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이란> 같은 일이 현실에서도 벌어졌다. 위장결혼한 남성과 중국여성의 진정한 사랑을 법원이 인정한 것. 법원은 위장결혼 알선업체를 통해 만났지만 4년간 함께 살며 정을 쌓아온 40대 한국남성과 30대 중국 여성에 대해 1·2심 재판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시작은 다소 문제가 있었지만 만남의 과정을 거치면서 실제 사랑하게 된 부부의 마음을 인정해 준 것. 영화 같은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위장결혼 알선업체 통해 만났지만 4년간 결혼 생활
원심 무죄 판결 이어 항소심도 두 사람의 결혼 인정
결혼 알선업체를 통해 위장결혼을 했지만 실제 부부로 4년간 살아온 이들에게 1심과 2심 재판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청주지법 형사항소2부(김연하 부장판사)는 지난달 31일 위장결혼 혐의(불실기재 공전자기록 등 행사)로 불구속 기소된 김모(48)씨와 중국인 여성 여모(34·여)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위장결혼 그 후…
김씨와 여씨의 만남은 2006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한 번의 결혼 실패를 맛 본 김씨는 그 즈음 전처의 재혼 소식을 듣고 방황하고 있었다.
이미 남남이 돼버린 사이지만 전처의 재혼 소식은 김씨의 마음을 공허하게 만들었고, 하릴없이 거리를 걷던 김씨는 위장결혼 알선업자를 찾아갔다.
위장결혼으로 돈도 벌고, 겉으로 보면 재혼을 하는 모양새로 전처에게 자신이 느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알선업자가 대 준 돈으로 중국으로 날아간 김씨는 그 곳에서 14살 연하의 여씨를 만나고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온 김씨는 자신의 감정에 이상이 있음을 느꼈다. 중국에서 여씨를 단 한 번 봤을 뿐인데 여씨가 머릿속을 계속 맴돌고 있었던 것.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판단한 김씨는 한 달 뒤 여씨를 만나기 위해 자비를 들여 중국으로 향했다.
위장결혼의 경우, 단 한 차례 중국 방문이 과정의 끝인 것을 생각했을 때 김씨가 자비를 들여 중국을 다시 찾은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중국을 다시 찾은 김씨는 여씨의 부모와 인사를 나누기도 했으며, 이후 여씨가 한국으로 입국한 뒤 현재까지 4년간 함께 살고 있다.
김씨는 알선업자로부터 받은 돈은 물론 여씨로부터 혼인신고 대가로 받은 돈을 모두 돌려줬고, 자신의 여동생과 딸에게도 재혼 소식을 알렸다.
이 같은 정황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결혼할 의사도 없이 허위로 혼인신고를 했다”면서 김씨와 여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기소된 이들의 1·2심 재판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먼저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위장결혼 알선업자를 통해 만났다는 사실만 가지고는 진정한 혼인의사 없이 혼인신고를 했다고 확신하기 부족하다”면서 “허위 혼인신고를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지난달 31일 항소심 재판부는 김씨가 중국을 재차 방문해 혼인의 뜻을 밝혔고, 혼인대가로 받은 돈을 돌려준 점, 자신의 딸에게도 혼인 사실을 알린 점 등을 언급한 뒤 “사건 기록에 비춰 면밀히 살펴보면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수긍이 가며 판결에 위법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 김씨와 여씨의 사랑을 인정했다.
국제결혼이 매년 증가하면서 김씨 부부와 같은 사연의 국제커플 또한 매년 존재했다. 때로는 한국 남성에 의해 때로는 중국 여성의 필요에 의해 위장결혼을 했다가 결국 정이 들고, 사랑에 빠지면서 실제 부부의 연을 맺는 커플이 은근히 존재하는 것.
또 이들 부부가 법정에서 유·무죄 공방을 벌이는 것도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위장결혼, 사기결혼의 범람을 막기 위해 매년 검찰 등 관계기관에서 일시 단속을 펼치거나 제보를 받는 통에 알선업자를 통해 결혼을 한 커플들이 기소당해 법정에 서는 경우가 많은 이유에서다. 지난해와 2008년에도 이와 비슷한 판결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2009년 9월, 허위 혼인신고를 한 혐의로 기소된 박모(53)씨와 부인 최모(46·여)씨는 서울동부지법 형사1부로부터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 받았다.
박씨는 2004년 위장결혼 브로커로부터 400만원을 받고 중국인 여자와 위장결혼을 해 줄 것을 권유 받고 같은 해 3월 중국으로 향했다. 하지만 박씨는 최씨를 직접 만난 뒤 사랑을 느꼈고, 망설임 끝에 6월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현지에서 혼인신고를 마쳤다.
2005년 1월에는 최씨가 한국으로 들어와 경기도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며 사랑을 키웠다. 중국인 아내 최씨는 박씨와 그의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의 돌잔치에도 엄마 자격으로 참석하는 등 실제 부부로서 생활을 했고, 이들은 양가에서 모두 인정받는 부부였다.
1심 재판부는 박씨가 결혼할 당시 혼인의사가 없었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내렸지만, 박씨는 두 번째 중국 방문에 앞서 위장결혼 브로커에게 실제 결혼할 마음이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그 결과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의 유죄 판결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2008년 역시 같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부산 부부의 사연은 더욱 애절하다.
중국 지린성에 살던 전모(46·여)씨는 지난 2002년 10월 위장결혼 브로커를 통해 한국인 박모씨를 처음 만났다. 이후 이들은 2003년 5월 중국에서 혼인신고를 한 뒤 한국에 입국했다.
검찰은 박씨가 전씨와 혼인을 하는 과정에서 150만원 가량의 돈을 받고 결혼한 사실이 있다고 주장, 전씨는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돈이 오간 행위 자체보다 혼인의 전반적인 과정과 한국 입국 이후 이들의 행적에 관심을 기울였다.
일 년에 한 번 꼴
위장결혼의 경우 중국여성이 한국남성과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1000만원 가량의 비용이 든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웠던 전씨는 박씨에게 돈을 마련할 수 없다고 털어놨고, 박씨는 돈을 받지 않을 테니 중국 측 브로커에게 돈을 주지 말라고 당부했다.
게다가 국내에 들어온 전씨는 박씨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식당일을 하면서 박씨와 함께 4년간 부부생활을 이어왔으며, 최근 유방암으로 고통받으면서도 박씨 곁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이런 정황을 파악하고 “한국인 남자와 최초 만남이 비록 위장결혼 브로커들을 통해 이뤄졌지만, 혼인신고 무렵 진정한 혼인을 할 의사가 있었던 점, 남편 박씨가 유방암에 걸린 아내와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는 점 등을 볼 때 위장결혼으로 단죄한 원심의 판결은 잘못”이라면서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