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폐 러닝크루’ 몰려다니는 이유

2024.10.15 08:31:23 호수 1501호

도심서 우르르 ‘무서운 러닝족’

[일요시사 취채1팀] 최윤성 기자 = 2030세대 사이서 러닝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야외 운동을 시작하려는 이들이 늘어난 데다 특별한 장비가 필요 없어 진입장벽이 낮은 이유다. 그러나 일부 러닝크루들이 공공 운동장뿐 아니라 산책로까지 점령하면서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어나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런라니’라는 신조어까지 나온 상황서 러닝크루가 단체로 몰려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몇 년간 MZ세대 사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러닝크루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달리기 열풍에 휩싸이면서 공원과 운동장 등 달릴만한 곳은 어디든 러너들이 눈에 띈다. 그러나 러닝크루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은 그다지 좋지 않다. 일부 러닝크루가 공공 운동장의 모든 트랙을 차지한 채 단체로 달리거나 과도한 크루 활동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기 때문이다. 

MZ 열풍 

산책로나 운동장이 러닝크루 회원들로 가득 메워지자, 이용에 불편을 겪는 시민들이 속출해 결국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이에 <일요시사>가 단체로 무리지어 달리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러닝크루 활동이 잦은 서울 서초구 반포종합운동장을 찾았다. 

지난 7일 오후 1시께 도착한 운동장은 한산했다. 트랙에서 뛰고 있는 지역 주민을 몇 명 볼 수 있었으나 많지는 않았다. 해당 시각에는 총 4명 정도가 혼자 뛰거나 둘이서 함께 달리고 있었다. 러닝크루의 주 모임 시간이 오후 6~8시로 퇴근 시간 이후에 맞춰져 있어 만나기는 어려웠다. 

운동장 트랙을 한 바퀴 도는 중 달리기 직전 몸을 풀고 있는 한 주민을 만났다.


최근에도 러닝크루에 초청돼 종종 나간다는 A씨는 “실제 훈련 방식이 맨 앞 사람 기준에 맞춰 달리는 것이기 때문에 줄지어 뛸 수밖에 없다”며 “혼자서 하는 것보다 크루에서 활동하면 운동 효율도 더 좋아 사람들이 모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성을 만나기 위한 목적으로 가입한 사람은 별로 없다”며 “편견이 있는 분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단순 운동 목적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늰 “혼자서 달릴 때 뒤에서 갑자기 큰 소리로 비켜달라고 해 놀란 적도 있고, 트랙 중간에 멈춰 서서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다수의 러닝크루가 그런 게 아니라 일부 크루가 그런 행동을 한다”고 말했다. 

이후 오후 4시께 해당 운동장은 러닝하러 나온 주민들이 앞선 시간 때보다 더 늘어나 있었다. 단체로 달리고 있는 모임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트랙 빈자리를 채우듯 레인별로 한두명씩 뛰고 있었다.

“실제 훈련방식이 줄지어 뛰어”
“맨 앞사람 기준 맞춰 달려야”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B씨는 “러닝크루에 들어가서 사람들과 같이 뛰면 외롭지는 않겠지만 신경 쓸 게 많아 아직은 혼자가 편하다”며 “산책하러 나온 주민이 러닝크루를 피하는 과정서 부딪힐 뻔한 일도 본 적 있다”고 말했다.

이날 여러 사람이 모여 선수들처럼 훈련 방식에 맞춰 뛰다 보면 개인적으로도 도움이 많이 돼 좋다는 주민과 러닝크루에 가입해 함께 달리기보다는 혼자서 운동하는 게 더 편하다는 주민의 생각은 달랐다. 

실제 여의도공원서 활동하는 한 러닝크루 부매니저와 연락이 닿았다. 부매니저 C씨는 “맨 앞에서 뛰는 사람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행동은 따로 없다”며 “단체로 뛰기 때문에 뒤떨어지지 않게 통제하는 과정서 모여 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2열로 뛰다 1열로 바꿔 뛰기도 한다”고 말했다. 맨 앞에서 달리는 상급자에 맞춰 팀원들이 뒤따라 달리고, 이탈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과정서 모여 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러닝크루는 SNS를 활발히 사용하는 20~30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운동 문화로 자리 잡았다. 달리기를 의미하는 러닝(Running)에 조나 모임 등을 의미하는 크루(Crew)가 합쳐진 용어인 러닝크루는 ‘달리기’라는 공통의 목적을 갖고 서로 뭉친 집단을 뜻한다. 


달리기가 인기를 끈 것은 수년에 걸친 코로나19 확산이 영향을 줬다. 코로나 감염을 우려한 젊은 세대가 실내 운동보다는 실외 운동에 주목했고, 그 결과 운동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은 달리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또 달리기는 다른 종목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에서 가성비를 중시하는 MZ세대에게는 매력적인 운동이됐다.

비슷한 나이대 사람들과 소통하며 달릴 수 있는 소모임인 러닝크루도 덩달아 급증하고 있다. 네이버에 따르면 커뮤니티 플랫폼 ‘밴드’서 러닝과 걷기를 주제로 삼은 모임은 지난 2021년 9월 대비 올해 90%가 증가했다. 밴드서 러닝을 검색하면 지역 소모임만 약 2649개가 나온다. 

민원 빗발에 제재 나서
신조어 ‘런라니’까지

이 과정서 민폐를 끼치는 일부 러닝크루 때문에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민원이 급증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서 러닝크루가 한밤중에 도로를 막고 한복판서 단체로 찍은 인증샷이 공개돼, 일반인뿐 아니라 러너들 사이서도 도가 지나쳤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에게 “비켜달라”고 소리 지르거나 공공 운동장의 모든 레인을 차지한 채 단체로 달리는 행위와 러닝크루를 촬영한다며 막무가내로 길을 막거나 야밤에 스피커로 음악을 튼 채 달리는 행위도 지적받았다.

이 같은 러닝크루에 대한 민원이 제기되자 지방자치단체서도 제재에 나섰다. 서울 서초구는 지난 1일부터 반포2동 반포종합운동장 내에서 5인 이상 단체 달리기를 제한하는 내용의 이용규칙을 시행했다.

반포종합운동장은 한 바퀴에 400m인 레인 5개가 마련돼있어 러닝크루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다. 서초구는 지난달 반포종합종합운동장 내 러닝크루 관련 민원을 9건 접수했다. 소음이나 촬영, 유료 강습을 막아 달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에 따라 서초구는 “10인 이상의 친목 동호회일 경우 4인·3인·3인 등 조를 구성하는 것을 권고한다”며 “트랙 내 인원 간격을 약 2m 이상으로 유지해달라”고 안내했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현장 관리직원의 판단에 따라 현장 계도 등으로 주의 또는 퇴장까지 요구하겠다는 계획이다. 

“비켜”

서울 송파구 역시 석촌호수 산책로에 ‘3인 이상 러닝 자제’를 요청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송파구에는 러닝크루 관련해 올해 총 15건의 민원이 들어왔다. 경기 화성시도 동탄호수공원 산책로에 러닝크루 출입 자제를 권고했다. 지자체들의 단속 조치를 알리는 소식에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러닝크루를 러너와 고라니의 합성어인 ‘런라니’라 부르는 등 자라니와 킥라니에 이어 신조어까지 나온 상황이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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