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자수자’란 죄목으로 사형당한 심문규씨의 누명이 벗겨졌다.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48년이 지난 뒤에야 어렵게 밝혀진 진실을 통해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최근 “국가가 사건을 조작해 심문규씨를 사형했다”며 조사내용을 밝혔다.
40여 년간 아버지의 생사조차 모르다 지난 2006년에야 사형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은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진실이 밝혀져 아버지의 명예회복은 이뤄졌지만 시신조차 돌려받지 못한 아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낼 계획이다. 국가에 의해 기구한 삶을 살았던 부자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아봤다.
위장자수자로 몰려 사형당한 북파공작원의 진실 50년 만에 드러나
생사조차 몰랐던 아들과 진실화해위의 조사로‘조작’ 사실 밝혀져
지난 1950년 12월 국군 제6사단 수색대로 입대한 심문규씨는 육군첩보부대(HID)에서 첩보원으로 활동을 하다 1955년 9월 동해안을 통해 북파된다. 해방 이전 일본군에 자원입대해 만주 관동군에 배속됐다가 소련과 중국군의 포로 생활을 경험했던 그는 중국어는 물론 주변 지리에도 밝아 첩보원을 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심씨는 임무수행 중 북한군에게 잡히고 만다. 북한은 심씨에게 남한을 상대로 간첩활동을 하도록 계획했고 심씨에게 1년7개월 동안 대남 간첩교육을 시켰다. 그리고 1957년 10월, HID 기밀 탐지 등의 지령을 받은 그는 다시 남한으로 돌아왔다.
하루아침에 ‘위장자수자’로
가족들이 있는 서울에 간첩의 신분으로 되돌아온 심씨. 그의 선택은 자수였다. 남한에 도착하자마자 HID에 간 심씨는 북한에서 해 온 일과 지령 등을 보고했다. 그러나 HID는 심씨를 ‘이중간첩’으로 몰았다. 또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한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563일 동안 심씨를 불법 구금해 북에 대한 정보 등을 확인한 뒤 육군특무부대로 사건을 넘겼다.
이후 심씨의 사건은 군검찰에 송치됐다. 심씨에 대한 재판권이 일반법원에 있었지만 군사기밀 등의 이유로 군검찰에 넘어가게 된 것. 군검찰 역시 이를 묵인한 채 중앙고등군법회의에 기소했다. 결국 중앙고등군법회의는 심씨를 위장자수자로 몰았고 사형 판결을 내려 1961년 5월 대구교도소에서 그는 사형을 당하고 만다. 사형판결이 확정된 지 1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어느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아들 심한운(60)씨조차도 아버지가 사형 당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한운씨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1959년. 당시 외숙모의 손을 잡고 육군본부 장교형무소 면회실에서 아버지를 만났던 한운씨는 이후 아버지에 대한 어떤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집안은 급격히 무너져갔다.
만삭의 어머니는 극약을 마시고 세상을 등졌고 다섯 살배기 누이동생은 급체로 목숨을 잃었다. 가난에 시달리던 한운씨는 중학교 졸업도 하지 못했고 돈을 벌기 위해 안 해본 일 없이 고생을 했다. 그러나 아버지를 찾는 일만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아버지를 40여 년이 넘게 찾아 헤맸고 지난 2006년에야 아버지가 사형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안타까운 사연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고 뒤늦게야 국방부에 의해 사실을 듣게 된 것. 2006년 5월 국방부는 한운씨에게 사형집행기록이 담긴 자료를 넘겨줬고 그제야 한운씨의 길고 긴 궁금증이 풀렸다. 그러나 아버지의 명예회복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한운씨는 2006년 10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아버지가 어떤 과정을 통해 사형에 이르게 됐었는지를 파헤쳐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진실화해위는 지난 15일 “HID의 내부 심문 자료 등을 검토한 결과 ‘간첩 심문규 심문 경위’에 들어 있는 근거들은 그를 위장자수자로 몰기 위해 조작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북한군에게 체포됐던 심문규씨가 북에서 대남간첩교육을 받고 남파된 뒤에 자수를 했음에도 육군첩보부대가 증거도 없이 그를 위장자수로 몰아갔던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또 진실화해위는 “당시 첩보부대 장교 등이 진실화해위 측에 ‘북파공작원이 공작활동 중 체포되어 간첩교육을 받고 내려온 경우, 즉시 자수하더라도 특무부대 등 수사기관에 넘기지 않고 북한에 대한 정보입수, 간첩검거, 간첩선 검거 등에 2년 정도 활용한 후 다시 북파를 시켰다. 이를 거절할 경우 제거하거나 군사재판에 회부해 사형시키기도 했다’라는 내용을 진술했다”라고 밝히며 심씨가 당국의 조작에 의해 사형을 당한 사실을 뒷받침했다.
마지막으로 진실화해위는 “국가에 대해 가족에게 사과할 것과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한다”라며 “진상을 은폐해 야기되는 의혹이나 인권침해 행위를 해소하도록 특수임무수행자 운용과 관련된 자료들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너무나 긴 시간이 지나고서야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한운씨. 그는 앞으로 남은 생을 자신과 같은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이들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명예회복 하겠다”
한운씨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처럼 북파됐다가 생사도 모르는 가족들이 있는데도 숨 죽여 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많다. 사재를 털어서라도 아버지와 함께 파견됐던 동료들의 가족을 돕고 싶다”라고 밝혔다.
또 하나 남은 일은 아버지의 시신을 되찾는 것. 국가는 아직도 가족에게 심씨의 시신을 돌려주지 않았고 이를 돌려받는 것이 아버지를 위한 마지막 도리이기 때문이다. 심씨는 또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법원에 재심을 신청하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겠다”고 밝히며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활동에 주력할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