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에 찍힌 사람들

눈 밖에 나면 누구든 추풍낙엽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수첩에 두 명의 희생자가 추가됐다. 이석수 특별감찰관과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은 각종 의혹들이 터져 나오자 모두 자리서 물러났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진영 전 보건복지부장관 등이 물러났을 때와 일종의 기시감마저 든다. 서슬 퍼런 박 대통령의 노기에 희생양이 돼야 했던 사람들을 <일요시사>가 모아봤다.

“(박근혜) 대통령 눈 밖에 나면 누구든 추풍낙엽처럼 날아간다.”

지난달 30일, 정의당 추혜선 대변인의 논평이다. 지난달 29일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사표 제출과 지난달 30일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이 해당 언론사의 방침에 따라 보직 해임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해당 논평은 꼭 두 사람의 사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미 정가에선 “VIP(박 대통령)에게 찍히면 죽는다”는 말이 정설처럼 돌고 있다.

눈치만 슬슬

이 특감의 사표 제출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특정 언론에게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감찰 내용을 유출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그는 “의혹만으로는 사퇴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정부의 방침 아닌가”라고 말한 바 있다.

그랬던 이 특감이 돌연 사표를 제출했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검찰 조사를 받겠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검찰은 최근 서울 청진동 특별감찰관실 사무소 등을 압수수색했다. 그는 사표를 제출한 날 기자들에게 “압수수색도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내가 직을 유지하는 것이 적절한 태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각종 의혹에도 버티기 모드로 일관하고 있는 우 수석과는 완벽히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이 특감은 전방위로 압박을 받던 상황이었다. 감찰 내용 유출 의혹이 터졌을 당시 청와대는 ‘국기문란’까지 언급하며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이어 진행된 압수수색에서 검찰은 우 수석의 자택을 대상에서 제외한 데 반해, 이 특감에 대해서는 청진동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휴대전화 두 대를 확보하는 등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다. 검찰은 이 특감으로부터 감찰 내용을 전달받았다는 이모 조선일보 기자의 휴대전화 한 대도 압수했다.

무엇보다 이 특감이 박근령 전 육영재단이사장을 사기 혐의로 고발한 것이 결정적 이유가 아닌가라는 주장이 정가에서 나오고 있다.

국민의당은 양순필 부대변인은 지난달 23일 논평을 통해 “(이 특별감찰관이 박 전 이사장을 사기혐의로 고발한 것이) 청와대가 ‘국기문란’까지 들먹이며 이 특감을 찍어내려는 진짜 이유 중 하나인지 의심이 간다”며 “아무리 청와대가 ‘우병우 구하기’에 혈안이 됐다고 해도 너무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는데 그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다. 청와대가 우 수석 감싸기는 물론 대통령 친인척을 비호하기 위해 이 특감에게 ‘불신의 낙인’을 찍으려 한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우 수석과 관련해 의혹 기사를 냈던 <조선일보> 또한 압박을 받고 있다.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은 최근 대우조선해양 비리와 관련해 검찰에 구속된 홍보대행사 박수환 뉴스커뮤니케이션스 대표와 함께 ‘초호화 외유’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터져 나와 주필·편집인직서 물러난 상태다.

이석수·송희영 잇따른 압박에 사퇴
유승민·조응천·진영·채동욱 유사

해당 의혹은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폭로에서 시작됐다. 그는 지난달 26일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을 열어 “해당 언론사(조선일보)는 이 시기(송 주필이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초호화 외유를 제공받았다는 시점)를 전후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우호적인 사설을 수차례 게재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일각에선 정보의 ‘출처’에 의혹을 눈길을 보내는 중이다. ▲청와대 ▲검찰 ▲경찰 ▲국정원 등 여러 기관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폭로 내용이 감사 또는 수사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부분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김 의원은 출처에 대해 “청와대, 검경, 국정원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야권에선 ‘청와대 기획설’을 주장하며 김 의원이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즉 우 수석에 대한 비리 의혹을 무마시키길 원하는 청와대가 김 의원의 입을 빌어 <조선일보>에 대한 공격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앞서 나온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근거로 내세운다. 익명의 해당 관계자는 지난달 21일 우 수석에 대한 의혹제기에 대해 “대통령과 정권을 흔들어 식물정부를 만들려는 일부 언론 등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의 ‘우병우 죽이기’”라고 규정했다. 이는 ‘우병우 사태’에 대한 청와대의 상황 인식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두 사람의 사퇴가 박 대통령의 직접 ‘오더’로 진행됐다고 단정하긴 힘들다. 그러나 조직적인 움직임을 통해 두 사람이 결정적 위기에 처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청와대가 존재해왔다.

이는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지속적으로 행해진 프로세스다. 단적인 예로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국회법 개정안 파동’ 때 박 대통령은 정부 정책을 비판해온 그를 ‘배신의 정치’로 지목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을 신호로 친박계 의원들의 사퇴 압박이 줄을 이었고 결국 그는 원내대표직을 사퇴했다. 당시 비박계 인사들이 당 지도부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박 대통령 발언에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청와대의 압박에 의해 사실상 장관직서 밀려난 경우다. 기초연금 파동 때 청와대를 거역했다는 이유였다. 이어서 4·13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은 진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결국 진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을 택했고,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조응천 의원 또한 희생양이었다. 조 의원은 소위 ‘청와대 찌라시’ 파문으로 사실상 박근혜정권에 찍힌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특히 찌라시가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과 관련됐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분노를 샀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 바 있다. 이후 조 의원은 진 의원처럼 더민주에 입당해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사퇴는 이 특감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과 가장 유사하다. 지난 2013년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수사 책임자였던 채 전 총장은 <조선일보>의 혼외 아들 의혹 보도로 사실상 자리서 물러났다. 의혹 보도 당시 채 총장은 ‘검찰 흔들기’라며 버텼지만, 법무부가 감찰을 지시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채 총장 사퇴 이후 댓글수사팀은 위축됐고 소속 검사들은 좌천당했다.

“찍히면 죽는다”

때문에 박 대통령이 불리한 국면 때마다 걸림돌이 되는 특정인을 찍어내 위기를 넘겨왔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를 위해 검찰·국가정보원·민정수석실 등 사정기관의 정보가 동원됐을 가능성 또한 높다. 이를 규탄하는 야권의 목소리는 임기 말로 갈수록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또?’ 풀리지 않는 탄핵 퍼즐

‘또?’ 풀리지 않는 탄핵 퍼즐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전까지 지난 2023년부터 2년 동안 탄핵소추 9건을 가결시켰다. 양당에 극단 정치를 종식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제도로 통제해야 한다.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와 동거정부 체제는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지난해 12월27일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탄핵소추를 가결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가결 다음날인 12월15일 “너무 많은 탄핵은 국정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일단은 한 총리에 대한 탄핵 절차는 밟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상 최초 권한대행도… 하지만 한 전 총리는 12월19일 내란·김건희 특검법과 농업 4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어 지난해 12월26일 대국민 담화서 “헌법재판관 임명동의안을 승인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그러자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이날 한 전 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다음날 가결했다.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 가결이었다. 한 전 총리 탄핵소추 사유는 ▲채 상병 특검법·김건희 특검법·내란 특검법 거부 ▲여야 합의된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 소집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 합의·발표한 ‘한덕수 책임총리 체제’라는 위헌적 정권 이양 시도 등이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여야 합의된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였다. 공석이었던 헌법재판관 3석은 모두 국회 추천으로 임명해야 했다. 민주당은 마은혁·정계선 후보자를 추천했고, 국민의힘은 조한창 후보자를 추천했다. 국회는 지난해 12월26일 선출안을 가결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승계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12월31일 정 후보자와 조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했다. 원칙상 헌법재판관 9명은 모두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가능 여부에 대해선 여야의 견해 차이가 있다. 민주당 김한규 의원은 마 후보자와 정 후보자에게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가 국회서 선출된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느냐”고 질의했고, 두 후보자는 지난해 12월22일 국회 제출 서면을 통해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마 후보자는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선애 전 헌법재판관을 임명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정 후보자는 “여야 합의에 따른 국회 선출·대법원장 지명 후보자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은 형식적”이라고 답변했다. 황교안 전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지난 2017년 3월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지명한 이 전 재판관을 임명했다. 하지만 황 전 총리는 “이 전 재판관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인용 이후 임명했다”고 반박했다. 한 전 총리는 대통령의 적극적 권한인 법률안 거부권은 행사하면서,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임명이라는 형식적 권한 행사를 거절했다. 이는 곧 거센 반발로 이어졌다. 헌법재판관 신규 임명을 반대한 국민의힘도 조한창 헌법재판관을 추천했기 때문에 모순은 더 크게 부각됐다. 민주당은 지난 2023년부터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 전까지 탄핵 심판 9건을 가결시켰다.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엔 윤 대통령과 한 전 총리 탄핵소추를 포함해 4건을 가결시켰다. 2023년에 가결시킨 4건 중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안동완 검사 ▲이정섭 검사 등 3건은 기각됐고, 손준성 검사 탄핵 심판은 형사재판 진행 때문에 정지됐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최초의 탄핵 심판인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서 탄핵 심판 청구를 인용하는 기준을 설정했다. 헌재는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 위반’을 기준으로 설정했고, 파면 정당화 사유로 ▲대통령직 유지가 헌법 수호 관점서 용납될 수 없을 때 ▲국민의 신임을 배신해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잃었을 때로 한정했다. 헌재 마비설 불거졌는데 여태 방치하다 부랴부랴 이 전 장관의 탄핵 심판서 설정된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의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 위반’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나 해악이 중대할 때 ▲대통령을 통해 간접적으로 부여된 국민의 신임을 박탈해야 할 정도일 때 등으로 규정됐다. 대통령 탄핵소추 인용 기준과 비슷하지만, 강도는 낮아졌다. 이 전 장관 탄핵 심판서는 헌법재판관 9명 만장일치로 소추 사유가 하나도 인정되지 않았다. 이들은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 ▲서울 곳곳에 여러 소요와 시위가 있어서 경력 배치가 분산됐던 측면이 있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골든타임이 지났다 등 이태원 참사 발생 이후 이 전 장관의 발언에 대해선 “부적절하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도 “재난 및 안전관리에 관한 국민의 신뢰가 현저히 실추됐다거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관련 기능이 훼손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별개 의견을 통해 이 전 장관의 일부 발언들을 일컬어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의무 위반”이라고 지적했던 4명도 “법 위반 행위가 중대해 파면을 정당화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때문에 탄핵소추됐던 안동완 검사에 대해선 4명이 인용 의견을 제시했고, 5명이 기각 의견을 제시했다. 기각 의견은 안 검사의 유우성씨 기소를 놓고 “검찰청법·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고의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법질서에 역행하기 위해 법률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고, 이미 기소 이후에도 9년 넘게 공직을 수행했기 때문에 헌법 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이 상당 부분 희석됐다”고 판단했다. 인용 의견을 제시한 재판관 4명은 “위조된 증거로 기소한 것으로 봐선 유씨에게 불이익을 가할 의도로 기소했다”며 “법 위반의 정도가 중대하고, 파면을 통한 헌법수호 이익이 파면에 따른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판단했다. 안 검사 탄핵소추는 그나마 팽팽한 의견 대립이 있었다. 반면 이 검사 탄핵소추는 헌재가 국회를 질타할 정도로 부실했다. 헌재는 재판관 9명 만장일치로 이 검사 탄핵소추를 기각했다. 이 검사 탄핵소추는 ▲범죄경력조회 무단 열람 ▲위장전입 ▲처남 관련 수사무마 등 개인 비위 의혹을 계기로 추진됐다. 헌재는 이 중 범죄경력조회 무단 열람에 대해선 “심판 대상을 확정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관계를 구체화해 다른 사실과 명백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는 “소추 사유의 일시와 위반 행위의 수가 전혀 기재되지 않았고, 헌법·법률 위반의 구체적 태양도 전혀 특정되지 않은 채 막연히 기재됐다”고 덧붙였다. 이어 “일시·방법·대상 등이 전혀 특정돼있지 않은 소추 사유는 이 검사의 방어권 행사를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고 질타했다. 아울러 “이 검사가 대기업 고위 관계자로부터 강원도 춘천 소재 리조트서 접대받았다”는 소추 사유에 대해서도 “금품 제공자·제공한 금품 내용과 가액·금품 제공자와 리조트의 관계·이 검사의 직권 남용 내용이 전혀 기재돼있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처남 관련 수사 무마 의혹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검사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는지 기재되지 않았다”며 “의혹 제기와 의심만 적시했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헌재 결정 보니… 비상계엄 사태 전까지 지난 2024년 발의된 탄핵소추는 검사 3명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최재해 감사원장을 상대로 가결됐다. 이 중 검사 3명에 대한 탄핵 심판 첫 변론준비기일은 비상계엄령 사태 발생 이후인 지난해 12월18일 진행됐다. 이날은 국회 측과 대리인은 모두 헌재에 출석하지 않아 3분 만에 종료됐다. 검사 3명에 대한 탄핵소추는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행됐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사실상 무력화되고 탄핵소추가 가결된 이상 국회가 이들에 대한 탄핵 심판을 성실하게 진행해야 할 이유는 사실상 사라졌다. 헌재는 이종석·이영진·김기영 전 재판관이 퇴임한 지난해 10월부터 재판관 3명 공백이 발생했다. 그래서 지난 8월엔 ‘헌재 마비설’이 불거졌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사건 심리는 최소 7명의 재판관이 출석해야 진행할 수 있다. 법률상으론 3명의 공백을 채우지 못하면 평의조차 열기 어렵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11일 “6인 체제서 변론은 가능하다”고 답변했지만, 선고에 대해선 “계속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이진 헌재 공보관은 지난해 12월27일 “재판관 6인 체제서 선고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며 “상황이 변동하기 때문에 선고 여부에 대해 계속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재판관 3명 공백을 알면서도 최 원장과 검사 3명을 탄핵소추했고, 비상계엄 사태 이후 비로소 재판관 임명에 나섰다. 이로 인해 현재 이르러 큰 혼란이 발생했고, 국민의힘엔 반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27일 “국정 혼란과 국가적 손실이 불 보듯 뻔한데도 민주당이 탄핵을 남발했다”며 “조기 대선 정국을 유도해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덮어보려는 속셈”이라고 주장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대통령들은 그들과 같은 절대적인 권위와 정치력을 가지진 못했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절대 권력을 부여하는 현행 헌법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지난 2019년 기준 국민교육수준 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25~64세 성인의 고등교육(전문대 졸업 이상) 이수 비율은 50%였다. 이 중 25~34세 청년층의 고등교육 이수 비율은 69.8%였다. 3김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기 시작했던 1970~80년대와는 다르다. 역대급 여소야대 반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견지하는 현행 헌법의 요구 수준과는 달리 대선 출마자들의 수준은 낮아지고 있다. 특히 지난 2022년 제20대 대선후보였던 윤 대통령과 이 대표를 일컬어 유행했던 표현은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었다. 이런 상황서 거대 야당이 수시로 가결시켰던 탄핵소추는 현재의 악순환을 만들었다. 따라서 헌재의 까다로운 기준 제시를 무시한 탄핵소추를 제도적으로 막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행 헌법과 제도로는 절대적인 여소야대 상황서 남발되는 탄핵소추를 막을 방법이 없다. 개헌 논의에선 미국식 4년 중임제와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가 주로 거론된다. 이 중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엔 국민의 지지를 잃은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프랑스 대통령에겐 의회해산권이 있고, 의회는 총리와 내각을 불신임할 수 있다. 원래 의원내각제였던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당제 정국과 알제리 독립운동의 여파로 혼란을 맞이했다. 이때 정계에 불려온 소방수는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이었다. 드골 전 대통령은 지난 1958년 헌법 개정을 조건으로 전권을 위임 받아 총리로 취임했다. 이어 기존 의원내각제 요소에 강력한 대통령제 요소를 결합한 제5공화국 헌법을 ‘합리화된 의원내각제’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총리가 갖고 있던 의회해산권은 대통령에게 넘어갔고, 의회의 내각 불신임을 제한하는 헌법 조항을 신설했다. 또 대통령에게 국민투표 회부권 등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고,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하게 했다.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의 시작이었다.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와 내각이 의회로부터 불신임당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여대야소 상황에선 대통령이 강력한 권력을 행사한다. 문제는 여소야대 상황이다. 헌법에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와 내각을 의회가 불신임해서 발생할 공백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이 상황은 현재 프랑스서 진행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의회를 해산해 조기 총선을 치렀다. 마크롱 대통령의 기대와는 달리, 여당 앙상블은 전체 577석 중 168석만 확보하는 참패를 당했다. 극우 정당 국민연합과 좌파 정당 신인민전선이 함께 약진했기 때문에 동거정부 구성도 어려웠다. 지난해 12월5일엔 2025년도 예산 문제 때문에 야당이 미셸 바르니에 전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시켜 내각이 총사퇴했다. 그러자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를 임명했고, 국민연합이 바이루 총리에게 우호적인 반응을 보여 그나마 냉각이 완화됐다. 양당 극단 정치 대립 프랑스식 동거체제는? 이런 상황을 처음 직면했던 대통령은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었다. 미테랑 전 대통령은 지난 1986년 총선 패배로 인해 ▲대통령직 사임 ▲의회와의 대립 지속 ▲야당에 행정부 구성권 이양 등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그의 선택은 행정부 구성권 이양이었다. 총리로 취임했던 사람은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이었다. 미테랑 당시 대통령과 시라크 당시 총리는 권한 배분 관련 합의를 한다. 이에 따르면, ▲외교·국방 관련 권한 ▲정부의 행정입법 ▲의회해산권 등은 대통령이 행사하고, 그 외 내정 권한은 총리에게 넘어간다. 우리가 흔히 아는 프랑스식 동거정부는 이때 처음 출범했다. 시라크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똑같은 상황을 맞이한다. 시라크 전 대통령은 지난 1997년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한다. 하지만 야당 좌파연합이 577중 314석을 확보하는 참패를 당했고, 대선 맞상대였던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를 총리로 임명해야 했다. 동거정부는 5년 동안 지속됐다. 시라크 당시 대통령은 대부분의 권한을 잃었다. 여당 RPR서도 당내 정적 필립 세귄이 지도자로 선출되면서 당내 영향력도 잃었다. 한동호 UCL 박사는 지난 2010년 발표한 논문 <한국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과 프랑스 동거정부의 함의>서 시라크 당시 대통령을 놓고 “이중(정부와 당)의 동거를 감당해야만 했다”고 평가했다. 조스팽 당시 총리는 시라크 대통령과 협력했고, 시라크 대통령도 조스팽 총리의 정책 중 자신의 생각과 어긋나는 것은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동거정부 체제는 복잡미묘함 때문에 프랑스 정치권도 가급적 꺼린다. 프랑스는 지난 2000년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 임기를 7년서 5년으로 단축하고, 2002년 대선과 총선을 약 두 달 간격을 두고 치러 동거정부를 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김태수 한국외대 글로벌정치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2007년 발표한 논문 <프랑스 대통령제의 특징, 변천 그리고 운영의 메커니즘>서 ”프랑스 야당은 한결 같이 대통령의 ‘권력독점’을 막기 위해 자신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정치의 논리”라고 서술했다. 즉, 동거정부 성립을 통한 대통령 견제를 근거로 지지를 호소한다는 것이다. 만약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를 도입했다면, 지난해 4월 총선 이후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동거정부가 탄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이 국방부 장관과 외교부 장관을 제외한 내각을 원하는대로 구성했다면, 탄핵소추를 지나치게 많이 추진하진 못했을 것이다. 아울러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 시도도 국회가 아닌 국무회의서 제동이 걸렸을 것이다. 프랑스에선 무슨 일이? 프랑스서도 꺼리는 동거정부라지만 극단의 정치를 거듭하면서 국가 에너지를 낭비하는 우리 양당의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당이 극단의 정치를 종식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제도로 이를 통제할 방법을 생각해야 할 때일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와 그 후폭풍이 남긴 숙제일 것이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