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대한민국의 봄!

2024.02.13 14:41:09 호수 0호

1979년 전두환 일당의 ‘군사 반란’은 육군 보안사령부가 수사권, 기소권을 독점함으로써 시작됐고, 12·12 이후 재판권까지 장악함으로써 완료됐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총장 출신이 대통령이 된 뒤 검찰 부하들을 정부 요직에 앉혔으며, 그 최측근이 여당의 비대위원장이 됐다.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등도 그가 임명한다.

그와 그의 부하들은 다음 총선을 통해 국회까지 장악하려는 꿈을 꾸고 있다.

전두환이 12·12 군사 반란 도당의 수괴가 될 수 있었던 건, 그가 하나회 멤버 중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10·26 당시 육군 보안사령관이었기 때문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그는 곧바로 합동수사본부장이 되어 수사권과 기소권을 장악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장악하는 건, 사건을 ‘조작’할 수 있게 됐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그는 그런 막강한 권한을 이용해 정승화가 김재규와 내통했다고 사건을 ‘조작’했다.

12·12 이후에 그는 비상군법회의마저 장악해 ‘재판권’까지 확보했다. 수사권, 기소권에 더해 재판권까지 확보함으로써 그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독재자가 됐다.


그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했고, 공수부대원을 보내 광주시민을 학살하고서는 계엄군에게 맞아 초주검이 된 사람들을 ‘내란범’으로 처벌했다.

전두환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정부를 완전한 허수아비로 만들고 스스로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됐다. 이어 민주정의당을 창당하고 역시 ‘추대’ 형식으로 당 총재가 됐다.

전두환 일당의 군사 반란은 육군 보안사령부가 수사권, 기소권을 독점함으로써 시작했고, 12·12 이후 재판권까지 장악함으로써 완료됐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분개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10·26 이후 전두환 군사 반란 세력이 진행했던 일들이 순서와 강도만 달리해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분개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전두환이 정승화를 체포했을 때도 “죄가 있으니 체포했을 것”이라며 전두환의 ‘공정성’을 믿었던 사람이 많았다. 전두환 일당의 군사 반란을 방조한 건 그런 사람들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작금의 정치사 속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은 전두환도 아니고, 노태우도 아니다. 그러나 1980년 전두환을 ‘구국의 영웅’으로 추켜세웠던 어용 언론들은 지금도 한동훈을 ‘메시아’ ‘이순신’ ‘아이돌’ ‘이타적이고 정의감 넘치는 엘리트’ 등으로 추켜세운다.

개의 습성은 바뀌기라도 하지만, 그보다 하등인 동물의 습성은 바뀌지 않았다. 우리 선조들 ‘개같은 놈’과 ‘개만도 못한 놈’을 구분한 이유다.

김명삼 대기자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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