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투어 ①이천 ‘돼지보러오면돼지’

돼지 생각을 뒤집으면 되지

▲ ‘돼지보러오면돼지’에서 진행하는 돼지 퍼레이드 중 갓 태어난 새끼 돼지를 안아보는 어린이

‘돼지보러오면돼지’는 돼지를 위한 동물원이나 돼지 테마파크가 아니다. 돼지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더 나아가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교육 농장이다. 전 세계에서 독일과 우리나라에만 있는, 돼지를 주제로 꾸민 공간이다. 돼지는 어떤 동물일까? 돼지 하면 지저분하고 게으른데 맛있는 고기를 주는 동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똥오줌이 뒤섞인 축사에서 오로지 고기를 위해 6개월 동안 살다 가는 돼지를 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돼지는 수명이 10~15년이고, 잠자리와 화장실을 구분하며, 지능지수가 70~85로 개보다 훨씬 높다. 말만으로는 돼지를 제대로 알 수 없는 법. 직접 만나 확인해보자.
 

▲ 이종영 촌장이 23개 나라에서 수집한 돼지 소품과 공예품, 미술품 1300여 점을 전시한 돼지박물관 외관

돼지보러오면돼지는 지난 2011년 이종영 촌장이 조성했다. 축산학을 전공한 이 촌장은 돼지인공수정센터를 창업해 운영하다가 부상당한 수퇘지를 내보내면서 생명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프랑스의 테마 교육 농장에서 양을 키우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었으면 하는 꿈을 키웠다. 그 결실이 돼지박물관, 문화·홍보관, 공연장, 소시지체험장, 카페와 식당, 치유정원 등으로 구성된 돼지보러오면돼지다.
 

▲ 돼지 공연 중 코로 공을 굴려 골대에 넣는 까미

돼지 테마 교육 농장

돼지 공연과 소시지 만들기 체험은 연계된 프로그램으로 하루 4회씩 진행된다. 돼지 공연에서는 때랭이, 봉자, 까미, 라이언 등 미니돼지 5~6마리가 재주를 선보인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니돼지 가운데 똑똑한 녀석을 훈련시켜 공연을 진행한다. 때랭이는 관객과 함께 볼링 대결을 펼치고, 봉자는 조련사의 움직임에 따라 가랑이 사이를 오가며 관객과 뽀뽀도 한다. 까미는 재빠르게 장애물을 넘는다. 코로 공을 굴려 골대에 넣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정리하거나, 가방에 들어갔다가 숫자에 따라 가방을 탈출한다. 하이라이트는 라이언의 복권 추첨이다. 라이언이 숫자 6개를 뽑아서 알려주면 관객들은 복권 당첨의 꿈을 꾸며 이 숫자를 메모한다. 올해가 60년 만에 돌아오는 황금돼지해인 만큼 행운을 기대해보는 건 어떨까?
 

▲ 먹이통 두드리는 소리에 쏜살같이 달려온 미니돼지들

40분 남짓한 돼지 공연이 끝나면 돼지 퍼레이드가 이어진다. 먹이통을 두드리면 미니돼지 수십 마리가 쏜살같이 달려온다. 관객은 먹이를 먹는 돼지를 쓰다듬으며 교감하고, 갓 태어난 새끼 돼지를 안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진한 쌍꺼풀이 있고 사람 눈을 빼닮은 귀여운 모습에 돼지가 지저분하다는 편견은 이내 사라진다.
 

▲ 체험장에서 만든 소시지를 들어 보이는 어린이

소시지 만들기도 인기가 좋다. 길이 10~15cm 위너 소시지를 만들어보는 체험이다.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돼지고기 뒷다리살에 첨가물과 녹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육류 95% 이상의 건강한 소시지다. 손으로 반죽하면 오염되기 쉽고, 열에 약한 고기의 특성상 유수 분리 현상으로 육즙이 빠져나간다. 체험장에서 준비해 숙성시킨 반죽을 압축기에 넣고 손잡이를 돌려 케이싱에 넣으면 된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육가공식품의 현실과 올바르게 선택하는 방법도 알려줘 유익하다.
 

▲ 돼지박물관에 전시된 귀여운 돼지 소품

작은 다리를 건너면 좌우로 문화·홍보관과 돼지박물관이 있다. 문화·홍보관에는 돼지 관련 정보가 가득하다. 인간과 함께한 돼지의 역사와 의미, 고사 지낼 때 돼지머리를 올리는 이유와 돼지 저금통의 유래 등 우리 생활과 밀접한 돼지 이야기를 자세히 소개한다. 이웃한 돼지박물관에는 이종영 촌장이 20여년 동안 23개 나라를 돌며 수집한 돼지 소품과 공예품, 미술품 1300여점을 전시한다.
 

▲ 치유정원에 구제역으로 희생된 수많은 돼지의 넋을 위로하는 돈혼비가 있다.

돼지가 한낱 미물이라도 생명이란 점을 깊이 전해주는 곳이 있다. 돼지박물관과 이웃한 치유정원이다. 깔끔하게 정돈된 잔디와 하늘 높이 솟은 소나무가 인상적이다. 차분히 걷다 보면 한쪽에 ‘돈혼비(豚魂碑)’가 보인다. 검은 비석에 ‘구제역으로 희생된 수많은 돼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다’는 문구가 있다. 천사의 날개를 단 돼지 벽화도 희생된 돼지를 기리는 것이라 한다. 돼지보러오면돼지에는 줄잡아 50여마리 돼지가 수명을 다할 때까지 행복하게 산다. 치유정원 주변에는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돼지들이 고이 잠들어 있다. 돼지를 경제동물이 아니라 한 생명으로 여기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 테르메덴에서 나이트 스파를 즐기는 사람들<사진제공·테르메덴>

돼지는 어떤 동물일까?
수명 10~15년 지능 70~85

이곳 인근에 위치한 테르메덴은 수도권에서 가깝고 가족과 함께 즐기기 좋은 온천이다. 온천을 뜻하는 독일어 ‘therme’와 구약성경에 나오는 지상낙원 에덴동산에서 따온 ‘eden’을 더해 ‘온천의 지상낙원’이란 뜻을 담았다. 테르메덴은 크게 온천과 수영을 동시에 즐기고 수(水) 치료도 겸할 수 있는 지름 30m 실내바데풀, 다양한 입욕제가 포함된 노천이벤트탕과 연인탕, 정자탕, 유아노천탕 등 다양한 온천 프로그램을 갖춘 실외온천풀로 나뉜다. 동계 시즌(2018년 12월15일~2019년 3월1일) 금·토요일에는 실내바데풀이 오후 8시30분, 실외온천풀이 오후 8시까지 나이트 스파로 운영되며 EDM과 인디 밴드 공연도 펼쳐진다. 화려한 조명만큼 온천 여행의 추억이 더 깊어진다.
 

▲ 전래동화인성체험관에서 VR로 탐험하는 인성동화마을

테르메덴은 100% 천연 온천수로 38℃ 내외를 유지하는 단순천이다. 탄산수소나트륨 성분이 다량 함유돼 피로와 스트레스 해소, 피부 미용에 효과가 있다. 울창한 숲속에 마련된 전통 한옥과 카라반에서 하루를 보내면 더없는 힐링의 시간이 된다.
테르메덴과 가까운 곳에는 스마트 기술을 접목한 전래동화인성체험관이 있다. 요일에 따라 이천의 효양산 전설을 비롯해 다양한 전래 동화에서 존중과 나눔, 근면과 협동, 정직과 배려, 효 등을 배운다. 전래 동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꾸며 디지털 공간에서 만나고, VR로 인성동화마을을 탐험할 수 있어 미취학 아동이 있는 가족이라면 들러볼 만하다.
 

▲ ▲우리나라 만화의 역사와 친숙한 만화 캐릭터를 만나는 청강만화역사박물관

청강만화역사박물관은 우리나라 만화의 역사, 친숙한 만화 캐릭터를 만나는 공간이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내 청강홀 3층에 자리한 박물관은 근현대 만화의 시대적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담았다. 1909년 〈대한민보〉에 실려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가 된 이도형의 삽화부터 만화의 변천사를 시대별로 자세히 소개한다. 〈꺼벙이〉의 길창덕, 〈오성과 한음〉의 박수동, 〈로봇 찌빠〉의 신문수 등 한국 만화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도 엿볼 수 있다.
 

▲ ▲우리나라 만화의 역사와 친숙한 만화 캐릭터를 만나는 청강만화역사박물관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국동요박물관은 동요의 역사가 담긴 곳이다. 1924년 윤극영 선생의 ‘반달’이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로 탄생한 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변천해온 동요의 역사를 만난다. 옛 음악 교과서와 어린이 동요 모음 LP, MBC창작동요제 앨범 등이 전시되어 있다.
 

▲ 서희테마파크에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 장면을 표현한 조형물

서희테마파크

이천시는 80만 거란 대군을 물리친 서희가 태어나고 묻힌 고장이다. 거란이 고려에 침입했을 때 서희가 적장 소손녕과의 담판으로 강동 6주까지 얻은 일은 역사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이천시 부발읍에는 서희테마파크가 있다. 서희의 행적을 5가지 테마로 전시한 서희역사관, 서희의 영정을 모신 추모관, 서희의 삶과 행적을 조형물로 설치한 서희역사산책로 등으로 구성된다. 추모관 위에는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 장면을 표현한 조형물이 있어 당시의 역사를 되새겨볼 만하다.


<여행 정보>

당일 코스 서희테마파크→한국동요박물관→청강만화역사박물관→돼지보러오면돼지→테르메덴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서희테마파크→한국동요박물관→설봉공원(이천시립박물관, 세라피아)→예스파크(이천도자예술마을)→테르메덴 
둘째 날: 전래동화인성체험관→청강만화역사박물관→이천농업테마공원→돼지보러오면돼지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이천문화관광 http://tour.icheon.go.kr
- 돼지보러오면돼지 http://pigpark.co.kr
- 테르메덴 www.termeden.com
- 서희테마파크 www.seohee.or.kr
- 한국동요박물관 https://www.icyouth.kr:10473/index.php
- 청강만화역사박물관 http://museum.ck.ac.kr  

문의 전화
- 이천시청 문화관광과 031)645-3665
- 돼지보러오면돼지 031)641-7540
- 테르메덴 031)645-2000
- 서희테마파크 031)645-3657~8
- 한국동요박물관(서희청소년문화센터) 031)637-6591
- 청강만화역사박물관 031)639-5790
- 전래동화인성체험관 031)637-8550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이천,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15~30분 간격(06:30~22:30) 운행, 약 1시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15~25분 간격(06:10~23:00) 운행, 약 1시간20분 소요. 이천종합터미널에서 장호원행 버스 이용, 장호원터미널에서 장호원초등학교 정류장으로 이동, 27-4번 버스 하루 3회(10:00, 14:10, 18:10) 운행, 월포4리 정류장에서 도보 약 800m.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 co.kr 이천종합터미널 1688-3320

자가 운전
일죽IC삼거리에서 장호원 방면 좌회전→설성교차로에서 우측 진입, 진상미로 따라 1.2km 직진→삼거리에서 좌회전 후 직진, 고당삼거리에서 월포리 방면 좌회전→돼지보러오면돼지

숙박 정보   
- 테르메덴 캐러밴: 모가면 사실로, 031)645-2001, www.termeden.com
- 나무요일: 장호원읍 이풍로107번길, 031)641-7778, www.2000treeday.com
- 호텔더클래스: 이천시 중리천로, 031)637-3325
- 이천농업테마공원 펜션: 모가면 공원로, 031)632-6430, http://2000farmpark.or.kr

식당 정보
- 임금님쌀밥집(쌀밥정식): 신둔면 경충대로, 031)632-3646, www.imkumnim.com
- 미반(갑오징어불고기): 이천시 구만리로, 031) 631-2676
- 들밥(해죽순돌솥밥): 마장면 지산로22번길, 031)637-6040
- 청학동한정식(청학동특정식): 부발읍 무촌로, 031)631-8187

주변 볼거리
설봉공원, 세라피아, 이천시립박물관, 영월암, 예스파크, 이천농업테마공원, 이천 어재연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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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