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전문]
혹시 시조새를 아시나요?
그 이름도 위대한 ‘고대의 날개(Archaeopteryx)’로, 중생대 쥐라기에 번성했던 현존 최고(最古)의 조류죠.
그런데 화석의 모양이 우리가 알고 있는 새의 모습과 사뭇 다릅니다.
날개의 앞에는 발가락이 달려 있고, 도마뱀과 유사한 꼬리를 갖고 있는데요.
즉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특징을 동시에 가진 종으로, 생물학계에서는 ‘공룡이 새(bird)로 진화한’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로 취급됩니다.
그런데 이 시조새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2012년 1월, ‘시조새가 곧 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 삭제된다’는 소식이 국내를 휩쓸었습니다.
이 논란의 주인공은 바로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 속칭 ‘교진추’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2011년 12월 교진추가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종이 아니다’라는 교과서 개정 청원서를 발표했고, 교육과학기술부가 그 내용을 받아들여 시조새를 삭제토록 한 것인데요.
문제는 그 과정에 생물학 전문가 집단의 의견이 상세히 반영되지 않은 점입니다.
당시 생물학계는 큰 충격으로 들썩였습니다.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서는 공식 반론문을 게재하며 교과부의 무능을 강하게 비판했고, 이어 한국생물과학협회에서도 ‘진화학 관련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 개정 청원에 대한 기각 청원서’를 제출했습니다.
비단 국내에서만 이슈였던 것이 아니었으니... 2012년 6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에는 ‘한국, 창조론자의 요구에 굴복하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됐고, 이외에도 <사이언티픽 아메리카> <타임> 등 많은 언론에서 일제히 한국의 ‘시조새 삭제 소동’을 보도했습니다.
이에 많은 누리꾼이 ‘나라 망신’이라며 고개를 들지 못했죠.
학계의 거센 반향에 교육과학기술부는 결국 시조새 삭제 방침을 철회했습니다.
당시 시조새 삭제를 허가했던 주인공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 최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발탁돼 논란을 낳았는데요.
고등학교 교과서의 내용을 수정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행사한 교진추.
이 단체, 대체 무엇을 하는 조직인 걸까요?
(여기서 잠깐, 이번 영상은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견해를 살펴보기 위함으로 특정단체에 대한 비방이 아님 알려드립니다. 말 나온 김에 분위기도 바꿔보겠습니다)
교진추는 본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특별위원회에 속해 있었습니다.
또 초대회장인 김기환은 바로 ‘한국창조과학회’ 이사와 ‘한국진화론실상연구회’ 대표를 지낸 인물인데요.
한국창조과학회는 교회용어사전에 ‘인간, 생물체, 우주 등에 내재된 질서와 조화가 우연이 아닌 지적설계에 의한 창조물임을 과학적으로 증거하고,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게 하는 데 설립 목적이 있다’고 명시돼있습니다.
2009년 설립된 교진추의 활동은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우 왕성합니다.
올해에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대해 제기해온 청원을 하나로 엮어 출판했는데요.
여기에는 시조새뿐만 아니라 ‘화학적 진화는 생명 탄생과 관계가 없다’ ‘빅뱅과 돌연변이, 자연선택은 진화의 원리가 될 수 없다’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있습니다.
즉 교과과정에서 진화론을 삭제하거나 ‘창조론’ 또는 ‘지적설계론’과 함께 병기하도록 하는 것이 교진추의 목표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생각하는 진화론이란 무엇일까요?
교진추는 진화론을 ‘인간을 지능이 발달한 영혼 없는 동물의 하나로 바라보고, 삶과 죽음을 아무 의미도 없는 우연의 결과로 바라보게 만드는 유물론적 세계관’으로 간주했고, 이는 ‘종교, 도덕, 윤리가 아닌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근본으로 일등주의, 쾌락주의, 이기주의, 생명 경시 현상을 유발해 마약, 동성애, 패륜 범죄, 학교폭력, 왕따, 성폭행, 자살, 낙태, 인육 섭취 등에 대해 죄의식을 사라지게 만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즉 이들은 진화론을 ‘사회적 분란의 씨앗’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화론을 공격하며 교과과정 수정을 요구해온 교진추, 그리고 교진추의 입장을 받아들였던 현 정부의 인사.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과학 교과서의 내용이 또 한 번 바뀔 수도 있겠습니다.
총괄: 배승환
기획: 강운지
구성&편집: 김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