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영원한 골프여왕 박세리

국민들 힘들 때 웃게 해줬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골프여왕 박세리가 필드를 떠난다. ‘맨발 투혼’을 시작으로 20여년간 세계무대를 주름잡았던 그다. 최근 몇 년 동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그는 최고의 현역 선수들과 겨룬 경기에서 유쾌한 승리로 국민을 기쁘게 했다.

박세리는 지난 17일 미국 애리조나주 와일드파이어 골프장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JTBC 파운더스컵 1라운드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은퇴를 발표했다. 공식 인터뷰에서 박세리는 “2016시즌이 내가 풀타임으로 투어 활동을 하는 마지막 해”라고 선언했다. 이어 “은퇴 결정이 쉽지 않았지만 지금이 그때라고 생각했다”며 “내 인생에서 또 다른 꿈을 이루고 싶다”고 밝혔다.

혹독한 훈련
두둑한 배짱

박세리는 은퇴 후 꿈이 후진 양성이라고 했다. 박세리는 “한국의 많은 유망주가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며 “그들이 자신들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내 모든 걸 가르쳐주겠다”고 다짐했다. 박세리는 2016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한국여자골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는다.

박세리가 은퇴하기로 한 배경은 부상이다. 지난 몇 년간 왼쪽 어깨뼈의 습관성 탈구로 재활에 힘써왔지만 회복이 더뎌지며 결국 은퇴를 결심한 것이다. 박세리는 지난 수년 동안 왼쪽 어깨뼈 습관성 탈구 등으로 고생했다. 지난해 2개 대회에 출전했으나 모두 기권하고 재활에 힘써왔다. 파운더스컵은 박세리가 지난해 6월 이후 9개월 만에 나선 대회다. 박세리는 이날 1라운드에서 버디 3개로 3언더파를 기록, 공동 36위에 올랐다.

박세리는 1977년 대전에서 3녀 중 둘째로 출생했다. 1989년 초등학교 6학년 때 골프광인 아버지 박준철에 이끌려 골프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 어린 나이에 훈련장에서 새벽 2시까지 혼자 남아 훈련을 하는 등 엄격한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세리는 중3의 어린 나이에 이미 쟁쟁한 프로들을 제치고 우승했다. 아마추어 무대에서 30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린 최고의 기대주가 됐다.

1996년에 프로로 전향했고 1년간 세계 최고의 교습가로 알려진 데이비드 레드베터로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그 결과는 1997년 10월 퀄리파잉스쿨에 수석합격했다. 박세리는 현재 통산 12승을 올리며 투어 정상급 선수로 활동 중인 크리스티 커(미국)와 함께 공동 1위로 퀄리파잉스쿨을 통과, 대망의 미LPGA투어에 화려하게 입성한다.

박세리의 투어 첫 대회는 1998년 1월에 열린 ‘헬스 사우스 이너그럴’이다. 이 대회서 공동 13위를 기록, 데뷔전을 무난히 치러냈다. 하지만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5월 초까지 참가한 9개 대회에서 공동 11위가 최고였을 뿐 나머지는 30∼40위권을 맴돌았다. 하와이서 열렸던 컵 누들스 하와이여자오픈에서는 컷오프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일대 사건은 4개월, 10번째 대회 만에 터졌다.

1998년 5월1 LPGA투어의 메이저타이틀인 맥도널드LPGA챔피언십에서 11언더파 273타를 기록하며 투어 데뷔 첫 승을 올린 것이다. 자신의 생애 첫 우승을 메이저대회에서 올렸고 그것도 대회 1라운드부터 한 번도 선두 자리를 뺏기지 않은 채 정상에 오르는 와이어 투 와이어(wire-to-wire) 우승이었다. 신인이 자신의 첫 승을 메이저대회에서 올린 것은 데뷔 해(88년)에 US여자오픈 정상에 오른 리셀로테 노이만(스웨덴) 이후 처음이었다.

올 시즌 마치고 선수생활 은퇴 발표
잦은 부상 시달리다 필드 떠날 결심

1998년 7월 박세리는 아직도 우리 국민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명장면을 연출하며 세계 정상에 우뚝 선다. LPGA US오픈에서 20개 홀을 도는 연장전 끝에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당시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절대 잊혀지지 않은 박세리의 ‘맨발 투혼’이 이 경기에서 나온다.

TV 공익광고에서도 활용된 당시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양말을 벗고 벙커샷을 날리던 모습은 많은 사람의 뇌리에 여전히 남아있다. 이 장면은 미국 스포츠 전문방송 <ESPN>이 US오픈 5대 명장면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미국 위스콘신주 콜러의 블랙울프런 골프장에서 끝난 US여자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박세리는 태국의 아마추어 제니 추아시리폰과 나란히 6오버파 290타로 공동 선두를 기록, 다음날 18홀 연장 승부를 치른다.

다른 모든 대회가 곧바로 서든데스 플레이오프를 치러 우승자를 가리는 것과는 달리 US여자오픈은 남자들의 US오픈과 마찬가지로 이튿날 18홀 연장전을 치르며 거기서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 서든데스를 치른다.

다음날 열린 승부에서 박세리는 추가 18홀마저 비긴 뒤 가진 서든데스 연장 2번째 홀에서 버디를 잡아 파에 그친 추아시리폰을 극적으로 누르고 메이저 대회 2연속 우승을 금자탑을 쌓는다.

무려 92홀 만에 우열이 가려진 이 대회는 LPGA투어 역사상 가장 긴 승부로 남아 있다. 신인 선수가 같은 시즌에 메이저 타이틀을 두 차례나 차지한 것은 84년 줄리 잉스터(미국) 이후 14년 만에 박세리와 잉스터 단 둘만이 이 기록을 가지고 있다.

또한 4대 메이저대회(LPGA챔피언십, US여자오픈, 브리티시여자오픈, 나비스코챔피언십) 중 양대 타이틀로 평가 받는 LPGA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을 같은 시즌에 연거푸 우승을 차지한 경우는 99년 줄리 잉스터, 2001년 캐리 웹(호주) 등 투어 역사를 통틀어 6차례에 불과한 대위업이다.

한국스포츠 영웅
골프 대중화 기여

다른 모든 대회가 곧바로 서든데스 플레이오프를 치러 우승자를 가리는 것과는 달리 US여자오픈은 남자들의 US오픈과 마찬가지로 이튿날 18홀 연장전을 치르며 거기서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 서든데스를 치른다.

박세리의 활약은 IMF(외환위기)로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악전고투 끝에 우승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면서 박찬호와 함께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 연일 매스컴은 대대적으로 지면을 할애해 박세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고 광복 후 대한민국이 수출한 최고의 히트상품이란 찬사가 이어졌다. 세계적인 시사 주간지 <타임>이나 <뉴스위크>, 그리고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같은 스포츠 전문 잡지들도 박세리 특집을 다루기에 바빴다.
 

무명의 신인에서 두 달 사이 ‘골프여왕’으로 등극한 것이다. US여자오픈에 이어진 제이미 파 크로거클래식에서 또 다시 우승, 2주 연속 우승이자 시즌 3승째를 올렸다. 더욱이 이 대회 2라운드에서는 10언더파 61타를 쳤고 합계는 23언더파 261타였다.

지금은 깨졌지만 두 가지 스코어 모두 당시까지는 신기록으로 평가받았다. 2위를 무려 9타 차로 제친 완벽한 우승이었다. 이후 빅애플클래식에서 숨고르기를 했던 박세리는 한 주 뒤 자이언트 이글클래식에서 시즌 4승째를 올렸다.

LPGA투어에 불어 닥친 ‘세리 광풍’은 무서웠다. 신인왕 타이틀은 당연히 박세리의 것이었다. 이 부문 2위였던 제니스 무디(스코틀랜드)와는 무려 904점의 격차가 있었고 시즌 9개를 대회를 남긴 시점에서 신인왕 타이틀을 확정지었을 만큼 일방적인 독주였다. 박세리는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에 이어 단숨에 세계 랭킹 2위가 됐다. 그 때까지 소렌스탐-캐리 웹(호주) 양대 체제였던 미LPGA투어는 박세리를 포함한 ‘3강 체제’로 굳혀졌다.

신인왕 등 투어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던 박세리에게 2년차 징크스도 없었다. 시즌 중반까지 다소 주춤했지만, 6월 들어 숍 라이트 클래식에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차지했다. 7월 초에는 제이미 파 크로거 클래식에서 타이틀 방어에 성공, 투어 데뷔 후 처음으로 특정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시즌 마지막 대회인 페이지넷 투어챔피언십에서는 캐리 웹, 로라 데이비스(영국)를 상대 연장 승부를 펼친 끝에 우승,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시즌 4승(상금 랭킹 3위)을 기록했다.

동양인 최초
명예의 전당

2001년 투어 데뷔 3번째 시즌 박세리는 침체기를 맡게 된다. 단 1승도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별한 부상이나 나태함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준우승조차 하지 못했다. 3위가 최고 성적이었으며 상금 순위도 처음으로 10위권 밖(12위)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박세리는 2001년부터 3년간 그야말로 전성기를 보낸다. 아니카 소렌스탐이 버티고 있어 상금왕이나 올해의 선수는 되지 못했으나 이 기간 무려 13승을 기록, 자신의 통산 승수(24승)의 절반 이상을 이때 몰아친다.

시즌 개막전인 유어라이프 비타민스클래식에 우승, 첫 단추를 잘 끼운 박세리는 제이미 파 크로거 클래식에서만 세 번째로 우승, 특별한 인연을 이어간 뒤 그 해부터 새로이 메이저대회로 편입된 위타빅스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우승, 자신의 세 번째 메이저타이틀을 획득하는 등 2001년 시즌에만 5승을 올리며 전성기의 서막을 연다.

박세리는 2004년 미켈럽 울트라오픈에서 통산 22승째를 기록하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다. 최고 선수의 자격증이라 할 수 있는 명예의 전당 헌액을 위해서는 총 27점이 필요하다. 일반 대회 우승 1점, 메이저 대회 우승 2점, 그리고 올해의 선수, 베어 트로피 등 타이틀 수상시 1점 등 점수가 부과되며 27점이 될 경우 투어 데뷔 10년을 마치는 해에 정식으로 헌액된다. 그런데 박세리는 자신의 투어 생활 7년 반 만에 조건을 구비했다.


US오픈 ‘맨발 투혼’ 명장면
IMF 당시 힘과 용기 북돋아

22승으로 22점, 이 중 4차례의 메이저 우승으로 추가 4점, 그리고 2003년 베어 트로피 수상으로 1점 등 27점을 모두 충족한 것이다. 이후 박세리는 투어 10시즌을 모두 채운 2007년 11월, 미LPGA투어 명예의 전당과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최연소로 헌액되는 영광을 안았다. 물론 동양인으로는 처음 있는 업적이다.

박세리가 길지 않은 기간에 많은 승수를 올리며 투어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아버지 말처럼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사냥개 근성’에 있는 듯하다. 박세리는 일단 한 번 우승 기회를 잡으면 웬만해서는 실패하지 않는다.

리드를 잡으면 그대로 지키고 추격권 내에 있으며 반드시 뒤집는 그야말로 승부다.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과 역전승이 많고 역전패는 거의 없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그의 뛰어난 승부 근성을 숫자로 대변하는 것이 바로 연장전 결과다. 박세리는 지난 10년간 총 5차례에 걸쳐 연장전을 치렀다. 결과는 5승 무패. 통산 24승 중 5승이 100% 승률을 자랑하는 연장 승부 끝에 얻어진 것이다.

그의 라이벌인 캐리 웹과 아니카 소렌스탐과 비교하면 얼마다 박세리의 근성이 강한가를 알 수 있다. 웹은 총 10번의 연장전에서 4승 밖에 올리지 못했다. 여섯 번의 연장 패배 중에는 박세리에게 진 것이 세 번이나 된다. 소렌스탐은 16승6패로 매우 강한 면모를 보였지만 박세리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으며 현재 당대 최강으로 불리는 로레나 오초아는 아이러니하게도 연장전서는 단 1승도 없이 3패만을 기록 중이다.

세계무대 주름
‘박키즈’들 활약

10년의 세월이 흘러 ‘박세리 키즈’들인 박인비(KB금융그룹), 신지애(스리본드), 최나연(SK텔레콤), 유소연(하나금융그룹) 등은 LPGA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해 막강한 실력을 자랑하며 한국의 이름을 드높였다.

이후에도 박세리의 영향을 받은 많은 한국 선수들이 미국 무대를 접수했다. 박세리의 영향력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지난해 한국 낭자들은 역대 한 시즌 최다승인 15승을 합작하며 여자 골프 최강국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박세리가 외로이 LPGA 무대에서 뿌린 씨앗은 박세리 키즈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한국이 세계 여자 골프계에서 주도국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 박세리는 떠나도 박세리 키즈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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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보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며 ‘월권 논란’ 등이 불거졌다. 이에 한 권한대행이 남은 임기 동안 취할 행보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해 논란이 일고 잇다. 또 한 권한대행이 특임공관장도 임명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며 논란에 더 불을 지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한 권한대행이 새로운 정부가 가질 임명권에 초를 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스로 지피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4월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윤석열 파면에 따른 차기 대통령 선거일을 6월3일로 확정하고, 이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날 국무회의서 한 권한대행은 “정부는 선거관리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선거관리에 필요한 법정 사무의 원활한 수행과 각 정당의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오는 6월3일을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일로 지정하고자 하고 선거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 사태를 언급하며 “지난 4개월간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걱정을 끼쳐 드리고, 대통령이 궐위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선거관리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해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선거가 될 수 있도록, 관련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당부드린다”고 언급했다. 이날 한 권한대행은 국무회의에 앞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을 통해 이제껏 임명을 미뤄온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고, 마용주 대법관도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4월18일에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지명했다. 그는 담화문을 통해 “임기 종료 재판관에 대한 후임자 지명 결정은,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언제든 국회 본회의서 의결될 수 있는 상태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 또 경찰청장 탄핵 심판 역시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각각 검찰과 법원서 요직을 거치며 긴 경력을 쌓으셨고, 공평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법조계 안팎에 신망이 높다”며 “두 분이야말로 우리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동시에 나라 전체를 위한 판결을 해주실 적임자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보류했었다. 당시 한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야말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둑이기 때문”이라고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바 있다. 갑작스레 헌법재판관 지명 황교안도 하지 않은 일을? 그랬던 그가 100일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는 사례는 헌정사상 전무한 일이다. 앞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법원장 몫인 이선애 재판관을 임명한 반면, 대통령 몫이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 후임자는 지명하지 않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월권’이라며 거세게 반발 중이다. 권한대행은 대통령 궐위 시 권한을 대행하는 직일 뿐이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행할 수 없는 권한인데, 한 권한대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헌만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완규 법제처장에 대해 “내란 직후 대통령 안가 회동에 참석한 사람이다. 내란의 아주 직접적인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 법체처장을)지명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내란의 불씨가 안 꺼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민주당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완규 법제처장은 가장 대표적인 친윤석열 검사다. 법제처장을 하며 완전히 윤 전 대통령 개인의 로펌 역할을 해왔다”며 “이것은 파면된 윤석열의 의중이 작용된 지명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 권한대행이 갑작스레 재판관을 임명한 이유로는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헌재 구성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을 미리 앉혀두려 했을 가능성이 우선 거론된다. 6·3 대선 전 이·함 후보자가 임기 6년의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면 차기 대통령은 임기 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할 수 없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입법부와 행정부를 차지하고, 헌법재판관 2명까지 임명하면 헌재까지 진보 성향 재판관이 다수가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정치적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알면서 선택 왜? 한 헌법학자는 이번 임명은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이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민주당과 이 전 대표의 위험을 처리할 계획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 권한대행이 그 전에 선수 친 것으로 보인다”며 “어차피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권한대행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박수”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 권한대행이 혼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해서 얻을 실익이 하나도 없다”며 “지금 관저서 아직도 나가지 않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입김과 그 다음에 어떤 부탁이 있지 않고서는 굳이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남동 관저서 서울 서초동으로 이주를 완료했다). 이어 “아마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 미리 후임자들을 미리 검증했지만 파면이 돼 한 권한대행에게 지명을 요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파면 전에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파면 이후 해당 결정 사안은 중지돼야 하는데 한 권한대행이 이어서 권한 행사를 한 것”이라며 “이는 진짜 사장이 있는데 사장이 잠깐 유고나 궐위 상태라서 권한대행 사장이 왔고, 그는 단순한 결제를 통해서 회사가 돌아가게 해야 되는데 갑자기 사장이 해결해야 할 보유 주식을 본인이 알아서 처분을 하고 심지어는 오버를 해서 사장 딸이나 아들의 어떤 사위나 뭐 이런 며느리 될 사람까지 본인이 다 결정을 해 주는 그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남은 두 가지 다음 수는?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외에 시도할 법한 일은 ▲특임공관장 임명 ▲미국 관세 허용 등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한 권한대행이 재외공관의 특임공관장도 임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17년 황 권한대행이 당시 특임공관장으로 분류됐던 국가정보원 출신의 변영태 전 주미국공사참사관을 주상하이총영사로 임명한 전례가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임 공관장은 정부의 판단에 따라 직업 외교관이 아닌 인물에게 공관장 임무를 맡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보통 대통령의 국정기조 이행을 명분으로 주로 정무직 인사가 임명된다.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주중국,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 임명이 진행될 수 있냐는 질문에 “공관장 인사가 필요에 따라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해당 국가의 공관장 인사에 대해서는 “현재 공유드릴 사항은 없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로, 윤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대기 전 실장은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로 내정된 바 있다. 특임공관장이 정무적 판단이 반영되는 인사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과 무관하게 임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탄핵 결과에 따라서는 임명 강행이 상대국에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작용해 이들은 임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이후 지난 4일 탄핵에 이르는 과정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월31일 재외공관장 임명을 실시한 바 있으나, 이 때도 두 명의 특임공관장을 제외한 11개국 대사가 대상이었다. 다만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권한을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특임공관장을 비롯해 다른 인사 임명을 강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임공관장·관세 등 무기 남아 트럼프와 통화 때 대선 이야기도 한 권한대행은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며 무역 문제와 조선 산업 협력, 북핵 공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논의했다. 그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등 무역수지 개선 의지를 강조하며 상호관세 문제 해결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 의지를 드러냈다. 총리실에 따르면 한 대행은 이날 오후 9시(미국 오전 8시)가 넘어 약 28분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며 이 같은 입장을 공유했다. 한 권한대행은 전화 통화에서 “미국 신정부 하에서도 우리 외교안보 근간인 한미 동맹관계가 더욱 확대·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면서 특히 조선, LNG 및 무역 균형 등 3대 분야서 미국 측과 한 차원 높은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삼아 상호관세를 부과한 만큼,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을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해나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권한대행의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드러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국과 좋은 거래를 할 수 있다면서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문제는 이 같은 한 권한대행의 행보로 새로운 정부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미국과 상호 관세는 앞으로 90일 동안 미뤄졌기 때문에 조기 대선이 끝난 후 차기 정부가 다시 미국과 협상할 시기가 아직 남은 셈이다. 한 권한대행의 이런 행보에 ‘한 권한대행이 차기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외교 분야서 5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거친 정통 관료라는 점, 개헌 변수를 고려한 ‘관리형 대통령’으로 적격이라는 얘기가 보수 진영 일각서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대선주자 직접 뛰나 한 권한대행의 배경에 더해 보수 진영 잠재 대선후보군의 지지율이 이 전 대표에게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맞물려 출마론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 권한대행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 8일 통화하면서 한 권한대행에게 대선에 나갈 것인지 묻자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 고민 중이다. 결정한 것은 없다”는 취지로 말하며 즉답을 피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 권한대행의 대선출마설에 더욱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