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서울 시내 일부 약국들이 허위 영수증을 발급해 부당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관련 없는 약을 팔고 환자가 앓고 있는 병과 관련된 약품을 판 것으로 영수증을 조작하는 방법이다. 쉽게 말하면 허리가 아픈 환자에게 비타민을 팔고 파스 영수증을 끊어준다는 얘기다.
"방금 사신 비타민도 보험 처리 가능케 해드릴까요?" 자동차 사고를 당해 디스크 판정을 받은 A씨가 얼마 전 약사에게 들은 말이다. 이달 초 A씨는 서울 서초구 자신의 회사로 출근을 하던 도중 골목길에서 좌회전하던 차량에 들이받혀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다.
A씨는 서초구의 한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병원에서는 입원을 권유했지만 회사 사정상 A씨는 통원치료를 받기로 하고 병원에서 끊어준 처방전을 들고 인근 약국을 찾았다.
허위 영수증 발급
근육이완제와 진통제 등이 포함된 약 조제비는 9590원. A씨는 약사에게 발포 비타민 한 통도 함께 달라고 말하면서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카드를 받아든 약사는 비타민 값을 포함 1만9590원을 결제한 뒤 A씨에게 "비타민 값도 보험 처리를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며 카드 영수증 상단에 '조제 9590, 파스 10000'이라고 적었다. A씨는 해당 영수증으로 보험회사로부터 1만9590원을 받을 수 있었다.
교통사고 피해자가 자동차 보험으로 병원 진료를 받을 때 보험사가 해당 병원에 ‘지급보증’을 하면 환자는 무료로 진료를 받고 보험사에 진료비를 청구한다. 그러나 약국의 경우 일반 보험과 동일하게 계산한 후, 영수증을 발급하고 환자는 이 영수증을 보험사에 제출하고 돈을 받게 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A씨의 약국 영수증에는 약국이름, 약사명, 전화번호, 주소, 사업자번호, 카드단말기번호 등 약국 기본 정보와 함께 A씨의 카드번호, 거래일시, 거래구분 등 카드 정보가 기재되어 있는 등 일반 카드 영수증과 다를 게 없었다.
이상한 점은 결제 정보에서 발견됐다. A씨가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은 '조제 의약품'이다. 비타민, 파스 등은 처방이 필요 없는 '일반 의약품'이다. 하지만 조제 의약품 값은 1만9590원, 일반 의약품 값은 '0원'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비타민 값을 조제 의약품으로 계산해 결제했다는 얘기다.
일반의약품을 조제의약품으로
허위로 발급해 부당이익 챙겨
이후 A씨는 비슷한 내용의 처방전을 들고 또 다른 약국을 찾아 발포 비타민 한 통을 구입했다. 그곳 약사 또한 A씨에게 보험 처리가 가능하도록 영수증을 끊어줬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B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올해 여름 자동차 사고로 우측 팔 골절상을 입은 B씨는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인근 약국을 찾은 뒤 칼슘 제제 한 통을 함께 구입했다. 약사는 "영양제 값까지 보험회사에서 받게 해주겠다. 다음번에는 처방을 받아오라"며 허위 영수증을 발급해줬다.
약국이 허위 영수증을 발급해주고 얻는 이익은 환자가 보험사를 통해 얻는 이익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약국입장에서는 약의 원가를 제외한 약가 마진만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방전이 있을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파스 제제의 경우 지난 2008년 1월부터 비급여 방침이 적용돼 보험적용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칼슘 제제, 철분 제제, 관절약 등은 보험 적용대상이라는 이유로 처방전이 있을 경우 약국이 얻는 이익은 상당하다.
예를 들어 약국에서 칼슘 제제 한 달 분을 처방전 없이 판매했을 때 얻는 수익은 약가 마진에 불과하지만 처방전이 있는 경우에는 약가 마진은 물론 한달간의 조제료 약 1만원도 같이 챙길 수 있다. 보험사 등골만 빠지는 셈이다.
사실 확인을 위해 <일요시사>는 자동차 사고 환자를 수소문한 뒤 그와 함께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 일대 약국 20곳을 방문했다. 그 결과 20곳 중 60%에 해당하는 12곳에서 허위 영수증을 발급해 부당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초구 C약국은 "함께 끊어 주겠다. 한 통 더 구입해라"라고 종용하기도 했으며 D약국은 또 다른 제품을 권유하기도 했다. 강남구 E약국의 경우 처음에는 "안 된다"고 거부했지만 약국을 나가려고 하자 "해주겠다"며 붙잡기도 했다.
업계 "공공연하게…"
약사회는 "금시초문"
끝까지 영수증 발급을 거부한 8곳의 약국은 "연말 정산시즌이라 단속이 강화되어 힘들다" "우리 약국 영수증에는 약의 종류, 수량, 복용방법까지 표시되어 불가능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허위 영수증 발급이 가능했던 약국 몇 곳에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느냐"고 묻자 대부분 "10만원, 20만원도 아니고 고작 1만∼2만원짜리 영수증을 문제 삼는 보험사는 없다"고 말했다.
허위 영수증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거나 취하게 할 경우에는 형법 제347조에 의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보험업계에서는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일부 약국과 환자들이 허위 영수증을 이용해 부당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은 보험사에서도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보험사에서는 이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20곳 중 12곳
이 관계자는 또 "다만 해당 환자가 보험금 청구내역이 다수거나 보험사에서 예상한 약값과 영수증 상의 금액 차이가 심할 경우에는 별도로 조사에 나서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대한약사회 측은 "금시초문"이라며 펄쩍 뛰었다. 이 관계자는 "약사회를 출입하는 전문 기자, 약사, 임원들 사이에서도 관련 내용은 들어본 적이 없다"며 "허위 영수증 발급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상황인데 약사회에서도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