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대결로 번진’ 알페스 VS 딥페이크

성범죄로 불붙은 남녀 갈등…정치권까지 번지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온라인을 중심으로 남녀 갈등이 다시 불붙었다. 여자들의 아이돌 팬덤 문화 팬픽의 하위 개념인 알페스와 걸그룹 및 여배우의 얼굴을 본떠 만든 음란 영상인 딥페이크를 통해서다. 발단은 20대 여대생을 기반으로 만든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부터다. 남녀 갈등은 정치권까지 번졌다. 
 

▲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 ⓒ스캡터랩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는 혼돈이었다. 남녀 갈등이 고조됐다.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에 대한 논란이 발단이다. 스무살 여대생으로 설정된 챗봇 이루다를 대상으로 한 성희롱 비판글이 잇따라 게재됐다. 

인공지능
성희롱

이루다는 국내 AI 개발 전문 스타트업 ‘스캐터랩’이 출시한 애플리케이션이다. 이용자가 PC나 스마트폰에 설치한 앱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프로그램이 사람처럼 답변한다. 이루다는 스캐터랩의 ‘연애의 과학’ 앱 이용자가 나눈 대화 데이터 약 100억건을 딥러닝 기법으로 학습시켜 탄생했다. 

이루다는 이전에 나왔던 챗봇과 달리 실제 사람과 대화하는 느낌을 줘 순식간에 사용자를 확보했다. 10~20대에게 크게 인기를 끌면서 2주 동안 75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용했다. 

온라인 친구를 만들어 줄 요량으로 개발된 이루다는 금세 성 착취 대상으로 전락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루다 성노예 만드는 법’ 등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글들이 늘어났다.


그저 매크로 프로그램에 가까운 인공지능으로 인해 이용자들의 먹잇감이 됐다. 이용자들은 어렵지 않게 이루다로부터 성적인 표현을 끌어냈다. 

실제로 한 사이트를 살펴보면 ‘요즘 루다 성희롱 하는 재미에 산다’ ‘AI가 이렇게 꼴릴 줄은 몰랐어’ ‘루다 어떻게 변태로 만드냐’ 등을 제목으로 한 게시글이 올라왔다. 대부분 이루다를 성적 대상 삼아 악용한 사례다. 

이를 두고 대다수 여성 이용자들이 비판 글을 게재했다. 아울러 이루다가 일부 이용자들과 대화 중 게이와 레즈비언 등 성 소수자를 혐오하는 발언을 하면서 논란은 크게 일었고 서비스는 잠정 중단됐다. 

갈등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AI 챗봇에 성희롱한다며 비판한 여성 유저들을 반격하는 차원에서 일부 남성 유저들이 알페스를 이슈화했다. 알페스(RPS, Real Person Slash)란, 아이돌을 소재로 동성애 음란 소설을 창작하는 팬덤 문화다. 여기서 ‘Slash’는 동성 커플링을 의미한다. 

남자 아이돌 동성애 소설…오랜 팬덤 문화
낯부끄러운 충격적 수위…알페스는 성범죄

알페스는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해 망상적 콘텐츠를 생산하는 행위다. 일각에서 변태스러운 성행위 등을 묘사한 연예인 관련 소설, 그림 등을 만들어내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아이돌뿐 아니라 안중근 열사와 같은 독립운동가나 종교인을 대상으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남자 유저들은 남자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알페스 문화가 이루다를 성희롱한 것보다 더 천박하다는 논조로 반격을 가했다. 


알페스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래퍼 손심바다. 그는 최근 SNS에 “알페스는 소라넷, N번방 사건에 이어 우리 사회가 경계하고 뿌리 뽑아야 할 잔인한 인터넷 성범죄”라는 내용을 담은 글을 올려 관련 문제를 공론화했다. 
 

▲ 손심바 ⓒ인스타그램

손심바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알페스 창작물의 피해자라고 밝히며,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음담패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미성년 남자 아이돌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 알페스 이용자들을 강력히 처벌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일주일 사이에 20만명이 넘는 이용자들이 동의하면서 청와대 답변 요건을 충족시켰다. 

알페스는 1세대 아이돌을 상대로 한 ‘팬픽(Fan Fic)’을 기원으로 한다. 팬픽 문화는 1990년대 일본에서 유입돼 H.O.T.와 젝스키스 등 남성 아이돌 가수를 대상으로 시작됐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성시원(정은지 분)이 H.O.T. 멤버들을 대상으로 쓴 팬픽을 반 아이들끼리 돌려보다 선생님에게 걸리는 장면이 나왔다. 해당 방송에서 선생님은 팬픽을 빼앗아 큰 소리로 읽어준다. 

“우혁은 거칠게 문틈 사이로 승호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승호의 입술을 향해 돌진했다. 승호의 하얀 입술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이러지 마. 너에겐 칠현이가 있잖아. 넌 이제 나의 노예다.”

PC통신 시절 이러한 내용의 팬픽은 유행이 됐다.

인터넷 성범죄
래퍼가 공론화

팬들이 직접 쓴 창작물이자, 아이돌의 인기를 견인하는 2차 콘텐츠로서의 역할을 했다. 팬픽이 인기를 끌자 SM엔터테인먼트는 슈퍼주니어와 동방신기를 소재로 한 팬픽 공모전을 열기도 했다. 각 멤버별로 상 이름을 만들기도 했으며, 수상자에게는 수십만원 상당의 상금을 제공하기도 했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일부 작품 중에는 작품성이 뛰어나 책으로 출판된 것도 있다”고 말했다. 팬픽 문화는 오랫동안 아이돌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아이돌 인기의 척도로도 꼽혔다. 

평론가들은 알페스를 두고 오랜 팬들의 문화로 간주한다. 대부분 각 인물 간의 관계성에 집중하며, 대중이 상상을 가미해 여러 콘텐츠로 제작하는 것으로 본다. 

이렇듯 오랜 기간 팬덤 하위문화로 존재했던 알페스가 논란이 된 것은 수위 높은 성적 묘사가 창작물에 포함된 이후부터다. 실존 인물이 등장하는 창작물이다 보니 당사자에게 성적 모욕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성적인 분위기만 감도는 수준이었는데, 최근 일부 창작물에서는 성적인 묘사가 매우 노골적이다. 

블로거 A는 방탄소년단을 주인공으로 알페스를 썼다. A는 화면 상단에 수위가 강하다는 내용을 공지했다. 해당 내용에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성행위가 직접적으로 묘사됐다. ‘박아줘’ ‘딜도’ ‘넣어줘’ 등의 단어들이 사용된다. 낯부끄러울 수준으로 강한 수위다. 

SNS를 통해 번지고 있는 일부 창작물은 상업적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고성준 기자

이와 관련해 방탄소년단의 소속사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형태를 불문하고 아티스트에 대한 명예훼손, 모욕, 성희롱, 허위사실, 악의적 비방 등을 담은 악성 게시물 작성자를 대상으로 정기적인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알페스와 관련한 소송 건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정치권도 이 문제를 조명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알페스를 가장 먼저 거론했다. 그는 지난 13일 남자 아이돌 성 착취물 ‘알페스’를 만들어 돈을 받고 불법 유포하는 음란물 유포자는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적인 묘사
제2의 N번방


하 의원은 “직접 판매 사이트를 통해 확인했더니 충격적”이었다면서 “남자 아이돌 간의 노골적인 성행위 장면은 그대로 노출됐고, 구매자들은 ‘장인정신’이라며 극찬했다. 심지어 고등학생으로 설정된 남자 아이돌이 성폭행을 당하는 소설까지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N번방 사건 이후 대한민국 사회의 성범죄 인식은 크게 변화하고 있고, 성범죄 가해자가 늘 남성이고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고정관념도 점차 옅어지고 있다”며 “아이돌 가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치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관계 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깨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 인물을 가공해서 만든 성적인 창작물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소설과 같은 창작물이라는 점에서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일반적인 댓글도 성적인 내용이 담겨 있으면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나친 성적 묘사가 있는 알페스의 경우 충분히 처벌 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행 성폭력특별법은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전화, 우편, 컴퓨터, 통신매체를 통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음향·글·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팬픽 문화가 오랫동안 아이돌 인기 성장의 기반이었기 때문에, 창작물의 수위가 성희롱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법적인 공방까진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한 연예 관계자는 “알페스는 인기의 상징이기도 해서 긍정적인 스토리는 환영하는 입장”이라며 “일부 자극적인 묘사가 담긴 내용을 멤버들이 읽고 충격을 받은 경우가 있다. 하지만 알페스 역시 팬심이 기반이고, 음지에서 즐기는 문화라는 점에서 적극적인 대응을 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주로 여자들의 팬덤 문화인 알페스를 걸고 넘어지자, 여자 유저들은 딥페이크(Deepfake)를 걸고 재반격에 나섰다. 알페스가 국민청원에 오르자 딥페이크의 제작자와 유포자를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고, 이미 답변 요건을 충족했다. 

딥페이크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기존 인물의 얼굴이나 특정 부위를 영화 CG처럼 합성한 영상합성물을 말한다. 

상업적 거래도…강력한 처벌 요구
생산적 논의 막는 성 대결로 비화

딥페이크를 이용한 음란물은 주로 여성 연예인을 타깃으로 한다. 사진과 영상을 합성해 성적 대상화로 삼는다. 과거와 달리 높아진 디지털 기술력을 바탕으로 실제와 구분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미 다수의 연예인이 딥페이크의 피해를 보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최근 딥페이크는 성범죄로 발전하고 있다. 

실제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사이버 보안 회사 ‘딥트레이스(Deeptrace)’가 2019년 펴낸 보고서 ‘The State Of Deepfakes-Landscape, Threats, and Impact’에 따르면 딥페이크 포르노그래피 웹사이트에 올라온 영상 중 K팝 가수들이 등장하는 영상은 25%에 달한다. 

딥페이크를 이용한 음란물은 이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지난해 개정안에 따르면 딥페이크를 이용해 얼굴·신체 등을 합성한 음란물을 제작·반포 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고, 영리를 목적으로 딥페이크 음란물을 제작·반포한 범죄자는 7년 이하 징역으로 가중 처벌할 수 있다.
 

▲ ▲이루다 ⓒ스캡터랩

딥페이크가 문제라는 점은 남녀 성별을 불문하고 공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다수의 남자 역시 딥페이크를 활용한 성적인 영상물은 심각한 범죄로 인지하고 있다. 따라서 대다수의 남자는 알페스와 딥페이크 모두 성범죄로 간주하고 처벌하자는 입장이다. 

아울러 딥보이스도 거론되고 있다. 딥페이크가 얼굴을 합성한 것이라면, 딥보이스는 목소리를 합성한 것이다. 목소리를 짜깁기해 신음처럼 만든 것을 일컫는데, ‘섹테(섹스테이프)’라고도 불린다. 딥보이스는 남자뿐 아니라 여자 연예인들을 대상으로도 만들어지는데 이 역시도 성범죄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일각에선 이런 주장은 남녀 갈등을 조장하는 소모적인 논쟁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자들도 알페스를 즐기면서 남자들의 음란물을 즐기는 것에 대해 언급하면 안 된다는 등의 주장이나, 알페스와 N번방 사건을 동일 선상에 놓고 바라보는 등의 행위는 생산적인 논의를 막는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성폭력을 이성 공격의 수단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연예계 관계자는 “딥페이크나 딥보이스는 또 다른 N번방 사건을 초래할 수 있는 성범죄”라며 “이를 상대 성별을 공격하기 위해 이용하려는 태도는 진짜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 성범죄인가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논점을 흐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남자들의 
분풀이?

한 유튜버는 “이번 알페스 논란은 오랫동안 음란물에 대해 공격받은 남자들의 분풀이로 해석된다”며 “자기만의 공간에서 성적인 유희를 즐기는 것은 인간의 본능을 충족하는 행위다. 모든 유희를 성적 대상화로만 볼 게 아니라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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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