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헌법에는 ‘경자유전’이란 말이 있다. 농사를 지을 사람만 농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하지만 이 농지가 고위공직자들의 전형적인 ‘땅테크’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농지법 개정 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LH 사태’가 전국을 강타하면서 신박한 땅 투기 사례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토보상(현금 대신 토지로 보상하는 것)을 받을 수 있는 면적을 쪼개서 매입하는가 하면, 보상금이 높은 희귀종의 묘목들로 부지를 빽빽하게 채우기도 한다. 일명 ‘벌집’(투기목적의 임시주택)을 설치하는 방법도 있다.
가짜
한 LH 공무원은 땅 매입을 위해 수십억원을 대출 받아, 달마다 수천만원이 넘는 대출 이자금을 감당했다. 대출도 마다하지 않는다. 부지 일대가 개발만 된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어서다.
LH 사태의 핵심은 공직자가 내부 정보로 사리사욕을 채웠다는 점이다.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의미가 퇴색되면서, 성실하게 일하는 일반 국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줬다는 평가다.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투기는 대부분 농지에서 이루어졌다. 보통 전답 매입이다.
헌법의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땅은 농사를 짓는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다. 하지만 1996년 농지법 개정 이후 일반인들도 농지를 쉽게 소유할 수 있다.
LH 사태의 파장은 그대로 여의도 정치권을 향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슬기로운 재테크를 위한 고급 정보를 쉽게 입수할 수 있다. 또 ‘룰’을 바꿔 재산 증식에 유리한 판을 짤 수도 있다. 토지를 대거 소유한 국회의원들의 이해충돌 여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노른자위 금싸라기 농지 보유 논란
공직자 투기 수사 정치권으로 향하나
현행법에 따라 농지 취득을 위해서는 ‘농업경영계획서’가 필요하다. 농사를 목적으로 한 토지매입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다만 의정활동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들이 농사를 짓긴 어렵다. 그래서 공직자의 경우 농지에 관리인을 두고 위탁경영을 맡길 수 있다. 공직을 맡기 전에는 몇 가지의 예외를 제외하곤 허용되지 않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에 따르면 21대 국회의원 300명 중 76명(25.3%)이 농지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가진 농지의 총면적은 약 12만평으로, 133억6100만원에 달한다.
가장 넓은 농지를 가지고 있는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비례대표)은 최근 농지법 위반 의혹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한 의원은 강원도 평창에 필지 35개를 소유 중이다. 땅 면적만 3만4700평에 달한다.
MBC <스트레이트>에 따르면 그는 공직에 들어오기 전 강원도 일대 농지를 매입해 10년 째 위탁 경영했다. 한 의원이 공직을 맡은 지 1년 밖에 안 된 초선임을 감안했을 때, 농지법 위반 소지가 높아 보인다.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부산 연제구) 역시 농지법 위반 논란이 한창이다. 해안가 일대에 매입한 농지를 주차장으로 이용한 혐의다. 이 의원은 부산의 노른자 땅으로 꼽히는 송정 해수욕장 해안가에 1만㎡(3025평)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문진석 의원(충남 천안시갑)은 농업경영계획서에 작성한 것과 다른 사업 목적으로 농지를 매입해 논란이 됐다.
이 밖에도 투기 의혹으로 경찰 수사 대상에 오른 이들이 있다. 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서영석(부천정)·국민의힘 강기윤(경남 창원시성산구)·무소속 전봉민(부산 수영구) 의원 등이다. 서 의원은 지난 2015년 8월 경기도의원 당시 부천에 토지 438.5㎡(132평)와 근린생활시설 175.5㎡(53평)를 지인과 함께 매입했다.
이 지역은 2019년 3기 신도시에 포함된 부천 대장지구와 인접한 곳이다. 서 의원은 미리 개발정보를 알고 산 게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토지 보상으로 39억 차익
세금 면제 법안까지 발의
강 의원은 투기 및 보상금 편취 의혹과 더불어 ‘셀프 세금 면제’ 법안을 내 논란이 됐다. 강 의원은 지난 1998년 경매로 2억6000여만원의 농지를 구입했다. 지난 2월 창원시는 강 의원의 땅을 공원 수용지로 사들였고, 강 의원은 42억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토지 보상으로 약 39억원의 차익을 얻은 셈이다.
아울러 강 의원은 사업 지장물 보상 2억6000만원 중 6000만원을 편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시는 경남도경찰청에 이를 수사 의뢰하고 과다 지급된 보상금은 환수하기로 했다.
더 논란이 된 건 강 의원의 세금 면제 법안이다. 강 의원은 지난해 10월 공원 등 공익사업을 위해 수용되는 토지는 양도세를 전액 면제할 수 있다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만약 통과됐다면, 강 의원은 10억원의 세금을 전액 면제 받을 수 있었다.
무소속 전 의원도 보유 토지의 호재를 위해 힘썼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전 의원은 부산 기장군에 360평의 농지를 보유하고 있다. 인근에는 전 의원 가족소유의 토지도 있다. 면적만 7000평에 달한다. 하지만 전 의원은 이 토지에 농사를 짓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이 농지 인근에 대형 아울렛이 들어설 때 전 의원이 유독 신경을 썼다는 점이다. 이 곳은 국내 3번째 프리미엄 아울렛으로, 들어서면 근처 부지 가격이 뛰는 것이 예상된 사업이었다.
MBC <스트레이트>에 따르면 전 의원이 부산시의원일 당시, 아울렛 입점이 지체되자 여러 차례 아울렛 개장을 재촉한 것으로 확인됐다. 완공 이후 아웃렛 주변 땅값은 7년간 4배가량 올랐다.
이처럼 농지가 ‘땅테크’ 수단으로 전락한 것은 허술한 농지법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전국 수천만 필지의 용도를 확인하는 작업은 불가능하다. 일각에서 농지거래심사위원회 도입을 주장하는 이유다. 농지거래가 있을 때마다 이를 적절한지 심사할 위원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허술
정치권에서는 농지법 개정에 대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21건의 농지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 중 11건은 LH 사태 이후 발의된 것으로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사동천 홍익대 법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앞세우는 “‘부당 이익 환수’나 ‘주말 체험용 농장 규제 강화’는 현실성 떨어지는 조치”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