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 20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의 한 커피숍에서 이종배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모임(이하 고시생모임)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의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19대 대선 선거운동 기간 동안 단식, 고공 농성 등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치열한 투쟁의 흔적이었다.
이 대표는 지난 5월4일 서울 마포구 양화대교 아치 위에 올라갔다. 현장에는 ‘사법시험 폐지되면 로스쿨에 갈 수 없는 서민들은 어찌해야 합니까’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설치됐다. 고공 농성은 이 대표를 포함한 고시생모임이 쓸 수 있는 최후의 카드나 다름없었다.
2015년 7월 고시생모임이 결성된 이후 지금까지 사법시험 폐지 이후 고시생을 위한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았기에 이 대표는 다리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것.
대선 후보들을 상대로 대책 마련을 촉구했던 이 대표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 후보가 집권할 경우 유예 없이 사법시험을 존치하겠다고 약속하자 24시간 만에 농성을 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앞서 2월에는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홍은동 자택 앞에서 단식 농성을 벌였다.
이 대표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뭘까. 이 대표는 고시생모임의 4번째 대표다. 올해 12월31일을 기해 사법시험이 폐지된다면 고시생모임의 마지막 대표가 될 가능성도 높다. 35세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했다는 그의 나이는 어느덧 40세. 그의 어깨에는 사법시험 존치를 바라는 고시생모임 회원 3000명의 염원이 얹어져 있었다.
로스쿨 갈 수 없는 서민들은?
고시생 위한 뾰족한 대책 없어
“사법시험은 정말 매력적인 시험입니다. 돈이나 배경 같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시험이죠. 누구든지 실력만 있다면 합격할 수 있는 시험이라는 게 사법시험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이 대표는 사법시험의 매력으로 ‘공정함’을 꼽았다. 사법시험은 지역이나 성별, 학력 차별 없이 오로지 필기시험으로만 합격·불합격이 나뉜다. 대통령이나 재벌가의 자녀라도 시험에 붙지 못하면 법조인이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사법시험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희망의 사다리’로 여겨져 왔다.
“고시생모임 활동을 하면서 일반 시민들에게 사법시험 존치 서명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분들이 서명해주시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 ‘그래, 개천서도 용이 나야지’였습니다. 요즘 세상에 돈이나 빽 없이 오로지 실력으로만 겨룰 수 있는 시험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사법시험은 그런 의미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대표는 인터뷰 내내 사법시험의 필요성에 대해 호소했다. 그런 그도 자신의 수험생활을 되돌아보면서는 눈시울을 붉혔다. 또 마지막 사법시험에 대한 소회를 묻자 한동안 말을 잃기도 했다. 고시생모임을 1년 넘게 이끌며 사법시험 존치를 위해 뛰어다녔던 시간보다 훨씬 긴 5년이었다.
“고시생의 시간은 바깥세상과는 다르게 흘러갑니다. 사법시험 일정에 맞춰 페이스를 조절하기 때문에 3∼4년도 금방이에요. 저는 법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법률 용어조차 너무나 생소했습니다. 기본을 공부하는 데만 몇 개월이 훌쩍 지날 정도였습니다.”
이 대표는 현재 사법시험 공부를 손에서 놓다시피했다. 당장 사법시험이 없어질 위기인 터라 공부보다는 투쟁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그의 전화는 인터뷰 도중에도 쉴 새 없이 울렸다. 사법시험 존치 가능성에 대해 이 대표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어려울 것 같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밝은 표정으로 끝까지 투쟁을 하겠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로스쿨이라는 큰 흐름 자체는 인정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로스쿨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선발 정원을 300명 정도로 제한해 작은 문을 하나쯤 열어 달라는 겁니다. 제도는 많을수록 국민에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 과정서 치열하게 경쟁해 국민들이 더 좋은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올바른 방향이 아닐까요?”
“흔히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룬다고들 합니다. 저는 법조인도 사람의 생명과 재산에 직결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건 실력 있고 올바른 법조인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저는 비록 사법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지만 제 후배들이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서 희망의 사다리를 빼앗고 싶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