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 단상> 계곡 산책

  • 김삼기 시인·컬럼니스트
2022.08.22 08:34:29 호수 0호

계곡 정신으로 사회갈등 해소를

전철 출입문 상단의 30개가 넘는 노선과 700여개 역들로 빼곡히 차 있는 수도권 광역전철 노선도는 한국의 발전상과 수도 서울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70년대 후반만 해도 서울역과 청량리역을 왕래하는 짧은 구간의 1호선이 우리나라 지하철의 최초이자 전부였는데,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니 대단한 대한민국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부터 빠른 속도로 인구가 늘어나면서 도시화 현상과 함께 인구가 지속적으로 수도권에 몰리자, 수도권은 육상교통 체증이 날로 심각해져 지하철, 전철의 연장과 새로운 노선 확장이 필요했다.

지금의 광역전철이 거미줄처럼 형성된 것도 수도권에 거주하는 2300여만명(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5%)의 주요 대중교통 수단이니 그럴 만도 하다.

지난 주말 1호선 월계역(月溪驛)에서 6호선 월곡역(月谷驛)까지 이동하면서, 두 역명이 계곡(溪谷)의 계(溪)와 곡(谷)으로 나뉘어 명명된 이유가 궁금해서 전철노선도를 보고 수도권에서 계나 곡으로 끝나는 역을 찾아보면서 계곡 산책을 해봤다.

계(溪)로 끝나는 역은 덕계(1), 석계(1,6), 상계(4), 중계(7), 하계(7)로 5개 역이 있었고, 곡(谷)으로 끝나는 역도 역곡(1), 월곡(6), 상월곡(6), 중곡(7), 발곡(의정부 경전철)역으로 5개 역이 있었다.


그리고 계나 곡으로 끝나는 수도권 전철 10개역 중 부천 소재 역곡역을 제외한 9개역이 도봉산과 수락산 자락 아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계곡(溪谷)은 산과 산 사이에 물이 흐르는 골짜기를 말하며, 여기서 계(溪)는 물이 흐르는 내(川)를 의미하고, 곡(谷)은 산과 산 사이에 V자나 U자로 파인 골짜기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월계(月溪)와 월곡(月谷)을 비교해볼 때, 월계(月溪)는 시냇물이 흐르는 낮은 천이 있었던 곳이고, 월곡(月谷)은 꽤 큰 골짜기가 있었던 곳으로 추측할 수 있다.

지금은 도봉산과 수락산 사이가 7~8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오래전에는 두 산이 한 지맥으로 이웃하면서 깊고 큰 골짜기를 이루고 있어, 도봉산과 수락산 계곡 아래 지역에 계나 곡이 들어간 지명이 많이 생겼을 것이다.

서울에는 도봉산과 수락산 외에 인왕산, 남산, 용마산 등이 있지만, 이들 산은 이웃하는 산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면서 큰 계곡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산자락 아래에는 계나 곡이 들어간 지명이 없었던 것 같다.

도봉산과 수락산 사이의 계곡이 처음에는 깊은 계곡이었지만,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산사태와 침식작용을 거치면서 넓은 계곡으로 형성됐고, 결국 도봉산과 수락산의 토사가 계곡 하류지역에 쌓여 넓은 평야를 이뤘을 것이다.

고전에서는 몸이 비어 있어 잡을 수 없는 존재를 신이라 했는데, 바로 노자는 도덕경에서 본래 꽉 차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비어 있는 공간으로 변한 계곡을 가리켜 곡신(谷神)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골짜기를 지키는 신은 죽지 않는다”는 '곡신불사(谷神不死)'를 주장하면서, 계곡처럼 “비우고, 부드럽고 낮아져야 죽지 않고 오래 간다”는 계곡 정신을 강조했다.

지금은 도봉산과 수락산의 사이가 비워지면서 낮아지고, 토사가 모여 만들어낸 평야에는 도시(도봉구, 노원구, 성북구)가 형성되어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

도봉구와 노원구와 성북구가 노자의 곡신불사처럼 비움과 낮음의 계곡 정신(溪谷精神)을 지켜가면서,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고 계속 흐르는 계곡처럼 오래오래 보전되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도봉산과 수락산 계곡이 합류해 형성된 중랑천이 한강과 만나는 하류지역에 위치한 성동구도 삼국시대 때부터 토지가 비옥하고 농경이 발달해 평화롭기로 유명한 곳이다.

성동구에는 계(溪)나 곡(谷)으로 끝나는 지명은 없지만, 성동구가 도봉산과 수락산이라는 거대한 산이 만들어낸 중랑천이 한강과 만나는 화합의 상징적인 곳이기도 하다.

지난 주말 전철노선도와 함께 계곡산책을 하면서 ‘우리 사회가 도봉산과 수락산이 만들어낸 계곡 정신과 중랑천과 한강이 만들어낸 화합 정신을 통해 보수와 진보, 노와 사, 갑과 을 같은 고질적인 사회갈등의 해법을 찾아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울러 ‘도봉구에는 국회의사당을, 노원구에는 노사정위원회 사무소를, 성북구에는 사회통합위원회 사무소를, 성동구에는 국민화합위원회 사무소를 두면 좋겠다’는 상상도 했다.


※ 이 기고는 <일요시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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