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보돈사람’ ‘돈태우’ 노소영이 바꾼 아버지 별명

2025.02.10 10:31:09 호수 1519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살아생전 별명은 ‘보통사람’과 ‘물태우’였다.



보통사람은 13대 대통령선거 유세장서 노태우 대선후보가 “나, 이 사람 보통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라는 발언을 하면서 생긴 별명이다.

당시 노태우 대선후보 선거캠프는 노 후보의 ‘12.12 쿠데타’ ‘5·17 내란’ 등 권력 범죄에 관여한 이미지를 없애고,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선거 전략으로 보통사람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물태우는 노 전 대통령이 집권 초반부터 여소야대 국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임기 중반에 레임덕에 빠지면서 대통령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자 생긴 별명이다.

이 별명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부드러운 성품의 노 전 대통령을 대변했고, 현실에 순응하는 노 전 대통령의 이미지 메이킹 용도로도 사용됐다.

노 전 대통령은 보통사람과 물태우라는 별명을 싫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두 별명 때문에 노태우정권이 엄연히 군부독재 정권이며 권위주의가 강했지만, 국민으로부터 기존 군사 독재 정권에 비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다소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 3년이 지난 최근 노 전 대통령의 별명 보통사람과 물태우가 ‘보돈사람’과 ‘돈태우’로 바뀌었다.

보돈사람은 돈이 돼지(豚)를 연상케 하고 돼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탐욕이기 때문에 ‘탐욕스런 돼지같은 사람’을 일컫는다. 노 전 대통령 살아생전 좋아했던 보통사람을 패러디한 별명이다.

돈태우는 말 그대로 ‘돈 욕심이 많은 노태우’를 의미한다. 이 별명 역시 노 전 대통령이 살아생전 좋아했던 물태우를 패러디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살아생전 긍정적인 별명이 왜 부정적인 별명으로 바뀌었을까? 이는 아쉽게도 노 전 대통령의 장녀 노소영 나비아트센터 관장이 본의 아닌 셀프 패드립(자신의 부모에 대한 모욕)이 발단이 됐다.

지난해 노 관장은 이혼소송을 했다. 이때 승소에만 급급했던 노 관장이 느닷없이 아무도 모르고 당사자들만 아는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카드를 꺼냈다. 노 관장이 꺼낸 비자금은 300억원이었고, 그 근거는 달랑 그 모친인 김옥숙 여사의 메모였다.

노 관장이 이혼소송 2심서 공개했던 김 여사 메모에 등장하는 노 전 대통령 비자금도 904억원으로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이후 정치권 등에서 추가로 밝혀낸 비자금을 포함해 총 1400여억원 비자금이 ‘당사자들만 아는 비밀’로 지켜지며 불법 은닉돼왔음이 밝혀졌다.

즉,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이 대법원 판결로부터 28년, 추징금 완납 11년 만에 은닉 비자금이란 또 다른 모습으로 재등장한 것이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살아서도 돈의 탐욕을 드러내더니, 죽어서도 돈의 탐욕을 버리지 못한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노 전 대통령의 별명이 보돈사람과 돈태우로 바뀐 이유다.

대통령 재임 기간 5000억원대의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죄로 처벌받은 후, 마치 속죄하고 다 반납한 것처럼 코스프레해 놓고 뒤로는 수천억원 비자금을 불법 은닉한 노 전 대통령이 ‘천하에 돼지같이 돈 욕심이 많은 사람’이란 의미로 보돈사람과 돈태우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는 건 안타까운 우리나라 대통령의 흑역사다.

돈은 ‘자금’과 ‘돼지’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어 보통사람을 빗대어 만든 보돈사람과 물태우를 빗대어 만든 돈태우는 같은 맥락의 별명이다.

살아생전 ‘보통’과 ‘물’이 가지고 있는 부드러운 의미 때문에 긍정적이었던 별명을 사후에 돈(자금, 돼지)의 의미가 들어간 부정적인 별명으로 바꾼 장본인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의 욕심을 위해 아버지의 비자금을 폭로한 노 관장이었다는 사실 역시 우리 사회의 흑역사가 아닐 수 없다.


노태우정부서 고위직을 역임했던 모 원로 인사는 노 관장이 보통사람과 물태우라는 긍정적인 별명을 가진 대통령으로 영원히 기억될 수 있었던 아버지를 부관참시해 돈 욕심이 많은 돼지같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점에 대해 “구천서 떠돌고 있을 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할지 두렵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3일 군사정권범죄수익국고환수추진위원회(환수위)가 최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노 관장과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 등이 돈세탁을 통해 비자금을 마련하고 세금을 포탈한 정황이 있다”며 고발장을 냈다.

환수위는 “검찰이 조속히 노태우 일가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며 “특히 노 원장은 해외와 국내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세탁해 온 것으로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체 조사를 통해 “노소영 등 노태우 일가의 자금 운용이 여러 면에서 석연치 않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범죄 행위자의 사망 등으로 공소를 제기할 수 없을 땐 불법적으로 축적한 재산을 몰수하거나 추징하는 게 불가능해, 노 원장의 2심 판결은 은닉 비자금을 사실상 노 관장과 노 원장 재산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서 비자금 실체가 밝혀지면 노 전 대통령이 납부한 추징금과는 다른 돈이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진다.

노 관장과 노 원장은 노 전 대통령 불법 비자금을 관리해 온 사실상 비자금 상속자고, 범죄수익을 관리했을 뿐만 아니라 불법으로 증식해 온 공범이다.

이제 노 관장과 노 원장은 아버지 비자금에 대해 법적·사회적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고, 노 전 대통령이 원래부터 보돈사람이었고, 돈태우였다는 점을 인정하고, 아버지를 대신해 국민께 사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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