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윤지원 작가의 그림에는 알 수 없는 울림이 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가 윤 작가의 그림을 해석하면서 했던 말이다. 그의 그림에는 보편의 정서를 자극하는 깊이가 있다. 어느 누구도 흉내 내지 않은 고유의 풍경으로 윤 작가는 인간이 갖고 있는 고독의 의미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윤지원 작가는 국내 유명대학 공예과에 입학했던 당시를 회고하며 "삶에 애착을 갖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늘 저녁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면"서 말을 이었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가족들이 모이잖아요? 그런데 전 아침부터 밤까지 혼자였어요. 가족에 대한 동경이 있었죠. 어린 시절을 부산에서 할머니와 함께 보냈어요."
어릴 때 꿈 화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변하면서 윤 작가는 더 나은 삶을 고민하게 됐다.
"아이를 키우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책을 읽다 보니까 지식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어요. 어찌 보면 버려뒀던 자기애가 폭발한 거라고 볼 수 있고요(웃음). 나이 마흔이 다가오면서 더 늙기 전에 내가 원하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릴 때 제 꿈은 화가였거든요."
또 다시 낯선 곳에 혼자 놓이게 된 윤 작가. 그는 매일 저녁을 고독과 마주했다.
"아이들은 음악을 했고, 전 그림을 했어요. 외국어도 몰랐을 때라 적응이 힘들었죠. 먼저 디자인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윤 작가는 디자인 학교에서 경력을 쌓은 뒤 브레라 밀라노 국립미술원에 입학했다. 그때를 회상하며 윤 작가는 "고단한 저녁과 메마른 아침"이라고 표현했다.
"포토샵을 대학가서 처음 배웠어요. 너무 어렵더라고요. 병아리 그리기도 벅찬데 이것저것 새로운 걸 익히다 보니까 중압감이 밀려왔죠. 항상 울었어요. 하지만 아이들을 보면서 힘을 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다 보니까 어느덧 10년이란 세월이 지났어요."
도시와 건물 소재로 고독한 풍경 그려
정적·극적인 구성…자전적 그림 눈길
'작품은 곧 예술가의 삶을 반영한다'는 말처럼 윤 작가의 그림엔 그가 살면서 느꼈던 고독감이 세련된 색감으로 짙게 스며있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도시, 불빛이 배제된 콘크리트, 푸르지만 적막한 바다. 윤 작가는 이 모든 소재들을 "인간의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저는 쓸쓸해 보이는 게 나쁘지 않다고 봐요. 어떤 의미에선 고독도 개인의 권리일 수 있죠. 제 그림에 건축물이 많은 건 고독을 표현하기 위한 거예요. 물리적인 건축물은 사람이 그 안에 살고 있어야 의미를 갖죠. 하지만 인간은 태생적으로 어떤 공간을 점유했다가 떠날 수밖에 없어요. 거기서 오는 인간에 대한 연민. 그리고 제가 갖고 있는 기억. 그런 것들이 제 그림의 동력이죠."
윤 작가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정적이면서도 극적인 구성'에 있다. 이방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풍경은 형태적으로 친숙하지만 정서적으로 낯설다. 다시 말해 윤 작가의 그림은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 연극 무대'와 같다.
"풍경화는 자칫 진부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전 그림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구성을 꼼꼼하게 하는 편이죠. 단순한 화면일수록 구조적인 완결성이 중요해요. 또 공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많이 고민하는 편이고요. 공간이 주는 밀도와 그림 안에서 인간을 압박하는 듯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선 직선과 사선을 의도된 형태로 배열하는 게 중요해요."
마흔에 유학
윤 작가는 인터뷰 말미에 "젊은 세대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서른이 될 때까지 이유 없이 불행했던 자신을 떠올리면서 윤 작가는 따스한 눈길로 그림 안의 소녀를 바라봤다. 늘 담장 안에서 담장 밖의 세계를 동경했던 소녀. 그 소녀는 지금 세 아이의 엄마이자 화가로 담장 밖의 푸른 하늘을 꿈꾸고 있다.
[윤지원 작가는?]
▲브레라 밀라노 국립미술원 회화과 학사 및 석사
▲가나아트스페이스(11), 유중아트센타(13) 외 개인전 5회
▲충무아트홀(12∼), 신세계갤러리(13) 외 단체전 다수
▲ 아산문화예술제(2013) 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