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생명, 똑똑한 고객에 농락당한 사연

2011.08.05 17:40:00 호수 0호

‘잘못 판 상품’에 발목 잡혀 ‘울상’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미래에셋생명이 수년전 판매한 변액보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보험 약관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한 ‘타임머신 투자자’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다. 이들 투자자는 약관대출이 전날 기준가로 이뤄지는 점을 이용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 이로 인한 손실만 연간 수십억원대. 그럼에도 뚜렷한 방책은 없다. 미래에셋생명으로선 여간 골치가 아픈 게 아니다.

‘타임머신 투자자’에 한해만 수백억대 손실
20만건·400명 투자자 변칙 투자…“죽겠다”

문제의 상품은 2005∼2007년 사이 판매된 변액보험이다. 변액보험은 계약자가 낸 보험료 가운데 일부를 펀드를 통해 주식에 투자한다. 문제는 미래에셋생명이 펀드의 속성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보험료를 담보로 한 약관대출의 기준 가격을 ‘전날 종가’로 정한 것. 다음 날 주식시장이 폐장한 뒤 대출을 받거나 상환해도 당일이 아니라 전일 종가가 기준이 되는 허점이 생긴 것이다.

변액 허점 파고들어

이를 깨달은 일부 ‘똑똑한 가입자’는 이 상품의 ‘구멍’을 파고들었다. 약관대출을 받아놓고 다음 날 주가를 본 뒤 상환하거나 대출 유지하는 타임머신 투자를 시작한 것.

예컨대, 1일 약관대출을 받은 뒤 2일 주가가 떨어지고 3일 주가가 상승할 경우 즉시 대출금을 상환한다. 27일 상환된 돈은 주가가 오르기 전인 26일 기준가로 펀드에 투자된다. 이 경우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양의 주식을 살 수 있게 되면서 이익을 보게 된다. 즉, 미래의 일을 미리 알고 과거로 돌아가 투자를 하는 꼴이다.
주가가 계속 하락해도 걱정은 없다. 주가가 반등할 때까지 기다렸다 상환하면 그만이다. 대출받을 때 적용받는 기준가보다 대출을 상환할 때 적용받는 기준가가 낮은 만큼 싼값에 주식을 사는 것이다.

반대로 대출을 받은 날 주가가 오를 경우엔 곧바로 상환하면 된다. 대출받을 때의 기준가와 대출을 상환할 때의 기준가가 같다. 이익은 없지만 손해도 없다. 결국 주가와 무관하게 손실은 보지 않게 되는 셈이다.

미래에셋생명은 2007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2008년 이후 판매되는 상품들의 약관을 수정했다. 현재는 대부분의 회사가 약관대출을 받을 때의 기준가는 ‘전일 종가’로 상환 때의 기준가는 통상 ‘대출 상환 뒤 이틀 뒤’를 적용, 변칙 투자를 막고 있다.

당시 문제의 상품에 가입한 건수는 20만 건. 이 가운데 미래에셋생명이 파악하고 있는 타임머신 투자자는 약 400명이다. 이들로 인한 피해는 한해에만 수십억원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타임머신 투자를 차단할 방법은 없다. 이미 판매한 상품에 대해 개정된 약관을 소급 적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변액보험이 장기 상품이라는 점에서 변칙투자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길이 없다. 당연히 미래에셋생명은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피해는 ‘선량한’ 변액보험 가입자에 고스란히 이어진다. 타임머신 투자자들이 하루 펀드 투자액의 20~30%에 달하는 금약을 넣거나 빼는 식으로 투자를 벌이는 통에 제대로 된 투자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언제든 돈을 내줄 수 있도록 현금을 많이 확보하고 있어야 해서 투자 규모가 작아진다는 설명이다. 당연히 이는 수익률 저하로 이어진다. 또 지나친 변동성 때문에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가입자들은 변액보험의 최근 낮은 수익률이 이런 문제 때문인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상품설계 실패

넓게 보면 미래에셋생명 보험 고객 전체가 피해자가 된다. 타임머신 투자자가 약관대출로 이익을 본 만큼 보험사의 일반계정에 손실이 발생한다. 일반계정은 생명보험 등 일반적인 보험 가입자의 돈을 관리하는 곳이다. 그런데 일반계정의 수지가 나빠지면 보험사는 보험료 인상 등을 통해 그만큼 손실을 메울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한 업계관계자는 “타임머신 투자자는 장기 상품인 보험사의 상품 설계가 잘못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보험 취지에 맞게 합리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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