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증권가에 모럴해저드 ‘광풍’이 불고 있다. 벤처 대부였던 정문술 미래산업 고문이 ‘안철수 테마주’로 부각돼 주식가치가 급등하자 자신이 보유한 지분을 모조리 팔아넘겨 막대한 차익을 챙긴 것이다. 안철수 대선후보가 출마선언을 하기 꼭 5일전이었다. 눈뜨고 코가 베인 개미투자자들은 분노했다. 전형적인 ‘막장드라마’를 향해가고 있는 미래산업 스토리를 들여다봤다.
“2100원에 그동안 목욕탕 때밀이해서 번 돈 4100만원 부었다가 이게 무슨 낭패입니까? 저는 4100만원 벌기 위해서 4년을 고생했는데 현재 1470만원. 앞으로 어떻게 살지 억장이 무너집니다. 손녀 2명과 지하 전세방에서 사는 딸이 ‘아빠, 돈 1000만원만 빌려줘’ 할 때 빌려 줄 것을….”
“제발 팔게 좀 해주시지. 결혼자금 다 날리겠다. 사무실에 앉아서도 일이 손에 안 잡힌다. 명절에 부모님, 조카들 용돈은커녕 받아야 할 지경이네.”
“지금 죽으러 갑니다. 평단(평균 매수단가) 2062원. -65.32%. 고통 없이 편하게 죽는 방법 알려주세요.”
개미투자자들 ‘멘붕’
최근 미래산업 투자자들의 ‘멘붕(멘탈붕괴) 스토리’가 온라인 주식투자 게시판을 달구고 있다. 벤처황제주이자 안철수 테마주로 꼽히는 미래산업의 최대주주가 변경되면서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있기 때문이다.
각 포털사이트 미래산업 주식 게시판 종목 토론방에는 개미투자자들의 눈물 섞인 사연이 1분 단위로 업데이트 된다. 하루 게시글만 수천 건에 달한다. 매도주문은 연일 쇄도하는 가운데 매수주문이 없어 발목이 잡혔다는 사연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 진행상황 분석 등도 전해지고 있다.
4월 중순까지만 해도 200원대의 ‘동전주’에 불과했던 미래산업 주가는 최대주주인 정 고문이 안철수 대선후보와 친분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수직상승했다. 안 후보가 정 고문이 낸 300억 기금으로 만들어진 ‘KAIST 정문술 석좌교수’를 지냈다는 점, 안 후보가 정 고문을 ‘멘토’로 꼽은 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후 8월 한 달 사이 미래산업 주가는 상한가만 9번 기록했고, 10% 이상의 급등도 3번을 기록하면서 무려 400% 가까이 올랐다. 평균 5000만 주에 불과하던 하루 거래량이 1~2억 주로 치솟았다.
개미투자자들도 눈이 휘둥그레지며 따라붙기 시작했다. 모아둔 결혼자금, 전세금,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 투자를 감행한 사람도 있었다. 매출액 192억원에 영업손실 50억원. 올해 상반기 미래산업 실적은 형편없는 수준이었지만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고 올라갔다.
이 와중에 사건이 터졌다. 지난달 13일 갑자기 상승폭이 줄어들더니 다음 날인 14일, 최대주주인 정 고문은 자신의 보유지분을 모두 팔았다. 단 하루 주식매매로 400억 원을 현금화했다. 테마주로 부각되기 전 정 고문의 지분가치는 불과 70억원 안팎.
그뿐만 아니라 그의 부인 양분순씨도 보유 중이던 139만여 주를 1900원대에 나란히 팔아치웠다. 권순도 대표와 권국정 사외이사 등 주요 임원들도 주식매도에 동참했다. 정확히 안 후보의 대선 출마선언 기자회견 5일 전이었다.
“철수와 인연” 소문만 있어도 테마주 둔갑
조직적이고 계획적이었던 ‘먹튀’ 시나리오
개미투자자들은 뒤늦게 “대주주와 이사들, 세력 간의 철저한 계획하에 마무리된 시나리오”라고 분노했다.
“9월 3일 정기훈 전무이사 5만7980주 매도, 10일 김효원 이사 2만7000주 매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세력물량정리가 들어간다. 1차적으로 13일 세력의 일부가 매도되고, 2차적으로 14일 대주주 외 3명의 물량을 장내 매도한다. 공시는 5거래일 안에만 하면 되니 3차적으로 17~18일 마지막 세력들의 물량이 정리된다. 17일 엄청난 물량을 장내매도 하기 위해서 ‘이사 5명의 주식매수공시’를 내고 이는 세력과 대주주 물량을 매도하기 위해 사전에 공시 낼 목적으로 매수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는 19일, ‘최대주주변경’ 공시가 뜬다. 이후 주가는 급락수준으로 빵빵 떨어졌다. 2000원을 넘었던 주가는 순식간에 600원대로 하락. 결론은 이제 세력은 굿바이. 남은 건 미련을 남기고 매각 안하고 오르겠지 하고 기다린 개미들만 몰렸다. 추석까지는 하한가 칠 것 같고 그 후로도 미래산업의 미래는 없어 보인다.”
날이 갈수록 상황이 악화 되자, 투자자들은 ‘개미지옥에 빠졌다’며 연일 단체행동을 소집하고 있다. ‘미래산업소액주주연합’이라는 카페에는 이미 하루만에 300여 명이 가입했고 소액주주운동을 대행해주는 네비스탁에 의뢰한다는 소식에 투자자들이 이미 지분 300만 주를 모집했다.
투자자들은 “네비스탁을 통해서 소액주주연합의 최대주주 등재로 주가상승을 견인한 기업이 있다”며 “지분확보 600만 주 이상이 이루어지면 네비스탁에서 최대주주 공시를 도와줄 것이고 일단 최대주주로 등재되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삼자”고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놓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9월 24일 정치테마주에서 발생한 손실의 99% 이상을 개인투자자가 떠안았다는 분석자료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도 정 고문에 대한 어떠한 조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대주주의 지분 매각행위 자체는 도덕적 문제일 뿐 법적인 문제가 될 가능성은 낮은 편이기 때문.
이와 관련해 정 고문이 한 매체와의 통화에서 “미래산업을 도박장으로 만든 정치테마주 투기꾼에게 경고를 주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밝히자 개미투자자들은 더더욱 멘붕에 빠지고 있다.
작전, 테마주의 말로
한 투자자는 “경기침체로 가계살림이 팍팍해지면서 주식으로 작게나마 보탬이 되려고 했는데 씁쓸하다. 주식을 하면서 그동안 시장에서 느낀 점이 많다. 사람들이 욕심을 많이 부릴수록 시장은 개판이 된다는 것이다”라고 털어놨다.
두 번의 사업실패로 가족들과 함께 동반자살까지 결심했던 정 고문. 그랬던 그가 만들어낸 막장드라마 치고는 너무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일고 있다. 돈 앞에 장사 없다더니 돈 앞에는 벤처대부도 어쩔 수 없나보다.
<정문술 고문 ‘파란만장 인생사’>
두 번의 사업실패…자살결심까지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1938년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에서 태어난 정문술 미래산업 고문. 그는 40대 중반에 18년간 몸담았던 중앙정보부 과장직에서 강제 퇴직 당한 뒤 전 직장동료의 소개로 풍전기공이라는 금형회사에 퇴직금의 반을 투자해 동업했으나, 실패하고 만다.
그 후 1983년 전세금 3000만원짜리 공장을 얻어 미래산업을 창업했다. 그러나 사업 초기 부푼 꿈으로 도전한 첨단 웨이퍼(반도체의 가장기본소자인 웨이퍼의 불량 여부를 검사 하는 것)는 18억원이란 빚만 남긴 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기계는 만들어졌으나 웨이퍼검사 시간이 숙달된 기술자보다 4배나 걸렸던 것. 두 번째 실패를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이때 정 고문은 가족과 동반자살까지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는 그동안의 축적된 기술을 이용해서 재기를 결심했고 ‘테스트 핸들러’라는 반도체 불량검사 장비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반도체 업체들이 전량을 수입해오던 이 장비의 개발은 미래산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후 2001년 63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과감히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회장직을 은퇴하면서 후학 양성을 위해 써달라며 자신의 재산 중 300억원을 KAIST에 기부해 화제를 모으기도했던 그는 이번에 최대주주 지위만 유지하던 미래산업 지분의 전량을 매도하면서 다시 한 번 화제의 인물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