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게이 메카' 수원역 뒷골목 탐방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12.13 13:44:51
  • 댓글 0개

동성애자 아지트 가보니…노인이 "이리와 XX줄게"

[일요시사=사회팀] 수원역 뒷골목은 모텔과 각종 성매매 업소들이 뒤엉켜 있다. 그 속에 동성애자 전용 업소들도 비밀스럽게 운영되고 있다. 동성애자들은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며 살아가기 위해 더욱 자신들만의 공간을 확보하려 애쓰고 있다. 전국 각지에 퍼져 있는 게이 전용 업소가 바로 그것들이다. 하지만 그 환경은 영 좋지 못하다. 점점 더 음지로 내몰리고 있는 것. 기자는 눈 질끈 감고 그들이 서로의 육체를 탐하는 공간을 탐방해 봤다.

동성애 전용 바와 찜질방, 그리고 섹스방은 전국적으로 퍼져있다. 이른바 '이반' 전용 업소들이다. 이반은 이성애자들을 칭하는 일반이라는 말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을 지칭하는 단어다. 일반인과는 구분된다는 의미. 이 같은 이반 업소들은 일반인에게 성 정체성을 들키지 않으려는 이반끼리 모여 친분을 쌓고 커플이 되고 또 성관계를 맺는 곳이다.

게이들의 성지
수원역 일대

그 중 수원역 역전시장 모텔촌은 이반 업소들이 뒤섞여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기자가 확인한 이반 전용 술집만 해도 네 곳, 찜질방과 유사한 숙박시설은 세 곳이었다. 게이 업소들이 성업 중인 서울 종로와 이태원까지 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모이는 동네가 수원인 것.

지난 4일 기자는 수원역 부근에 위치한 동성애 업소를 찾아다니며 그들만의 삶을 들여다봤다.

수원역 일대는 그야말로 모텔 천지였다. 골목골목마다 늘여선 모텔의 개수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한자로 써진 간판도 보였다. 조선족이 많이 모여 살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일대를 돌아보던 중 경쾌한 트로트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간판을 보니 성인 콜라텍이었다. 잠시 올라가 내부를 들여다보니 붉은 조명 아래 중장년 남성과 여성들이 짝지어 춤을 추고 있었다. 홍등가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밤이 되니 아가씨들이 손짓하며 연신 "오빠 놀다가"를 외쳐댔다. 수원의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수원은 게이업소가 많기로 유명하다. 기자는 이반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업소의 위치를 미리 파악했다. 역전 시장 일대를 배회하다 수원ㅇㅇ휴게텔을 찾아갔다. 서ㅇㅇ극장이라는 성인 극장이 있는 건물 3층에 기자가 찾던 휴게텔이 있었다. 또 입구 바로 맞은편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무인텔이 있었다. 휴게텔에서 눈이 맞은 게이커플이 좀 더 친밀한 시간을 가지기 위한 곳임을 짐작케 했다.

휴게텔은 오후 5시 이전에 입실하면 5000원, 그 이후에 찾아가면 1만원을 받고 있었다. 무인텔은 대실 1만5000원, 숙박 2만5000원이었다. 이 건물 지하엔 대규모 성인 게임장이 있었고, 2층은 허름한 고시텔, 4층은 대중목욕탕이 운영되고 있었다.

기자는 마음을 굳게먹고 게이 휴게텔에 들어갔다. 신발장 왼쪽 카운터로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 점원이 기자를 반겼다. 먼저 "안에 손님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지금 세 분 정도 있다"면서 "주중보다 주말에 손님이 많다"고 귀띔했다. 일단 돈을 내고 열쇠를 건네받았다.

바·찜질방·섹스방 '이반' 전용업소 즐비
쾌쾌한 악취 진동…남자 신음 울려퍼져

내부는 예상 밖이었다. 일반 목욕탕 및 찜질방의 내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 여기는 게이 업소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옷을 탈의하는 중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기자가 옷을 벗고 있는 도중 한 노인이 나타나더니 기자의 맨살 엉덩이를 손으로 툭 치고 지나갔다. 샤워를 마친 후 가운을 입고 있을 때도 다가오더니 이번엔 노골적으로 쓰다듬었다. 의도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기에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기자를 당황하게 한 것은 또 있었다. 입실할 때 나눠준 가운에 바지가 없었다. 상의도 무척 얇았고 또 짧은 편이었다. 아랫도리가 영 허전했다. 차라리 다 벗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팬티를 입고 수면실에 입장할까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취재하기 위해 팬티를 입지 않고 수면실에 들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남자들인데 뭐 어때'라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내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먼저 손님들이 몇 명인지 확인했다. 수면실 내부엔 노인과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청년만 보였다. 청년은 통로에 계속 서 있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들어오길 기다리는 듯한 눈치였다. 청년은 계속해서 기자를 따라 끈적끈적한 시선을 보냈다. 애써 태연한 척하며 지나쳤다.


그 순간 충격적인 현장이 목격됐다. 통로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방에서 기자를 추행했던 그 노인이 자위행위를 하며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 노인은 컴퓨터와 연결된 모니터를 통해 '게이야동'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 대형 화면에는 근육질 백인 남성들이 항문성교를 하고 있었다.

조명하나 없는
차가운 수면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자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조명이 하나도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휴대폰 라이트를 켜고 내부를 살펴봤다. 탈의실과 샤워실은 찜질방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수면실은 확연히 달랐다. 일단 바닥이 매우 차가웠다. 바닥뿐 아니라 공기도 차가워 한기가 느껴졌다. 이 같이 추운 곳에서 어떻게 잠을 잘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찜질방처럼 탁 트인 공간도 없었다. 미로 같은 복도를 따라 각기 크기가 다른 방이 있을 뿐이었다. 커튼이 쳐진 방, 문이 딸린 방, 2층 구조인 방, 더블침대가 놓인 방 등 제각각 있었다. 그리고 각 방엔 찜질방용 갈색 매트와 베개가 있었다. 반대편 방을 몰래 훔쳐볼 수 있도록 작은 구멍이 뚫린 방도 있었다. 관음증 환자를 위한 곳으로 짐작됐다. 

수면실 내부에 있는 샤워실은 유일하게 붉은 조명이 켜져 있었다. 그곳에선 적응하기 어려운 강한 악취가 풍겨왔다. 설명하자면 피와 변이 섞인 냄새였다. 샤워실 휴지통엔 콘돔과 젤 포장지가 버려져 있었다.
방을 살펴본 기자는 여전히 들리는 노인의 신음소리를 피해 가장 구석방으로 향했다. 그나마 넓은 그 방엔 매트 3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쾌쾌한 냄새가 났다. 기자는 쪼그려 앉아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스마트폰에 메모했다.

통로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휴대폰 불을 비춰보니 아까 그 노인이 서 있었다. 그는 "씻었지? 내가 빨아 줄게"라며 막무가내로 기자의 가장 소중한 부위를 향해 손과 얼굴을 들이밀었다. 깜짝 놀란 기자는 그곳을 보호하기 위해 손을 잡아 뿌리치고 얼굴을 밀어내니 이번엔 허벅지와 엉덩이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부탁할게 이리와
기분 좋게 해줄게"

결국 기자는 신분을 노출하지 않으면서 노인의 추행을 막기 위해 몸으로 어깨를 강하게 밀친 후 "젊은 사람을 만나러 왔다. 그러니 쫓아오지 말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그 방을 벗어나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그럼에도 노인은 "한 번만, 부탁할게. 이리와. 기분 좋게 해줄게"라며 기자를 따라왔다.

이후 청년이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다짜고짜 "탑이냐 바텀이냐" 물어왔다. 이럴 때를 대비해 게이들 사이에서 쓰이는 용어를 검색해서 알아두고 있었다. 이에 기자는 "탑이다"라고 대답했다. 여기서 '탑'은 '남자 역할' '바텀'은 '여자 역할'을 의미했다. 일반적으로 바텀이라고 자칭하는 하는 게이 남성은 여성성을 가지고 있고 이들은 이것을 또 '끼'라고 표현했다.

기자의 대답에 청년은 물끄러미 쳐다볼 뿐 말이 없었다. 이에 "몇 살이냐. 여기 자주 오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25살"이라며 "매일 온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빤히 쳐다보기에 "왜 빤히 쳐다보고 있느냐"고 물으니 "나도 탑이라 어색해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자가 바텀이길 바라는 눈치였다.

더 이상 수면실에 있기 힘들어서 따라오는 시선을 무시하며 지나쳐 나왔다. 그때 뒤에서 노인과 청년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기자에게 퇴짜 맞은 노인이 청년을 쓰다듬으려 하자 청년은 정색하며 "이제 안 하시기로 했잖아요"라고 말하며 노인을 뿌리치고 있었다.

수면실에서 빠져나온 기자는 부대시설들을 살펴봤다. 이때 막 업소로 들어온 한 30대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겉으로 보기엔 동성애자로 보이지 않았다. 이 남성뿐만 아니라 게이들은 겉모습만으론 전혀 구분되지 않았다.

20대 청년 다가와
"탑이냐 바텀이냐"


탈의실 한쪽 편엔 대형거울과 그 앞에 로션과 면봉 등이 있었다. 이것 역시 일반 업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 업소와 확연히 다른 특징을 발견했다. 바로 한 바구니에는 콘돔과 윤활 젤이 가득 담겨있었던 것. 과연 '게이 전용 업소'라는 것을 실감케 했다.

수면실 반대편엔 대형 TV와 소파가 놓인 흡연실이 있었다. 30대로 보이는 뚱뚱한 남성과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휴게텔 관계자로 짐작됐다. 둘은 TV를 보다 대화를 했는데 뚱뚱한 남성은 여성성이 다분했다. 주먹을 살짝 쥐고 남성을 툭툭 치는 것이 마치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에게 애교부리는 것 같았다.

컴퓨터 2대가 비치된 PC방도 있었다. 그리고 한 남성이 야동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게이용 야동이 아니라 남녀가 한데 엉켜 정사를 펼치는 야동이었다. 남성이 자리를 뜬 후 혹시나 해서 컴퓨터 동영상 폴더를 열어보니 역시 게이용 야동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손님이 더 이상 늘지 않아 다른 휴게텔을 찾아가 봤다.

대로를 건너 위치한 이 업소는 '24시간 사우나'라는 낡은 간판을 걸고 있었다. 현관문은 가정집과 같았고 벨을 눌러야 들어갈 수 있었다.

1만원을 내고 입실했다. 앞서 방문한 휴게텔보다 규모가 작은 곳이었다. 사우나라는 간판과 달리 간단한 탈의실과 샤워 시설이 마련돼 있을 뿐이었다.


샤워하러 들어가니 30대로 보이는 체격 좋은 남자가 샤워하고 있었다. 태연한 척 샤워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발밑으로 비누가 굴러들어왔다. 일종의 관심 표명으로 짐작됐다. 비누를 주울까 생각하다 괜한 오해를 살 것 같아 그대로 두었다.

콘돔·젤 곳곳에 비치
관음증 환자 용 방도

이 업소도 콘돔과 윤활 젤이 가득 들어 있는 바구니가 있었다. 수면실로 이동하니 조명이 거의 없어 눈앞이 깜깜했다. 앞서 방문한 업소와 비슷했다. 다만 각 방에는 찜질방용 매트가 아닌 전기 매트와 이불이 깔려 있었다.

그때 한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갔다. 통로를 따라 조금더 들어가자 구석 칸막이 안쪽에선 중저음의 나지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남성 두 명이 애정행각을 나누고 있는 듯했다.

이런 것을 목격할 것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상황이 닥치니 난감했다. 빠져나가려는 순간 인기척을 느낀 그들이 행동을 멈췄다. 어둠속에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수면실을 빠져나와 이번엔 흡연실로 갔다. 이곳 역시 소파와 TV가 있고 주인을 비롯해 사복을 입은 남성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쪽에 놓인 컴퓨터에선 한 할아버지가 온라인 바둑을 두고 있었다.

주인에게 "손님이 왜 이렇게 없나"고 물었다. 그는 "평일에는 많이 없는 편이다. 금요일, 토요일에 오면 정신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다"고 대답했다. "어젯밤에는 몇 명이 들어왔느냐"고 물으니 그는 "어젠 15명 정도였다. 보통 사람들이 오는 시간은 11시부터 새벽까지다. 술 한잔하고 오거나 집안일을 마친 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전용 업소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대답했다.

게이인 줄 모르고
결혼하기도 해

업소를 빠져나온 기자는 착잡했다. 사회적 편견 때문에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긴 채 숨어 지내야 하는 그들이 안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이바에서 일하는 30대 곽모씨는 "중년 이반 남성들은 결혼한 사람들이 많다. 가족에게조차 동성애자임을 숨기기 위해 원치 않는 결혼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 재산 때문에 결혼하기도 한다. 또 결혼할 당시에는 자신이 게이인 것을 모르고 있다가 아내와 부부생활을 하다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동성애로 돌아서기도 한다. 이들은 항상 힘들어한다. 부부생활이 안 되니까. 게이로 태어난 것을 어찌하나…"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민석 기자 <ideaed@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박근혜 VS 윤석열 탄핵 지연전 비교

박근혜 VS 윤석열 탄핵 지연전 비교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된 지 10여일 만에 첫 단추를 끼웠다. 헌법재판소의 강행이 있어서 가능했다. 윤 대통령 측은 여전히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았고 변호인단은 준비기일 당일에 겨우 구성됐다. 앞서 수사와 탄핵심판에 당당히 나서겠다고 밝혔던 윤 대통령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에 최장 180일인 탄핵심판 기간이 초과할 것이라는 우려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2주가 지났지만 관련 절차는 아직 시작조차 못했다. 윤 대통령이 변호사 선임을 이유로 서류조차 받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변호인을 통해 “탄핵 심판에 당당히 나서겠다”고 말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겨우 겨우 첫 단추 지난 14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재적 의원 300명 가운데 300명이 표결에 참석해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가결됐다. 탄핵안 가결 이후 우원식 국회의장은 탄핵소추의결서를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정 위원장은 탄핵소추의결서 정본과 사본을 각각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와 대통령실로 보냈다. 지난 14일 오후 7시24분 탄핵소추의결서가 대통령실에 전달되면서 윤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됐다. 이제는 수사기관과 헌재의 시간이 된 것이다. 하지만 첫 단추 끼우는 것부터 문제가 되고 있다. 윤 대통령이 헌재의 탄핵 심판 관련 접수 통지 및 준비명령 수취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 16일부터 우편과 인편을 통해 윤 대통령에게 탄핵 심판 접수 통지와 출석요구서, 준비명령 등 서류를 보냈으나 송달에 실패했다. 관저에 보낸 우편은 경호처가 수령을 거부했고, 대통령실로 보낸 우편은 수취인이 없다는 이유로 반송됐다. 구체적으로 인편으로 총 세 차례, 우편으로는 네 차례 대통령 관저와 비서실에 전달됐지만 배달되지 않았다. 계엄포고령 1호와 계엄 관련 국무회의 회의록 등 준비명령서는 인편과 우편으로 각각 두 차례 전달됐으나 수취인 부재, 경호처 수취 거부 등으로 직접 송달에 실패했다. 과거 대통령 탄핵심판 때와 비교하면 어떨까?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통과된 것은 2016년 12월9일이다. 박 대통령 쪽은 일주일 만인 같은 달 16일 헌재에 소송위임장과 답변서를 제출했다. 201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의 경우,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5일 만에 소송위임장과 의견서가 헌재에 제출됐다. 헌재는 이에 형사소송법 제65조, 민사소송법 제187조에 따라 지난 20일 서류가 도달해 송달 효력이 발생한 것으로 간주했다고 밝혔다. 형사소송법 제65조, 민사소송법 제187조, 관련 대법원 판례를 종합하면, 정당한 사유 없이 소송서류 송달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등기우편으로 발송할 수 있고 송달의 효력은 소송서류가 송달할 곳에 도달된 때에 발생한다. 10일 동안 서류 수취 안 해 ‘버티기’ 미루다 준비기일 당일 변호인단 제출 따라서 헌재가 대통령 관저로 보낸 탄핵 심판 서류들은 지금껏 경호처의 수취 거부로 송달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헌재의 발송송달 조치에 따라 송달이 이뤄진 것으로 간주한다. 헌재 측은 이번 발송 송달을 통해 서류가 지난 20일 목적지에 도달한 것으로 보고 효력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그간 있어왔던 심판 서류 ‘송달’에 대한 법리적 논란을 해소한 것이다. 그러면서 지난 24일까지 계엄 관련 국무회의록, 증거 목록, 입증 계획 등을 제출하라고 명령했고, 27일 계획된 윤 대통령의 변론준비기일은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고지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 측은 지난 24일에도 헌재가 명령한 국무회의록과 증거 목록, 입증 계획 등을 제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27일 변론준비기일은 무리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 대외 공보 역할을 수행 중인 석동현 변호사는 지난 24일 오전 기자회견서 “형사소송서도 기소 사실을 인지한 후, 변호사를 선임하고 공소장 부본 확인하는 시간이 제법 걸린다”면서 “27일 변론준비기일은 무리”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대통령의 워딩”이라고도 했다. 이에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는 “지금까지 대통령 탄핵심판이 두 차례 있었는데 그렇게 많은 기간을 주지도 않았다”면서 “답변서를 준비할 수 있는 기간, 대리인을 선임할 수 있는 기간을 충분히 줬다”고 지적했다. 이어 “헌재는 변론준비절차를 27일로 정해서 고지했고, 대통령도 충분히 알았을 것”이라며 “ 지난 14일 담화문을 통해 윤 대통령은 스스로 계엄 선포가 정당하다고 주장하지 않았나. 법적·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탄핵 심판이든 수사든 당당하게 맞서겠다고 얘기했으면서 계속 지연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계속 (탄핵 심판)서류 송달을 거부하고 대리인 지정도 안 하면서 송달됐다고 하니까, 준비 기간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고 적반하장”이라며 “이렇게 (절차를)지연하거나 서류 송달조차 거부하는 경우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어렵사리 헌재의 탄핵심판절차가 시작됐지만 법조계에서는 윤 대통령이 헌재 심판을 늦출 변수가 남아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재 재판관 임명이 가장 큰 변수로 꼽힌다. 우선 윤 대통령이 대리인단을 확정하지 않은 것이 문제로 꼽혔다. 실제로 지난 26일까지도 오직 윤 대통령과 40년 지기라는 석동현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하는 정도로 대응하고 있을 뿐이다. 대리인단 불출석에 따른 재판 지연은 앞서 변론준비절차기일이 연기된 ‘검사 탄핵 심판’ 사건서도 나왔다. 그대로 따라하기? 지난 18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3명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 변론준비절차는 3분 만에 끝났는데, 국회 측 대리인단이 불출석했기 때문이다. 국회 측 대리인단은 지난 16일쯤 선정됐지만 선임 절차에 시간이 걸려 불출석했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헌재는 윤 대통령이 대리인단 명단을 제출하든 재판에 불출석하든 심판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헌재의 한 관계자는 “첫 변론준비기일에 윤 대통령이나 대리인이 출석하지 않으면 궐석재판으로 진행하자는 의견이 내부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궐석재판이란 피고인이 불가항력의 사고 없이 법정에 출정하지 않는 상태서 피고의 출석 없이 진행되는 재판을 말한다. 재판부가 윤 대통령에 대한 유감 표명과 함께 궐석재판 가능성을 시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헌재가 윤 대통령이 불출석한 상태서 불가피하게 궐석재판을 진행할 경우에는 늦어도 내년 1월부터 본격적인 변론이 가능할 전망이다. 노 변호사는 “윤 대통령 측에서 나오지 않거나, 나오더라도 준비 기간이 부족하다고 하면 12월30일이나 31일쯤 한번 정도 더 변론준비기일을 갖지 않을까 예상한다”며 “내년 1월부터는 본격적인 변론 절차로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변론준비기일 전날까지 변호인단 명단을 제출하지 않다가 재판 시간 4시가량 전인 지난 27일 오전 9시30분경에 헌재에 헌법재판소 출신 배보윤 변호사와 강력·특수통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배진한 변호사 등을 선임했다는 소송위임장을 제출했다. 이로 인해 궐석재판이 이뤄지지는 않을 예정이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석 변호사의 예고와 다르게 첫 변론준비기일에도 참석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최 권한대행의 헌재 재판관 임명 여부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신임 재판관 임명동의안 처리를 강행할 경우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해 부당함을 다투겠다고 예고한 가운데 임명동의안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함께 낼 것으로 관측된다. 헌재법 제65조는 ‘헌재가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받았을 때는 직권 또는 청구인의 신청에 의해 처분의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더라도 결과가 나오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가처분 신청을 병행할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3일 더불어민주당이 강행한 ‘상설특검 규칙 개정안’에 대해 권한쟁의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을 함께 신청한 전례가 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권한쟁의심판 청구가 한 대행의 임명 권한에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라 별도의 가처분 신청이 결과론적으로 유의미하진 않겠지만 시간을 끌기 위한 정치적 공세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가처분 가능성도 국민의힘이 권한쟁의심판과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고 여야의 갈등 지속으로 후보자 3인의 임명 시기가 늦어지면 윤 대통령 측에서 이를 재판 지연 전략의 빌미로 활용할 가능성도 크다. ‘9인 체제가 꾸려진 뒤에 공정한 재판을 받겠다’는 이유로 심리 연기를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석 변호사는 현재 헌재가 재판관 3명이 공석인 것을 지적하며 “6인의 불완전한 합의체”라고 말했다. 그는 “변론준비절차는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을 법률가로서 부인하지 않지만, 본격적인 심리를 6인 체제로 할 수 있느냐를 포함한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논쟁적 요소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석 변호사의 말은 헌재가 6인 체제로 본격적인 탄핵 심판 심리를 진행할 경우 이를 문제 삼아 탄핵 심판을 지연시킬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또 헌재서 본격적으로 변론이 시작된 뒤에 재판관들이 임명될 경우 윤 대통령 측에서 공판 갱신 절차를 요구하며 시간 끌기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탄핵 심판은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는데, 형사소송법은 공판 도중 재판부 구성이 바뀌면 증거조사를 다시 하는 등 갱신 절차를 밟도록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지난 26일, 당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여야가 헌법재판관 임명에 관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을 거론하면서 “여야가 합의해 안을 제출하면 즉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겠다”고 못 박았다. 헌재서 궐석재판을 진행하더라도 차후 윤 대통령 측이 재판의 정당성을 빌미로 재판은 다시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윤 대통령이 탄핵 심판 시작 전부터 지연 전략을 펼쳤다면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심판을 진행하면서 지연시키는 전략을 펼쳤다. 과거 박 전 대통령도 탄핵 심판 정국서 고의로 심리를 지연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당시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3차례 열린 변론준비기일에 ‘국회의 탄핵 사유에 객관성이 부족하다’면서 각 기관과 기업에 무더기로 사실조회를 신청하며 노골적으로 지연 전략을 펼쳤다. 이후 형사재판과 같은 엄격한 입증 책임을 요구하면서 90명에 달하는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했다. 신청이 기각돼도 거듭 신청해, 당시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당시 헌재는 “탄핵 심판 사건은 형사재판이 아니라 헌법재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박 전 대통령 측의 요구를 지적했다. 문제는 대행의 재판관 임명 여부 박처럼 무더기 증인 신청 가능성 당시 탄핵심판 주심이었던 강일원 전 재판관은 박 전 대통령 측의 추가 증인 신청에 대해 “피청구인(대통령) 측에서 여러 기관에 사실조회 신청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게 채택되면 관련 증인은 필요 없을 것 같다”며 탐탁지 않은 기색을 내비쳤다. 결국 헌재는 36명에 이르는 증인을 채택했지만 이 중 상당수가 심판정에 나오지 않아 25명만이 신문을 받았다. 재판부는 반복된 질문엔 제동을 걸며 심리에 속도를 내기도 했다. 이정미 당시 헌재소장 권한대행 입에서는 “생략”과 “효율”이라는 단어가 반복돼 나왔다. 이 권한대행은 증인신문 도중 “비효율적이다” “내용이 지엽적”이라며 박 대통령 측 신문을 여러 차례 막아서기도 했다. 그러면서 “증인이 앞서 답변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하기도 했다. 심리 중반에 들어서자 박 전 대통령 측은 ‘대리인단 전원 사퇴’ 카드를 꺼내 들 낌새를 내비치기도 했다. 새 대리인단이 선임될 때까지 심리는 멈추고, 심판이 재개되더라도 기록 검토를 위한 시간을 요청할 수 있어 심리가 늘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국회 탄핵소추위원 측은 ‘대리인단이 없어도 탄핵 심리는 계속 진행할 수 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하는 등 시간 끌기 전략 방어에 힘을 쏟았다. 박 전 대통령 측은 막판에는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출석해 최후진술 할 가능성을 보이며 최종변론기일을 늦춰달라는 요청도 했다. 그러자 헌재는 최종변론 기일은 재판부가 정한 날짜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당시 헌재는 “국정 공백과 사회적 혼란이 두 달 이상 지속되고 있다. 1년이고, 2년이고 재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12월9일에 탄핵안이 가결되고 탄핵 심판이 청구된 지 91일 만인 2017년 3월10일에 재판관 8명 전원 찬성으로 파면됐다. 윤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처럼 정식 변론서도 지연 전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일 대국민 담화서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딨느냐”고 한 데 이어 석 변호사가 연일 내란죄를 전면에 내세우며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내란죄 성립 여부에 대해 우선적으로 다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석 변호사는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당시 국회의원을 ‘체포해라’ ‘끌어내라’는 용어를 쓴 적이 없다고 하는 등 구체적 사실관계도 부인했다. 탄핵 심판서도 이 같은 주장을 펴며 구체적인 법률 위반 여부는 물론 수사기록이나 언론 보도 등이 증거로 인정되는지를 다툴 수 있다.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박 전 대통령처럼 ‘12·3 비상계엄 사태’의 관련자를 무더기로 증인 신청할 가능성도 있다. 남아있는 변수는?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으나 이를 풀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헌재에 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 법조인은 “윤 대통령이 공개 변론서 직접 입장을 밝히거나 가처분 신청을 낸다면 탄핵 심리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되면 탄핵 심판보다 가벼운 가처분에 대한 판결을 우선적으로 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관련 서류조차 안 받으며 지연 전략을 펼치고 있는 윤 대통령이 어떤 변수를 만들고 이에 대처하는지가 중요해 보인다”고 일침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