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인간인가

2016.05.10 08:44:45 호수 0호

오종우 저 / 어크로스 / 1만4000원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는 19세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련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대의명분을 내세워 시대의 기생충이라 판단한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주인공 로쟈, 가족들을 살리고자 거리로 나간 소냐, 딸이 몸을 판 돈으로 술을 마시는 마르멜라도프, 돈으로 황폐해진 정신을 채우려드는 스비드가일로프, 그리고 타인의 불행을 통해 자존감을 높이려는 무수한 사람들.
오종우 교수의 <무엇이 인간인가>는 <죄와 벌> 속 19세기 상트페테르부르크 풍경과 21세기 오늘의 풍경을 교차하며 인간과 인생에 대한 통찰을 전한다. 저자는 로쟈가 자수를 하는 마지막 날까지 그를 좇으며 존엄성이 사라진 시대와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 대해 분노와 비판을 넘어 어떻게 사유하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인간의 자격에 대한 잘못된 통념과 우리를 노예 혹은 기계로 전락시키는 속박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50년 전 탄생한 <죄와 벌>을 오늘의 텍스트로 완성해가는 저자의 작업은 마치 도스토옙스키와 대화를 나누는 듯 보인다. 우리는 그들의 대화에 참여하여 진정한 인간다움은 무엇인지, 존엄한 삶은 어떻게 가능한지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손익계산서를 작성하는 일이 아니다. 이득을 따지고 점수를 매기고 도표로 실적을 헤아리는 게 인생이 아니다. 산다는 건 한 곡의 노래를 부르는 일과 같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삶의 모습은 어떠한가. 예술작품보다 회계장부를 만드는 일에 가깝지는 않은가.
도스토옙스키는 친형 미하일에게 보낸 편지에 ‘인간이 되고 싶어서, 전 생애를 바쳐 인간의 신비를 탐구하겠다고’ 썼다. 도스토옙스키에게 글쓰기는 인간을 이해하고 세상을 알기 위한 수업이었다. 그 수업의 과정이자 결과인 대작 <죄와 벌>을 함께 읽어나간 이 책은 작품 해설서도 고전 쉽게 읽기 같은 교양서도 아니다. 글은 간명하고 쉽게 쓰였으나 이 작고 가벼운 책이 담고 있는 사유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인간에 대한 도스토옙스키의 치열한 통찰과, 우리가 가진 시대의 통념을 전복하는 저자의 놀라운 사유를 넘나들며, 나의 일그러진 시대를 바로 보고 나라는 인간을 깊이 이해하고 나의 삶을 새롭게 써나갈 최고의 인문 수업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저자 오종우는 도스토옙스키에 대해 ‘그는 우리의 현실감각을 마비시키는 달콤한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고 썼다. 이 책 또한 <죄와 벌>을 다루면서 줄거리를 요약해 친절하게 소개한다거나 소설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인지 알기 쉽게 해설한다거나 하는 달콤한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저자는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독서 근력’이 긴요하다고 말한다. 독서 근력이란 작품을 감당하고 해석해내는 힘을 말한다. 소설을 해석한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 현실을 이해하는 일과 비슷하다. 한 작품을 제대로 읽어내고 나면 세상과 현실을 파악하는 능력 또한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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