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어릴 때 가지고 놀았던 풍선이 마약이 됐다. ‘해피벌룬’이라고 불리는 환각제가 그것이다. 해피벌룬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정부서 뒤늦게 환각제로 분류했지만 강남, 홍대의 클럽에선 아직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규제도 심하지 않아 미성년자들까지 손을 대는 실정.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지난 4월 ‘해피벌룬’을 흡입한 20대 남성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죽은 남성의 소지품 중에는 고무관과 아산화질소(N2O) 앰풀(캡슐) 120여개가 발견됐다. 17개는 이미 사용했고 104개는 사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결과 사인은 ‘미상’이었지만 당시 경찰 관계자는 “이 남성이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초반에 질식사를 의심했으나 질식사는 아닌 것으로 확인돼 아산화질소 과다 흡입을 사망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흡입하고 사망
인체에 치명적
흡입할 때 얼굴 쪽 근육이 수축하면서 웃는 모습이 된다는 의미로 ‘웃음 가스’라 불리는 아산화질소는 카페서 휘핑크림을 만들 때 사용된다고 하여 ‘휘핑가스’라고 부르기도 하며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은 병원이다.
고통을 줄이는 마취제이자 쾌락을 주는 유사 환각제로 약 200년 전부터 사용됐다. 색깔이 없지만 달콤한 맛과 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거부감도 적다.
한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부작용으로 저산소증을 비롯해 DNA손상, 태아 기형유발 등이 발견됐다”며 “일반적인 의료 환경서도 보조제 역할로 간혹 소량을 쓰기도 하지만 훨씬 부작용이 적은 마취제가 많아 사용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미국 시믹테크놀로지가 관리하는 화학물질독성영향관리원 자료에도 아산화질소의 독성이 보고돼있다.
쥐에게 13주간 간헐적으로 투여했을 때, 간 무게와 백혈구 수치의 변화가 발견됐고, 임신한 암컷 쥐에게 24시간마다 같은 양을 8∼11일간 투여했더니 쥐의 태아서 중추신경계와 심혈관계, 비뇨기계의 발달이상이 생겼다는 것 등이다.
아산화질소를 희석하지 않고 흡입하면 산소 결핍을 유발시켜 두통을 발생시키며 흡입한 사람으로 하여금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게 한다. 너무 많이 흡입하면 산소결핍증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의료계서도 “마취제에도 들어가는 가스를 일반인이 일상서 마음대로 사용하면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한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해피벌룬의 유행과 관련해 “병원서도 조심해서 쓰는 마취용 가스를 일상서 쓴다는 것은 상상이 안 간다”고 말했다.
아산화질소 과다 흡입 사망 원인으로 추정
환각과 환청…산소결핍증으로 급사할 수도
그는 아산화질소의 위험에 대해 “아산화질소는 확산이 잘 돼 산소보다 더 빨리 체내에 들어가기 때문에 산소가 체내에 흡수되는 걸 방해해 자칫 저산소증을 일으킬 수 있다. 장기간 흡입하면 피를 만드는 조혈 기능에 문제를 일으킬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그래서 병원서도 아산화진소만 단독으로 쓰지않고 의사의 감독·지시 하에 산소와 같은 비율로 환자에게 투여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8월 아산화질소를 환각물질로 지정했다. 의료용이나 식품첨가물 등 본래의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 이외에 흡입하거나 흡입 목적으로 소지, 판매, 제공하는 것이 금지됐다.
이미 톨루엔, 초산에틸, 부탄가스 등도 환각물질로 지정해 흡입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들 환각물질을 흡입하거나 흡입 용도로 판매하다가 적발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규제를 앞둔 당시 해피벌룬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판매자·구매자 모두 ‘마지막 기회’를 노렸기 때문이다. 개정안 시행 전까지 대대적인 해피벌룬 판매 근절·계도에 나서면서 판매자들이 물량 수급이 어려워지자 해피벌룬의 가격은 치솟았고 구매자들 역시 구입을 서둘렀다.
규제 전 사재기
여전히 활개
당시 해피벌룬을 구매했던 한 여성은 “판매자가 ‘이제 몇 주 지나면 못한다’며 큰 풍선을 서비스로 줬다. 가스를 들이마시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며 “마치 치과서 입 천장에 마취할 때 찌르는 느낌인데 잘못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SNS나 카카오톡 등 인터넷상에는 ‘마지막 기회다’ ‘불법으로 전환되면 환불해주겠다’는 글들이 넘쳐났다.
개정안이 발의된 지 3개월여, 아직도 강남이나 홍익대 인근 클럽 등에선 해피벌룬이 꾸준히 유행되고 있다.
몇몇 술집에선 휘핑크림을 제조하는 기구에 캡슐 형태의 아산화질소 가스를 부착하고 이를 풍선에 주입, 2000∼5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1000원 안팎의 재료비를 들여 큰 이윤을 남길 수 있어 점주들에게 인기다.
마포구의 한 술집 종업원은 “올해 초부터 해피벌룬을 팔기 시작했는데 찾아오는 손님 중 절반 이상은 이를 주문해 주말에는 재료가 모자랄 정도”라고 귀띔했다.
현재 전문가들 사이에선 신종 마약, 환각제 등이 처음 생겨나고 확산되는 장소인 클럽에 대해서도 규제의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마약 사용자뿐만 아니라 사용 장소에 대한 처벌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SNS로 습득
“단속 어렵다”
해피벌룬 역시 클럽 내 마약투여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자, 마약의 대체품으로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원서 25년 이상 거주했다는 한 주민은 “일대 클럽서 마약의 유통·판매, 혹은 이용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특히 해외 유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해 귀국할 때 가장 많이 행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포털사이트에 간단한 검색어만 입력하면 해피벌룬 재료 구입도 가능해 직접 만들어 흡입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온라인 판매상들은 캡슐형 아산화가스 12통과 주입기 1개, 풍선 10개 세트를 2만원대에 판매하고 심지어는 배달도 해 준다고 홍보하고 있다.
특히 이를 대량으로 판매하는 총판도 있어 해피벌룬은 조직적으로 거래가 되고 있었다. 이들은 판매자에게 직접 배달까지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 판매자는 해피벌룬에 대해 치과에서 쓰는 일명 웃음가스로 행복감을 줄 수 있고 인체에 무해하여 외국에서는 파티용품으로도 쓰이고 있다며 판매하고 있었다.
판매자는 중독성도 전혀 없고 어디든 바로 배달해준다며 빨리 경험해보라며 해피벌룬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해피벌룬 제작 관련 정보 접근 실태도 환각물질 지정 이전과 다를 게 없다. SNS에선 해피벌룬 제조법과 사용법을 소개하는 글부터 해피벌룬 흡입 후 모습을 ‘인증’하는 사진까지 잇따라 게재되고 있다. 또한 제조 방법을 담은 영상도 여과 없이 노출되고 있다.
이에 경찰 관계자는 “아산화질소가 화학물질로 지정되기 이전에 제작된 영상이라 단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1000원 안팎 재료비로 2000∼5000원 판매
본인인증절차 필요 없어 미성년자도 구매
지난 16일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9일 서울 송파경찰서 방이지구대에 한 통의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방 안엔 풍선 수십 개와 아산화질소 농축캡슐, 주입기 등 환각물질로 분류된 해피벌룬 제조 재료와 무언가에 취한 앳되어 보이는 남성 세 명과 여성 한 명을 발견했다. 경찰은 이들을 모두 화학물질관리법 위반 혐의로 현장 체포했다.
검찰은 그동안 아산화질소를 환각 목적으로 흡입했다가 입건된 사례는 있지만 판매 사범을 처벌해 재판에 넘긴 것은 환각 물질 지정 후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인터넷 카페를 이용해 해피벌룬을 구매할 경우 성인은 물론 10대 학생들까지 손쉽게 구매를 할 수 있어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이 인체에 치명적인 아산화질소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각종 온라인 쇼핑몰서 해피벌룬 재료 구입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SNS를 통해 웃돈만 주면 번거로운 본인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손에 넣을 수 있어 미성년자들도 구매가 가능하다.
일부 쇼핑몰이 아산화질소를 직접 흡입하면 위험하다는 경고 문구를 게시하긴 했지만 구매하는데 제한은 거의 없다.
아예 경고 문구조차 없이 판매하는 중소 쇼핑몰도 많다. “성분만 다를 뿐, 사실상 과거 환각 효과를 느끼려던 청소년들이 마음대로 본드를 샀던 때와 다름없는 구매 환경”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해피벌룬을 구입했다는 김모군은 “개당 가격이 1200원에 불과하고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해피벌룬이 젊은층을 대상으로 급속히 확산됐다”며 “환각물질에 한 번 맛을 들인 사람들이라면 해피벌룬 판매가 금지되더라도 다른 대체품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엄정히 처벌”
기준 마련 시급
검찰 관계자는 “아산화질소가 환각물질로 지정된 이후 유통방법이 은밀화, 점조직화되고 있다”며 “앞으로도 유통을 철저히 단속하고 판매 및 흡입 사범을 엄정히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위험성 홍보 강화 및 유통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한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정부와 시민단체들도 아산화질소의 잘못된 유통 및 활용을 막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감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