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강 ‘우병우 라인’ 추적

권력 중심에 선 ‘왕수석 사람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우병우 민정수석은 청와대 ‘행동대장’이다. 내 몸처럼 움직여줄 행동대원이 필요했을 터. 우 수석은 일명 ‘우병우사단’을 검찰·법무부·국정원 등의 주요 요직에 앉혔다. 이번 우 수석의 스캔들은 행동대원인 진경준 검사장에게 문제가 생기면서 시작됐다. 우 수석은 진경준을 검사장으로 승진시켜준 장본인이나 마찬가지다. 결과는 인과응보였다.

지난해 단행된 우병우(49) 민정수석의 승진은 파격적이었다. 우 수석은 2014년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는데, 약 8개월 만에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진급했다. 게다가 우 수석은 40대 최연소 민정수석이었다.

모르쇠로 일관
언제까지 버틸까

우 수석 진급은 검찰의 기수문화 파괴라는 진통을 겪으며 여러 우려를 낳았다, 사법연수원 19기인 우 수석이 5기수나 선배인 김진태(14기, 65) 당시 검찰총장을 ‘핸들링’하는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나이나 기수로 봐도 김 전 총장은 우 수석의 대선배다(우 수석은 김수남 검찰총장 후배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민정수석과 검찰총장간에 마찰이 빚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서초동 일대에 파다했다. 민정수석은 청와대를 등에 업고 검찰, 경찰, 국정원 등을 아우르며 일을 한다. 사실상 민정수석이 검찰총장을 지휘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수문화가 철저한 검찰에서 자신보다 한참 어린 후배한테 지시를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게 검사들의 자존심이다. 이 때문에 많은 검사들이 제때 진급하지 못하면 검복을 벗는다.


지난해 1월 그가 민정수석이 되고 ‘왕실장’으로 불리던 김기춘 비서실장이 퇴진하면서 “왕수석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그는 청와대 인사와 함께 단행된 검찰 간부 인사에 자기사람을 꽂아넣는 등 실세로서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지난해 2월17일 법무부는 검찰 중간간부 인사를 발표했다. 이때 일명 우병우사단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주요 보직을 차지했다.

청와대 민정라인이 재편된 이후 나온 인사라 논란이 더했다. 우 수석 내정 이후 기존의 민정라인은 마치 사전기획이라도 한 듯 모조리 사퇴했고 이후 대부분은 우 수석과 같은 TK(대구·경북) 검사 출신들로 채워졌다.

청와대 등에 업고 경·검·국 주물럭
서울대 법학 동창들 법조계 쥐락펴락

공직기강비서관에 우 수석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유일준 평택지청장이 임명됐고, 민정비서관에는 TK 출신 권정훈 부산지검 형사1부장이 임명됐다. 그는 검찰 내에서 엘리트코스를 밟고 법무부의 직접 추천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검찰 내 우병우사단의 약진으로 눈여겨볼 부분은 결국 우 수석과 김 전 총장의 관계였다. 우 수석이 검찰 내 영향력을 넓히게 되면 총장과의 완력 다툼은 불가피했다. 검사장급 인사는 김 전 총장이 챙겼지만, 부장급 이하 인사는 우 수석 몫이었다.

김 전 총장으로 대표되는 검찰과 우 수석으로 대표되는 청와대 간 팽팽한 샅바싸움의 결과라는 시각이 많다. 당초 청와대서는 김주현 법무부 검찰국장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하려 했는데 김 전 총장이 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김 전 총장의 신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박성재 대구고검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됐다.


최연소 민정수석
정의감 불탔는데…

대검 중수부 폐지와 더불어 권력층 수사를 도맡게 된 서울중앙지검장의 위상은 막강하다. 중앙지검장은 정권 실세들과 ‘직통’하는 자리로 알려진다. 중앙지검장과 청와대의 핫라인이 구축되면 검찰총장은 자칫 고립될 소지가 다분하다. 김 전 총장이 이 자리에 특히 신경 쓴 이유이기도 하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전 중앙지검장 자리는 청와대가 김 총장에게 양보한 모양새지만, 그외 주요 보직 인사에서는 우병우사단이 대거 약진했다. 중앙지검장 자리를 양보한 탓에 더욱 뚜렷한 ‘청와대 맞춤식’ 인사가 단행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권력층 인사의 사정을 주도하는 자리가 모두 우 수석과 가까운 이들로 채워졌다.

최윤수 전 부산고검 차장(사법연수원 22기)이 올해 2월 국정원 제 2차장에 발탁된 건 우 수석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최윤수 당시 대검 검찰연구관이 특수수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에 임명된 데 이어 올해 2월 부산고검 차장에서 국정원 2차장으로 옮겨간 데에도 우 수석의 입김이 개입된 것이란 시각이 있다. 물론 최 차장은 “세간의 오해다. 그분과 그렇게 친분이 있지 않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해외자원 개발 비리, 포스코, 농협, KT&G 비리 등 전 정권 인사 관련 사건이 유독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용두사미에 그치면서 ‘청와대 하명수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런데도 최 차장이 지난 2월5일 단행된 국정원 인사에서 전격 발탁되면서 절친인 우 수석의 인사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당시 국정원 인사에 떠도는 소문이 있었다. 청와대가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에 최 차장을 앉히려고 했다는 것. 이는 당시 이병호 국정원장이 청와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무산됐다. 하지만 그 대신 최 차장이 2차장으로 갔다는 것. 한마디로 국정원은 기획조정실장 자리를 지키고 2차장 자리를 내준 격이었다. 2차장은 국내정보를 담당한다. 우 수석의 절친으로 알려진 최 차장이 가면서 ‘청와대가 신뢰할 수 있는 인물’로 교체한 셈이다.

이어 지난해 1월 특수1부장으로 발령났던 임관혁 부산지검 특수부장도 우 수석이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장 재직 시절 평검사로 직접 우 수석을 ‘모셨던’ 전력이 있다. 임 부장은 서울중앙지검 출신 부장검사는 지방으로 보낸다는 김진태 전 총장의 ‘하방 인사’ 원칙마저 무력화시킨 인사 발령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 인사의 배경으로 김 전 총장의 하방인사 원칙보다는 우 수석 등 청와대에서 직접 수사에 개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때문에 우 수석 뜻대로 인사이동이 이뤄졌다는 얘기도 있었다.

기수 선후배 뭉쳐
주변인 고공행진

특수2부장에 임명됐던 조상준 전 대검 수사기획과장도 우 수석이 대구지검 특수부장을 맡았을 때 함께 일했다. 대검 중수부의 역할을 일부 물려받은 반부패부장에는 우 수석이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을 지낼 때 중앙지검 3차장으로 함께 호흡을 맞춰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윤갑근 대검 강력부장이 올랐다.

결과적으로 우 수석은 법무부나 대검을 통하지 않고도 서울중앙지검의 수사상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파악하는 것은 물론 필요할 경우 관여할 수 있는 직접적인 ‘통로’를 확보했던 셈이다.
 

청와대 파견 경력이 있는 검사들도 당시 인사에서 요직을 맡았다. 이선욱 법무부 형사기획과장은 검찰 인사와 예산을 담당하는 검찰과장에 임명됐다. 이준식 법무부 상사법무과장도 각급 검찰청서 진행되는 사건을 보고받고 조율하는 법무부 형사기획과장에 임명됐다. 법무부 검찰과장과 형사기획과장은 과거 ‘검찰 1·2과장’으로 불리던 법무·검찰 기획라인의 최고 요직으로 꼽힌다.


지난해 12월, 검찰 인사도 우 수석의 힘이 확인된 인사였다는 평가가 많았다. 특히 자신이 데리고 있던 권정훈 당시 대통령 민정수석이 법무부 인권국장에 앉았는데, 법무부 인권국장은 검사장 승진 1순위로 꼽히는 핵심 보직이다. 당초 이 자리는 검사장 승진 대상 기수인 23기가 유력하게 거론됐다.

이영상 민정수석실 행정관은 검찰 수사첩보를 총괄하는 대검 범죄정보1담당관 자리를 꿰찼다. 각종 범죄첩보와 정보를 수집해 검찰총장에게 보고하는 이 자리는 대검 내에서도 핵심 보직으로 꼽힌다.

김진모 서울남부지검장도 우 수석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김 지검장은 지난해 말 인사 당시 마지막까지 유력한 서울중앙지검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최 차장과 김 지검장 모두 우 수석과 서울대 법대 84학번 동기다. 법조계에선 검찰과 법무부 최고 수뇌부 인사도 우 수석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이례적인 인사 뒤엔…”
청 입성 후 개입 의혹

우 수석은 진경준 검사와도 절친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상 진 검사의 검사장 승진을 우 수석이 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검사장 승진은 검찰인사위원회서 결정하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인사검증을 통해 이뤄진다.

우 수석은 지난해 2월 초 이뤄진 검사장 인사를 주도했다. 당시 검사장급 승진자 9명 중 1명에 진 검사가 있었다. 우 수석과 진 검사는 서울대 법대 2년 선후배로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우 수석이 거쳐온 요직을 진 검사가 연이어 맡기도 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진 검사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근무했던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청와대 인사) 검증 실무팀에서는 (진 검사가 보유한 넥슨 주식) 부분에 대해 ‘부적절한 거 아니냐’는 실무 의견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무서운 입김
국정 전반에?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우 수석 처의 부동산을 넥슨코리아가 1000억원대에 매입했다는 의혹 보도와 관련 “정부의 권력기관 도처에 널린 우병우사단이 먼저 제거돼야 한다는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권력의 정점에서 인사와 사정, 모든 권력을 전횡했고 심지어 비서실장까지 무력화시킨 장본인인 우 수석 문제는 언젠가 터질 것이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또’검찰 개혁안
수십년째 약속만…

진경준 검사장이 구속되면서 더 이상 검찰 스스로 달라지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의 사과 및 개혁 약속은 역대 주요 검사 비위 사건마다 ‘판박이’처럼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자체 개혁 약속은 번번이 유야무야됐다.

2010년 스폰서검사 사건이 벌어졌을 때 김준규 검찰총장은 전국 검사 화상회의에서 “검찰이 국민의 심려를 끼친 데 대해 마음속 깊이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 “검찰권 행사에 대해 국민의 통제를 받겠다”고 말했다.

2012년 김광준 부장검사(55) 뇌물수수 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한상대 검찰총장은 “환골탈태의 자세로 강력한 감찰체제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이 시기 진 검사장의 ‘뇌물 주식·제네시스’가 적발되기는커녕 진 검사장은 대한항공 등에서 처남 회사 앞으로 130억원대 일감을 얻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 검찰의 폐쇄적 체제가 오히려 강화됐다는 지적이 많다.

2006년 법조브로커 김홍수씨의 폭로로 촉발된 법조비리 사건 때도 대검은 “법조브로커 리스트를 작성·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를 둘러싼 전관 변호사와 브로커들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검찰의 10년 전 약속이 빈말로 확인됐다. 법무부가 1999년 법조 비리 근절 과제로 발표했던 ‘공직자비리조사처’도 17년째 관련 법안 발의와 폐기가 반복되고 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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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