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송유관공사 살인사건] 그 끝나지 않은 이야기

2018.06.25 10:25:11 호수 1172호

“미투 바람 일찍 불었더라면…”

[일요시사 취재 1팀] 김세훈 기자 = 직장상사의 과도한 애정행각이 끝내 한 생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3년이 흐른 지금도 유가족은 추가 혐의가 있다고 주장한다. 사건은 판결이 끝났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어 재조명해봤다.
 



올해 초 서지현 검사의 증언은 각계각층으로 퍼져 ‘미투(Me too)’ 운동으로 확산됐다. 자신의 신상을 공개하며 소리친 목소리는 떨림이 있었지만 그 파장은 작지 않았다. 우리는 분야를 막론하고 부당한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억울한 희생

13년 전에도 지금 같은 분위기였다면 억울한 희생을 막을 수 있었을까? 대한송유관공사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올린 사람은 피해자의 어머니 유씨다. 그녀는 딸의 죽음이 단순한 치정사건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유씨는 범행에 이용된 차량 안의 혈흔, 시신의 훼손상태를 이유로 들며 “범행 당시 성폭행이 있었는지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씨는 “가해자 이씨가 단순 살인과 유기로 처벌 받았을 뿐”이라며 “성폭력에 관한 특례법을 적용해 재수사하고 재판 받기를 원한다”고 했다. 현재 그녀는 광화문 근처서 시민들에게 사건내용을 알리고 뜻을 같이 해달라는 서명을 받고 있다.

유씨는 사건과 관련된 여러 서류들을 공개했다. 재판과정서 증거로 쓰인 문서와 판결문 그리고 범행 현장을 찍은 사진들이었다.


먼저 눈에 들어온 자료는 회사가 가해자 이씨를 해고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였다. 이 문서에 따르면 이씨는 원주경찰서에 자수한 2005년 6월1일 당일 회사서 해고됐다. 

유씨는 이 문서를 보여주며 “자수하기 전부터 회사는 이씨의 범행을 미리 알고 해고처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양평서 범행을 저지른 범인이 원주까지 가서 자수한 것도 이상하다”고 주장했다. 

이후 사건 처리 과정서 원주경찰서가 단순히 남녀 간의 다툼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수사를 마무리한 이유도 “회사가 사건의 확대를 막기 위해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인 게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회사는 이틀 후, 6월 3일 이씨를 다시 회사에 복직시킨 다음 사직서를 받았다.

서류 중에는 ‘합의서(안)’이라는 문건이 있었다. 어떤 내용의 문건인지 묻자 유씨는 “회사서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말해 어떤 내용인지 들어보고자 SK측(최대주주) 사람들과 몇 차례 만났다”고 했다. 

이어 “합의서에 적힌 금액이나 조항은 그들이 일방적으로 작성해 메일로 통보했다”고 말했다.

문건의 내용을 요약하면 ‘앞으로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며 이 문서를 언론을 포함한 제 3자에게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유가족에게 1억원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확인한 유씨는 제안을 거절했다.
 

희생자의 산재처리 가부를 결정한 근로복지공단 성남지사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로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이며 어떤 사람들이 결정하는지 물었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지급과 부지급 여부는 관련 법령에 따라 업무상재해인정기준에 의해 결정된다. 업무와 사건 간의 인과관계를 따지게 되는데, 절차는 담당자가 사건조사에 대한 경찰자료나 법원 판결문을 수집해 결재를 올린다”며 “결재가 되려면 관련 부서 부장과 지사장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사건은 업무 때문에 마찰이 생겨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고 사건발생 시간도 근무시간이 아닌 퇴근 후 일어났기 때문에 산재인정 처리가 안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미진한 수사…풀리지 않는 의문
피해자 어머니 13년 응어리 꺼내

산업재해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업무와 연관성인데 그 연관성 입증이 어렵다는 것이다.

양평서 범행을 저지른 가해자가 왜 가까운 인근 경찰서가 아닌 원주경찰서까지 찾아가 자수했는지도 의문이다. 

원주경찰서가 어떻게 사건을 맡게 된 건지 원주경찰서에 물었다. 

원주경찰서 형사지원과 관계자는 “범인이 자수를 하든 검거를 하든 최초 진술을 받은 경찰서에서 수사하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어 “사건현장이 관할 구역이 아니더라도 경찰 내부 협조를 통해 수사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가족은 당시 원주경찰서의 수사가 미흡했다고 주장했다. 

수사에 대한 질문을 하자 원주경찰서 관계자는 “유가족 측에서 항의해 한동안 시끄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민사소송까지 해서 2∼3년간 소송도 했다. 당시 사건을 맡은 담당자는 퇴직한 상황이라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유씨가 제공한 여러 문건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 것들은 대한송유관공사에 관한 서류들이었다. 취재하며 든 의문점과 유씨가 주장한 내용을 바탕으로 대한송유관공사의 입장을 들어봤다.

유가족의 말대로라면 2005년 6월1일 이씨는 자수하기 전, 회사에 먼저 범행 사실을 알렸다. 이씨가 자수하기 전 회사와 미리 상의하고 회사가 이씨를 해고 조치한 것이 사실인지 물었다. 


대한송유관공사 CR팀 관계자는 “사실과 다르다. 자수 후 해고 처리했다. 해고 승인 문서를 보면 날짜를 확인할 수 있다. 6월1일 자수했고 이날 해고했다. 소식을 듣고 바로 인사위원회를 열어 해고 처리했다”고 말했다.

이틀 후 해고를 취소하고 면직 처리한 것은 어떤 의미인지 묻자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취업규칙상 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해고 처리했을 때 향후 해고자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다”며 “뒤늦게 법률 검토를 하고 추가적 이슈를 만들지 않기 위해 그렇게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이후 형이 확정되지 않아도 회사서 위원회를 열어 해고할 수 있도록 취업규칙을 바꿨다”고 말했다. 

사직서를 내게 한 이유가 퇴직금을 챙겨주기 위함이나 책임 회피를 위해가 아니냐고 묻자 “책임 회피로 보일 여지가 있기 때문에 바로 해고할 수 있도록 취업규칙을 바꾼 것이다. 퇴직금까지는 확인한 바 없다”고 답했다.

합의서에 대한 내용도 물었다. 합의서를 만들어 1억원을 제시한 배경과 이유를 들어봤다. 

이 관계자는 “그건 합의서가 아니다. 당시 유씨를 비롯해 같이 다니는 분들(피해자연합) 쪽에서 심하게 소란을 심하게 피웠다. 그쪽(유가족)서 언제 한 번 만나자는 이야기를 했다. 대법원 판결까지 종결이 난 사건이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위로금 형태로 제시를 하려고 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금액이 1억원으로 정해진 배경에 대해 “당시 어떻게 이야기가 됐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 상호간 얘기한 것 같다”고 전했다.

유씨는 인터뷰서 합의서에 적힌 금액이나 조항은 “회사가 일방적으로 작성해 메일로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합의서에 관해서는 “그건 합의서가 아니다. 합의서 명목이 아니다. 회사 측에서 잘못한 것이 있어야 합의라는 말이 성립하는데 회사는 이 사건과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위로금 명목으로 그 정도 수준서 상호간에 이야기가 된 적은 있다”고 대답했다.

2005년 1심 구형이 있던 날, 사건 담당 검사는 유씨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검사는 “피의자에게 사형을 구형할 테니 성폭력에 관한 진정은 취하하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 여성단체에서도 유씨를 설득했다. 성폭력 이야기는 빼는 것이 좋겠다고 부추겼다. 

유씨는 자신의 편이라고 믿은 그들의 말에 따라 피의자에게 성폭력에 관한 혐의가 있다는 진정서를 취하했다. 사건은 결국 성폭행 혐의에 대해 제대로 된 수사도 해보지 못한 채 판결이 났다.

사건은 종결

그들이 진정서를 취하 하자고 설득한 정확한 이유와 배경은 알 수 없다. 사회는 알 수 없는 각종 이권으로 얼기설기 얽혀있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개인이 해결할 수 없다. 시스템에 있어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면, 또 분리돼 싸울 것이 아니라 연대를 통해 더 강력한 목소릴 내야 한다. 위계에 의한 부당행위에 맞서는 처절한 몸부림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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