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만 좋은' 또래상담의 한계

2021.10.18 13:47:47 호수 1345호

3일 교육 받고 남 고민 해결?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서정 기자 = 때론 같은 ‘또래끼리’만 통하는 것이 있다. 같은 연령대끼리 고민을 나누며 위안을 얻는다는 청년이 늘어나면서 또래상담은 사회에서 환영받았다. 하지만 전문 상담자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문어발식’ 또래상담자의 확산에 여파는 고스란히 청년들이 받고 있다. 또 다른 고민이 남았다.



서울 소재 대학교에 재학 중인 대학생 A씨는 현재 또래상담자로 활동 중이다. 그는 올해 초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또래상담소 모집글을 본 후 또래상담자에 지원했다. 학교 캠퍼스 내 상담센터에서 면접이 진행됐고 몇 가지의 질문이 오갔다. 또래상담자의 지원 동기와 상담을 시작하면서 발생할 여러 돌발상황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문어발식

전문 상담사는 마지막 질문에서 또래상담사의 역할과 필요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A씨는 “또래 친구로서, 같은 나이대의 겪는 어려움을 공감해줄 수 있을 것”이라 답했다. 

또래상담은 1994년 이후 문화관광부 산하 국책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이후 한국청소년상담원에서 청소년들에게 적용되며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1980년대 초에 동료 상담이라는 명칭으로 몇몇 대학에 도입됐지만 체계적인 활동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2004년 경기도교육청이 학교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래상담을 제안하며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후로 2007년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이 ‘솔리언 또래상담’이라는 명칭으로 브랜드화한 후로 또래상담은 최근까지 폭발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며 상담자 인력이 부족한 학교 상담 현장으로 확산됐다.


최근 또래상담은 학교 상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방법으로 대두됐다. 

실제 2004년 경기도교육청은 학교 내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안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이후 또래상담은 최근까지 폭발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며 상담인력이 부족한 우리나라 학교 현장에 ‘대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최근 전문 상담자 인력이 충분하지 못한 학교 상담의 현실을 구조적으로 개선하지 않은 채 또래상담소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A씨는 총 20명으로 구성된 19기 또래상담자 팀원들과 함께 또래상담을 시작했다. 19기는 동급생부터 선후배, 대학원생까지 다양한 학번으로 구성돼있었다. A씨는 실제 상담을 진행하기 전 20시간 받아야 하는 상담자 교육이수과정을 3일에 걸쳐 이수했다. 

상담자 교육 이수 과정은 전문 상담자 지도 아래 이뤄졌다. 교육 과정은 상담 과정에서의 벌어질 수 있는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방안이 주를 이뤘다.

이수 과정을 수료한 후 상담사 수료증을 받아든 A씨는 하루라도 빨리 힘든 학생들을 찾아 상담을 진행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SNS 계정에 “힘들고 고민이 있는 학우 분들은 저에게 상담을 받아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인력난 해소 무조건 늘리기에 급급
“내담 스트레스 풀데 없어요” 토로

A씨는 상담자가 된 후 상담받는 사람을 일컫는 ‘내담자’를 배정받아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을 진행하며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점차 상담이 진행될수록 힘들어진 A씨는 며칠 전 동료 또래상담자 간 모임에서 여러 고민을 토로했다.

동료 또래상담자들도 “힘들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문제는 이들이 단기간의 전문성 없는 또래상담자 양성 프로그램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또래상담 양성교육 프로그램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시간은 학교마다 제각각이다. 통상 20시간을 넘지 않는 비교적 짧은 시간으로 이뤄진 교육 시간과 커리큘럼은 상담 경험이 전무한 또래상담자들에게 충분하지 않다.


전문가들 역시 또래상담자 양성 시 심화 교육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래상담을 활용 중인 한 전문 상담자는 “또래상담자를 양성할 때 우선적으로 또래상담이 학교 내 하나의 유기적 시스템으로 정착시키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심화 교육 과정을 통한 전문성 등을 갖추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청소년상담원이 2001년 기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또래상담이 성공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학교는 전국 348개로 집계됐다. 이들은 성공적인 또래상담의 필수 전제조건으로  충분한 또래상담자의 교육훈련, 체계적인 또래상담반 조직과 운영, 학교장의 지원 등을 꼽았다. 

안현진 마포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이하 상담복지센터) 센터장은 “또래상담 동아리원들의 상담자 역량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또래 청소년들에게 정서적 지지자로서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했다, 밖에서 만나고 싶다”
깊은 관계 원해 곤란한 상황도

또래상담자들은 ‘또래’라서 불편한 점도 있다고 토로한다. 또래상담자 B씨는 며칠 전 학교 캠퍼스를 지나가다 자신이 상담 했던 내담자 C씨를 만났다. C씨는 평소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등 교우 문제로 인한 우울감을 호소하며 또래상담을 받아왔다.

최근 C씨는 B씨에게 “사적으로 만나고 싶다” “다정한 모습에 반했다” 등의 연락을 받고 상담을 중단했다. 이처럼 내담자가 상담자와의 깊은 관계를 원하는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면 전문 상담사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이 지침이다.

하지만 B씨는 “상담사 자격을 얻었는데 전문 상담사 선생님께 연락할 수 없었다”며 “한동안 캠퍼스에서 마주칠까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또래상담자에 대한 안전장치는 상담센터에서 내담자의 상담 횟수를 제한하는 것뿐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 내담자당 상담 1회 때 50분의 상담시간을 갖게 되며, 최대 6회, 그 이상의 만남은 지속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두고 있다. 

하지만 따로 연락이 오기도 하고 전화가 오는 등 지속적인 연락으로 불편했다는 또래상담자들에게 실질적인 안전장치는 마련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향후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전문인력 충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2016년 전국 대학 학생 생활 상담센터협의회가 115개 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국 대학상담센터의 전임 직원의 숫자는 3~4명(35.7%)이 가장 많은 인원으로 집계됐다. 대다수 학교가 전임 상담교수와 전임 연구원, 상담원을 단 한 명도 보유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흡한 조치

김계현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또래상담반 운영을 위해서는 적어도 그 학교에서 4년 이상 운영돼야 하며 수년간 또래상담이 지속되는 경우를 기준으로 담당교사는 또래상담 전문 훈련을 받은 또래상담지도자여야 한다”며 “또래상담 전문 훈련을 받은 또래상담지도자여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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