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반대로 남한 여자들은 어떤가? 황금만능에 오염된 인공미, 비웃음 받는 처녀막, 타락과 퇴폐에 물들어 가는 소녀 소년들, 고집과 오만과 허위를 세련미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사회 속에서 점점 더 사악하고 교활스럽고 매정해져 가기만 하지. 미국을 추종하는 세태 때문인지, 여자들도 토종 남자보다는 양키 놈들을 더 우대하잖냐 말야. 허 참,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가고 애인 없는 노총각들만 우글거리는 세상이 돼버렸는고….”
교활한 여우
“북한 여성들이라고 과연 다 곱기만 할까요? 옛날부터 투박하고 억세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그래도 교활한 여우보다야 낫겠지 뭘.”
“세상이 바뀌다 보니, 요즘 북한 여자들은 오히려 남한 여성들보다 더 교활하고 그악스러운 면도 보인다던데요. 어차피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잖아요.”
“어딘들 그런 사람이 없을까! 내 얘긴 전반적인 풍조가 그렇다는 소리고, 우린 그런 미풍을 좀 존중하고 아껴야 한다는 말이지 뭘. 사실 애처로운 마음도 들어. 마치 간당간당 언제 떨어질지 모를 꽃처럼….”
“하하, 그렇다고 너무 센티멘털해져서 공상에 빠지지는 마세요. 나중에 가서 또 실망할지 모르니까요.”
“실망도 내겐 희망으로 가는 징검다리인걸 뭐. 매정한 한국 땅의 여자분들은 나를 지푸라기로밖에 여기지 않지만, 공상 속의 착한 북선녀들은 적어도 사람으로 봐 주긴 하니까. 공상도 못 하는 세상은 너무 삭막하거든.”
“몽상이든 현실이든 눈높이만 맞으면 결국 연결되는 거니까 적당한 분 만나서 한번 잘 해보세요.”
“허헛, 나도 이제 현실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잖은가.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겠지. 아마 자네들 젊은이들은 나를 비웃을지 모르되, 나로선 오히려 희망도 절망도 포기한 채 사는 젊은이들이 불쌍하게 느껴진다구.”
“누가 누굴 비웃겠어요. 그런 선입견 버리고 자연스럽게 하세요.”
“북한 여성들이 자연 미인이긴 하지만, 연애는 좀 인위적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
“하긴 어차피 남녀가 일단 연애 관계로 들어가면 자연스럽긴 어렵잖아요.”
“난 어쨌든 신의 뜻에 맡기고 살아가려해. 나 자신뿐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여자도 내 취향대로 지배하기보다 신께 맡겨 두려 하는 거야. 그러면 그 여인이 어떻게 생겼든 불평하지 않고 존재 그대로 애틋해하게 되거든. 아마 잘난 사람들은 이런 묘미를 모를 거야.”
“오, 대단한 애정 철학이군요. 나도 앞으로 유념할게요.”
“그러면 좋지.”
기분이 좋아진 피에로씨는 묻지 않은데도 ‘통일대박 사업’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 주었다.
자기들은 이 시대에 이 나라 이 민족의 전위대로서, 이승만 박사 대통령의 북진통일론을 계승하되 박씨 부녀 대통령의 경제적 승공 통일 정책을 앞세워 세 가지 색깔 지폐와 삐라를 휴전선 너머로 날려 보내 인민들의 마음을 녹인 끝에 결국 김일성 삼대 세습 공산당 독재 왕국을 무너뜨린다는 대망을 수행한다는 것이었다.
피에로 공상 속의 착한 북선녀들
북조선 수령? 두 얼굴 갖춘 괴인
“평화통일이니 뭐니 들먹이는 자들도 있지만 그건 세상을 아직 잘 모르는 철부지 어린애나 할 소리야. 자네도 유념해야 돼. 공산당들은 적어도 나보다 더 몽상적이라 할 수 있어. 난 몽상에 빠져도 나 자신만 파먹고 말지만, 그들은 이상을 추구한다면서 망상과 광상으로까지 밀고 나가거든. 그 과정에 사람을 무더기로 마구 숙청해 버리기도 하구 말야. 난 김일성이가 어떤 사람인지 괴수인지 잘 모르지만, 그가 젊을 때 이기심 때문에 친구를 찔러 죽이곤 북만주로 도망쳤다는 얘길 듣고 말문이 막히더군.”
“그게 소문인지 사실인지 가짜 뉴스인지 모르잖아요.”
“풍문인지 몰라도 결코 가짜 뉴스는 아닌 성싶어. 난 그게 우연이 아니라 그의 본성을 보여 주는 사건인 것만 같아. 일종의 통찰력이랄까. 그 뒤의 여러 행적을 보면, 북조선 공산국의 수령은 영도자이면서 살인자인 두 얼굴을 갖춘 괴인이라는 생각이 들어.”
“따지고 보면 남한의 이승만과 박정희도 두 얼굴 세 얼굴을 지닌 괴이한 사나이잖아요. 오히려 더 많이 죽였으면 죽였지 덜하지는….”
“어쨌든 평화적이고 민족 주체성에 입각한 통일이니 연방제 통일이니 하는 소리는 공산당의 교활한 사기술에 불과할 뿐야.”
“됐어요. 우리끼리 논쟁해 봤자 뭣 하겠어요.”
“그렇지. 자네와 나 사이는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정이 우선이지 이데올로기 따윈 문제가 아니니까. 사실 나도 뭐 북진통일 주장은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해. 그러다가 전쟁이라도 나면 두 쪽 다 쫄딱 망하는 꼴이잖아. 그런 사태를 바라며 홍시 떨어지길 기다리는 명색이 우방국들도 있다잖아. 나로서는 다만 우리 정부가 좀 대차게 나가되 지혜로웠으면 좋겠다는 거야. 심리를 잘 활용해야지. 밥 먹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밥을 먹이려다간 애 성질만 나빠질 뿐이야.”
“욕하고 집 밖으로 쫓아내는 것도 부작용만 불러일으키고,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래, 아직 배고프지 않으면 나중에 먹으렴. 우리끼리 맛있게 먹을게’라고 얘기하곤 실제로 그렇게 하는 거야. 쇼가 아니라 사실임을 느끼게 해야지. 북한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자꾸 통일하자고 나서면 그들은 쌍을 찡그리며 우릴 비웃을 거야. 엿 먹으라는 얘기지. 지금 통일한다고 해서 김정은 패거리에게 좋을 건 없으니까 말야. 차라리 통일 같은 소린 싹 빼고, 우리가 먼저 나서서 애써 통일하려 발버둥치는 건 부자연스럽다고 천명한 뒤, 우리끼리 잘 먹고 잘사는 진짜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거야. 그들이 부러워할 지경으로….”
“그런데 요새 북진통일을 모토로 삐라를 날리고 있잖아요?”
이상과 현실
“나의 이상과 현실상의 사업은 또 좀 다르니까. 일단 일을 해서 먹고 사는 건 누구나 하고 있잖아. 하다 보면 이상과 현실이 접점을 찾을 때도 있겠지.”
“그래도….”
<다음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