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2010 인사 총정리> 거물급 CEO 물갈이 동향

2010.01.05 09:34:04 호수 0호

노신들 칼바람 들이대고 황태자 앞길 튼다

‘신상필벌’. 재계 인사의 특징 중 하나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한 해 성과를 기준으로 가차 없는 신상필벌식 인사가 이뤄졌다.

특히 2∼3세 경영으로 접어든 그룹들은 과감한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주요 그룹 실세들의 서열지도가 새롭게 짜였다. 누가 살아남고, 누가 자리를 떴을까. 극명하게 희비가 엇갈린 각 그룹 거물급 CEO들의 거취를 정리해봤다.


2010년 주요 대기업 인사가 마무리됐다. ‘안정 속 변화’란 평가대로 전체적인 이번 인사의 폭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적잖은 물갈이가 이뤄졌다. 그중에서도 ‘황태자 체제’로 전환하거나 앞둔 그룹들의 지각변동이 도드라졌다.

젊은 피’ 대거 수혈
고참들 일선서 물러나



재계 인사의 최대 이슈인 삼성그룹은 본격적인 ‘이재용 시대’를 염두에 둔 기본 틀을 재정비했다. 노장들이 물러난 자리에 ‘젊은 피’들을 대거 수혈한 것. 이번 인사에서 사장 승진자 가운데 거의 대부분의 인사들이 50대다. 전체 승진자도 지난해보다 늘어 ‘선수 교체’의 폭이 컸다. 이건희 전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번 인사에서 부사장 승진과 동시에 그룹 핵심인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았다.

1991년 삼성전자에 부장으로 첫발을 들여놓은 지 19년 만에 이른바 ‘C레벨’로 불리는 최고경영진 타이틀을 거머쥔 셈이다. COO는 최고경영자(CEO), 최고재무책임자(CFO)와 함께 기업 내 사업을 총괄하는 자리다. 이 부사장이 COO를 맡은 건 명실상부한 그룹 경영의 승계자로 전면에 나선 것을 의미한다. 실제 해외에선 기업의 후계자나 최고경영자(CEO) 취임 직전 COO 직함을 다는 경우가 많다.

주요 그룹 조직개편 마무리…대부분 ‘안정’ 초점
‘황태자 체제’ 전환 맞물려 과감한 세대교체 단행


당장 이 부사장과 호흡을 맞출 인사는 최지성 사장이다. 최 사장은 이번 인사에서 삼성전자의 단독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그룹 핵심으로 부상했다. 기존 이윤우 부회장과의 ‘투톱 체제’에서 ‘원톱 체제’로 전환한 것. 그만큼 최 사장의 파워가 세졌다는 얘기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으로 옮겨 사실상 지휘봉을 놓았다. 그와 함께 이상대 삼성물산 부회장, 김징완 삼성중공업 부회장 등 그룹 고참들도 경영 일선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최 사장의 등극은 2008년 ‘특검 파고’ 이후 삼성일가의 절대적 신임을 받아온 이학수, 윤종용, 이기태, 김인주, 황창규 등 간판 라인들이 컨트롤타워에서 내려오면서 이미 예견돼 왔다. 특히 최 사장은 이 부사장의 ‘경영 스승’으로 불리며 후견인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최 사장이 ‘이건희 그림자’인 이학수 전 부회장(현 삼성전자 고문)과 자주 비교되는 이유다. 최근엔 이 전무와 해외 출장길에 동행하는 등 간격을 줄여 눈길을 끌었다.

현대·기아차그룹도 수뇌부 물갈이가 거셌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이 예상되는 현대·기아차그룹은 최근 현대차 112명, 기아차 54명, 계열사 138명 등 총 304명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임원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글로벌 경영위기를 겪었던 2009년도 인사 당시 204명보다 무려 50% 늘어난 100명이 많고 조직이 확대됐던 2007년 264명보다도 40명이 많은 인원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 정의선 부회장이 지난 8월 기아차 사장에서 현대차 부회장으로 전격 승진하면서 대대적인 인사 태풍을 예고한 바 있다. 이번 인사에서 ‘2인자’ 김동진 현대모비스 부회장을 비롯해 김치웅 현대위아 부회장, 팽정국 현대차 사장, 이용훈 현대로템 사장 등 CEO급 고위임원 4명이 물러났다.

이 중 김동진, 김치웅 부회장은 앞서 회사를 떠난 김익환, 박정인 전 부회장 등과 함께 정 회장의 가신으로 꼽힌다. 대신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 정석수 현대모비스 부회장 등이 새롭게 등극했다. 실무 책임자인 이들을 신규 임원으로 대거 보강한 것은 ‘정의선 체제’를 굳건히 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풀이된다. 40대의 ‘젊은 피’가 대거 이사 및 이사대우에 수혈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분석된다.

앞으로 이들을 중심으로 ‘정의선 호위대’가 꾸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다만 엄밀히 따지면 김용환, 정석수 신임 부회장이 정 부회장의 측근이 아닌 ‘정몽구 사람’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정 회장의 조직 장악을 엿볼 수 있다. 오너 3세 구도를 완성한 신세계그룹에도 인사 후폭풍이 일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12월 이명희 회장의 외아들 정용진 부회장을 그룹의 주력사인 신세계의 총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정 부회장은 그동안 그룹의 공식결재 라인에서 배제됐으나 15년간의 경영수업 끝에 최종 결재권자로 올라섰다. 정 부회장의 정신적 지주인 구학서 부회장은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결재 라인에서 빠졌다. 대표이사직을 내놓은 것. 신세계그룹은 전문경영인 구 회장을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그만큼 구 부회장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모든 사안에서 거의 전권을 행사할 정도다. 2000년부터 그룹 수장을 맡아온 구 회장이 신세계의 오늘을 만든 장본인이란 게 회사 임직원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구 회장은 ‘정용진 체제’의 초석을 다진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오너 2∼3세 약진…
새 수뇌부 꾸려졌다”

사실 구 회장은 앞서 여러 번 퇴임 의사를 밝혔지만 이 회장이 “정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기엔 아직 이르기 때문에 (구 회장에게) 좀 더 수업을 받아야 한다”며 극구 말렸다는 후문이다. 이 과정에서 구 회장과 이 회장간 불화설이 항간에 떠돌기도 했지만 결국 구 회장이 이를 받아들여 정 부회장이 CEO급 반열에 오르기까지 그룹 현안을 꼼꼼히 챙겨왔다.

이런 점에서 구 회장의 퇴진은 그룹 내 엄청난 너울을 암시한다. 이번 인사에서 신세계그룹 양대산맥인 백화점 부분 석강 대표와 이마트 부분 이경상 대표가 구 회장과 마찬가지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상임고문 역할을 맡은 것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빈자리는 박건현 신임 백화점 부분 대표, 최병렬 신임 이마트 부문 대표가 채웠다.

재계 한 관계자는 “세대교체를 의미하는 오너 2∼3세들의 약진과 함께 각 그룹들은 새 수뇌부가 꾸려지고 있다”며 “그렇다고 완전히 새 진용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올해 인사를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구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후계작업과 동떨어진 그룹들의 거물급 CEO들은 대부분 유임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LG그룹이 대표적이다. LG그룹의 2010년 인사 화두는 ‘안정’이었다. 구본무 회장 아래 기존 부회장 체제가 유지된 것.

강유식 ㈜LG 부회장, 남용 LG전자 부회장, 구본준 LG상사 부회장, 김반석 LG화학 부회장 등 부회장단 4명이 모두 유임됐다. 구 회장의 최측근인 남용 LG전자 부회장은 인사를 앞두고 퇴진설에 시달렸지만 당초 예상을 깨고 자리를 지켰다. 그룹 안팎에선 구 회장이 3년 임기를 채운 남 부회장을 빼고 동생인 구본준 LG상사 부회장을 LG전자 대표이사로 불러들일 것이란 시나리오가 나돌기도 했다.

삼성, 현대차, 신세계 ‘호위대’등극
LG, SK, GS, 한화 기존 ‘2인자’유지


그룹 측은 유임 이유에 대해 “지난 3년간 양호한 실적을 올린 공적이 인정됐다”고 밝혔지만 후계자로 낙점된 올해 31세인 구광모 LG전자 과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기엔 아직 이른 점이 잔류 배경으로 유력하다. 2004년 구 회장의 양자로 입적된 뒤 2006년 LG전자 재경부문 금융팀 대리로 입사한 구 과장은 이번 승진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최태원 회장의 자녀들이 어려 후계 체제와 전혀 상관없는 SK그룹도 이번 인사에서 변화보다 안정을 선택했다. SK그룹은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 김신배 SK C&C 부회장, 윤석경 SK건설 부회장,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 최재원 SK E&S 부회장 등 ‘그룹 2인자’ 구도에 칼을 대지 않았다. 최상훈 SK㈜ 경영관리총괄 부사장이 SK가스 대표에, 박영호 SK㈜ 사장이 중국법인 대표에 임명된 것을 제외하곤 주력사 CEO들도 큰 변동이 없었다.

역시 인사를 끝낸 GS그룹, 한화그룹 등도 최고경영진이 살아남았다. GS그룹은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장남 허세홍 싱가포르 현지법인장과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사촌 동생인 허용수 ㈜GS 사업지원팀장이 각각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하는 등 오너 경영을 강화했지만 서경석 GS홀딩스 부회장, 김갑렬 GS건설 부회장, 허승조 GS리테일 부회장 등 ‘윗선’까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한화그룹도 승진 인사를 단행해 한화석유화학, 한화건설, 한화갤러리아, 한화역사 등 계열사 대표이사 4명을 교체했으나 김연배, 성하현 부회장 등 김승연 회장의 가신들은 그대로 자리를 보존했다. 이외에 조만간 인사 발표가 예정된 롯데그룹, 한진그룹, 두산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 등 주요 대기업들도 현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성장전략 중심의 조직개편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인사 가운데 뭔가 석연치 않은 자리이동도 눈에 띈다. 손욱 전 농심그룹 회장의 사임이다. 손 전 회장은 그룹 정기인사를 앞둔 지난해 11월 돌연 회사에 사의를 표명, 연말까지만 회장직을 수행했다. 회장직 취임 1년7개월 만에 퇴진한 것. 손 전 회장은 2008년 3월 새우깡에서 생쥐머리로 추정되는 이물질이 나와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이른바 ‘생쥐깡 파문’ 당시 농심그룹 오너인 신춘호 회장이 ‘특급 소방수’로 영입했다. 보수 경영으로 유명한 농심그룹이 외부인사를 대표이사로 영입한 것은 1999년 신세계 출신인 권국주 사장 영입 이후 처음이었다.

후계체제 이른 그룹
성장전략 중심 이동

회사 측이 “신 회장이 직접 나서 사의를 만류했지만 손 전 회장은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일각에선 손 전 회장의 퇴임을 두고 신 회장과의 불화설이 제기됐다. 손 전 회장이 그동안 내부 결재라인에서 배제되는 ‘왕따설’ 등 구체적인 얘기도 나돌았다. 심지어 회사 측 결정에 대해 불만을 품은 손 전 회장이 법적 대응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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