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호 칼럼> 한국대학야구연맹의 결단

2019.10.21 10:31:37 호수 1250호

스포츠엔 냉정함이 존재한다. 바로 승자만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승리한 자들의 환호와 영광, 그리고 승리를 일궈낸 그들의 의지와 과정만을 기록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패배자는 괴롭기만 하다.



승부서의 패배보다 더욱 쓰리고 아픈 것은 바로 잊혀진다는 사실이다. 패한 이후 그들이 겪어야만 하는 좌절과 불안, 그리고 동반되는 포기와 무관심들을 우리 모두는 바로 망각의 저편으로 보내버리곤 한다.

방치

최근 23년 사이에 고교야구는 새로이 창단된 팀들이 리그에 합류하기 시작하면서 60여개팀서 80개팀으로 리그의 구성이 확장됐고, 이제 해마다 고교를 졸업하는 야구선수들이 1000여명에 가까운 수준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프로야구로 진출하는 선수들의 수는 1, 2차 드래프트를 통해 110명만이 가능하고 그나마 그 숫자마저도 온전히 고졸 야구선수들만으로 채워지는 것도 아니다.

대졸 선수들과 해외로 진출한 후 돌아온 선수들도 함께 드래프트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드래프트 이외에 신고 선수로 진출하는 선수의 수는 오히려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프로의 진출에 실패한 고졸 선수들이 차선책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대학 진학인데, 최근 80개팀으로 급증한 고교야구의 팀 수에 비해 대학야구 팀은 2년제 전문대까지 포함, 32개팀으로 오랫동안 그 팀 수가 늘어나지 않고 있다.

매년 고교 졸업 야구선수 1000여명
40%만 프로팀이나 대학팀으로 진출

그나마 고졸야구선수들에게 체육특기생 자격을 부여해 수시모집으로 선발하는 대학은 십수개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대학들은 일반학생 모집의 성격으로 선수들을 모집하고 있는데, 이런 자격과 선발로 인해 아직도 진학 과정서 여러 잡음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와 같은 고졸 야구선수들의 진로상황에선 해마다 40% 정도의 선수들만이 고교 졸업 후에도 프로팀이나 대학팀으로 진출해 야구를 계속할 수 있고, 나머지 60%에 해당하는 선수들은 타의로 유니폼을 벗고 글러브를 내려놓아야만 한다.

고교를 졸업하고 프로 진출이나 대학 진학에 실패한 선수들은 어떤 진로를 선택하고 있을까.

최근 수년동안 필자가 관찰한 결과 무대책이 대책인 상황의 연속이었다. 국내서 학창시절 야구만 하다가 갓 스무 살에 사회 한복판에 놓인 젊은 청년들이 선택해야 할 진로는 판박이처럼 모두가 닮아 있었다.

징집 연령대에 해당하는 그들은 군에 입대하거나 생활비나 용돈을 벌기 위해 편의점 알바를 하거나, 일용직 근로자로 물류센터나 공사장의 막노동 현장서 일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유흥업소에 취업해 손님들을 호객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있었다.

아주 운이 좋은 선수들은 자신들의 전공을 살려 리틀야구단 등의 유소년야구단에 코치로 진출해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었지만, 이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수준은 거의 최저시급에 준하는 정도로 한정돼있었다.

글러브 내려놓고 어떻게 생활?
‘무대책이 대책’ 상황의 연속

이제 스무 살의 건장한 청년들이 자신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점점 잃어가며 학창시절 선택했던 야구가 이제 그들에게 원죄(原罪)’가 되어 대가를 요구하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이런 가운데 얼마 전 한국대학야구연맹(회장 김대일)은 국내의 고등교육법평생교육법에 기반을 두어 학점은행제로 운영돼 학사자격을 부여하는 각 대학의 평생교육원 기반 야구부의 연맹 가입을 승인하는 단안을 내렸다.

그동안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같은 직접 관련단체나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구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 그리고 대한체육회 등 야구와 스포츠의 중앙 단체들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던, 대학진학에 실패한 고졸 야구선수들의 대안적 진로설정에 한국대학야구연맹이 주도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한국대학야구연맹은 이들 평생교육원 기반의 대학 야구부 팀들을 대학야구 2부 리그(가칭)’로 별도 운영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서울 및 수도권에 위치한 몇몇 대학들이 평생교육원 소속의 야구부 창단을 서두르고 있는 중이다.

희망

한국대학야구연맹의 결단이 그동안 아무런 대책 없이 발가벗겨진 상태로 우리 사회에 방치돼왔던 수많은 고졸 야구선수들에게 재기의 희망과 함께, 그들을 보듬어주는 안식처로 작용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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