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연루’ 정보기관 와해 시나리오

2025.04.29 07:19:59 호수 1529호

‘윤과 교감’ 이참에 없앤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정보기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외풍에 시달렸다. 조직 규모와 권한이 축소됐다가 회복되는 등 탈이 많았다. 정보기관 입장서 현 시국은 매우 민감하다. 안보 불안정과 함께 조직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다. ‘개편’이라는 밀명하에 조직이 와해될 수 있는 위기 상황이다. 12·3 내란 사태에 연루된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은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12·3 내란 사태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만큼 관리·감독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필요한 조치라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나오지만 우려도 공존한다. 오히려 정보기관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강도 높은
정보 통제

민주당은 국군정보사령부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를 추진 중이다. 정보사 예산과 훈련 내용 등의 비공개 필요성을 따져 국회 보고 범위를 넓히는 것이 개혁안 골자다. 정보사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를 현 정보위원회서 국방위원회로 옮기는 안도 검토되고 있다.

그간 정보사는 대북·해외 비밀공작을 맡으면서 파악한 정보를 극비로 분류해 정보위에 제한적으로 보고해 왔다. 민주당은 정보위와 달리 공개회의로 이뤄지는 국방위로 상임위를 변경하면, 정보사 운용의 투명성이 강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정보사 예하 부대 등의 훈련 내용을 국회 등에 사후 보고하도록 하는 안도 논의되고 있다. 정보사 훈련 내용과 편제·부대 위치·병력 현황 등 세부 내용은 특수 2급 군사기밀이다. 정보사 예산 편성 등으로 제어장치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정보사 예하 북파공작대(HID) 활동도 보고 대상에 포함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정보부대 특성을 고려해 공개 범위를 조정해나가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국군방첩사령부도 컨트롤 대상이다. 민주당은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내부적으로 방첩사의 주요 기능을 세 개로 쪼개 다른 기관으로 이관하는 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첩사는 군내 정보 보안과 감찰, 방첩, 신원 조사, 동향 파악 등을 담당하는 국방부 직할부대로 군 내부서 국가정보원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 민주당서 검토된 아이디어는 방첩사의 정보 보안 기능을 국방부 정보본부로, 감찰 기능은 국방부 감사관실로, 방첩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에 추가 임무를 주는 방식으로 이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방첩사는 1977년 창설된 국군보안사령부를 모태로 한다. 보안사는 신군부 권력 장악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보안사는 1990년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의 여파로 1991년 국군기무사령부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지령받은 방첩·정보사 관리·감독 강화
“개혁 아닌 사실상 권한·조직 축소 방향”

기무사는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다시 권력의 편에 섰다는 이유로 개혁 대상이 됐다. 댓글 공작 사건, 세월호 민간인 사찰에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친위 쿠데타를 검토했다는 이른바 ‘계엄 문건’ 의혹이 확산하면서 국군안보지원사령부로 이름을 바꾸고 조직도 대폭 축소됐다.

당시 정부는 ‘해체에 준하는 개편’이라며 해편이라는 표현을 썼다.

안보지원사로 바뀔 당시 기무사는 육·해·공군서 파견된 4200명의 소속 인원 전부를 원소속 부대로 돌려보냈고, 불법행위에 가담하지 않은 인원을 중심으로 부대를 재편성했다. 정치 개입과 민간 사찰이 금지되면서 수사권은 대폭 축소됐다.

그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은 기무사 해편 과정서 방첩 역량이 크게 훼손됐다고 판단해 2022년 안보지원사를 방첩사로 다시 확대 개편했다. 윤 전 대통령의 계획대로 방첩사는 인력 규모를 3000여명 수준까지 늘리기로 계획하고 원복했던 부대원 수십명을 다시 불러들였다.

기무사에서 나간 인원 중 일부는 군무원으로 신분을 바꿔 돌아오기도 했다. 지난 2020년 안보지원사 첫 군무원 경력 공개 채용이 진행됐지만, 합격자 150명 중 기무사에서 근무했던 전직 부대원은 30명이었다. 경력 지원 자격을 ‘정보수사기관서 군사정보·군사보안·방첩 업무를 한 인원’으로 한정해 결국 같은 사람들이 군무원으로 다시 들어온 셈이다.


특히 외부인 비율을 높여 조직을 쇄신하기 위해 부대령에 넣었던 민간인(군무원) 30% 이상 강제 조항도 폐기했다. 실제 국방부는 ‘국군방첩사령부령 일부개정령’안에 포함된 군인·군무원 인력 비율 조항을 제외했다. 입법 예고안에는 포함됐던 ‘민간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문구도 빼버렸다.

정치 외풍
도돌이표

입법 예고 당시 개정령안은 방첩사의 신설 지원 업무를 ‘대테러, 통합방위 지원’으로 표기해 민간인 사찰 우려를 지적받았다. ‘통합방위’는 총력전 개념에 따라 국가를 방위하는 것으로, 통합방위법에 따라 국군, 경찰청·해양경찰청,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 예비군, 민방위대 등을 포함한다.

대공 수사권을 잃어버린 국정원도 야권의 정보기관 개혁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국정원은 내부에서는 12·3 내란 사태에 연루된 정황만 있을 뿐 직접적으로 가담한 물증은 없어 타 정보기관에 비해 자유롭지만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역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외치던 ‘국정원 대공 수사권 부활’에 희망을 품었지만 지금은 정반대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국정원은 대공 수사권이 폐지되면서 방첩 수사 역량 공백을 메우려 애썼다. 현재 시행 중인 국정원의 시행령 개정이 그 핵심이다. 국정원은 대통령령인 ‘안보범죄 등 대응업무 규정’ 제정안을 입법 예고한 바 있다.

제정안은 ▲국정원이 법령상 직무 범위 내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업무 방식 열거 ▲안보 범죄 등 대응 업무의 원활한 수행과 협조 체제 유지를 위한 유관기관 협의회 설치 ▲합동수사기구 참여 등 각급 수사기관과 협력 등이 골자다.

또 ▲보안대책 및 결과 처리의 통보 ▲안보범죄 등에 효율적 대응을 위한 교육 및 필요한 경우 국정원에 위탁교육 의뢰 등 내용도 담겼다.

이 외에도 2023년 말 ‘정보 및 보안 업무 기획·조정 규정(대통령령)’ 개정안이 심의·의결됐다. 해당 시행령은 중요 정보사범, 즉 내란·반란·이적·군사기밀누설·국가보안법 위반 등 공안 사범의 신병 처리(8조 1항)나 공소 보류(9조 1항) 과정서 “국정원장의 조정을 받아야 한다”는 기존 조항은 “의견을 듣는다”로 수정됐다.


공작 활동
올스톱?

이 규정은 국정원이 대공 수사에 개입·관여하는 초월적 권한을 행사할 근거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검찰이 ▲정보 사범의 신문과 신병 처리, 공소 보류 결정 등에 대해 반드시 국정원장 조정을 받고 ▲경찰의 기소 의견 송치·불송치 결정을 뒤집을 때도 국정원장과 협의하도록 강제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사와 입건, 기소, 재판 결과 등을 국정원에 통보하도록 강제하고, 탈북·망명자를 신문할 때 국정원장 조정을 받도록 하는 규정은 그대로다. 국정원의 정보 수사 조정권의 근거 조항의 골격은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덕분에 국정원은 지금도 안보수사협의체 등 합동수사기구를 통해 검경의 대공 수사에 관여 중이다.

국정원 출신 한 관계자는 “정권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서 확답하기엔 이르지만 정보사와 방첩사가 사실상 공중분해될 가능성이 커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라며 “계엄이 유지됐다면 국정원도 참여할 수밖에 없다. 해제 이후 국정원도 개혁 대상으로 꼽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이 내란 사태에 직접적으로 가담했는지는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의 수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다. 조태용 국정원장과 홍장원 전 1차장의 갈등 외에도 <일요시사> 취재 결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복수의 국정원 간부들에게 연락했던 게 핵심이다.

여 전 사령관은 홍 전 1차장과 통화한 이후 국정원 방첩 담당 간부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여 전 사령관이 국정원에 파견 요청을 한 인원은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이었다. 방첩사 관계자들은 내란 사태 이전부터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국정원 관계자들과 여러 차례 미팅을 해 왔다.

정권 바뀔 때마다 간판 바꿔가며 시련
국정원도 대상 “조직 내 분위기 민감”

정보기관 관계자는 “방첩사와 국정원 간 교류·협력은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닌 통상적인 업무다. 간첩 조사나 대공 수사와 관련된 첩보를 넘겨받거나 확인 과정을 거치려면 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여 전 사령관은 당시 <일요시사>와의 연락서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

합동참모본부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국정원 방첩 업무 담당자들은 본래 지난 2022년 말 신설된 대북방첩센터에 소속돼있었다. 센터는 2023년 7월 해체된 이후 2차장 산하 대공 수사국에 다시 편입됐다.

정보기관 출신 전문가들은 정보사와 국정원 등에 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지만 역으로 정보활동을 위축시킬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이 경찰로 이관됐으나 제대로 된 수사 성과가 없었기에 정보당국의 권한 및 역할 축소는 조직을 와해시키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정원 출신 한 전문가는 “정보사와 방첩사는 대북 공작 업무와 관련해 수시로 국정원과 소통한다. 국정원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정보사와 방첩사가 해낼 때도 있는데 이들 기관에 대한 권한 축소는 조직 와해와 같다. 차라리 간첩법부터 강화하는 게 낫다”고 평가했다.

“간첩법
손봐야”

일명 간첩법은 형법 제98조다.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인 북한으로 한정해 북한 외 다른 나라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하더라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적국’을 ‘외국 및 외국인 단체’로 고치는 개정안이 지난 2004년부터 끊임없이 발의됐으나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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