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수면내시경 괴담

항문 보는 척···옆으로 손가락 '쑤욱'

[일요시사 취재1팀] 신승훈 기자 = 강남의 대형 의료재단에서 수면내시경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항간에 ‘여성의 경우 수면내시경을 할 때는 반드시 보호자와 함께 가야 한다’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환자를 대해야 하는 의사가 죄의식 없이 수년간 지속적으로 성추행했다는 점에서 비난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의사가 수면 대장내시경 중 상습적으로 환자를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H의료재단의 간호사들이 2013년 10월7일 진정 신청한 문건인 ‘근로자 고충처리 현황’에는 이 재단의 강남 H의료재단 내시경센터장으로 근무했던 양모씨의 적나라한 성추행 행위가 묘사돼 있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내시경 센터장
적나라한 성추행

문건에 따르면 여성의 주요부위를 만지거나, 여성의 주요부위를 보면서 예쁘다고 묘사하고, 주요부위에 손을 넣는 행위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양씨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만여건의 대장내시경을 시행했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진행할 때 의사 뿐만 아니라 간호사도 들어가서 확인하기 때문에 간호사들이 제출한 진정서는 신빙성이 굉장히 높다.

문건에는 피해자들의 직업 및 나이까지도 적혀있어 피해자들이 구체적으로 특정돼 있는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혐의를 입증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은희 변호사는 한 언론을 통해 “5년여간 총 5만여명 가까운 고객을 검사했기 때문에 이중에는 여성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며 “본인이 이 시기에 여기서 검진을 받았는지, 그 의사가 맞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여성변호사회에 의뢰를 하면 추가적으로 수사의뢰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간호사들이 작성한 문건에는 ‘고객님 잘 주무시는데 불구하고 수면유도제를 더 주입하자 함… 항문 진찰하는 척 하시더니 XX 안으로 손가락을 삽입하여…’라고 적혀있다. 의사의 행위가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다. 양씨는 간호사들에게 이 부분이 이쁘다는 등 부위를 직접 확인토록 해 간호사들의 성적수치심을 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시경 전문의인 양씨가 위내시경이 아닌 대장내시경만 고집했다는 내용은 그의 행동이 의도적 이었음을 뒷받침한다.

이밖에 타 문건에는 건강검진 고객을 상대로 양씨가 성추행뿐만 아니라 성희롱 발언도 일삼았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간호사 앞에서 비만 환자를 비하하고 중요부위에 대한 노골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양씨는 언론의 인터뷰를 통해 “일종의 그것도 농담인데, 항문이 예쁜 경우도 있잖아요”라며 궁색하게 변명했다.

의료재단 간호사들 진정 문건 공개
환자 추행 의사 추악한 민낯 드러내

간호사들은 문서뿐만 아니라 구두로도 센터장의 성추행 사실을 보고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해당 의료재단이 이 같은 행태를 알고도 묵인한 사실이 드러났다. H의료재단 부회장은 “이렇게 왔던 게(문건) 사실이었고, 저희가 진짜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라며 “지금이라도 우리가 더 사실 조사를 해서 법적인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재단 부회장은 재단의 이사장에게도 해당 사안이 보고됐지만 적절한 조치가 없었다는 점을 인정하기도 했다.

검진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지속적으로 반복적인 성추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에 대안이 없으니, 성수기 때는 하루에 150∼200명씩 검진했다”고 말했다. 병원 측이 수익을 위해 고의 은폐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는 부분이다.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자 양씨는 “그런 이야기는 있었다”며 “없던 얘기는 아니고, 퇴직금도 못 받았다”며 자신의 추행에 대해 반성하기보다는 사건이 드러나 본인의 신변에 차질이 생긴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또 “손가락이 미끄러진다든지 그런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며 “진료하다 보면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수도 있고…”라고 변명했다.


서울청 성폭력수사대는 “기사를 통해 사건을 파악했고 혐의가 인정됐다”며 “내사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사업 이사인 노영희 변호사는 H의료재단 강남센터 내시경 센터장이었던 양씨를 강제추행과 모욕죄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노 변호사는 “양씨가 수검자인 여성들이 수면 상태에서 저항이 불가능한 점을 이용해 항문을 진찰하는 척하며 추행했다”며 “신체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를 반복했고 옆에 있던 간호사들에게 성적수치심을 느끼게 했다”고 밝혔다.

진찰하다가
 XX 안으로…

여성변호사회는 H의료재단이 2013년부터 범죄사실을 알고도 해고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을 들어 재단 이사장과 함께 임원을 부작위에 의한 방조와 모욕, 성추행, 간호사에 대한 업무상위력에 의한 추행 죄명으로 고발했다.

또 의료재단 측에서 진정서를 인멸한 사실이 있어 그 부분에 대한 증거인멸 부분까지 고발되어 있는 상황이다. 고은희 변호사는 언론을 통해 “단순히 양씨를 고용한 의료재단의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며 “의사에 대해 1년 정도 자격을 정지할 수 있다는 내용 밖에 없어 이사장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말해 법적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이처럼 의사에 대한 가벼운 제재는 성범죄를 일으킨 의사가 병원을 옮겨 범죄를 저질러도 아무런 대응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사법당국이 사실관계를 파악해서 범죄사실이 입증되고, 해당자가 의사협회 회원이라면 징계위원회를 열어서 징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료계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자체적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해 사태를 심각하게 키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백성문 변호사는 “내시경을 하러 가는데 일일이 보호자를 대동해서 가기는 힘들다”며 환자를 믿게 해주려면 징계와 처벌이 엄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씨는 해고 후 전남의 병원에서 원장으로 재직하며 대장내시경 업무를 계속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솜방망이 처벌 덕분에 양씨는 이직한 병원에서도 버젓이 성추행을 저지를 수 있었다. 전남에 양씨가 재직한 병원 직원들은 “조금 가슴이 크거나 하면 정밀하게 본다고 젤을 또 바르기도 했다”며 “그래서 막 이렇게 손으로 하시는데…”라며 울먹였다.

의료계는 양씨가 항거불능상태의 피해자들을 이용해 성추행을 벌인 행각을 묵인해 더 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양씨는 현재 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전남의 병원에서 사직했다. 수면내시경을 매개로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 6월에 경남 통영에서 수면내시경 마취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A원장은 소화불량으로 병원을 찾은 피해자의 수면내시경 검사를 끝낸 뒤 간호사들에게 “점심을 먹고 오라”며 밖으로 내보내고 피해자의 팔에 전신마취제를 놓고 성폭행했다. 또한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여성 환자 3명을 비슷한 방법으로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이 같은 사실은 간호사들에 의해 밝혀졌다.


A원장이 식사를 거른 채 혼자 장시간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고 환자 중 한 명이 “검진 후 하체가 이상하다”며 상담하자 간호사들이 카메라를 설치하고 증거확보에 나선 것이다.

이후 A원장은 검찰에 의해 기소돼 창원지법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위험한 마취제를 사용해 성폭행한 것은 의료인으로서 근본이 안 됐다”며 “검찰 구형 그대로 징역 7년을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당시 이 사건은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다.
 

2013년 한 여성은 전남의 모 병원에서 수면내시경으로 몸을 가누지 못할 때 의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여성은 사건 당일 “사전 동의서도 작성하지 않고 수면내시경을 해 마취 기운이 덜 풀려 항거불능에 빠져 있었다”며 “의사가 음부를 팔꿈치로 자극하고 속옷을 벗겨 자극하는 등의 성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3개월여의 수사 끝에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사건을 무혐의 처리를 했다. 분노한 여성은 의사의 병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알면서도 묵과
방치한 의료재단

당시 제3의 피해여성이 의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발언을 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지만 여성은 “당시 증인, 증거도 없고 도와줄 이도 없어 신고해봤자 나만 바보가 될 것 같아 경찰서도 못 같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내과에서 위가 아파 내원한 환자에게 항문 농양을 보겠다며 꼬리뼈 초음파 검사를 했다는 의사의 진술은 말이 안 된다”며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났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주장했다. 이어 “수면내시경 전에 의사 면담은 물론 사전 동의서를 받게 돼 있다”며 “이는 설명 의무 위반으로 소송까지 갈 수 있는 사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같이 피해자가 고소를 하더라도 당시 상황을 증언으로만 입증해야 하는 피해자로서는 혐의를 밝히기 어렵다. 이 사건이 무혐의 처분으로 종결되자 수면내시경 성추행 관련 괴담은 더 무성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성인여자 및 아이를 불문하고 계속해서 의사들의 성추행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자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진료 빙자 성추행법을 신속히 제정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지난해 10월 국회보를 통해 “의료인 성범죄에 대한 국회의 입법 경향은 주로 면허 자격정지, 영구박탈 등과 같은 강력한 사후처벌법이었다”면서 “진료 빙자 성추행 방지법은 사전예방법이기 때문에 의료계와 한의계에서 반대할 명분이 약하다”고 말했다. 

5년간 5만명이나 검사
“예쁘네” 주요부위 만져

그러면서 국회의 신속한 입법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영국과 미국처럼 ‘샤프롱 제도’를 실시할 것을 주장했다. 샤프롱 제도는 여성이나 미성년 환자를 진료할 경우 보호자나 간호사 등 제 3자가 함께 진료공간에 머물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안 대표는 이를 통해 환자를 안심시키고 진료 중 발생할 수 있는 성범죄 등의 행위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샤프롱 제도는 의료인을 잠재적 성추행 범죄자로 취급하는 게 아니다”라면서 “오히려 정당한 진료를 환자가 성추행으로 오해하는 것을 예방하는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의사들의 진료 중 성추행 괴담이 무성하고 피해자들은 혐의 입증의 어려움을 호소하자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4년에 ‘진료과정 성희롱 예방 안내서’를 발간했다.

인권위는 “의료인과 환자의 인식 격차를 줄이고 성희롱을 예방하기 위해 진료과정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 성희롱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판단기준, 진료과정에서 자주 호소하는 사례와 예방법 등을 제시했다”며 “안내서가 이용자와 의료진이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를 형성해 인권 친화적 진료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안내서는 진료과정 성희롱에 해당되는 사례를 담고 있다.

첫째로 의료진의 성적 접촉, 둘째로 의료진의 불필요한 성적 표현, 성적 농담 및 성적 비하, 성적 시선, 셋째로는 성적 접근, 넷째 성적 언동이나 성적 요구에 따를 것을 조건으로 의료서비스 제공 등이 모두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명시했다.

애매모호한 의료인 성희롱 행위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법적인 제재를 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지난해 11월에 국회와 환자단체에 따르면 샤프롱 제도를 본 딴 ‘진료실 의료인 배석제도’ 도입을 검토해 관련 단체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료실 의료인 배석제도는 의료인이 환자에 대한 진료행위를 하기 전에 환자나 보호자에게 다른 의료인 등의 동석을 요청할 수 있음을 고지하는 것으로 환자의 요청에 따라 진료실에 다른 의료인을 배석시키도록 하는 제도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국회 및 환자단체와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변호사회 고발
피해입증 어려워

대한의사협회는 지난해 11월 국회에 의견서를 보내 “배석제도를 법령으로 제정해 의료인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위반 시 제재를 가하게 될 경우, 의사의 진료행위는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대체 검사비는 증가한다”며 “이 제도는 의사와 환자 간 커뮤니케이션을 저해해 결과적으로 의료의 질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성추행 사건의 다툼에 있어 양 당사자의 주장 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동석한 제 3자의 증언이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며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단순히 의사를 잠재적 가해자, 환자를 잠재적 피해자로 보는 제도라는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진료실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오해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환자와 의사 모두를 지키고, 양측의 신뢰관계를 향상시키는 긍정적 영향을 기대할 수 있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환자 성추행' 유명 성형외과 원장

지난 12일,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성형외과 전문의 Y원장이 A여성을 상대로 강제추행 한 혐의가 인정돼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Y원장은 지난해 7월23일 병원 진료실에서 상담을 하던 A여성의 허벅지를 쓰다듬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Y원장은 검찰 조사과정에서 “수술비가 1500만원인데 600만원에 해주면 나에게 뭘 해줄 것이냐”며 “바깥에서 다섯 번만 만나자. 깎아줄게”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Y원장은 10년 전에도 이미 이와 유사한 성추행을 저질러 죗값을 치른 것으로 알려진다.

2006년 2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성형수술 담당 의사로 내정돼 각종 수술과 시술을 통해 출연자의 외모가 바뀌는 과정을 도왔다. 프로그램 출연 한 달 뒤 Y원장은 프로그램 출연자 2명을 같은 날 차례로 성추행했다. Y원장은 A여성에게 “가슴은 어떠냐”고 물었고 A씨가 가슴은 수술할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Y원장은 “그래도 한번 봐야겠으니 윗옷을 올려보라”고 했다. 이어 A씨의 가슴을 수차례 만졌다.

같은 날 B여성에게도 “윗옷을 벗어봐라, 티셔츠를 올려봐라”고 해 속옷을 강제로 걷어 올리게 한 후 B여성을 추행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Y원장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2007년 5월 약식기소 돼 벌금 700만원 형이 확정됐다. 민사소송도 진행돼 A여성과 B여성에게 각각 1133만원을 배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Y원장의 집안은  3대째 내려오는 의사 가문이며 특히 안면윤곽술은 전 세계 성형외과 공식 교과서에 게재될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Y원장은 이번 기소로 다시 한 번 명성에 먹칠을 함과 동시에 상습 ‘성추행범’이라는 오명까지 쓰게 됐다. 이번 사태에 대해 성형외과 측은 “잘 모르겠다. 바빠서 전화를 끊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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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안보 공약과 정치적 스탠스 등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직접적으로 연락하면서 국정 전반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군 인사뿐만 아니라 국방정책과 사업에까지 손을 댔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비선 실세는 외부서 활동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보직을 받지 않았음에도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들과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윤석열정부서 이 같은 행위를 한 이들은 주로 ‘무속 관련자’들이었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도 정부 정책 및 인사에 개입한 의혹의 당사자들이다. 안보 분야 대책 조언 노 전 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안보 공약이나 지지율 상승 방안 등을 조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대통령이 대선 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역공 대비 등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윤 대통령은 노 전 사령관의 존재를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을 윤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몇 번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인사시키려 했는데, 저 스스로 성 관련 범행에 대한 멍에가 있어서 안 본다고 했다”며 “(김 전 장관이)군인공제회 산하단체 비상근 사외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국회)국방위원회서 다 밝혀질 거라 사양했다. 공기업 임원 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국방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16일 “12·3 내란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여인형(방첩사령관), 김용군(예비역 대령)은 방위산업을 고리로 한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 그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이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했다. 당시 이 예산은 ‘김용현 처장 꼬리표 예산’으로 불렸다는 게 추 의원의 주장이다. 노, 윤 대선후보 시절부터 감 놔라 배 놔라 실제 김 통해 일부 이행…윤 직접 접촉 시도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상 1세대로 불리며, 2000년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으로 유명한 이규태가 운영하는 방산업체다.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통상 무기체계 등 전력사업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중단됐다. 추 의원은 노 전 사령관과 윤 대통령 일가와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노상원은 이미 2015∼2016년 박근혜정부 때부터 김충식과 후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며 “김충식은 윤석열의 장인 행세를 하는 분이고, 장모 최은순 여사와 사적인 관계 또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사령관은 국방·안보 분야 조언에 그쳤다. 명씨는 정부 사업과 정치 권력 전반에 영향을 끼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굳이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노 전 사령관보다 명씨의 비선 실세 서열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시사IN>이 공개한 윤 대통령 일가와 명씨의 카카오톡·텔레그램 대화 원본을 보면 명씨는 사실상 국회의원 후보 선정과 경제 사업 추진에 판을 짜는 플래너였다. 실제 명씨는 지난 2021년 7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이뤄진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 가진 비공개 회동부터, 그 이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정치인 접촉을 주도했다. 이 의원과 윤 대통령의 회동 당시 김 여사는 JTBC가 보도한 ‘윤석열·이준석 비공개 회동’ 기사 링크를 보냈다. 김 여사는 명씨에게 “큰일이네요. 왜 준석씨가 이렇게까지 발설했을까요. 남편에게는 완전 악재인데요ㅠ”라며 “선생님(명태균씨)께서 단단히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닮은 듯 다른 듯 이들은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각각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2022년 6월 보궐선거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이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이다. 명씨는 윤 대통령의 일정과 행보에 대한 사후 보고, 평가, 조언도 김 여사에게 더 자주 했다. 예시로 2021년 7월29일,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부산 방문 당시 실언한 점을 포착한 영상 보도 링크를 보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한열 열사가 새겨진 1987년 6월 항쟁 기념 조형물을 보고 ‘1979년 부마항쟁이냐’라고 물어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명씨는 말실수를 한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미리 방문하는 곳 학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9월17일과 18일, 20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경북·경남지역 방문 관련 반응이 담긴 언론 기사와 여론조사 결과를 보냈다. 명씨는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일정을 자신이 기획했다고 검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명씨는 자신의 ‘기획물(지역 방문 일정)’ 결과를 김 여사에게 보고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경남 일정 이후 ‘창원 전·현직 도·시의원 33명이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도 김 여사에게 먼저 보냈다. 대선 캠프에 소속되지 않은 명씨가 후보 일정에 개입한 것이다. 특히 명씨는 검찰서 자신이 기획한 경남 일정 가운데 창녕 방문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당시 창녕 방문이 윤석열 후보자에게 가장 중요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창녕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경쟁자인 홍준표 당시 예비후보의 고향이다. 홍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창녕 방문 일정을 넣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입 열면 쑥대밭 명씨는 윤석열 캠프 인사 개입 의혹도 받는다. 명씨와 김 여사의 대화를 보면, 이 의혹 역시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명씨가 김 여사와 캠프 인사 문제를 상의했고, 그 결과가 일부 실현된 사실이 확인된다. 2021년 7월16일 김 여사는 명씨에게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 프로필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후원회장으로 어떤가요? 이권과 연결도 안 돼있다”고 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이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7월17일, 황 전 대사는 윤석열의 후원회장으로 위촉됐다. 정통 외교관 출신 인사가 대선후보 후원회장을 맡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21년 7월19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프로필을 보냈다. 그러면서 ‘총장님께서 물어보신 임태희 실장’이라며 장문의 설명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먼저 명씨에게 임 교육감 세평을 물었는데, 명씨는 그 답을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 교육감은 2021년 12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다. 한 달여 뒤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자신이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보냈다. 박 지사는 “명 대표 나도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했고, 8월1일 “윤 총장 전화 왔습니다.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했다. 7월31일, 명씨는 윤 대통령에게 박 지사 연락처를 전달하면서 “전화하면 총장님을 돕겠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8월6일 박완수 당시 의원은 명씨와 윤 대통령 자택인 서울 아크로비스타에 방문했고 윤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다. 이 같은 명씨의 영향력이 정치권서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2023년(연도 추정) 4월6일 김 여사가 명씨에게 ‘김건희 여사, 명태균과 국사를 논의한다는 소문’이라는 제목의 정보지 글을 공유했다. 김 여사가 천공 스승과 거리를 두고 명씨와 국사를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노·명 전부 무속 의혹 제기 “여사 연결고리?” 명, 침묵하는 노와 대조적 “30명 죽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명씨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명씨는 웃으며 “세상에 천벌 받을 사람들이 많네요”라고 했다. 4월15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네잎클로버 사진을 보냈다. 명씨는 “여사님 행운의 징표인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여사님께 보내드린다”며 “윤석열정부 꼭 성공한 정부가 될 겁니다”고 했다. 김 여사는 V자 손가락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노 전 사령관은 가장 논란이 된 이른바 ‘노상원 수첩’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까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지전 유도와 북풍 공작 등의 음모론 같은 의혹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명씨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검찰 조사에 임하면서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일가의 ‘뇌관’을 자처하고 있다. 창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명씨는 최근 노영희 변호사와의 접견서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 30명을 죽일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며 “내가 한 말은 전부 증거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명씨와 연루 의혹이 있는 인사들이 정치권 내에서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로 분류되긴 했지만, 명씨가 직접 숫자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명씨 관련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씨는 지난해 10월 명씨와 연관됐다고 주장하며 여야 정치인 27명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명씨의 정치권 인맥은 ‘황금폰’이라고 불리는 명씨 휴대전화서 일부 포착된 적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명씨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포렌식을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명씨의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저장된 전·현직 정치인 140명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명씨 측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명씨 황금폰 포렌식 과정서 너무 많은 정치인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며 “명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현직 국회의원이 140명이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금폰 포렌식 명씨는 “내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무총리로, 이준석 의원을 미국 대북특사로 추천을 했었다”면서 “당시 국민의힘 관련 윤한홍, 박완수, 김영선, 김종인 등에 대한 자료가 많다”고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명씨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이들에 대해)얘기할 것이 아주 많다”며 “민낯을, 껍질을 벗겨 놓겠다”고 거친 언사를 쓴 것으로도 파악됐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