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소설 ‘축석령’ 출간한 황천우 작가

2023.07.31 09:46:19 호수 1438호

“소설은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소설은 정말 허구일까? 사실이 아닌 있을법한 일을 쓰기 때문에 보통 그렇게 느낀다. 그러나 황천우 소설가는 여러 방면에서 쌓아 올린 경험을 글로 적어낸다. 황 소설가는 매일 집 뒷산에 있는 수락산에 올라 정체성을 찾곤 했다. 실제로 그의 소설은 늘 현실과 맞닿아 있는 게 특징이다.



“소설은 사람 냄새가 나야 한다.” 황천우 소설가는 정치, 소설가, 육체노동 다양한 분야서 경험을 쌓아온 인물이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글을 써 나간다. 욕심을 버리고 느낀 그대로를 담담하게. <일요시사>가 황 소설가를 만나 신간, 소설가로서 염두에 두는 사안 등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신간을 냈다. 독자 여러분께 책 소개를 해준다면?

▲지난해 육체노동을 마감하고 지난 시절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정치판서 15년, 소설가로 15년을 살았고, 육체노동을 5년간 경험하면서 3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세 가지 경험을 아우르는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실행으로 옮겼다. 소설에는 독선에 빠져 지냈던 정치판 15년, 휴머니즘을 최상의 가치로 여겼던 소설가 15년, 그리고 모든 욕심을 내려놓게 된 육체노동 5년의 삶을 한 편의 소설로 썼다. 

-제목이 <축석령>이다. 어떤 의미인가?

▲축석령은 경기도 의정부시와 포천시 경계인 축석고개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고개는 내가 사는 집과 육체노동 현장이 있던 포천시에 소재한 공장의 중간지점에 위치한다. 본업인 소설가와 육체노동의 이정표다. 육체노동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비록 몸은 조금 고달파도 마음의 평안을 한껏 누렸다. 남아있던 욕심을 모두 내려놓게 된 계기다. 그런 의미서 축석령은 단순히 지리적 위치를 떠나 내 정체성의 전환점으로 등장한다. 


-책 내용도 좀 들려달라

▲<축석령>에는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와 마찰을 일으킬 부분이 등장한다. 영혼의 존재 여부에 관한 대목이다. 필자는 인간에 더해 모든 생명체의 생과 사, 특히 사후세계에 관해 확고한 가치관을 갖고 있다. 죽음은 육체, 즉 물질과의 이별을 의미한다는 부분을 담았다. 그런 경우라면 설령 영혼이 존재한다고 해도 이를 축복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육체와 결별한 영혼의 존재는 불행에서 나아가 저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정치, 소설가, 육체노동 경험 아우르는 작품
“휴머니즘 토대로 소재 발굴하려고 늘 노력”

-소설가로서 글을 쓸 때 항상 염두에 두는 게 뭔가?

▲휴먼, 즉 사람이다. 사람 냄새가 나야 한다. 그래야 소재도 발굴하게 된다. 내가 그리는 인간의 본연, 그리고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인 동고동락을 통한 상생이 필요하다. 인간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사회를 전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내 작품에는 휴머니즘이 진하게 깔려 있다. 나는 주로 역사서를 쓴다.

역사는 보편 타당성을 지니면서 계속 이어져온다. 우리나라는 끊어진 부분이 많은데 그 부분을 밝히려 한다. 이런 케이스처럼 삶의 현장서 갖고 있던 것을 쓰려고 한다. 작품에 필자의 철학과 사상도 접목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 속에 담긴 내용 중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

▲요즘 가정 분위기가 어색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혼외자 때문이다. 책을 접한 내 딸이 강하게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딸이 “아빠 진짜 혼외자 있는 거 아니냐? 그래서 혼외자 들이려고 작품 발표한 거 아니냐?”고 추궁해댄다. 딸 입장서 소설이 실제처럼 느껴졌던 모양인데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소설은 보통 허구인데?

▲다수의 사람 특히 정치꾼들이 곤란한 지경에 처하면 상대를 향해 “소설 같은 소리한다”고 강변한다. 상당히 불쾌하다. 소설의 본질 즉 소설가의 역량을 과소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는 창작 능력을 떠나 누구보다 자신에게 엄정해야 한다. 아울러 그를 바탕으로 소설가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경험(간접경험 포함)과 건강한 사고로 글을 이끌어간다. 이걸 어떻게 허구라 할 수 있나? 차라리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풀이함이 옳다. 


수락산 정체성 찾아가는 동반자
“문학 패거리 짓는 영역이 아냐”

-영감의 출처는 어디인가?

▲영감은 치열한 삶의 과정서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비근한 예를 들어본다면, 비록 소설이 아닌 인문 교양서지만 육체노동에 종사하면서 나의 대표작으로 내세울 만큼 소중한 작품이 <식재료이력서>다. 식품 제조회사에서 금속검출기를 통과한 완제품을 냉장 창고에 보관하는 업무 수행 중 내 손을 거쳐가는 식재료들에 관해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다.

왜 이름은 ‘밴댕이’고, 어디서, 언제 태어났는지 인간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등에 관한 호기심의 발로에서 기회를 포착했다. 최근 작인 <요부 김가희>도 같은 맥락이었다. 우리의 암울한 현실을 상세하게 살피는 중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역사에서 답을 찾기 시작했다. 역사에서 간신이 득세하는 세상의 결과를 살폈고, 그 현실에 경계를 주고자 그린 작품이다. 

-황천우 소설가를 떠올리면 수락산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유명하다

▲조상 대대로 서울 노원서 살아온 내게 수락산은 우리 집 후원으로 나아가 나의 운명과도 같다. 단지 내 고향에, 곁에 존재한다고 해서 운명은 아니다. 수락산은 내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 소중한 동반자다. 밖에서 보면 수락산은 작아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상당히 빽빽하다. 하루라도 찾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을 정도다. 수락산은 건강한 마음뿐 아니라 덤으로 건강한 육체까지 준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문학은 패거리 짓는 영역이 아니다. 패거리의 본판인 정치판에서 나와 문학계로 발을 들였을 때 아연실색했다. 정치판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심각해서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문학상과 각종 단체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문학은 일련의 창작으로, 가장 공정해야 한다. 자신과의 고독하고 치열한 싸움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패거리들은 추악한 욕심이 기저에 깔려 있다. 결국 패거리의 욕심에 편승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상태서 참다운 문학을 펼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점을 꼭 말하고 싶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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