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이 '시숙 섭정'을 받아들였다. 한진해운 신임 사장으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복심 석태수 ㈜한진·한진칼 대표가 선임됐다. 한진해운은 '경영정상화'를 위한 선택이라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재계 인사는 많지 않다. 사실상 한진해운이 조양호 회장 체제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중론이다.
지난 11월11일 김영민 당시 한진해운 사장이 급작스럽게 사의를 표명했다.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의 마지막 남은 가신이었던 김 전 사장의 사의는 업계에 충격을 몰고 왔다.
김 전 사장의 사의 표명에 대해 당시 한진해운 측은 "연이은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안고 가겠다"는 김 전 사장의 뜻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는 '경질'로 봤다. 김 전 사장은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의 마지막 남은 가신이었기 때문이다.
가신까지 쳐내고
김 전 사장은 미국 노스이스턴대학교를 졸업하고 20여년간 씨티은행에서 근무했다. 2001년 한진해운에 영입돼 관리본부장, 총괄부사장을 거쳤으며 2009년 최 회장이 직접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했다.
업계는 한진해운이 지독한 유동성 위기에 처해있는 것과 관련해 내·외부의 사임 압박이 컸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왔다. 자금 지원에 나선 대한항공이 김 전 사장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는 시선도 있다.
김 전 사장의 사의를 수용한 한진해운은 후임 사장 선임 절차를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 11월29일 신임 사장으로 석태수 ㈜한진 대표를 내정했다. 석 신임 사장은 지난 1일 공식 업무에 들어갔다.
석 신임 사장 내정은 최 회장이 직접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요청하면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진해운 측은 "석 사장이 대한항공과 ㈜한진에서 쌓은 물류산업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한진 대표로 일하며 실현한 우수한 경영 실적을 높이 평가해 신임 사장으로 영입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재계 인사는 없다. 한진해운에 조 회장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진그룹과 한진해운은 독립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조 회장 측이 한진해운 지주사인 한진해운홀딩스 지분을 보유해 한진해운은 한진그룹 계열사로 분류된다. 현재 한진해운홀딩스 지분 중 최 회장 우호 지분은 50.67%, 조 회장 측 지분은 27.45%다.
최 회장은 그간 완벽한 독립을 꿈꿔왔다. 남편인 고 조수호 회장이 2006년 세상을 떠나기 전 최 회장에게 한진해운의 독립 경영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 회장은 지난 2011년 대한항공장 주식 4만3355주를 매각하고 최 회장의 두 딸 조유경·유홍씨도 각각 대한항공 주식 1만8320주, 1만9160주를 처분했다. 지난해에는 정석기업 주식 4만4180주를 정리하는 등 계열분리 작업에 박차를 가해왔다.
한진해운 사장 교체 조양호 최측근 선임
물 건너간 계열분리…사실상 '접수' 해석
하지만 현재 한진해운은 지독한 유동성 위기에 처해있다. 연내 갚아야 할 기업어음(CP)만 2200억원. 내년 3월에도 1800억원, 4월과 9월에 각각 600억원, 1500억원씩의 회사채·CP 만기가 돌아온다.
결국 최 회장은 지난 10월 시아주버니인 조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한진해운홀딩스는 보유한 한진해운 주식을 담보로 대한항공으로부터 1500억원의 자금을 지원받기로 했다. 이어 연말 1000억원의 추가 지원이 예상된다. 여기에 한진해운이 대한항공으로부터 빌린 긴급 지원 자금을 갚지 못한다면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의 2대 주주가 돼 경영 현안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소문대로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의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담보물건에 대한 담보권 행사에 나선다면 27% 수준인 대한항공의 한진해운홀딩스 지분률은 50% 이상까지 확대되어 최대주주에 등극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진그룹 내 전문경영인 중 최고 실세로 꼽히는 석 신임 사장의 부임은 조 회장의 영향력을 더욱 커지게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메사추세츠 공과대학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석 신임 사장은 지난 1984년 대한항공에 입사, 경영기획실장과 미주지역 본부장을 지냈다. 지난 2008년 3월 ㈜한진 대표에 올랐으며, 지난 8월부터는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홀딩스의 대표를 맡고 있다.
석 신임 사장은 ㈜한진이 2008년 세덱스를 인수해 사명을 바꾼 한덱스의 대표가 됐을 때, 조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과 함께 한덱스의 등기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또 계열사 대표이사 중 유일하게 조 회장과 함께 한진그룹이 2대 주주로 있는 에쓰오일 등기임원으로 등재돼 있다.
조 회장의 총애에 석 신임 사장은 경영성과로 보답해 왔다. 그가 대표로 취임한 2008년 ㈜한진의 매출액은 8500억원 선. 이는 2년 만에 1조원대를 넘어섰으며 지난해에는 1조2000억원을 돌차했다. 200억원 대 초반이던 영업이익도 2011년부터 300억원을 돌파했다.
조 회장의 복심이라 불릴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는 석 신임 사장의 한진해운 입성에 업계는 한진해운이 사실상 조 회장 체제로 돌입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경영권 넘어갈까?
업계 관계자는 "해운업황이 회복될 기미가 안 보이는 상황에서 최 회장의 입지는 좁아져만 갈 것이다"며 "추가 자금 수혈과 유상증자 가능성에 이어 전문경영인까지 조 회장의 손길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경영권이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다"고 말했다. 해운업계 전문가들은 본격적인 업황회복은 2015년이나 돼야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진해운 측은 석 신임 사장 선임은 회사 정상화 과정일 뿐 독립 경영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최 회장이 독립 경영 기조를 유지하면서 조 회장의 도움을 받는 식으로 회사를 운영할 가능성이 있다는 시선도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