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범죄학> 관계 폭력을 아십니까?

  • 이윤호 교수
2022.12.23 15:02:16 호수 1406호

관계 폭력은 관계를 맺고 있는 당사자 사이에서 권력과 통제를 확고히 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이용되는 학대 행위의 한 형태다. 흔히 ‘잘못된 만남과 일방적 헤어짐과 그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잘못된 폭력’쯤으로 해석한다.



관계 폭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빈번하고 그 강도가 격렬해지는 경향이 있다. 교제나 연애 단계에서 이미 학대적 성향이 표출된 상태였다면, 동거·약혼·결혼 등으로 단계가 진행될수록 학대자의 학대 강도가 더 심해지곤 한다.

관계 폭력은 진행 중인 관계의 상황은 물론이고, 관계가 깨어질 때 일어나기도 하며, 피해자가 가해자를 전혀 알지 못하거나 제대로 잘 알지 못하는 관계에서도 일어난다. 물리적·감정적인 동시에 언어적 학대가 동반되는 경우도 있다.

학대는 상대를 해치는 것을 목표로 행해지는 행위다. 당연히 거의 모든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고, 폭력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물리적 폭력을 말할 필요도 없으며, 감정적·정신적·언어적 학대와 상대방 의사와 상관없는 성적 학대, 금전이나 소유물의 통제와 같은 재정적 학대, 소문을 퍼뜨리거나 감시·격리·소외시키는 사회적 학대를 포함한다.

결국 관계 폭력은 상대가 원치 않음에도 관계를 유지하고자 행사하는 형태의 폭력과 학대다. 교제 폭력·스토킹·이별 범죄·가정폭력 등이 관계 폭력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도 관계 폭력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에방센터(CDC, Center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의 보고서에 따르면, 1분마다 20여명이 자신의 상대 파트너로부터 폭력을 겪는다고 한다.


관계 폭력은 그 피해자, 생존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극단적으로 살인이나 치명적인 신체적 손상은 말할 것도 없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불안·공포·우울·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건강에 대한 심각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관계 폭력은 왜 발생하는 걸까. CDC는 유소년 시절 공격적 행위, 반사회적 인성 기질, 교우관계 결여와 사회적 소외, 낮은 자기존중 등을 이유로 꼽는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는 관계 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 존재한다. 상대가 학대하는 데도 왜 폭력적인 상대를 떠나지 않고, 폭력적인 관계에 머무는지에 대한 물음이 대표적이다.

이는 폭력을 겪고 있는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이고 해치는 것이다. 폭력을 가하는 사람이 비난받아야 마땅함에도, 오히려 폭력의 피해자가 뭔가 잘못했다고 암시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관계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 소외와 격리, 수치심, 경제적 요인, 헤어짐에 따르는 보복의 두려움과 같은 실질적 이유일 때가 많다.

관계 폭력에 따른 감정적 학대를 가볍게 보거나 위험성을 낮게 평가하는 것도 잘못된 통념이다. 감정적 학대는 피해자의 자기존중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장기적인 심리적 트라우마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학대적인 관계의 가장 해로운 측면이라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사람 간 관계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있기 마련이지만, 모든 갈등이 관계 폭력으로 변질되는 건 아니다. 당연히 상대가 복종하도록 강제하려는 가해자의 의지가 반영된 관계 폭력에 변명은 있을 수 없다. 

언쟁 중 분노할 수 있지만, 학대는 가해자가 통제력을 확립하려고 하는 선택이다. 누군가 상대를 때리거나 비하하면 그 행위가 촉발된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선택한 것이다. 관계 폭력은 철저하게 가해자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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