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가 장손 '사인 미스터리'

‘어떻게 왜 죽었나’

[일요시사 경제팀] 김성수 기자 = 재벌가엔 유독 단명한 사람들이 많다. 스트레스가 심해서일까.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한 로열패밀리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얼마 전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대성그룹 장손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던 중 심장마비로 숨졌습니다.” 대성 측이 밝힌 고 김정한 전 라파바이오 사장의 사인이다. 에너지 전문그룹 대성에 따르면 김영대 회장의 장남 김 전 사장은 지난 5월1일 오전 사무실에서 사망했다. 향년 44세.

일요일 사무실서…

대성은 “(김 전 사장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언론은 이를 그대로 알렸고, 세간의 시선은 한창 일할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한 안타까운 죽음으로 바라봤다. 한 직원은 “(김 전 사장이) 일요일 휴일날 업무 중 돌연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남일 같지 않아 마음이 아팠다”며 “사내엔 충격과 애도 분위기가 한동안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두달 가까이 지난 최근에 한 언론을 통해 깜짝 놀랄만한 증언이 나왔다. 김 전 사장이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그가 사망한 현장에 출동했던 119 관계자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일요일 낮 1시가 안 된 시간으로 기억하는데 119 신고가 들어왔다. 한 남성이 인근 대형빌딩 14층에서 목을 맨 채 숨져있다는 응급 신고 전화였다. (현장에 도착하니) 남성은 이미 숨져있었다. 가족도 현장에 있었던 것 같다.”


기사는 이니셜로 작성됐지만, 알 만한 사람이면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김 전 사장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회사 측도 김 전 사장의 얘기가 맞다고 인정했다. 확인 취재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다만 사인에 대해선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지 않았다.

대성 관계자는 “(자살했다는 보도가) 사실인지 아닌지 모른다. 그냥 심장마비로만 알고 있다”며 “정확한 사인 확인을 못하고 있다. (사망과 관련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렇다면 경찰은 알고 있지 않을까. 경찰은 공식 답변을 거부했다. 관할경찰서 관계자는 “(김 전 사장의 사망) 관련 사건이 있는지 확인해 줄 수 없다”며 “사건화됐다고 해도 개인 정보보호 차원에서 외부에 알려줄 수 없다”고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김 전 사장을 죽음으로 몰고 간 정확한 사인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만약 김 전 사장이 자살을 했다면 생기는 의문점 하나.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느냐다. 먼저 그의 처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전 사장은 대성가 장손이다. 대성그룹 창업주인 고 김수근 명예회장의 맏손자다. 미국 루이스앤클락 대학(물리학 전공)과 런던대학(경영학)을 졸업하고 2002년 대성산업 연구개발실 이사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기계사업부 상무, 부사장 등을 거쳐 사장에 올랐지만 지난해 4월 물러났다. 대신 그의 동생(김 회장의 3남) 신한씨가 사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김영대 회장의 장남 사망…돌연사? 자살?
“심장마비” 밝혔는데 놀랄만한 증언 나와

같은 해 5월엔 김 전 사장이 맡고 있는 라파바이오, 대성엘앤에이, 제이헨, 포디알에스 등 4개 회사가 그룹에서 계열분리됐다. 이 때문에 김 전 사장이 후계구도에서 밀려났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 회장의 차남 인한씨는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경영엔 참여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김 전 사장은) 잘나가다 갑자기 동생에게 밀려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 전 사장이 그룹에서 떼간 라파바이오도 신통치 않았다. 경영난이 심각했다. 무리하게 사세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치과 임플란트 판매·유통 등을 했던 라파바이오는 매출이 2004년 64억원에서 지난해 42억원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그나마 흑자였던 영업이익은 77억원의 적자를 냈다. 순이익의 경우 -49억원에서 -128억원으로 마이너스 폭이 커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구 소재 생산공장 건물과 토지에 가압류 딱지가 붙었다. 지자체, 세무당국 등 사실상 채권자들의 손에 넘어간 것. 급기야 김 전 사장은 직원들이 제기한 임금체불 송사에까지 휘말리게 됐다.

라파바이오 퇴직자들은 지난해 “급여와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며 김 전 사장을 고소하고 민사소송을 냈다. 기소된 뒤 법정에서 검찰의 구형을 받은 상태였던 김 전 사장은 상당히 힘들어했다는 후문이다.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김 전 사장이 경제적 압박에 시달렸는데도 왜 돈 많은 집안의 도움이 없었냐는 것이다.

김 전 사장의 부친 김 회장은 재계에서 의리 있기로 소문나 있다. 30∼40년 넘게 비서와 운전기사를 잘 챙긴 오너로도 유명하다. 서로를 스스럼없이 ‘친구’라 소개할 정도.

반면 형제들과는 남남처럼 지내고 있다. 집안 장남인 그를 비롯해 차남 김영민 회장, 3남 김영훈 회장 등 대성가 삼형제는 김 명예회장이 작고한 2001년 지분 다툼을 벌인 뒤 등을 돌려 아직까지 발길을 끊고 있다. 이들은 2006년 모친 고 여귀옥씨가 타계하자 유산상속을 놓고 다시 갈등을 빚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삼형제는 유산정리에 합의했지만, ‘대성’ 사명을 두고 또 법적 분쟁을 벌이는 등 이후 전혀 왕래가 없다. 세 회장은 각각 대성산업, 서울도시가스, 대성그룹을 독자경영하고 있지만, 법적으론 계열분리가 되지 않은 상태다.

“스트레스 많아”

김 전 사장의 고모는 엠씨엠(MCM) 브랜드로 잘 알려진 성주그룹의 김성주 회장이다. 김 회장은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 합류,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역임했다. 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돼 현재 대한적십자사 총재도 맡고 있다.
 

<kimss@ilyosisa.co.kr>

 

[대성은?]


에너지 전문그룹 대성은 1947년 설립된 대성산업공사가 모태다. 1970년대 연탄 등 기초연료 산업을 시작으로 1980년대 전자 및 기계사업과 도시가스 산업, 1990년대 해외유전 및 가스전 개발사업, 2000년대 열병합발전사업에 뛰어들었다. 환경사업, 건설업, 유통업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2011년엔 호텔·문화사업을 아우르는 복합건물인 디큐브시티를 건설했다.

계열사는 그룹의 중추 역할을 하는 대성합동지주를 비롯해 대성산업, 대성쎌틱, 대성계전, 대성히트펌프, 에스필, 대성아트센터, 한국캠브리지필터, 대성나찌유압공업, 대성하이드로릭스 등이 있다. 대성산업, 대성산업가스, 대성계전, 한국캠브리지필터, 대성씨엔에스 등을 지배하는 대성합동지주의 최대주주는 김영대 회장(46.81%). 김 회장의 차남 인한씨와 3남 신한씨는 각각 0.51%, 0.48%를 갖고 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장남 정한씨는 지분이 없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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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곽종근 공소장에 담긴 윤 ‘2차 계엄’ 정황

김용현·곽종근 공소장에 담긴 윤 ‘2차 계엄’ 정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2·3 불법 계엄이 국회서 해제된 지 한 달이 지났다. 검찰은 사건에 연루된 군 수뇌부들을 연달아 재판에 넘기는 과정서 2차 계엄 시도 정황을 포착했다. 구속 기소된 일부 장성들이 지휘관들에게 복귀가 아닌 대기 명령을 내린 게 핵심이다. 정보사도 빠지지 않았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계엄에 개입된 정보사는 노상원 전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주도면밀히 움직였다. 검찰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국방부 조사본부가 연합된 공조수사본부(이하 공조본)보다 발 빠르게 움직였다. 수사 한 달여 만에 군 수뇌부를 줄기소 처리했다. 검찰은 내란 수괴(우두머리)로 윤석열 대통령을 지목했다. 군 수뇌부들의 공소장에는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의 역할이 적나라하게 적시돼있었다. 정보사 역할 적나라 적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시작으로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을 구속 기소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이들의 공소장엔 윤 대통령이 150회 이상 등장하고, 기소된 당사자보다도 훨씬 많이 언급된다.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윤 대통령 공소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은 윤 대통령이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고 봤다. 또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이 지난해 3월부터 비상계엄을 염두에 뒀고, 계엄 당일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라고 지시한 정황도 포착됐다. 이 외에도 검찰은 각 사령관들을 포함한 군 관계자들을 조사해 계엄 당일 윤 대통령이 비화폰(군 보안폰)으로 직접 전화하면서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안으로 들어가서 (국회의원들을)다 끄집어내라”고 독촉하는 등 국회 봉쇄를 직접 지시한 사실을 밝혀냈다. 가장 먼저 윤 대통령에게 피의자 출석 통보를 한 것은 검찰이었다. 검찰은 지난달 15일 윤 대통령에게 1차 출석 요청을 했지만, 윤 대통령 측은 “변호인단 구성이 완료되지 않았다”며 불출석했다. 검찰은 윤 대통령에 대한 2차 출석 통보를 한 이후 수사권 논란이 커지고 공수처가 이첩을 요구하자 윤 대통령 사건을 공수처에 넘겼다. 경찰은 지난달 4일 윤 대통령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한 직후 특별수사단(단장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을 만들고, 공수처, 국방부 조사본부와 함께 공조본을 꾸려 동시다발적으로 수사를 진행해 왔다. 계엄 전 이른바 ‘롯데리아 회동’을 갖고 계엄을 사전 기획한 혐의를 받는 ‘계엄의 배후’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1차 수사도 마무리한 상태다. 특수단이 최근까지 입건한 피의자는 대통령실 및 당정 관계자 25명과 군 관계자 19명, 경찰 5명 등 총 49명에 달한다. 검, 한 달 만에 군 핵심 수뇌부 기소 짙은 플랜 B 논의 정황 “지휘부 대기” 그러나 정작 이번 사태의 ‘정점’인 윤 대통령 사건을 맡은 공수처의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지난 7일까지 공수처가 신병을 확보한 피의자는 문 전 사령관 1명뿐이다. 공수처는 검찰이 이미 두 차례 출석을 통보했던 윤 대통령에게 추가로 3차례나 더 출석을 통보한 뒤 체포영장을 발부받았지만, 지난 3일 집행 5시간반 만에 철수하며 “수사력과 수사 의지가 모두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체포영장 집행을 일임하려다가 국수본이 “위법 소지가 있다”고 반발하자 철회하기도 했다. 검찰이 윤 대통령과 함께 이첩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수사도 제자리걸음 수준인 건 마찬가지다. 현 형사소송법과 공수처법 등을 따져보면 검찰은 기소권이 있으나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 공수처도 내란죄 수사권이 없어 직권남용 관련 범죄로 내란 혐의를 입건해 윤 대통령을 수사 중이다. 현행법상 내란죄 수사권이 있는 경찰은 윤 대통령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하고 체포영장 집행 등에 협력 중이다. 특히 공수처는 대통령을 기소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을 체포하더라도 기소하려면 검찰에 다시 넘겨야 한다. 애초부터 검찰과 공수처, 경찰이 합동수사본부를 꾸렸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대검은 공수처에 합동수사를 3차례 제안했지만,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사건 이첩 강행 규정을 들며 거부했고, 결국 검찰은 윤 대통령 사건을 이첩했다. 검찰은 윤 대통령이 국회의 계엄 해제요구안 가결 이후에도 ‘2번, 3번 계엄 선포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음을 증거를 통해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윤 대통령이 2차 계엄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은 계엄 직후부터 제기돼왔다. 국회서 계엄 해제요구안이 통과된 지 3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상계엄을 해제했기 때문이다. 정점 수사 지지부진 박 총장은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이 설치된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을 방문했다고 박 총장이 국회서 증언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부승찬 의원은 당시 윤 대통령이 ‘2차 계엄이라도 해서 국회를 접수하라’는 투로 이야기했고, 그래서 7공수여단과 13공수여단이 새벽 3시 반 복귀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대기 상태를 유지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계엄 해제 당일인 지난달 4일 오후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 박성재 법무부 장관, 이완규 법제처장, 이 장관 등이 대통령 안가(안전가옥)서 모임을 한 것을 두고도 2차 계엄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검찰 관계자는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해 “당연히 의혹이 있는 부분은 수사할 예정이고 일부 수사 중이다. 꼭 입증해야 하는 건 실행 행위가 있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박 총장이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 후에도 육군본부에 있던 참모진들을 계엄사령부로 출동하도록 지시한 정황도 2차 계엄 의혹의 중요한 근거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박 총장은 지난달 4일 새벽 3시3분 참모진들에게 계엄사령부가 있는 서울 용산 합동참모본부로 모이도록 지시했다. 당시 지시를 내린 시각은 국회의 비상계엄 해체요구안이 가결된 이후였다. 공소장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 의결 후 즉각 비상계엄 해제를 발표하지 않고, 계엄 다음날 오전 1시16분~1시47분경 합동참모본부 지하에 위치한 결심지원실에 모여 관련 논의를 계속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김 전 장관은 이날 오전 2시13분에 박 총장에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 재차 투입 여부를 물었고 박 총장은 어렵다는 취지의 답변을 남겼다. 박 총장이 계엄사령관이 된 이후 계엄사령부 구성 및 소집을 위해 어떤 지시를 했는지 밝혀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군내 별동대 꾸리려 시도 노 전 사령관은 계엄 선포 직후 군내 자신이 지휘하는 별동대를 꾸리려 했다. 경찰은 수사 2단이 부정선거 의혹을 확신하는 노 전 사령관 등이 선관위 장악을 위해 구상한 조직으로 보고 있다. 지난 6일 경찰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전·현직 군 관계자들과 지난해 11월1일과 3일 햄버거집서 두 차례 만나 수사 2단 설치를 논의했다. 수사 2단은 계엄 발령 이후 구성되는 합동수사본부와 별도로 운영되는 조직이었다. 구체적 임무는 선관위 서버 확보였다. 경찰은 지난달 12일 국방부 압수수색을 통해 수사 2단과 관련된 일반명령 문건과 이에 근거해 작성된 인사 발령 공문을 확보했다. 수사 2단은 3개의 부로 나뉘는데, 단장부터 부대원까지 총 60여명이 인사 발령 명단에 포함됐다. 수사2단은 1·2·3대로 나뉜다. 계엄 사태에 연루돼 업무가 배제된 김모 대령이 1대장을, 노 전 사령관과 햄버거집 회동을 한 정보사 김·정 대령이 각각 2·3대장을 맡는 것으로 계획됐다. 이 조직은 예비역인 노 전 사령관, 국방부 조사본부 출신으로 예비역인 김용군 전 대령이 실질적으로 지휘하려 했다. 이들의 주임무는 선관위 서버 탈취와 선관위 직원 납치·감금·심문이었다. 정 대령은 앞선 조사에서 선관위 장악을 위해 직원들을 케이블타이, 두건, 마스크 등을 사용해 무력 통제한 뒤 특정 장소에 감금하는 방안을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등과 함께 준비했다고 진술했다. 국무회의 의결 전 군 간부 ‘계엄사 이동’ 지시 노, 해제되자 분노 “‘강행해’ 언성 높이기도”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준비 과정서 핵심적 역할을 해 왔다는 증거는 계속 나오고 있다. 그는 계엄 직전, 김 전 장관과 국방부 공관서 단둘이 만나 계엄을 논의했다. 또 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정 대령 등과 함께한 자리서 선관위 장악에 북파공작부대(HID) 대원 등을 ‘체포조’로 동원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계엄 당일인 지난달 3일 노 전 사령관은 구삼회 제2기갑여단장, 김 전 대령 등과 2차 햄버거 회동을 열었다. 제2기갑여단은 장갑차와 전차 등을 운용하는 부대다. 구 여단장은 계엄 당일 경기 성남시 판교 정보사 100여단 사무실서 노 전 사령관 지시로 대기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노 전 사령관 등이 계엄 당시 탱크부대를 동원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들의 계엄 논의가 그 이전부터 이뤄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정 대령은 경찰 조사에서 지난달 중순쯤 “노 전 사령관이 ‘공작 잘하는 인원 15명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의 존재는 경찰이 김 전 장관의 통화 내용을 분석하던 중 드러났다. 김 전 장관과 노 전 사령관의 잦은 통화 기록에 의심을 품은 경찰은 결국 ‘계엄 비선 기획’의 실마리를 잡았다. 노 전 사령관은 1989년 김 전 장관이 수도방위사령부 제55경비대대 작전과장(소령)일 때 같은 부대서 대위로 근무했다. 20여년 전 김 전 장관이 박홍렬 전 육군참모총장의 비서실장이었을 당시 노 전 사령관은 국가정보원에 파견 근무 중이었다. 이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대북 관련 첩보를 제공하면서 수시로 통화하는 인연을 키웠다. 노 전 사령관이 박근혜정부 시절 경호실 군사관리관을 할 때, 경호실장이 박 전 총장이었고, 김 전 장관은 대통령 경호 업무와 밀접한 수도방위사령관이었다. 김 전 장관이 지난해 9월 국방부 장관이 된 이후 인사와 작전에까지 그의 입김이 미쳤다는 게 복수의 정보사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공작조 15명 보고도 지시 정보사 안팎에서는 윤 대통령이 국회의 계엄 해제안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노 전 사령관도 타 사령관들과 마찬가지로 부하들을 대기시켰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군 소식통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국회에 의해 계엄이 해제되자 노 전 사령관이 크게 분노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선관위 직원들을 겁박한 이후 다른 장소로 옮기지 못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강행하라’면서 언성을 높였다는 얘기가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