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인, ‘국정인 대학살’ 주장 이종찬·이강래 옥죈다
당시 기조실장 이강래 “송영인 주장 허위 주장 불과”
김대중 정부 초 일어난 ‘국정원 대학살’ 사건으로 국정원이 뒤늦은 내전에 돌입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 국정원에 근무하는 대공 전문요원들이 대거 숙청당했으며 그 결과 대공 전문가들이 거의 멸종(?)됐다는 내용이다. 국정원에서 581명, 기무사에서 900명, 경찰에서 2500명, 검찰에서 40 명 등 모두 4000여 명의 전문가들이 일거에 사라졌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기관이 국정원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취임한 지 33일 만인 1998년 4월1일, 국정원 소속 대공요원 581명이 퇴직 당했다. 이른바 ‘국정원 대학살’이다. 이 숙청을 주도한 인물로 당시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이강래 기조실장이 지목받고 있다. 10여 년 만에 사건의 진실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국정원 내부의 전쟁을 추적했다.
국민의 정부가 지난 1998~1999년 국가정보원(당시 안기부)의 대공파트 및 국내담당 인사 581명을 구조조정 차원에서 해직시킨 사건이 10여 년 만에 정치쟁점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시 숙청의 현장에 있었던 ‘국가를 사랑하는 모임’(이하 국사모) 송영인 회장이 10년 만에 입을 뗐기 때문이다.
송영인 ‘국정원 대학살’
“이종찬·이강래 주도했다”
송 회장은 숙청 당시 관여했던 인물로 이강래 현 민주당 원내대표를 꼽았다. 송 회장의 증언에 따르면 이 원내대표가 당시 국정원 숙청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고 한다.
송 회장의 증언이 나오면서 국가정보원은 DJ정부가 직원들을 대량해직하는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조사한 끝에 인사라인 담당자들의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결론 지었다. 이에 당시 해직과정에 관여한 직원 2명을 지난해 8월 검찰에 고발한 것으로 7일 확인됐다.
그동안 국정원 숙청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지만 실체가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 정권교체 후에야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국사모는 당시 직권 면직된 2, 3급 고위간부 출신 21명으로 구성됐다. 송 회장은 <일요시사>를 만나 이강래 원내대표가 관여한 사건의 전말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송 회장은 “DJ가 대통령에 취임한 지 33일 만인 1998년 4월1일, 국정원 소속 대공요원 581명이 일거에 숙청됐다”며 “숙청은 DJ의 최측근으로 기조실장에 임명된 이강래 원내대표가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기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별기준은 ▲김대중 반대파 ▲한나라당 당직자들과의 친분 관계자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 지지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며 “대부분 경상도 출신이 대상자로 몰렸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해직 인사를 가려내기 위해 전북 고창 출신인 K씨를 통해 선별작업을 실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송 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K씨는 국정원 내 한직에 있다가 이 원내대표가 기조실장으로 오자 인사정책기획관으로 임명된 인물이다. 또한 이 원내대표의 대경상고 동문이기도 했다.
“학살 작업에 반발한 인물들에게는 고문을 가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송 회장은 “학살 작업에 나선 사람들은 학살에 반발하는 경상도 출신 현직 1급 부서장급 간부들을 지하실로 끌고 가 팬티까지 벗기는 등 가혹한 고문을 감행했고, 그 결과 피해자 중에는 이 충격에 ‘실어증세’까지 일으키는 등 중증장애로 일생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폭로했다.
숙청이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에 대해 묻자 송 회장은 “집단해직의 방편으로 ‘재택근무’에 명한다는 기상천외한 비정상 조치까지 동원됐다. 표면적으로 IMF로 인한 구조조정이라고 해놓고, 그들은 581명을 해고시켰다. 얼마 후 그 빈자리에 민변 출신 변호사등을 집어넣었다”고 말했다.
그는 “주로 호남 출신 등 검증도 되지 않은 500여 명을 특채라는 편법으로 채워 국정원 요직을 장악하게 했다. 강제해직 작업에 직접 관여했던 사람은 당시 인사기획관이었던 K씨였다. 그는 곧 계장에서 일약 총무관리실장(1급)에 올랐고, 조사과정에서도 그는 끝까지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조사를 지연시켰다”고 주장했다.
송 회장은 또 “당시 국정원에 검사로 파견돼 이강래 기조실장과 함께 핵심역할을 하다가 법무부로 옮겨 기획관리실장직에까지 승승장구했던 S씨는 2009년에 사표를 내고 물러났다”며 “그러나 김만복 전 원장 직계로 보안법 철폐를 주장했던 K씨는 국정원의 요직 중의 요직인 수사국장자리에까지 승승장구했다”고 말했다.
이후 조사에 대해 송 회장은 “김성호 전 원장은 노무현 시절에 법무장관을 지냈고, 이명박 시대에 들어서면서 2008년 3월부터 2009년 2월까지 국정원장을 지냈다. 강제해직 관련 진상조사를 지시받은 김 전 원장은 2008년부터 베테랑급 조사요원을 투입해 조사를 시켰다”며 “조사는 현 원장인 원세훈으로 이어져 2009년 6월에 완료됐고, 6개월 동안 연인원 300여 명을 투입했다”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그는 “그 진상은 이 대통령에게만 보고됐을 것이고, 국민에게는 지금까지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며 “단지 2009년 2월, 김성호 전 원장이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전직 직원 모임인 양지회 간부들과 회식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김 전 원장은 강제해직에서 불법적인 문제가 드러났고, 그때 관여했던 직원들 상당수가 사법처리를 받을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송 회장이 주장한 ‘국정원 대학살’사건 이후 해직자 581명 중 불과 21명만이 이에 대해 행정소송을 내고 투쟁에 나섰다. 2003년 9월 법원은 ‘불법 면직이기 때문에 집단해직은 무효’라는 판결을 했다. 이에 국정원은 이들 중 9명만 복직시키고 12명은 ‘2000년 6월30일자로 퇴직시킨다’는 소급퇴직 명령을 내려 복직을 불허했다. 국사모는 또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이종찬 변호사와 당시 기조실장이었던 이 원내대표를 상대로 형사소를 제기했지만 검찰은 2004년 공소시효가 끝나기 직전 이를 기각했다.
국사모는 2004년 3월 “소급퇴직과 퇴직금 지급시점 사이 기간(2년 4개월) 동안의 퇴직금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서울지법에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국사모는 2004년 10월12일 1심에서 승소했다. 재판부는 “송영인(약 1600여 만원)과 김명선(약 1400여 만원)에게 모두 3000여 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며, 이를 가집행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공탁 등의 절차도 없이 퇴직금 이자를 지급하지 않았고, 이에 국사모는 2004년 11월23일 법원 집달관을 대동하고 서울역을 급습해 국고로 입금되는 돈을 가집행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국정원은 항소했지만 서울고법에서 패소했고, 2006년 6월16일 대법원도 국사모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2년3개월에 걸친 법적공방은 막을 내렸다.
이후 송 회장을 비롯한 국사모 회원들은 ‘국정원 대학살’ 진상조사를 끝까지 이어갔고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진상조사가 이뤄지게 됐다는 게 송 회장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지난해 국정원 차원에서 내부감찰을 실시한 끝에 인사담당자의 행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 국정원 측이 고발조치한 것으로 안다”면서 “아직 조사 중이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검찰에서 잘 조사될 것으로 보인다”며 “송 회장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검찰 조사 결과를 보면 답이 나올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강래 당시 기조실장
“국사모 주장 사실과 달라”
이 같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이강래 원내대표 측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번 사건에 이 원내대표가 연루됐다고 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다. <조선일보>의 검찰 출입기자가 (사실관계를) 잘못 전달한 것 같다”며 “이번 사건에서 이종찬, 이강래 대표가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조사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잘라 말했다.
또 이번 논란에 대해 “이 대표는 1997년 대선 직후 인수위 시절에 정부조직개편위원회에서 핵심 책임자로 일했다. 당시 위원장은 박권상 전 KBS 사장이었고 이 대표가 실무책임자로 정부 각 부처와 공공기관의 구조조정을 담당했다”며 “IMF 시절이었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각 부처별로 10% 감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국정원의 경우 30%까지 감축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현장인력 필요성을 제기해 10% 정도로 감축됐다. 이러한 감축안은 행정자치부를 통해 전달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998년 DJ정부가 출범하자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송씨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면서 “당시 이 대표는 2개월 10일밖에 국정원에 있지 않았고 이후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올라갔다. 당시 구조조정 대상은 근무성적, 인사기록, 감찰 자료 등을 평가해 선정했으며, 가이드라인만을 제시했을 뿐이다. 또한 구조조정 대상에 대해서는 자연감소분과 정년퇴직, 명예퇴직 등을 고려해 적용했다. 송씨가 주장하고 있는 581명도 사실과 다르다. 행자부에 올린 인원은 522명이었고 그중에 36명이 최종으로 남았다”고 덧붙였다.
이 원내대표 측은 특히 “이번에 국정원에 고발을 당한 인사도 그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4~5년 전에 있었던 업무와 관련해 잘못된 점을 발견해 고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강하게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