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777호 특별기획> 2010 대박 쫓는 사람들<현장보고> ⑤정통 新하우스 잠입

2010.11.30 10:15:37 호수 0호

“단속 어렵다굽쇼?” 배달부, 경찰을 비웃다


도박꾼들의 아지트. 예나 지금이나 ‘하우스’라 불리는 불법 도박장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너무나 가까웠다. 바로 옆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바짝 붙어있다. 지금 이 순간, 그곳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도심, 주택가를 파고든 비밀 도박장에 잠입해봤다. 신분을 숨긴 기자는 사전에 지인의 감쪽같은 소개로 ‘하우스장’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굳게 닫혔던 하우스 문이 열렸다.

패 쥐는 순간 ‘패’…하우스장만 ‘고리’로 짭짤
월수입 1000만원 “모두 꾼 주머니서 나온 돈”
파랑새? 까마귀만 ‘까악까악’


지난 11월20일 오후 9시 서울 영등포 한 오피스텔. 생각보다 밝았다. 하우스, 소위 도박장이라 어두컴컴한 실내를 예상했지만 전혀 음침하지 않았다. 자욱한 담배 연기만 이곳이 어딘지를 확인케 했다. 2대의 공기청정기와 창문 환풍기도 10명이 넘는 꾼들이 연신 피워대는 줄담배를 감당하지 못했다.

대박은 없다

주거용이 아닌 사무실 용도인 탓에 공간이 꽤 널찍하다. 족히 30평은 돼 보인다. 6인용 원탁 3개에 삼삼오오 모여 패를 들여다봤다. 1개의 원탁이 더 있었으나 멤버 부족으로 이날은 빈 상태였다.

각 원탁의 게임은 달랐다. 포커, 바둑이, 섰다판이 벌어졌다. 판돈이 눈에 띄었다. 수북이 쌓인 뭉칫돈을 예상했지만 이 역시 빗나갔다. 금·은·동색 코인이었다. 금색은 10만원, 은색은 5만원, 동색은 1만원권을 대신했다. 아는 사람이 오락실을 하는데 그곳의 코인을 가져와 베팅용으로 쓰고 있다는 게 하우스장의 설명이다.

꾼은 현금을 맡기고 코인을 받는다. 물론 나중에 판이 끝나면 남은 코인을 현금으로 다시 되돌려 받는다. 보통 하루 판돈은 적게는 500만원, 많게는 1000∼2000만원. 판돈이 큰 것처럼 보이지만 멤버가 고정돼 있어 돌고 돌아 결국 그 돈이 그 돈이란다.
하우스장 이모씨는 하우스엔 ‘대박’이 없다고 단언했다. 사기 때문일까. 아니었다. 이씨가 말한 이유가 그럴 듯하다.

“여기에 돈 따러 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엔 누구나 일확천금을 꿈꾸죠. 그렇게 한두 번 출입하게 되면 빚을 지게 되고, 본전 생각에 발길을 끊지 못하는 겁니다. 나중엔 습관적으로 패를 잡게 됩니다. 중독이 되는 거죠.”

옆에서 듣던 한 꾼도 이씨의 말을 거들었다.
“어제는 따고 오늘은 잃는 게, 또 오늘은 잃고 내일은 따는 게 도박판입니다. 돈 땄다고 판 떠나는 사람 못 봤어요. 잃으면 당연히 떠나지 못하죠. 그러니 이런 도박판이 계속 벌어지는 것 아닙니까.”

들쑥날쑥한 승자와 패자 사이에서 매일 같이 돈을 버는 사람은 따로 있다. 하우스장 뿐이다. 그는 자릿세 명목으로 시간당 ‘고리’를 뜯는다. 각 테이블은 이 고리를 내기 위해 자체적으로 게임 승자의 일정액을 모아놨다가 불입한다. 얼마 전까지 게임 승자에게 그때그때 바로 걷었지만, 하도 시비가 잦아 아예 정액제로 바꿨다고 한다. 테이블에서 모인 돈이 남으면 가장 많이 잃은 꾼에게 개평으로 준다.

이렇게 이씨가 챙기는 1일 평균 수입은 40∼50만원. 한달로 따지면 1500만원 정도 되는 셈이다. 적은 돈이 아니지만 도박판이란 특성상 “고작?”이란 의문을 품을 때 쯤 그는 덧붙였다. 부수입도 있단다. 코인을 바꿀 때 받는 팁과 돈을 꿔주고 받는 이자가 쏠쏠하다고 전했다. 이중 매일 10∼20만원씩을 ‘꼬마’라 불리는 20대 초반의 잔심부름꾼에게 주고, 월 임대료 200만원에 멤버들의 식대, 간식비 등을 빼면 이씨에게 떨어지는 한달 수입은 1000만원 안팎이다.

“1000만원. 많이 버는 것 같죠. 실제론 그렇지 않아요. 10년 넘게 이곳저곳에서 하우스를 운영했는데 그동안 꾼들에게 떼인 돈만 수억입니다. 도박자금을 대주는 ‘꽁지’가 있지만, 줄행랑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요즘엔 하우스장이 보증을 섭니다. 그래서 지금은 직접 돈놀이를 합니다. 여기에 단속으로 날린 벌금과 임대료만 해도 1억원이 넘습니다.”

잠입 전 기대(?)했던 ‘타짜’는 없었다. 망을 보는 ‘문방’, 도박판으로 유인하는 ‘꽃뱀’, 도박에서 돈을 잃어주는 ‘바람잡이’, 도박자금을 빌려주는 ‘꽁지’, 멍청한 ‘호구’도 없었다. 혹시 몰라 이씨에게 묻자 시큰둥한 답변이 돌아왔다.

“뭐, 영화 찍습니까.”
이어 이씨는 전문 도박사기단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영화 <타짜>에서 나오는 삭막한 하우스는 극히 드뭅니다. 그래서 이런 일당이 경찰에 잡히면 그렇게 난리가 나는 겁니다. 일반 정통 하우스는 멤버, 곧 사람을 상대로 하는 장사예요. 사기집단이 아닙니다. 하루 이틀 할 것도 아닌데 장난을 치면 손님 다 떨어집니다. 가끔씩 멤버 중 외지인을 데려오기도 하는데 아예 판에 앉히질 않습니다. 타짜가 아닌가 해서요. 오면 경계부터 하죠.”



타짜도 없었다

그렇다고 이 하우스가 합법은 아니다. 엄연한 불법이다. 국가에서 법률상 규정된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로 운영되는 사설 영업장은 모두 형법상 불법 사행행위에 해당한다. 국내 불법도박 산업의 경제적 규모가 53조원에 이른다는 보고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속수무책이다.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다, 도심 깊숙이 파고든 비밀 도박장을 찾기 힘들다는 게 경찰들의 고충이다. 결정적인 제보 없이는 사실상 단속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자정께 하우스에 도착한 야식 배달부가 경찰에 일침을 가할 만한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이 주변에 하우스가 많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늦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음식을 시키면 뭐하는 곳이겠습니까. 경찰이 배달원들만 두드리면 하우스 위치를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날 판은 다음날 오전 7시께 끝났다. 가장 많이 딴 사람은 600만원 정도를 챙겼고, 가장 많이 잃은 사람은 1000만원 가까이 됐다. 해장국으로 아침을 때운 이들은 헤어지면서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어이, 이따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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