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8일 오전 대통령 4년 연임제와 결선투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개헌 구상안을 공개했다. 이는 대선을 2주 앞두고 외연 확장을 위한 공약으로 특히 중도보수를 잡기 위한 공약이라 할 수 있다.
이 후보는 17일에도 국민의힘을 탈당한 김상욱 의원에 이어 김용남 전 새누리당 의원 등 보수 정당 출신 인사들이 이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하자, “민주당이 중도보수 가치까지 감당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중도보수를 언급했다.
같은 날 개혁신당을 탈당한 허은아 전 대표도 "이 후보의 중도보수 확장 시도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며, "중도보수론'이 단지 선거용 수사에 그치지 않고, 시대를 읽고 국민을 향하는 정치적 진심이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 후보 주변에 중도보수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는 의미다.
민주당은 누가 봐도 진보 정당이다. 그런데 이 후보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 정당이 아니고, 성장을 중시하는 중도보수 정당”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진보는 정의당·민주노동당 이런 쪽이 맡고 있다”며, “국민의힘은 극우보수 정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김부겸 전 국무총리,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 민주당 정치인들은 “이 대표가 민주당 정체성을 훼손했다”고 맹비난했고, 여의도 정가서도 "국민의힘을 ‘극우’로 가두고, 민주당이 중도층을 포섭하려는 프레임 전략"이라고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당시 필자도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계엄선포 이후 국민의힘이 장외 집회 등을 통해 극우 성향으로 흐르자, 이 틈을 타 이 대표가 외연 확장 전략을 세우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민주당을 중도진보 정당이라고 해도 외연 확장이 충분한데 왜 정체성까지 바꿔가며 무리하게 중도보수 정당이라고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잘 안 된다.
만약 강성 진보 정당인 조국혁신당서 대선 후보가 나왔다면, 이 후보가 중도보수에 대해 언급도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중도보수 선언에 불만을 품은 극좌진보와 진보 세력이 조국 혁신당에 흡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도보수는 보수지만 중도에 더 가깝고, 중도진보는 진보지만 중도에 가깝다. 즉 중도보수는 기존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고, 중도진보는 개혁을 추구하되 안정을 유지하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21대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두고 민주당은 대통합을 외치며 민주당의 정체성도 버리고 중도보수 정당을 외치며 중도보수 세력까지 끌어들이고 있는 데, 국민의힘은 민주당 전략처럼 중도진보 세력을 끌어들이기는커녕 극우보수, 보수, 중도보수가 서로 다투고 있으니 문제다.
민주당이 국민의힘 울타리까지 침범해 깃발을 꽂고, 중도보수가 원래 민주당이라고 주장하며 의원을 하나 둘 빼앗아 가고 있는데도 국민의힘은 속수무책이다. 이 모든 걸 윤 전 대통령의 계엄과 탄핵으로 돌리는 것도 한심한 국민의힘이 아닐 수 없다.
원래 국민의힘 지도부는 극우보수 세력과 비정상적인 절차까지 동원해 한덕수 전 총리를 대선 후보로 내세우는 전략을 추진했다. 그리고 빅텐트를 쳐 새미래민주당 이낙연 상임고문 등 중도진보 인사들을 대거 영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정상적인 보수 세력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필자는 국민의힘 지도부가 당 내 극우보수, 보수, 중도보수 세력 중 극우보수 세력에 의해 국민의힘이 좌지우지 된다고 착각한 결과 빅텐트 전략서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정상적인 보수 세력이 국민의힘의 진정한 기반이고, 그들이 국민의힘의 가장 큰 자산이라는 걸 망각한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도 당 내 세력의 균형을 착각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극좌진보, 진보, 중도진보 중 극좌진보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재명 대표 체제가 만들어지고 이 대표가 후보까지 되는 과정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당 내 정상적인 진보 세력이 민주당의 기반이고, 가장 큰 자산이라는 걸 망각해선 안 된다.
특히 민주당은 외연 확장을 위한 대선 정국서 이 대표의 중도보수 정당 선언이 지지를 받았고, 대선서 이겨 정권을 잡으면 대통합이라는 명분으로 당장은 국민으로부터 중도보수 정당의 지지를 받을 수 있지만, 그러나 대선서 패하면 이 후보의 중도보수 선언은 사장되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대선 정국이지만 민주당이 중도보수 정당을 자처하고, 국민의힘이 빅텐트를 쳐 중도진보 세력까지 끌어들이려는 전략은 좋지 않다. 민주당은 중도진보만, 국민의힘은 중도보수만 끌어안아도 대선서 승산이 충분하다. 집 나갈려는 집토끼도 단속 못하면서 산토끼를 잡으려는 전략은 전략이 아닌 우리 국민이 다 알고 있는 흔한 전술에 불과하다.
대선서 정치에 별 관심이 없거나 회의를 느끼는 중도 세력은 공약이나 학연 지연으로 나눠지기 때문에 대선서 어차피 반반 나뉘게 돼 있다. 그래서 큰 의미가 없다. 그러나 중도보수와 중도진보 세력은 상황에 따라 빠져나가는 세력이기 때문에 대선서 항상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왔다.
21대 대선서도 중도보수 세력과 중도진보 세력의 움직임이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막판에 반전을 일으킬 수 있는 주인공이 중도보수 세력과 중도진보 세력이고, 국민의힘이 빠져나간 중도보수 세력만 다시 데려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말이다. 민주당이 머리 숙여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김상욱 의원과 김용남 전 의원 등 보수 세력 인사들이 민주당 이 후보가 깔아놓은 중도보수 카펫을 밟고 민주당에 입성한 것에 대해 잘잘못을 따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대선이 끝나면 머지않아 중도보수 카펫은 정상적인 진보 세력에 의해 거둬지고 말 것이다.
중도보수와 중도진보는 대선 때 잠시 등장한 후, 바람처럼 사라지는 대선 선동용 카펫일 뿐이다. TV토론서 이 후보가 중도보수 선언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