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의 세 차례 국정과제 점검회의 행사가 경쟁 없이, 무더기 수의계약으로 진행된 사실을 지난 3일 <MBC>가 단독 보도했다. 공개입찰 원칙을 피하기 위한 편법이었다.
MBC 보도에 의하면, 윤정부 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 때 법무부와 고용노동부는 각각 행사대행업체, 연예기획사와 각각 2000만원에 계약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문화체육관광부도 각각 장비업체, 영상업체와 1000만원에 계약했다. 중소벤처기업부, 보건복지부, 교육부까지도 일부 참여해 한 행사서 7개 부처가 쪼개기 계약을 한 셈이다.
국가계약법상 2000만원 초과 계약은 공개 경쟁입찰에 부쳐야 하는데, 모두 경쟁 없는 수의계약이었다. 경쟁입찰은 2주가량 걸리지만, 당시 수의계약은 행사 2~3일 전 이뤄졌다. 특혜 의혹이 불거질 만도 하다.
지난해 3월에 열린 외교·통일·안보 분야 회의도 보훈부와 통일부가 각각 영상업체와 행사업체에 1950만원과 3700만원씩 나눠 수의계약을 했다.
3차 국정과제 점검 회의 때도 국무조정실이 총괄해 2억6000만원짜리 계약을 했지만, 수의계약을 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와 법무부, 복지부, 행정안전부, 국토부, 교육부, 산업부 등 8개 부처가 쪼개 마련했다고 한다.
계약에 참여한 정부 부처는 한결같이 왜 쪼개기 예산 편법으로 수의계약을 했냐는 MBC 질문에 “긴급하거나 보안이 필요한 경우 수의계약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있다”는 해명만 내놨다.
이에 야당은 감사원이 쪼개기 예산에 대한 감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쪼개기 예산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국회의원도 쪼개기 후원의 우를 범하기는 마찬가지다. 1인당 500만원으로 제한된 정치자금 한도 이상의 금액을 후원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리거나 후원자 신분을 노출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쪼개기 후원은 분명히 불법이다. 그러나 쪼개기 후원은 수사기관에 적발돼도 대부분 후원자만 처벌하는 선에서 마무리된다. 불법 후원을 받은 정치인은 수사기관에 입금된 자금이 불법 자금인지 몰랐다고 주장하고, 후원자는 자청해서 한 일이라고 진술하면 되기 때문이다.
불법이 편법으로 둔갑한 셈이다.
몇 년 전 모 정치인이 수백억원대 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자로부터 5000만원을 500만원씩 나눠 쪼개기 후원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정치인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 후원자가 “그분을 존경해 순수 후원한 것”이라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국정과제 점검회의 행사서 쪼개기 예산에 참여했던 각 부처도 “긴급한 상황서 2000만원 이하 수의계약을 했다”는 근거로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사실 지난 4월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행정안전부와 합동으로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대전도시공사 등 5개 지방공기업의 사업추진실태를 점검한 결과 경쟁입찰을 피하려고 공사량을 분할 발주하는 쪼개기 수의계약 14건을 적발했다.
당시 일각에선 공식 감사기관인 감사원을 거치지 않고 감사원과 달리 법적 강제력을 갖추지 않은 국조실 부패예방추진단의 시정 조치에 대해 우려하기도 했다. 이런 우를 범치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쪼개기 예산 문제는 감사원서 직접 감사를 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정부는 3년 전 신도시 예정지에 땅 1000제곱미터를 갖고 있으면 보상을 받고 아파트 분양권 혜택도 크다는 걸 잘 아는 LH 직원들이 큰 땅을 하나 사서 여러명이 1000제곱미터씩 나눠 갖는 쪼개기 수법이 불법으로 인정돼 법적 처벌을 받은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LH 직원들은 편법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엄연한 불법이었다.
불법은 법의 규정을 위반하는 것으로 처벌 규정이 있다. 그러나 위법은 법을 위반한 것이지만 처벌 규정이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다. 그런데 처벌 규정이 없어 처벌받지 않는 경우를 편법이라고 한다.
즉 편법은 법규를 정면으로 위반하지 않고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것으로 한번에 1억원 이상 매매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면 1억원을 5000만원씩 나눠 매매해 처벌을 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편법은 행위로 봐선 법적 제재를 받아 마땅해 보이지만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기 때문에 범법자보다 편법자를 더 싫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원래 가계와 달리 정부 부처 예산은 섞이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각 부처 예산은 제각각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감사원은 쪼개기 예산을 불법으로 보고 철저히 감사해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기업의 경우도 몇 년 전까진 1회 접대비 한도 30만원을 피하기 위해 임원이 거래처에 수백만원 접대하면서 팀장들 카드를 사용해 쪼개기 비용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감사에서 걸리면 양쪽 다 처벌을 면할 수 없다고 한다.
쪼개기 예산은 편법 아닌 불법이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