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와 여론조작에 대한 올바른 이해

2024.01.26 16:00:11 호수 0호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출마자들의 후보 적합도, 지지도 등을 묻는 여론조사가 늘어나면서 유권자들의 전화기는 쉴 틈이 없지만 여론조사의 정확성이나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 또 조사기관 자체의 신뢰성에 대한 우려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과거 ‘여론’ 또는 ‘민심’은 정치인이나 지식인의 주장을 통해, 또 일부 정부기관의 민심 동향 분석을 통해 제한적으로 알 수 있었지만 여론조사가 도입된 이후, 특히 1990년대 말부터 언론사의 정기조사가 활성화되면서부터 여론조사는 우리 사회의 ‘여론’을 보여주는 공식적 지표가 됐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이나 정당의 지지도는 물론, 주요 정치적 사건이나 정부의 주요 정책 현안에 대한 국민의 반응을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이 다시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피드백’ 효과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여론조사가 가지는 영향력과 위상에 변화가 생기면서 당연히 비판과 견제도 늘어나게 된다. 역대 대통령은 물론 정치권을 포함한 각계각층서 여론조사나 조사기관들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이에 1997년에는 공직선거법상 관련 규제 조항이 신설되고, 2014년에 이르러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이하 ‘여심위’)가 설치돼 선거 및 정치 관련 여론조사 전반 과정을 심의하고 규제하게 됐다.

공직선거 후보를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것은 낙후된 정치행태 중 하나다.


현재 우리나라의 여론조사에 대한 규제는 주요 국가 중 최고의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같은 배경엔 우선 국내 정치문화와 실태를 살펴볼 수 있다. 즉 여론조사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거나, 또 부적절한 여론조사를 통해 돈을 벌려는 혼탁한 분위기가 만만치 않다.

또 승패 지상주의도 지적되는 문제다. 실제 우리 정당들이 공직선거 후보를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것은 주요 국가서 예를 찾기 힘든 낙후된 정치행태 중 하나다. 또 여론조사를 조작해서라도 경선 또는 선거서 이기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또 ‘여론조사가 유권자의 투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강한 규제를 끌어낸 배경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밴드왜건’ (어떤 선택이 대중적으로 유행하고 있다는 정보가, 그 선택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효과) 현상으로 대표되는 여론조사의 큰 영향력 가설은 국내외서 학술적으로 검증된 ‘정설’이 아니다.

밴드왜건 현상 관련 연구 결과는 대체로 유동층을 중심으로 그런 현상이 제한적이고 우발적인 수준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수준서 정리된다. 또 유권자들이 여론조사에서 이기는 후보를 지지하게 되는지, 반대로 지는 후보를 지지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일관된 결론이 도출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유권자의 투표 행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선유 경향 (Predispositions)’이 더 주목받는다. 선유 경향이란 개인의 출신 지역, 성별, 연령은 물론 학력과 소득수준과 같은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개개인들이 이미 일찍부터 가지고 있는 신념 체계나 가치관 등을 말한다.

지역감정이나 반공 및 민주화 세대 구분 등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여론조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분위기는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사회적 토론 차원서 유용하고 심도 있는 토론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문제는 여론조사 결과에 관한 관심 또는 문제 제기가 날이 갈수록 늘고 있지만, 설득력 있는 논리나 현실을 반영해 대안을 제시하는 비판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데 있다.

즉 여론조사는 학술적이고 전문적 지식을 배경으로 하는 분야로, 여론조사 전반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이 단편적 수준의 주장으로는 제대로 된 비판이 쉽지 않다.

22대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정치지도자의 여론조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접근은 이를 통해 국민의 생각을 읽고 무엇보다 ‘합의(consensus)’를 확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일 바람직한 방향으로 여론이 형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거나,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면 이 같은 여론을 그대로 좇아서도 안 되며, 무시해서도 안 된다.

즉 그때부터 지도자, 지식인, 언론인들이 해야 할 일은 바로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다. 사실 정치지도자나 정당의 지지율, 또 특정 정책에 대한 국민의 찬성 여론이 높다면 이보다 더 국정운영에 큰 힘이 되는 것도 없다.


또 지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지도자가 하고 싶은 일, 또 해야 할 일을 훨씬 더 많이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반대로 국민의 합의 또는 동의가 부족한데도 어떤 정책 등을 밀어붙이게 되면, 결국 독주나 독선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은 물론 하려는 일 그 자체가 성공하기도 쉽지 않다.

과거를 돌이켜 봐도 여론조사 때문에 국정을 망친 대통령보다는 오히려 ‘여론조사’가 가리키는 위기 징후를 무시하거나, 국민을 비난하다가 정권 자체가 위기에 몰린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 점에서 정치, 사회적 현안에 대해 국민의 생각을 읽고 방향을 잡도록 도와주는 여론조사는 그야말로 지도자들의 내비게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김명삼 대기자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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