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야권의 핵심 지지층인 호남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의 호남 지지율은 불과 5%에 머물렀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9%)보다 낮은 수치였다. 문 대표가 지난 2012년 대선 때 호남에서 90%안팎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더욱 충격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호남이 문 대표를 외면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호남향우회를 찾아 회원들의 생생한 속 이야기를 들어봤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야권의 핵심 지지층인 호남으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지난 13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신뢰도 95%, 오차범위 ±10%)에 따르면 문 대표의 호남 지지율은 5%에 불과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9%)보다 낮은 수치였다. 문 대표가 지난 2012년 대선 때 호남에서 90% 안팎의 압도적인 지지(광주 92.0%, 전남 89.3%, 전북 86.3% 등)를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더욱 충격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돌아선 호남
뻔뻔한 친노
핵심 지지층인 호남이 흔들리면서 새정치연합은 곧장 위기를 맞고 있다. 일례로 지난 10·28재보선 서울 양천구 구의원선거에서 새정치연합 후보는 새누리당 후보에게 고작 227표 차이로 졌다. 패배의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호남의 변심이었다. 새정치연합 박지원 의원은 해당 선거에 지원유세를 갔다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호남향우회 관계자들이 자신을 만나 “새정치연합 후보를 찍으면 문 대표를 도와주게 되니 아예 투표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당 관계자들은 그때 호남향우회만 움직여줬더라도 고작 227표 차이는 충분히 뒤집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한탄했다. 이 같은 호남의 반(反)친노정서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지역 호남향우회에서 ‘친노 살생부’가 돌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해당 지역 호남향우회 회원들이 친노계 의원과 비노계 의원을 구분해 작성한 명단을 돌려보며 내년 총선에서 친노계로 분류되는 의원은 뽑아주지 않기로 했다는 보도였다.
"자기(친노)들끼리만 다 해먹으려 해"
"친노 돕느니 차라리 새누리 돕겠다"
모 지역 호남향우회 회원 수천명은 최근 단합대회를 가서 해당 지역 국회의원이 범친노로 분류되는 인물이라며 성토하고, 공개적으로 낙선운동을 하기로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전국 호남향우회중앙회 박광태 회장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호남향우회 차원에서 ‘친노 낙선운동’ 등의 단체행동에 나설 생각은 없다”면서도 “친노는 절대 지지하지 않겠다는 것이 호남의 대체적 정서인데 문 대표만 그것을 모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호남에서 시작된 반친노정서는 호남향우회를 통해 전국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내년 총선 전망이 어두운 이유다. 호남향우회는 전국적으로 약 1300만 명에 달하는 회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호남향우회는 매달 모임을 갖기 때문에 여론의 파급속도가 무척 빠르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특히 수도권에서는 불과 5% 이내에서 승부가 갈리는 지역이 많기 때문에 호남이 우리당을 외면하면 내년 총선에서 참패할 수밖에 없다”며 우려했다.
늘 남 탓만
책임은 안 져
그렇다면 호남이 문 대표를 외면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호남향우회를 찾아 회원들의 생생한 속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 회원은 문 대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언성이 높아졌다. 요즘 회원들이 모이면 문 대표에 대한 성토가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고 한다.
가장 큰 문제로 꼽은 것은 ‘자기(친노)들끼리만 다 해먹겠다는 심보’라고 했다. 친노가 선거 때마다 공천권을 독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회원은 “경선이라도 공정하게 치르면 승복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사례는 지난 4·29재보선이다. 당시 호남인사로 분류되는 김희철 후보는 친노인사로 분류되는 정태호 후보와의 당내 경선에서 불과 0.6% 차이로 패했다.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김 후보가 앞섰으나 여론조사 결과에서 정 후보가 이를 뒤집었다. 그런데 이 여론조사 결과가 요상했다.
당시 한국리서치와 코리아리서치에서 동시에 여론조사를 했는데 한국리서치에서는 김 후보가 5%를 이겼지만, 코리아리서치에서는 반대로 정 후보가 10.4%를 이겼다. 양쪽 여론조사기관 간 조사 결과가 15%나 차이가 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동일지역, 동일시간에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15%나 차이가 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고작 ±5~6% 정도이기 때문이다.
김 후보 측은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당 지도부는 묵묵부답이었다. 한 회원은 “친노 XX들이 (당내 경선에서) 그런 식으로 (호남 사람들을) 제낀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국회의원 선거뿐만 아니라) 작은 기초의원 선거, 하다못해 당직자들까지 다 자기 사람들(친노)만 앉히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언급된 서울 양천구 구의원선거에 출마했던 새정치연합 후보도 범친노로 분류되는 김기준 의원의 보좌관 출신 인사였다.
친노진영이 당내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율은 자꾸 줄이고 여론조사나 모바일투표의 비율을 늘리려고 시도하는 것도 호남인사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 한 회원은 “우리 회원 중에는 민주당 시절부터 수십년간 (새정치연합)당원으로 활동해온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소중한 한 표는 무시하고 누군지도 알 수 없는 모바일투표나 여론조사로 후보를 결정하겠다고 하니 무시당하는 느낌이고 억울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당원으로 수십 년 동안 활동해온 사람들은 다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정한 후보에게 무조건 투표하라고 하면 누가 가서 투표하고 싶겠나?”라고 말했다.
공천권 독식
못믿을 경선
사실 호남과 친노진영의 악연은 노무현정부 시절부터 시작됐다. 대북송금 특검, 열린우리당 창당, 노무현정부의 호남인사 홀대 등으로 인해 호남에서는 친노진영에 대한 거부감이 과거부터 상당했다. 그래도 호남은 ‘새누리보다는 우리 식구가 낫지 않겠냐’며 지난 대선에서 문 대표를 적극 지지해줬다. 그럼에도 친노진영의 호남 홀대가 계속되자 최근에는 분위기가 180도 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한 호남향우회의 회장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내년 총선에선 차라리 새누리 주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친노XX’들을 다 물갈이 해버려야 한다”는 발언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회원은 “그것이 지금 호남인들의 정서”라며 “예전엔 아무리 미워도 새누리보단 우리 당이 낫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차라리 새누리를 찍는 한이 있어도 친노 잘되는 꼴은 못 보겠다는 정서가 강하다”고 말했다.
문 대표의 반성할 줄 모르는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는 지적도 많았다. 한 회원은 “안철수나 김한길은 선거에 한 번 지고도 (대표직 사퇴하고) 나갔는데 친노는 총선지고, 대선지고 재보선도 다 지고 버티니까 뭐 저런 인간들이 있나 싶다”며 “최소한 사과라도 하고 반성이라도 해야 하는데 (선거에서) 지고도 늘 핑계만 대는 모습이 싫다”고 말했다.
"문재인 늘 남 탓, 반성부터 해야"
"정통당원 무시하고 여론조사 목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도 이 같은 지적에 대해 “10·28재보선 참패 이후 당 지도부 인사들이 ‘투표율이 낮았다’ ‘노인들만 투표했다’ ‘신경 쓸 거 없다’는 반응을 보여 깜짝 놀랐다”며 “선거에서 진 것보다 반성할 줄도 모르는 ‘염치없음’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회원은 “문 대표는 늘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하는데 그럼 왜 선거마다 지는 것이냐?”며 “(문 대표가) 한 번이라도 속 시원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함에도 문 대표의 대응은 무척 안이하다. 문 대표는 최근 한 대학 강연에서 “요즘 호남에서 제 지지율이 좋지 않다고 하는데 이 지지도 조사가 들쭉날쭉하다”며 사실상 믿기 어렵다고 우회적으로 말해 호남인들의 심기를 또 한 번 건드렸다. 문 대표는 “함량 미달로 당에서 버림받은 일부 인사들이 호남민심을 왜곡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친노로 분류되는 한 의원도 언론 인터뷰에서 “원래 일부에서 시끄럽게 떠들면 그게 전체 의견인 것처럼 보인다”며 “대다수의 호남인들은 문 대표에 대해 우호적인데 요즘 자신이 호남사람이라면서 문 대표 씹고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쪽(신당) 사람들이다. 지난번 혁신안 의결하는 중앙위원회 때도 비노계 5명 나가고 끝인 것 봤지 않나?”고 말했다.
신당 추진세력?
일반 호남민심?
이처럼 친노진영에선 현재 신당을 추진하고 있는 인사들이 대부분 호남 출신이라서 이들이 호남민심을 왜곡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향우회 회원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했다. 한 회원은 “향우회 내에 신당에 참여하려는 인사들이 많고, 그 사람들이 (문 대표를) 노골적으로 자꾸 씹고 다니니까 향우회 내 여론도 그쪽으로 휩쓸려 가는 부분이 분명히 있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회원은 “그런 사람들이 향우회에서 공개적으로 반문(반문재인)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문 대표가 잘하고 있다면 그 사람들이 아무리 (문 대표를) 씹고 다녀도 사람들이 동조해주겠나? 문 대표는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통렬하게 반성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소수 의견으로는 문 대표의 당 혁신 실패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회원은 “문 대표가 혁신하겠다고 수차례 약속했는데 새정치연합이 뭐가 달라졌는지 모르겠다”며 “이렇게 무능력한 대표가 이끄는 새정치연합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이길 수 있겠냐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