아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소율이가 3살이던 2019년 키즈 카페에서 놀다가 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해 뇌가 제 기능을 못하게 됐다. 이후 소율이는 2년간 코를 통해 음식을 먹으며 투병생활을 이어갔다.

앞서 폐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이던 소율이 엄마에게 딸의 사고는 큰 충격이었다. 


아픈 가족 두 명을 돌보던 전씨는 하루하루 고된 삶의 연속이었다. 아내는 아이를 돌보기 힘들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딸 곁에는 누군가 24시간 있어야 했다. 

다행히 전씨가 다니던 회사 대표의 배려로 직장을 잃지 않으면서도 딸을 돌볼 수 있었다. 어린 딸이 아픈 것도 힘겨운 일인데, 아버지 전씨에게는 더 큰 시련이 있었다. 6개월 전 소율이 엄마가 암 투병 끝에 그만 세상을 뜬 것이다.

소율이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최근 기능 개선을 위해 위로 직접 튜브를 연결하는 위루관 수술을 계획했다. 그러나 미처 수술을 하기도 전 심정지가 왔고, 뇌의 기능이 멈추면서 뇌사로 판정됐다.

모든 것을 내려놨을 무렵,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며 수없이 봐왔던 환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픈 아이를 안고 흐느끼는 부모의 마음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전씨는 그 길로 소율이의 심장과 신장 2개의 기증을 결심했다.

심장·좌우 신장 기증…3명 살리고 하늘로
2년간 투병생활…암으로 떠난 엄마 곁으로

전씨는 “소율이가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의사 얘기를 듣고 이대로 한 줌의 재가 되는 것보다는, 심장을 기증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심장을 이식받은 아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소율이의 심장도 살아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많은 위안이 된다”고 기증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장기이식은 체중, 혈액형 등 주는 사람의 신체조건이 중요해 소아는 소아로부터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아의 기증은 흔치 않은 일이다. 지난해 전체 뇌사 장기기증자 478명 중 9세 이하는 6명에 불과했다.

19세 이하로 연령대를 넓혀도 20명이다. 9세 이하가 2016년, 2017년엔 23명, 15명이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기증에 대한 막연한 부정적 인식 등의 영향으로 감소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수백명의 소아가 장기기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꾸준히 장기기증 사례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월 뇌사에 빠졌던 17세 이학준군이 5명에게 장기를 기증해 새로운 삶을 선물하고 하늘의 별이 됐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이군은 집에서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으로 심정지가 왔다. 함께 있던 동생이 119에 신고하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병원으로 이송된 후 결국 뇌사 판정을 받았다. 가족은 어렸을 때부터 아팠던 이 군을 쉽게 떠나보내지 못했다. 이군은 4세 경 열성경련을 앓았다.

꾸준한 기증
용기내는 가족

하지만 수 차례 실시한 검사에서도 뇌파가 전혀 기록되지 않았고, 결국 이군의 부모는 가족회의를 거쳐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이군은 지난 10월 21일 분당차병원에서 심장, 폐, 간, 좌우 신장을 기증해 5명에게 새로운 생명을 전달했다. 이군의 어머니는 “학준이가 어려서부터 많이 아팠기 때문에 무엇보다 아픈 가족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며 “학준이의 일부가 환우에게 가서 다시 살아난다면 우리 가족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큰 위로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보다 앞선 9월에는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25년간 기자로 활동한 고 여기봉씨가 장기 및 조직 기증을 통해 3명에게 새 생명을 전달했다.

추석이 끝난 연휴 마지막 날, 뇌출혈로 극심한 두통을 호소했던 여씨는 급히 응급실에 내원했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 판정을 받았다.

가족들은 여씨가 평소 생명을 살리는 일에 관심을 보였으며, 아내와도 장기기증에 대해 종종 이야기를 나눴던 만큼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 장기기증에 동의했다.   

이에 따라 여씨는 9월24일 전북대병원에서 간장과 양측 신장을 기증해 3명에게 새 생명을 전달하고 하늘의 별이 됐다. 

여씨의 아내 이희경씨는 “생명 나눔은 누군가가 타인을 위해 기증을 결심할 때부터 선순환의 고리가 시작된다고 믿는다”며 “우리 가족이 결정한 이 일이 다른 분들이 용기를 내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측은 기증을 결정한 유가족에게 감사를 표했다. 장경숙 장기기증원 홍보교육전략부장은 “소율이의 기증은 어린아이 3명의 생명을 꽃피워줬다는 데 의미가 크다”며 “소아 장기기증이 워낙 적어 기증이 많아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국가 제공하는
지원 못 받아

문인성 장기기증원장은 기증을 결정한 전씨 부모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소율이 이야기를 통해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층을 구제할 제도 마련도 시급하다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이런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전씨가 국가에서 지원하는 돌봄서비스조차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서비스는 보건복지부의 ‘장애아가족 양육지원사업’으로 만 18세 미만 중증장애아동을 둔 가정은 일정 소득기준(기준 중위소득 120% 이하)을 충족하면 본인부담금 없이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그런데 전씨는 지원 요건을 갖춰 지난해 7월 대상자로 선정됐음에도 돌보미 매칭을 받지 못했다. 중증장애아동 가정인 데다 보호자가 남성이라 여성 돌보미들이 꺼린 것으로 파악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대상자로 선정됐음에도 사업시행기관 돌보미가 여성들이라서 남성(보호자)과 집에서 서비스 제공을 꺼려해 돌보미를 매칭하지 못했다고 한다”며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당초 활동지원사(돌보미) 두세 명이 양육서비스 제공을 신청했으나, 가정 상황을 들은 뒤 거부했다고 한다.

소율이의 장기기증을 알린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측도 “소율이가 6세 이하고 중증장애를 가진 아이였기 때문에 돌보미와 매칭이 힘들었다고 들었다”며 “아버지가 답답해서 인터넷 카페에도 가입하셨는데 그렇게 매칭이 안 돼서 대기하는 가족이 많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돌보미 없었다?…복지부 “보호자가 꺼려”
수혜자와 교류 불가…규제 개선 목소리도

현재로선 지원받는 가정이나 돌보미 측에서 서비스를 거부하면 지원을 강제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 남성 돌보미 인력은 전체의 2%대에 불과하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돌보미 인력 2750명 중 남성은 76명, 서울은 304명 중 남성이 9명이다.

돌봄서비스가 시급한 가정이었던 만큼 사업시행기관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씨는 “이식받은 소율이의 심장이 잘 뛰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 그는 “서신 교환은 할 수 있게 해 준다고는 했는데, 꼭 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현재 장기기증자와 수혜자의 교류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31조 비밀유지’ 조항에 따라 금지되고 있다. 장기거래를 두고 경제적 뒷거래가 형성될 것을 우려해 만들어진 조항이다. 1990년대 장기 불법거래가 횡행하던 시절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규제다.

성숙해진 시민의식에 맞게 ‘장기기증 비밀유지 조항’은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해당 조항 개선을 위해 노력해 온 김동엽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사무처장은 “기증인 유가족과 이식인의 직접적 서신 교류를 하자는 것이 아니고, 본부와 같은 기관의 중재 하에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서로에게 부담되지 않는 수준에서 소식만 전하자는 건데 법 개정이 안 되고 있다”고 밝혔다.

학계의 견해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타주의와 사회복지의 관계에 대해 다년간 연구해온 강철희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증자는 내 가족이 타인의 삶에 들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확인할 권리가 있다” 며 “기관 등 중간 매개자를 통해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뒷거래 
부작용

우리보다 장기기증문화가 활성화된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장기기증 유가족과 수혜자 간의 기관을 통한 서신 교환이 법적으로 허용된다. 중간 기관 중재를 통해 장기기증 뒷거래 등 부작용을 줄이고 있는 것. 김 사무처장은 “2016년 미국 유학 중 사고로 현지에서 장기기증을 한 고 김유나양 유가족이 미국인 수혜자를 만나 서로의 안위를 확인하며 위로가 됐던 일을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일 기자<ktikt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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