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송응철 기자] “국민연금이 국민의 혈세로 케레스타 임차인들을 거리로 내모는 투자를 강행하고 있다.” 케레스타 임차인 관계자인 김삼녕씨는 최근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이처럼 말했다. 케레스타 임차인들과 국민연금 사이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김씨의 입을 통해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의 전말을 짚어봤다.
국민연금 “전혀 몰랐다”라면서도 “투자 강행할 것”
50억원 가진 운용사에 1500억원 투자…커넥션 의혹
시간은 지난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케레스타는 거평프레야라는 이름으로 지난 1995년 동대문 최초의 쇼핑몰로 탄생했다. 당시 1평 남짓한 점포의 분양가는 5500만원.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을 정도의 액수였다. 적지 않은 가격임에도 투자할 가치는 충분했다. 거평프레야가 들어선 이후 동대문 일대는 ‘밀리오레’ ‘두타’ 등이 잇달아 들어서며 패션 타운으로 승승장구했기 때문이다.
상가, 돈 잃고 거리 몰릴 판
잘나가던 거평프레야가 쇠락의 길로 들어선 건 지난 1998년 모기업인 거평건설이 외환위기로 부도를 맞으면서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인들은 임차인연합위원회를 구성해 자치적으로 운영하다 8년여에 걸친 소송 끝에 2006년 법원으로부터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임차인연합위원회는 상인중 한명이었던 배모씨를 의장으로 선출해 쇼핑몰 매각과 리모델링 작업을 추진했다. 배씨는 ‘능인선원’의 지광 스님이 주축이 돼 만든 법인인 ‘KD프레야PFV’에 소유권을 넘기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상인들을 설득했다. 해당 법인은 취득세와 법인세 감세 혜택을 받기 위한 특수목적법인(SPC)으로 지광스님이 지분 95%를 보유한 사실상 개인회사다.
상인 2661명은 지난 2007년 12월 소유권을 KD프레야PFV로 넘겼다. 이 과정에서 배씨는 1950억원 규모의 보증금 가운데 30%를 현금으로 주고 나머지 70%는 나중에 주겠다고 약속했다.
소유권이 넘어간 직후 배씨는 건물 활성화와 리모델링 명목으로 경남은행 등에게 3200억원을 신탁대출 받았다. 거평프레야는 리모델링 후인 지난 2008년 케레스타로 이름을 바꿔 재개장했지만 쇼핑몰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익성이 나빠졌고, 결국 대출금 이자도 갚지 못하게 됐다. 당연히 임차인들은 보증금의 70%를 돌려받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그렇게 대출만기인 3년이 됐고, 그로부터 6개월 뒤인 지난해 6월 경남은행은 케레스타를 공매에 부쳤다. 그러나 선뜻 나서는 매입자가 없었다. 이후 공매는 18차례나 유찰이 거듭되면서 4419억원이던 최저입찰가는 결국 4분의1 수준까지 떨어졌다.
급기야 경남은행은 지난해 12월 파인트리 자산운용과 1258억원에 수의계약을 맺었다. 파인트리는 부실채권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사모펀드 운용사다.
그러자 임차인들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건물이 감정가보다 훨씬 낮은 금액에 매각돼 근저당 4순위인 임차인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된 때문이다. 멀쩡했던 상가를 뺏기고 보증금도 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릴 신세가 된 것이다.
임차인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파인트리는 궁여지책으로 미지급한 보증금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을 위로금조로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임차인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이 조건을 받아들일 경우 투자금의 절반을 고스란히 떼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곳 상가에 16년 가까이 매달려온 임차인들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따라서 임차인들은 보증금 반환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일전도 불사하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는 모양새다.
국민연금공단이 등장하는 건 바로 이 대목에서다. 파인트리는 자본금이 50억원에 불과한 소규모 운용사다. 그런 파인트리가 대형 매물을 사들일 수 있는 건 국민연금의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민연금은 현재 15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약정해 놓은 상태다. 임차인들이 “공적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이 서민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데 앞장서고 있다”며 분개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과 파인트리의 커넥션 의혹도 제기됐다. 파인트리는 국민연금의 ‘부실부동산 전용처리반’으로 통하는데, 국내 70여개에 달하는 운용사 중 최소규모라는 점을 감안하면 커넥션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 하다는 주장이다. 이번에 1500억원 규모의 투자가 감행된 것도 그에 대한 연장선상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투자대상을 미리 정하지 않고 돈부터 모았다 나중에 투자하는 ‘블라인드 펀드’ 방식으로 투자해 이런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몰랐다는 입장이다. 이런 사태가 벌어져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투자는 강행하겠다고 했다. 파인트리와의 커넥션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국민연금 측 관계자는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사전에 전혀 모르고 있었다”면서도 “계약 내용을 변경할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투자는 계획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현재 임차인과 파인트리 간의 합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합리적인 해결점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커넥션 의혹에 대해 이 관계자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내부적인 투자원칙에 따라 투자한 것 뿐”이라고 못 박았다.
“커넥션 사실 아니다”
임차인들은 국민연금의 막장투자를 막기 위해 국민연금 사옥에서 시위를 벌이거나 투서를 보내는 등 백방으로 뛰고 있다. 자신들을 거리로 내몰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호소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이 같은 외침에 눈과 귀를 막은 채 서민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짜내고 있다. 국민연금은 파인트리에 투자하기로 약속한 자금이 지금 거리로 등을 떠밀고 있는 국민들의 혈관에서 나온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