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나쁜 날씨’ 박형지

2019.06.03 10:09:32 호수 1221호

실패하고 망친 사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실패하고 망친 작품은 구석에 처박히기 일쑤다. 박형지는 그런 작품들을 전면으로 끌어냈다. 박형지의 사건들나쁜 날씨(Bad Weather)’로 재탄생했다. 박형지의 개인전을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서울 강남 소재 소피스 갤러리가 박형지 작가의 개인전 ‘Bad Weather’를 진행했다. 박형지는 삶의 주변서 얻은 일상적이고 사적인 경험의 이미지를 자신만의 회화적 언어로 탐구해왔다.

시시한 이야기

이번 개인전은 박형지가 일상과 관련된 내러티브와 함께 회화 작업서 실패와 망치기라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만들어낸 순간의 감성들을 나쁜 날씨에 빗대 표현한 신작 16점으로 구성됐다.

전시 제목인 Bad Weather서 날씨는 물리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박형지가 소개하는 나쁜 날씨는 부루퉁하고 시니컬한 그리고 무뚝뚝한 감정들의 복작한 층위까지 포함한다. 이것은 다시 박형지만의 회화적 제스처로 변환된다.

박형지는 회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 독특한 접근방식을 취한다. 이번 개인전서 제시한 단어들 즉 축적된 사건들실패와 망치기그리고 데일리 트리비아(Daily Trivia)’홈리함(Homeliness)’는 그의 작업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도구로 작용한다.


그는 캔버스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선택과 결정을 사건들이라 칭하고 있다. 회화 작업서 다소 생소하게 여겨지는 이 단어는 미술사학자 리처드 시프가 서양화가 피터 도이그의 회화적 방식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지성과 감성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뜻한다.

캔버스에 쌓은 일상
허물고 지우고 덮고

이러한 사건들은 박형지의 작업 방식을 결정하는데 큰 요인이 된다. 주위의 환경과 분위기에 따라 선택과 결정을 수없이 반복하며 축적된 사건들은 캔버스 위에 차곡차곡 쌓이며 물감의 색과 질감 그리고 형태를 구성한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사건들은 거친 붓질과 두꺼운 물감의 물성을 통해 그 흔적을 나타낸다. 흔적은 다층적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 함축적 이미지로 거듭난다. 이미지들은 고정되지 않고 유연하게 흐르며 축적된 사건들을 통해 진화한다.

박형지는 작가 노트에 작품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일은 작품의 완성 이전까지 유동적이어서 최종 이미지가 처음 생각과 전혀 다른 작품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적었다.

이어 사소하고 잡다한 주변 이야기들에서 얻은 이미지는 화면서 회화적 제스처로 변환된다이를 쌓고 망치고 지우고 덮어버리고 다시 그리는 일을 반복하는 동안 불규칙하고 홈리(homely)한 회화의 표면이 된다고 덧붙였다.

박형지가 말한 홈리는 피터 도이그가 자신의 초기 작품들을 지칭한 단어다. 1990년대 초반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 출신 작가들의 쿨하고 잘 가공돼 세련된 미학을 가진 작품들에 반하는 의미로 사용했다.

그가 캔버스에 담는 이미지는 주로 삶의 주변에 있는 일상이다. 인터넷을 떠도는 자잘한 뉴스, 지인과 오간 잡담이나 루머, 카페서 엿들은 사람들의 대화, 유튜브 동영상 등과 같이 휘발성이 강하고 사적이며 시시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일상의 사소하고 평범한 이야기서 떠올린 이미지는 박형지의 회화적 언어로 번역되고 해체된다. 이러한 이미지는 규칙도 없고 완성을 장담하지 않으며 실패의 위험을 안고 있다. 다시 허물고 지우고 덮어버리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 과정을 박형지는 실패와 망치기라고 표현한다.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이 단어들은 오히려 작업을 이끄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기술적인 규칙 없이 캔버스 위에 축적된 물감과 행위의 층들은 결과적으로 우연한 연속성에 의해 작품에 의외성과 풍부함을 더한다. 또 작업 과정서 다음 단계로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박형지의 작업은 철저하게 밑그림을 구성한 다음 계획된 절차에 따라 그려내는 회화 작업과는 다른 노선을 취한다. 주위의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포착한 우연의 연속적 이미지는 마치 퍼포먼스작업을 연상케 한다. 이는 전통적이고 고정된 회화의 범주를 확장시킨다.

회화적 번역

소피스 갤러리 관계자는 회화의 확장성에 대한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박형지가 전개하는 회화 작업 방식을 주목했다독창적 회화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박형지의 자유로운 회화적 상상력과 유희를 확인해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박형지는?]

1977년 출생

학력

런던예술대학교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칼리지 오브 아트 앤 디자인 순수미술 전공 석사 졸업(2008)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전문사 졸업(2006)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2001)

개인전


배드 웨더소피스 갤러리(2019)
그린맨통의동 보안여관(2018)
리젬블링 리젬블런시스’ AiR 산네스(2017)
사건의 축적갤러리 175(2012)
네온 플랜츠나이트 라이츠 앤드 트래블 투 더 갤럭시(2011)
스트레인지 시너리노르디스크 쿤스트 플랫폼 프로젝트 스페이스(2010)
페이크 테일즈 프롬 섬웨어해링톤 밀 스튜디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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