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다시 구속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수사서 재판까지 우여곡절…결국 쇠고랑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2000년대 이후 기업이나 정당 등 단체가 알바를 고용해 여론선동 및 이슈화를 주도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법원에서 인정됐다.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원 전 원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공직선거법과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를 모두 인정,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 과정에서 증폭된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2년부터 의혹이 불거진 원 전 원장을 필두로 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권
정통성 논란
 
당시 민주당(민주통합당)은 12월11일 국정원의 직원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야당 후보인 문재인에 대한 비방글을 올리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에 민주당 당원과 기자들은 국정원이라고 추정되는 해당 직원의 오피스텔을 방문해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20여명의 인원이 오피스텔 복도 앞을 점거하게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경찰 측은 현직 국가정보원 직원이 정치현안과 관련된 내용을 게시하는 것은 불법선거라며, 사실 확인을 위해 해당 오피스텔을 방문했다. 하지만 국정원이라고 추정되는 직원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경찰 또한 정식 수색영장이 없는 상태기에 강제 집행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민주당은 공직선거법 위반이면 현행범에 해당됨으로, 즉시 문을 열게 해 사실 확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해당 국정원 직원은 민주당이 자신을 감금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문을 열지 않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해당 직원이 문을 열어주지 않아 조사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밤사이 인터넷 매체를 통해 일명 국정원 댓글녀 혹은 국정원 댓글 알바라는 내용이 화제가 됐다. 국정원 대변인은 12일 새벽, 기자와 당원이 지키고 있던 오피스텔 복도에서 “김씨의 개인 컴퓨터 등에 대해 이르면 12일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변인이 입장 발표 후 댓글 알바로 의심받은 직원은 “정치중립을 지키고 있으며 대선 관련 댓글을 단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다음날 서울 수서 경찰서는 해당 인물이 사용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임의 제출하게 했다. 일주일 뒤 수서 경찰서는 댓글 알바 논란에 휩싸인 해당 직원을 소환조사했다. 경찰청은 하드디스크 분석 결과 대선후보에 관련된 글의 작성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중간발표를 했다. 여론은 봐주기 수사 등 의혹을 내세우며 경찰을 비판해 나섰다.
 
IT전문가나 네티즌들은 웹캐시 등 댓글 증거를 확보하며 인터넷에 공개했다. 경찰 측에 해명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조사 당국은 댓글이 올라온 것으로 알려진 6개 포털사이트와 32개 언론사에 통신자료 내역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1심 집유…2심서 징역 3년 법정구속
중립의무 외면 정치 사안 개입 인정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13년 1월3일 수사당국은 국정원 직원이 99회 걸쳐 대선에 관련한 댓글을 작성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직원을 재소환하며, 조사당국은 기존 중간 브리핑과 달리 해당 직원이 정치성향 댓글 49개를 달았다고 발표했다. 이에 네티즌들은  “그냥 세봐도 100개는 넘는다”고 경찰의 부실수사를 비판했다.
 
부실수사 의혹이 거세지면서 민주당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고발했다. 국정원은 이에 맞서 민주당에 제보한 전직 국정원 직원인 김씨와 현직 직원인 정씨를 직무상 기밀누설에 따른 국가정보법 위반으로 고발해 2월20일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부에서 수사에 착수했다. 
 
 

4월1일 민주당은 원 전 원장이 국가정보원을 이용해 국내 정치 관여 및 직권남용 등 국가정보원법을 위반한 혐의로 고발했다. 18일 수서 경찰서는 국정원 직원 김씨 외 3명을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원 전 원장을 수사할 특별수사팀도 만들었다. 하지만 수사에 진척은 없었다. 이에 당시 수서 경찰서 수사과장으로 근무했던 권은희 의원은 “국정원 수사에 윗선이 개입됐다”라고 내부고발을 했다. 불이 발등에 떨어진 검찰과 경찰은 이종면 전 국정원 3차장을 시작으로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발표했다. 
 
당시 특별수사팀은 대검찰청에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모두 적용해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중간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이를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했으나 법무부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법리를 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검찰과 법무부가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 여부를 놓고 의견충돌을 벌인 것이다. 이후 채 검찰총장은 혼외자식 논란이 불거지면서 사퇴했으며, 팀별수사팀은 외압을 받는다.
 
이명박-박근혜
시그널 없었나
 
국정원은 지속적으로 댓글 개입에 대해 대북심리전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대선에 관련된 것이 1281회, 정치 관련은 435회, 대북심리전인 북한과 중복에 대한 것은 143회에 불과했다. 대통령은 이에 대해 자신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의혹은 국회에서 밝힐 일이라며 일축했다. KSOI 설문조사결과 78.4%가 국정원 개입의혹에 대한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7월1일 여당과 야당은 7월2일부터 45일로 계획된 국정원의 국정조사를 발표했다. 조사 부분은 대선개입 의혹 일체, 전현직 직원의 비밀누설문제, 국정원여직원(감금주장)에 대한 인권침해 의혹이다. 하지만 특별위원의 선정을 앞두고 여당과 야당이 갈등하며 15일 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보냈다. 이와 비슷한 시기 NLL논란이 불거진다. 하지만 민심은 국정원 사태에 대한 물타기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여론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검찰은 10월17일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4명의 자택을 압수 수색하고, 이 가운데 3명을 긴급 체포했다. 이들은 트위터 및 SNS 상에서 활동한 심리전단 5팀 소속이라는 게 밝혀진 것이다. 검찰은 곧바로 원 전 원장의 공소장을 변경하고 추가 기소했다. 
 

사실 이에 대해 <뉴스타파>는 지난 7개월 전부터 10여 차례 걸쳐 트위터에서 벌어진 국정원 대선 개입 실태를 집중보도 했다. 총 660여개 계정이 조직적으로 5만8000여 건의 대선과 정치적 관련 글을 올렸다는 정황을 밝혔다. 특히 핵심 계정인 ‘nudlenudle’ 국정원 직원 이씨라는 것도 규명했다. 검찰 수사를 통해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것으로 최종 확인된 것이다. 검찰 특별수사팀은 이번 사건을 ‘선거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중범죄’라고 규정했다. 검찰 수사로 국정원의 정치와 대선 개입 의혹이 초유의 국기문란 사건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예상못한 판결 왜 뒤집혔나
심리전단 직원 파일 결정적 

재판이 시작된 지 1년1개월 만인 지난해 7월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1부(부장판사 이범균) 심리로 열린 원 전 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결심 공판에서 징역 4년, 자격정지 4년이 구형했다. 박형철 부장 검사는 “이번 사건은 국가정보원장 등 직위를 이용해 정치 관여 행위를 함과 아울러, 공무원의 직위를 이용하여 제18대 대선에 관여한 선거운동을 한 범행”이라고 밝혔다. 이어 “불법 정치 선거개입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피고인들의 책임에 대한 준엄한 사법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원 전 원장은 최후의 변론에서 “60세가 넘은 사람으로 인터넷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재판을 받으면서도 무슨 얘긴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심리전단의 활동이 문제가 있더라도 선거개입 목적이나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9월11일 서울중앙지법은 원 전 원장에 대해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국정원 댓글 알바에 이은 1년10개월만에 내려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첫 번째 판단이었다. 당시 이 선고는 2012년 대선 과정에서 국가 기관에 의한 선거 개입이 있었는지를 판가름하는 것이었다. 판결 내용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에 치명상이 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이번 판결의 핵심이었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원 전 원장이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선거운동’을 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 검찰의 주요 공소내용. 법원은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을 한 사실이 입증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행위자의 목적성, 능동성, 계획성이 확인돼야 한다고 밝혔다. 원 전 원장의 혐의를 입증하기에는 검찰의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때문에 국정원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됐다.
 

2012 사건의 서막
2013 물타기 정국
 
재판부는 증거 불충분의 근거로 ‘직접 대선 개입을 지시하는 원 전 원장의 발언을 찾을 수 없는 점’ 등을 꼽았으며, ‘선거운동에 이용할 목적으로 볼 명확한 근거가 없는 점’ 등을 들었다. 국정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있지만, 공직선거법이 ‘선거운동’과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엄격히 분리하고 있다. 검찰 공소사실에 적시되지 않은 대선 결과를 가지고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점 등을 내세웠다. 
 
재판부 논리는 이렇지만 결과적으로 국정원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에 관여한 사실은 인정하면서 선거 개입은 하지 않았다는 모순적인 내용의 판결을 한 것이다. 
 
또한 재판부는 최종적으로 증거로 인정된 심리전담 직원들의 트위터 계정 수는 175개. 애초 검찰은 공소장 변경을 통해 1157개의 계정에서 작성한 78만여 건의 트윗을 증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찰의 증거수집 과정 위법을 했다는 이유로 상당수가 증거에서 배제했다. 트윗 내용은 ‘박근혜 후보 후원 계좌 안내, 문재인이 대통령이 안되는 이유, 안철수는 종잡을 수 없다’ 등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한 원색적인 지지, 비방의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선고 이후 김동진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는 ‘지록위마의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법원 내부게시판에 실명으로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A4용지 5장 분량의 강도 높은 비판글을 올렸다. 2013년부터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한 시민사회단체 역시 이번 판결은 청와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정치 재판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재판부는 핵심 쟁점이었던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조직적 활동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국정원 심리전단의 이른바 ‘방어심리전’ 활동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검찰이 항소 때 법조항을 조정할 경우 선거법 위반 혐의가 인정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압으로 사실상 와해된 검찰 수사팀이 수사 의지를 가지고 항소심을 준비할 수 있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는 지난 9일 원 전 원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로 1심 판결을 깨고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 선고 후 법정구속 했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대선을 앞두고 지시한 사이버 활동이 선거결과에 영향을 주기 위해 능동적으로 계획된 행위라고 판단했다. 정치에 개입했지만 선거에 개입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1심과 달리 국정원의 활동을 제18대 대선에 영향을 준 ‘선거 개입’으로 봤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심리전단이 작성한 글 중 2012년 상반기에는 정치 관련 글이 80∼90%로 압도적이었다. 2012년 7월부터 선거 관련 글이 늘기 시작해 8월에는 선거 관련 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며 “이는 사이버 심리전단이 의도하는 바가 바뀌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심리전단이 작성해 퍼 나른 글들은 당시 이정희 대표 및 통합진보당을 반대하거나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당시 무소속이었던 안철수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논란이 됐을 때는 여자문제 등에 집중해 (트윗글) 작성 후 리트윗하고, 인혁당사건 발언이 나왔을 때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옹호하는 글을 대규모로 리트윗하거나 야당 측을 비난하는 글을 작성해 서로 리트윗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안 의원이 대선후보에서 사퇴한 이후 안 의원 관련 글이 현저히 줄어들고 12월에는 아예 등장하지 않은 반면 민주통합당 소속 문재인 대선후보에 반하는 취지의 글이 급격히 늘어난 점 등에 비춰볼 때 당시 트윗글이 선거쟁점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이 점이 특정정당과 정치인의 당락을 목적으로 한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정보기관의 정치개입 중 선거개입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상화되거나 합리화될 수 없는 문제”라며 “이번 사건의 경우 심리전 활동을 벗어나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은 재판 과정에서 이 사건이 사이버 활동이라는 자신들의 주관적 평가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 객관적 성찰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원 전 원장은 최후변론에서 “부서장 회의에서 말한 것이 전 직원에게 공유되는지 한참 후에 알았다”면서 “직원의 트윗, 댓글은 개인적 일탈이지 조직적으로 하지 않았다”며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저로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곧바로 상고 의사
대법원 판결 주목
 
원 전 원장 측은 대법원에 상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의 심리는 최장 10월까지 이어질 수 있다.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구속 기간은 2개월이지만, 상소심에서 부득이한 경우 2개월 단위로 3차례까지 총 6개월을 더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1, 2심 재판부가 정반대의 판단을 내림에 따라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론을 내릴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min1330@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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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참사> ‘막 지은’ 무안공항 미스터리

[무안 참사] ‘막 지은’ 무안공항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제주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가 발생한 무안국제공항의 설립 배경이 재조명됐다. 공항 건설 초기부터 지적된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 가능성, 미숙한 운영 등이 참사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무안공항은 ‘고추 말리는 공항’ ‘한화갑 공항’ 등 정치적 견해에 휩싸인 바 있다. 공항 건설 전 연간 992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측됐으나 지난 2023년 이용객은 24만6000명에 불과했다. 지난 2007년 개항한 무안공항은 서남권 거점 국제공항으로 설계됐다. 다만, 활주로는 약 2.8㎞로 다른 주요 국제공항보다 비교적 짧은 편에 속한다. 내년 완공을 목표로 3.126㎞로 늘리는 연장 공사를 진행하던 탓에 활주로를 300m 가량 이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한화갑 공항’ 정치적 탄생 통상 대형 항공기 이용이 잦은 국제공항 대부분은 활주로 길이가 3㎞를 넘는다. 실제 국내의 주요 국제공항인 인천국제공항(3.75㎞), 김포국제공항(3.6㎞), 김해국제공항(3.2㎞), 제주국제공항(3.2㎞) 등은 무안공항보다 활주로 길이가 길다. 미국 JFK, 프랑스 샤를 드골, 도쿄 나리타 등 주요 국제공항 활주로는 4㎞가 넘는 곳도 많다. 무안공항서 400t 넘는 항공기 운항이 제한된 것도 활주로 길이가 짧기 때문이다.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활주로 길이가 길수록 항공기 제동력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사고가 난 항공기는 바퀴 대신 동체 착륙을 시도하던 중 속도를 제대로 줄이지 못해 활주로 끝 둔덕 등에 부딪혔다. 김규환 한국공항공사 항공훈련센터 센터장은 “3㎞에 미치지 못하는 활주로 길이는 평시 이·착륙 상황에선 문제가 없지만, 동체착륙 같은 비상시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인규 한국항공대 비행교육원 원장은 “사고의 주요 원인을 활주로 길이로만 돌리긴 어렵지만, 활주로 길이가 인천 정도로 길었더라면 이 정도 사고가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다. 다만, 이날 국토부는 “활주로 길이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고 기종은 1.5~1.6㎞ 길이의 활주로서도 착륙할 수 있다”고 했다. 사고 원인 중 하나의 가능성으로 지목되는 조류 충돌 문제에 관한 안일한 인식도 사고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의 직접적 원인인 착륙 장치 ‘랜딩기어’ 고장이 조류 충돌 때문에 발생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제 ‘고추 말리는 공항’ 오명 벗자” 20년 만에 해외 운항···무리수 결과 무안공항은 인천국제공항을 제외한 전국 14개 공항 중 조류 충돌 비율이 가장 높다. 2019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무안공항에는 여객·화물을 합쳐 항공기 총 1만1004편이 오갔다. 이 기간 모두 10건의 조류 충돌이 발생했다. 운항 횟수 대비 조류 충돌 발생 비율은 0.09%로, 비행기가 1만편 오갈 때 조류 충돌이 9번 발생했다는 뜻이다. 제주공항(0.013%), 김포공항(0.018%) 등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공항 주변은 서해안 철새 도래지와 가까운 곳이어서 공항 건설 초기부터 관련 문제가 제기돼왔다. 공항 인근의 전남 무안군 현경면·운남면에선 1만2000여마리의 겨울 철새가 관찰됐다. 이 지역에는 113.34㎢에 이르는 대규모 무안갯벌습지보호구역 등이 조성돼있어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다. 무안국제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때도 “기체가 조류와 충돌할 위험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무안공항엔 조류충돌예방위원회가 만들어져 있지만,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20년 당시 보고서는 “항공기가 이착륙할 때 조류 충돌 위험성이 크다”며 “이에 대한 저감 방안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적고 있다. 보고서는 폭음기나 경보기를 설치하고, 레이저나 깃발, LED 조명 등을 이용해 조류 충돌을 최소화하라는 구체적 대응책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활주로 확장 공사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행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소식을 듣고 무안공항을 찾은 주용기 생태문화연구소장도 <경향신문>과 인터뷰서 “저수지와 바다, 습지가 많아 오리 등 철새가 이동하는 길목”이라며 “무안공항의 입지 자체가 앞으로도 조류 충돌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조류 전문가인 주 소장은 매년 겨울 무안공항 주변을 방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충돌 위험 지속 제기 그는 “사고의 주원인으로 조류 충돌 가능성이 큰 상황인데, 적어도 이 지역에 실제 어떤 새들이 얼마나 있고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확인해야만 또 다른 조류 충돌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8시50분쯤 공항 근처 창포호 인근서 오리떼가 날아든 것이 관측됐다. 전날 오전 9시쯤 방콕발 제주항공 7C2216편이 무안공항으로 들어온 시각과 비슷하다. 주 소장은 “가창오리 같은 경우 원래 야행성이라 해질 무렵이 되면 공항 남동쪽서 북동쪽으로 이동해 먹이활동을 한 뒤 다음날 아침이 되면 다시 휴식처로 돌아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가 일어난 지난달 29일 오후 6시쯤에도 무안공항 인근서 20만마리의 가창오리떼를 발견했다. 무안공항 동쪽의 한 농경지에 서 있는데 가창오리 5만마리가 한 차례 지나간 뒤 15만마리가 남쪽으로부터 날아와 북동쪽으로 군무를 펼치며 이동했다는 것이다. 밤새 먹이활동을 한 가창오리는 아침이 되면 다시 경로를 거슬러 간다. 이 경로는 비행기의 경로와 맞닿는다. 무안공항 인근에는 약 40여종의 조류가 서식한다. 망운면 인근 바닷가서도 쉽게 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 또한 비행기 경로와 일치한다. 공항서 직선거리로 6~7㎞ 정도 떨어진 운남면도 비행기가 착륙하는 경로에 걸쳐 있다. 주 소장은 “제주도와 가덕도, 새만금까지 새롭게 공항을 늘리려 하는데 모두 새의 서식지와 겹치는 지역”이라며 “위치 선정부터 제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안공항 관제탑 등 항공 관계자들의 경험 부족이 사고를 키웠다는 목소리도 있다.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전까지 국제선 정규 노선을 운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사고가 발생한 무안~방콕 노선은 제주항공이 같은 달 8일 운항을 시작한 신규 노선이다. 뜯어말렸던 조류 전문가 20만 오리떼 아침마다 이동 무안공항이 17년 만에 운영하는 첫 국제선 정기 노선인 만큼, 미숙함이 드러난 것이다. 또 무안공항을 관리하는 한국공항공사는 지난해 4월 문재인정부서 임명된 사장이 뒤늦게 사표를 낸 이후, 8개월째 공석이다. 기장 출신 관계자는 “조류 충돌 주의 경고 후 2분 만에 ‘메이데이’ 선언이 있었다”며 “당시 관제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동체 착륙 외 다른 선택지를 택하는 건 불가능했는지 등을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항공기 동체 착륙 전엔 공항소방대가 대기한 뒤, 활주로에 화재 방지를 위한 소화 약제를 뿌렸어야 하는데 이 절차도 시행되지 않았다. 무안공항에 설치된 방위각 시설인 로컬라이저와 이를 지지하기 위한 콘크리트 둔덕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키웠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무안공항의 ‘방위각 표시시설(로컬라이저)’과 콘크리트 둔덕은 활주로 끝에서 250m가량 떨어진 비활주로에 설치됐다. 둔덕은 2m 높이에 이른다. 항공기 진입 방향과 반대 측의 활주로 끝 부근에 설치되는 로컬라이저는 활주로 중심선 연장 위에 안테나가 설치된다. 이는 착륙하는 항공기에 활주로 중심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공항 측과 국토교통부는 ‘아래로 기울어진 비활주로 지면과 활주로와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 콘크리트 둔덕을 세워 돌출된 행태로 보이는 것’이라며 ‘사고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는 조사 결과에 따라 판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준 미비 아낀 정비 그러나 사고의 피해를 더 키웠다고 지목되는 둔덕형의 로컬라이저에 관해 공항설계 엔지니어링사 관계자는 “국내외 기준과 규정에 어긋난 게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서 “논란이 되는 로컬라이저는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는 시설이라서 특별한 제약 조건이 없다”며 “이는 현재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해당 엔지니어링사는 1998~1999년 사이 발주된 무안공항의 실시설계를 담당했다. 그는 또 활주로 끝단에 콘크리트 구조물과 둔덕을 세우는 건 비상식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관련 규정이나 상황을 모르고 그렇게 얘기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규정과 기준을 갖고 말할 수밖에 없다”며 “국내외 기준과 규정을 다 포함한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활주로 안전구역 밖에는 관제탑도 있는데 만약 항공기가 동체 착륙하면서 활주로 밖으로 미끄러져서 관제탑에 충돌할 경우엔 이것도 문제가 된다는 거냐”며 “항공기가 활주로를 벗어날 가능성 등을 고려해서 안전구역을 설정해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 전문가들이 활주로 끝단에 둔덕형 시설물을 설치한 건 본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본인이 본 적이 없을 수는 있겠지만 그건 자신들 기준서 하는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의 주장은 앞선 국토부 입장과 유사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문제의 로컬라이저는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기 때문에 관련 안전기준이나 설치 기준을 적용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2.8㎞ 활주로 국제선 부족 “위치·구조 원인” 참사 키운 ‘콘크리트 둔덕’···국내 공항 수두룩 국토교통부의 ‘공항·비행장시설 및 이착륙장 설치 기준’에 따르면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은 항공기가 착륙 후 제때 멈추지 못하고 활주로 끝부분을 지나쳤을 경우 항공기의 손상을 줄이기 위해 착륙대 종단 이후에 설정된 구역을 말한다. 항공기가 활주로를 넘어섰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설정한 구역인 셈이다. 해당 기준에 따르면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은 착륙대의 끝에서 최소 90m 이상 돼야 된다. 무안공항은 199m로 설정하고 있다. 논란이 된 로컬라이저는 이 구역 5m 뒤에 설치돼있다.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는 것이다. 종단안전구역 안에 있는 시설물은 설치 기준이 까다롭게 적용된다. 해당 기준 제22조에는 ‘항행에 사용되는 장비 및 시설로 반드시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에 설치돼야 하는 물체는 항공기에 대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부러지기 쉬운 재질로 하며 최소 중량 및 높이로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돼있다. 국토부의 ‘공항안전운영기준’ 제42조에도 ‘(착륙대, 유도로대 및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에)불법 장애물이 없을 것. 다만, 설치가 허가된 물체에 대해선 지지하는 기초구조물이 지반보다 7.5㎝ 이상 높지 않아야 하며, 물체는 부러지기 쉬운 구조로 세워져야 한다”고 제시돼있다. 하지만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는 시설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약이 없다. 국토부 관계자는 “조만간 관련 국내외 규정을 포괄해서 로컬라이저 논란에 관해 설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참사를 두고 제주항공의 책임론도 불거졌다. 사고가 발생한 여객기는 직전 48시간 동안 8개 공항을 오가며 총 13차례 운항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안공항 이외에도 제주·인천공항과 중국 베이징, 대만 타이베이, 태국 방콕, 일본 나가사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등을 오갔다. 제주항공이 운항 스케줄을 무리하게 편성해 기체 피로도를 유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술한 규제 책임 넘기기 물리적인 정비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냐는 지적에 대해 송경훈 제주항공 경영지원본부장은 3차 브리핑서 “모든 항공기는 제작사 매뉴얼이나 국토부가 인가한 기준에 맞춰 계속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발생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에는 김포공항서 출발한 제주항공 여객기가 이륙 직후 긴급 회항했다. 제주항공 측은 이륙 직후 랜딩기어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를 감지한 후 해당 편 기장이 지상 통제센터와 교신하며 조치해 정상 작동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장이 안전 운항을 위해 항공기 점검을 받는 것으로 판단했으며, 이에 따라 김포공항으로 회항해 점검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금호건설 특혜 시비 ‘정치 공항’ 논란 무안공항은 1999년 착공해 2007년 개항했다. 인근에 공항이 있는데도 선심성 공약으로 추진돼 당시 사업을 주도한 한화갑 전 새천년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이름을 따 ‘한화갑 공항’으로 불린다. 이용객이 없어 활주로서 주민들이 고추 말리는 장면이 목격돼 ‘고추 말리는 공항’으로도 불렸다. 1997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선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무안·울진·김제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당시 실세였던 한 전 의원이 설립을 주도했다. 또 1999년 착공 당시 호남 기업인 금호건설이 건설사로 선정되면서 논란이 됐다. 활주로 건설에 쓰이는 골재 납품을 특정 지역 업체가 전량 수주한 것을 두고서도 특혜 시비가 제기된 바 있다.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