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흰 사슴, 루카’ 이정록

2023.06.01 00:00:00 호수 1429호

모든 생물의 마지막 공통 조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부산 해운대구 소재 갤러리 소울아트스페이스가 이정록 작가의 개인전 ‘흰 사슴, 루카: White Deer, LUCA’를 준비했다. 이정록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가시화하기 위해 수많은 도전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독창적인 작업방식을 구축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를 찾아다니며 사전답사와 테스트, 실제 촬영에 이르기까지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한 이정록의 여정은 지난하다. ‘흰 사슴, 루카: White Deer, LUCA’전에서는 남도의 풍경 속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익숙한 공간에 흰 사슴과 빛으로 경이로운 에너지를 형상화한 루카 시리즈 신작 15점을 처음 공개한다. 

능동적

이정록은 20년 넘게 원시적이고 근원적인 풍경과 나무를 배경으로 비범한 에너지를 담아왔다. 대표작인 ‘생명나무’ 연작을 통해 자연의 신비로운 장면을 기록했다. 이번 전시서 공개되는 신작은 제주 한라산 백록담의 전설에 등장하는 신선이 타고 다니던 흰 사슴, 백록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루카는 1859년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서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모든 생물의 마지막 공통 조상(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의 약자다. 생명나무 시리즈서도 나무 조형물을 제작해 촬영했지만 보편성을 지닌 상징물인 나무서 흰 사슴이라는 전설 속 존재를 형상화해 새로운 시리즈에 등장시키는 것은 과감한 선택이다. 그만큼 이정록은 사슴이라는 대상에 확신을 갖고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를 명확히 찾은 셈이다. 

현실의 풍경에 놓인 사슴은 존재만으로 화면을 순식간에 몽환적이고 영롱하게 변화시킨다. 뿔은 마치 한 그루 나무 형상처럼 전작인 생명나무 시리즈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모습이다. 흰 사슴 주변을 부유하는 빛과 나비는 대지를 더욱 경이롭게 만든다. 


도전과 시행착오
독창적 작업 방식

고대부터 광범위한 지역서 사슴뿔은 신의 뜻을 감지하는 신성한 매체로 여겨졌다. 이정록은 “봄에 자라나 이듬해 봄이면 떨어져 다시 돋고 계절처럼 순환하는 사슴뿔의 속성은 생명나무 시리즈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모든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슴은 그 자체로 끊임없이 유동하는 생명의 연속성이자 생명이 가진 능동적이고 근원적인 힘이면서 생명나무의 뿌리가 된다.  

빛을 발하는 사슴 몸체와 주변을 감싸는 나비의 빛을 보면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작품으로 생각할 수 있다. 초현실적인 이미지는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연출됐지만 그 과정은 오로지 대형 필름카메라와 플래시로 얻어낸 아날로그 사진이다.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작품은 새롭게 인식된다. 

지속광과 순간광을 혼용해 반복한 촬영은 한 장소서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수일, 수개월을 포착해야 나올 수 있다.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해 포토샵을 활용하면 보다 쉽고 더욱 오묘한 장면을 얻을 수 있지만, 이정록이 추구하는 예술의 가치는 효율성보다 자연으로부터 진정한 기운과 숨결을 느끼고 작은 빛 하나도 공들여 직접 만들어가는 행위 그 자체에 있다.

생명나무 시리즈와 연결
뿔의 형상과 자연스럽게

관람객은 알 수 없는 작품 이면의 수고와 헌신을 통해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2020~2021년 제작한 루카 촬영은 실내서 진행했지만 신작은 외부서 공개된다. 모든 요소를 직접 조절할 수 있는 내부 스튜디오와 달리 야외 로케이션 촬영은 작가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철저히 제한된다. 시선이 이끄는 곳보다 마음이 먼저 와 닿는 특별한 장소는 의지만으로 찾아낼 수 없기에 더 어렵다. 

이정록은 지난 몇 년간 먼 지역을 유랑하면서 생경하고 유서 깊은 장소를 주로 방문했다. 그러다 다시 남도의 자연서 평범한 풍경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됐다고 한다. 이번에 공개되는 작품의 장소는 이정록이 새로 터를 잡은 작업실서 가깝다. 어느 정도 계절감도 느낄 수 있는 친숙한 배경이다. 

근원적


소울아트스페이스 관계자는 “오랜 시간 농부의 삶의 터전이자 역사가 깃든 남도의 속살 같은 곳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순환의 과정을 담아낸 이정록의 작품을 통해 고유한 생명력과 숭고하고 경이로운 에너지를 한껏 느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전시는 오는 7월25일까지. 

<jsjang@ilyosisa.co.kr

 

[이정록은?]

미국 로체스터 공과대학서 순수사진을 전공했다.

국내를 비롯해 중국, 미국, 영국 등에서 30회 이상 개인전을 가졌다.

국내 유수의 미술관과 헝가리, 스페인, 벨기에, 대만, 터키, 싱가포르, 러시아 등에서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중국난징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등 국제비엔날레 초청 및 신세계미술제 대상, 수림문화재단 사진문화상, Redpoll Photo Awards에서 최고 사진가상을 수상했다. 

중국 상해 히말라야미술관, 제주도 가시리 창작스튜디오 등에서의 입주작가 활동을 통해 보다 깊이 있게 공간을 이해하며 장기간 촬영에 임하기도 했다.

사진집 <Mythical Gleams>와 에세이 <수상한 풍경>을 저술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대림미술관, 고은사진미술관 등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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