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포된 지 6시간 만에 해제 선언된 비상계엄령. 긴박한 새벽녘 6시간 동안 해외로 타전된 뉴스에 세계인이 보낸 반응은 싸늘했다. “아니 한국이 왜 이러지?”라며 의아해한다. 8억명의 중국인이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나라 계엄 상황을 뉴스로 검색했다.
민주적 절차를 경험하지 못한 중국인들조차 당황하고 냉소한 반응이다. 외국 언론은 불안한 한국의 모습을 보도한다. 그동안 역외선물환 시장서 우리 원화 환율은 1450원에 가까웠다. 뉴욕 증권시장에 상장된 한국물 가격도 급전직하했다.
지금 한국은 외부로부터의 공격이 아닌 우리 내부의 문제로 원화의 가치와 대외 협상력이 상처를 입었다. 나라의 국제 위상은 대외 신뢰도가 결정한다는 면에서 보면 우리가 입은 내상과 외상의 크기는 짐작하기도 어렵다. 치유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정치와 경제를 이야기할 때 그것은 분명 별개의 주제지만 그 관계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학문의 영역서 정치학과 경제학이 분리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정치와 경제가 함께 작동하는 것 같지만 사실 정치와 제도가 먼저고 더 중요하다.
돈만 열심히 벌어서는 분명 한계가 있다. 정치가 먼저 성숙해져야 하는 이유는 국가가 운영되는 기본질서가 정치로부터 나오고 그것이 경제적 시스템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정치제도가 후진적인 나라가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의 경제는 후퇴 중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물러서게 될지 걱정스럽다.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나라가 성장을 멈추고 국민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는 이유는 인구가 줄고 주식이 떨어지고 환율이 올라서가 아니다. 정치가 후진적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낙후하면 경제는 확실히 후퇴한다.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정치의 최종 병기인 전쟁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전쟁 상황을 전제로 성립하는 국가 비상계엄이 국민을 극도로 불안하게 만드는 이유다.
역사를 일별해 본다면 정치는 늘 전쟁의 유혹에 빠지곤 했고 지금도 어디선가 전쟁은 벌어지고 있다. 강대국의 패권 경쟁이 격화하면서 전쟁도 불사한다는 분위기가 세계를 덮고 있다. 그래서 두렵고 ‘전쟁 불사’를 스스럼없이 입에 올리는 우리 대통령은 더 무섭다.
남북 대치의 긴장감이 높아질수록 오히려 그런 상황을 즐기는 듯 보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정상적이지 않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곤 하지만 정말 즐길 수 없는 건 전쟁이다. 하지만 이겨야만 하고 즐기기도 해야 하는 전쟁이 있다면 그건 ‘경제 전쟁’이다. 전쟁보다 더 치열하지만, 이 경쟁서 질 수 없는 이유는 국민의 생존권이 달렸기 때문이다.
국가는 제한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이 싸움서 이길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와 대통령은 국민을 상대로 계엄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했다.
중무장한 군인이 국회를 장악하고 정치를 무력화하려 나섰다.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계엄령으로 되찾으려 했지만, 국민은 계엄을 거부하고 새로운 정치를 원했다.
쿠데타는 막아냈지만, 국격의 추락과 국민 자존감이 입은 상처는 치유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정작 무서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보다 암울한 경제 전망이다. 이겨야 할 전쟁엔 관심도 없고, 하지 말아야 할 전쟁은 입에 담는 대통령이 가뜩이나 힘겨운 국민을 더 우울하게 만든다.
며칠 뒤면 찾아올 내년, 한국 경제 시계는 지독하게 흐리다. 그런데도 정치가 민생의 고달픔을 공감하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정치가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면 무엇이 돼야 할까? 전쟁이 아닌 평화를, 힘들고 약한 이들에게 의지가 되어 주는 상생을, 혐오와 증오가 지배하는 정치판엔 공존을, 성장과 번영을 지속할 지혜를 찾아주기를 국민은 바랄 뿐이다.
[조용래는?]
▲ 전 홍콩 CFSG 파생상품 운용역
▲ <또 하나의 가족>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