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현장> ‘더러워야 팔리는’ 중고 속옷거래 실태

  • 최용환 cyh@ilyosisa.co.kr
  • 등록 2013.11.25 11: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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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액 묻은 스타킹 “싸게 팝니다” 생리혈 묻은 팬티

[일요시사=사회팀] 입던 속옷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여성들이 있다. 팬티-브래지어-스타킹-양말까지 종류는 다양하다. 속옷의 가격은 신체와 접촉하는 부위별로, 입었던 시기별로 상이한 가격이 책정된다. 은밀히 거래되는 속옷거래의 변태적인 실태를 알아봤다.




체취가 묻은 속옷을 거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양말까지도 거래된다. 이렇게 지저분한 거래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던 변태카페는 여전히 음성적으로 활동 중이다. 문제는 변태카페가 아닌 일반카페에도 이따금씩 페티쉬 관련 판매글이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야릇한 냄새 풍기는 변태적인 페티쉬 거래. 무엇이 문제일까.

벗는 여성들
양말도 거래

이미 몇 해 전부터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등 암암리에 거래되던 중고 속옷거래가 이제는 일반 사이트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있는 법. 단순히 입던 속옷을 판매해 쉽게 돈을 버는 여성들과 속옷 냄새를 맡으며 성적쾌감을 얻는 변태적인 남성들은 상생관계에 놓여있다.

이들은 서로 아쉬울 것 없이 깔끔하게 속옷만 주고받고 쿨하게 헤어진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속옷 인증샷을 거쳐 택배로 거래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중고속옷 ‘직거래’가 인기를 끌고 있다. ‘입던 속옷 기본 3일 착용’ ‘직거래 가능’ 등의 친절한 설명은 기본이다.

직거래는 말 그대로 판매자와 구매자가 직접 만나서 상품을 확인하고 거래하는 것을 뜻한다. 중고속옷 직거래 역시 여성이 직접 속옷을 벗어서 구매자에게 준다. 이건 방송으로 치면 생방송이다. 이들은 은밀한 장소에서 팬티나 브래지어를 벗고 구매자에게 속옷을 전달한다. 살아있는 체취를 느낀 남성들은 판매자가 원하는 만큼의 금액을 쥐어준다.


여성 입던 속옷 직거래 “냄새 날수록 비싸”
구매자 앞서 벗어줘…원하면 직접 벗길 수도

보통 여성의 외모, 나이, 속옷의 상태(냄새)에 따라 가격은 책정된다. 중고속옷 가격은 어느 정도 기준이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다소 비슷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그런데 중고속옷 직거래가 자칫 유사성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어떨까. 사회적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판매자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3일 동안 입고 있던 속옷 팔아요. 한 장에 3만원, 세트로 구매하면 5만원에 드려요.”

“입던 팬티 팔아요. 쪽지 주세요. 직거래 가능해요….”

지난 19일 한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글이다. 입고 있던 ‘속옷’이라는 말에 조회 수는 하늘을 치솟았다. 속옷을 원하는 남성들의 댓글도 여러 개 달려있었다. 마찬가지로 기자도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불과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새 쪽지가 도착했다.

“제 속옷 원하신다고 했죠? 카톡 아이디 알려주세요. 톡해요.”


‘아니, 이렇게 빨리 답장이 오다니….’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판매자의 요구대로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려줬다. 그리고 그날 밤 메시지가 도착했다.

“팬티? 브래지어? 스타킹? 양말? 어떤 거 원해요?”

이에 무난하게 ‘브래지어’라고 답했다. 그리고 금액 이야기를 매듭짓고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지난 20일, 그녀의 요구에 발걸음을 옮긴 곳은 안양. 만나기로 한 지하철역 출구로 올라 그녀가 있는 카페로 향했다. 사람이 북적대는 카페 안에서 그녀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어디에 계세요?”

“여기요! 여기!”

통화하며 손을 흔들어 겨우 만났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그녀는 “지금 바로 가요”라며 당당하게 나갔다. 30대 직장인이라고 밝힌 그녀를 무작정 따라가 도착한 곳은 인근 빌딩 지하 2층. 고민도 없이 남자화장실로 향했다. 그녀는 화장실 문을 잠그고 외투를 벗었다.

“돈부터 주세요.”

애초에 제시한 금액을 전달했다. 그리고 그녀는 입고 있던 니트를 훌러덩 벗었다.

“벗겨줄래요? 아니면 내가 벗든가? 원하는 대로 해요.”

기자는 순간 얼었다.

“벗어서 갈아입고 주세요.”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녀는 브래지어를 풀었다. 하얀 속살을 여과 없이 비친 그녀는 입고 있던 속옷을 완전히 벗어 건넸다.

“이거 이틀 입은 브래지어예요. 냄새 확인해 보세요.”

이렇게 얼떨결에 난생 처음 본 여성의 브래지어를 손에 쥐었다. 마치 성인드라마를 찍는 것 같았다. 비상식적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방에서 새 브래지어를 꺼내 입었다. 거래는 5분도 채 안 걸렸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척 화장실을 빠져나와 건물 밖으로 나왔다.

“브래지어 말고 팬티나 스타킹 필요하면 또 연락해요. 아직 취향을 잘 모르겠네요. 원하는 거 있으면 일주일 전에 연락해요. 미리 연락해야 속옷을 오래 입었다가 주죠.”

그녀는 마치 프로 같았다. 헤어지기 전 마지막 말은 충격적이었다.

“초짜라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대딸’도 가능해요. 속옷 사면 대딸은 2만원에 해줄게요.”


중고속옷 직거래는 단순한 속옷 거래를 넘어 유사 성행위의 은밀한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이었다.

“안녕히 가세요. 필요하면 또 연락해요.”

“원하면 추가로”
  유사 성행위도

이처럼 속옷거래는 단순한 성적 취향을 넘어 직접적인 성적 접촉을 유발하고 있다. 물론 판매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직거래를 원하는 사람 대부분은 여성의 신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위험성을 안고 있다.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재밌는 건 이 여성들도 이러한 과정을 어느 정도 즐긴다는 것. 직접 체험한 속옷 거래의 실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판매되는 물건의 종류도 늘어 이제는 ‘소변’이나 ‘침’ ‘먹다 뱉은 빵’ ‘생리팬티’ 등이 거래되기도 한다. 여성의 소품이나 체취, 특정부위에 집착하는 ‘페티쉬 마니아’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얼굴 보고 결정…유사 성매매도
남성은 대부분 ‘페티시 마니아’

주요 포털사이트 등에는 여성들이 입었던 팬티나 스타킹을 판매하는 카페가 수두룩하다. 회원 가입을 제한하는 등 암암리에 비정상적으로 영업을 하는 카페도 있다. 판매자인 여성들은 속옷 차림의 실제 사진을 올리며 믿을 만한 좋은 상품이라고 홍보한다.

한 판매자는 자신을 23세, 163cm, 46kg의 스펙을 가진 섹시한 여대생이라고 소개했다. 그녀가 판매하는 물품은 팬티, 브래지어, 스타킹 등이었다. 가격대는 2만∼5만원 선으로 속옷 착용 시기, 분비물 유무에 따라 가격에 변동이 있었다. 특히 이틀 이상 입던 최상품만 판매한다고 강조했다. 충격적인 건 타액과 소변, 영상 등을 함께 판매하고 있었던 것.

타액이나 소변의 경우 본인의 것임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전화 통화나 인증사진, 영상을 동봉해준다. 이 뿐만 아니라 자위영상을 4만원에 판매하고 있었으며 사진은 장당 2000원씩 받고 있었다.

또 다른 판매자의 글도 눈에 띄었다. 이 판매자는 자신의 팬티 안쪽 사진을 찍어 이메일로 보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1만원을 입금하면 음모를 찍어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 판매자 또한 다른 판매자들과 다를 바 없이 신체사이즈를 상세히 공개했다. 26세, 169cm, 54kg, 75B컵 등. 특히 이 판매자는 소변을 보고 닦지 않기 때문에 소변냄새가 좀 독하다고 강조하며 ‘프리미엄’팬티라고 강조했다.

소변뿐만이 아니다. 팬티에 애액을 묻히면 최소 1만원이 추가된다. 팬티에 체모와 머리카락은 서비스로 넣어준다. 너무 더러워서 믿고 싶지 않은 글이었다.


충격적인 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진짜 ‘프리미엄’ 팬티는 따로 있었다. 이들이 말하는 진정한 프리미엄, 즉 스페셜 속옷의 정체는 바로 ‘생리혈’ 묻은 팬티였다.

한 판매자는 자신의 생리혈이 묻은 생리대와 속옷을 고가에 판매하고 있었다. 자주 거래하는 ‘단골 고객’에게는 직거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었다. 생리혈 묻은 팬티를 직접 만나서 주는 것이다.

더욱더 충격적인 건 직거래 시 구매자 앞에서 자신이 입고 있던 속옷을 바로 벗어준다는 것이었다. 그는 “다른 판매자는 80%가 거짓”이라며 “저랑 한번 거래해보신 분들은 다른 사람들 거 못 산다”고 자신의 속옷에 대한 상품성을 자신했다.

부위·분비물 따라 가격 달라져

아무나 하는 단순한 투잡?

중고속옷 거래를 경험한 남성들은 적나라한 이용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수요가 공급을 앞서는 듯, 매우 뜨거운 반응이었다.

한 판매자는 “구매자와 판매자는 서로의 신상에 대해 묻지 않는 게 이 바닥의 불문율”이라면서도 “잘 모르긴 해도 20∼30대 샐러리맨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판매자들의 대부분은 용돈이 필요한 중고등학생이다. 판매자의 나이가 어릴수록 인기가 높고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된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대생을 포함해 직장인, 주부들에게까지 번져 새로운 영역의 투잡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추세다. 남성들과 직접적인 신체접촉이 없기 때문에 거래의 심각성을 망각한 듯 보인다.

몇몇 판매자들은 유사성매매업소에 발을 들여 돈을 버는 것보다 중고 속옷을 판매하는 걸 선호했다. 남성과 직접 얼굴을 대면하는 위험이 없고, 따로 시간을 들여 일할 필요도 없이 그저 입었던 속옷을 벗어주면 되기 때문에 투잡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이다. 저렴한 팬티 몇 장만 사서 입으면 되기 때문에 짭짤하다는 것.

용돈벌이의 블루오션인 중고 속옷거래. 그렇다면 이들의 수입은 어느 정도일까. 이에 대해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겠지만 지난 2010년 자신의 체액을 묻힌 속옷 등을 판매하다 경찰에 붙잡힌 20대 여성이 2000여만원의 이득을 봤다는 점을 고려하면 몇몇 판매자들의 수익은 단순한 용돈벌이를 넘어 선다고 볼 수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는 오래전부터 ‘부르세라숍’이라 불리는 여성 중고속옷 가게가 성했었다. 현재 일본에서는 청소년들의 중고속옷 판매를 금지시키고 있다. 구매나 알선행위 등에 대해서도 처벌을 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우리나라와 비교해 볼 때 일본의 성문화가 개방적이긴 하지만 브르세라숍이 성행하면서 청소년 성매매(원조교제)나 기타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해 법으로 청소년을 상대로 한 중고속옷 거래를 금지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팬티 브래지어 스타킹
 세트로 사면 깎아줘요”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입던 속옷을 판매하는 행위는 처벌받을 수 있을까. 사실 과거에는 마땅히 처벌할 구실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정보통신법이 개정되면서 중고속옷 판매 행위에 제동을 걸 수 있게 됐다. 개정된 정통법 가운데 중고속옷 판매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항목은 행위에 공할 목적으로 음란한 물건을 제조, 소지, 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전화나 우편, 컴퓨터 등 통신매체를 통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글,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 영리를 목적으로 촬영물을 유포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이다.

이러한 정보통신법 개정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입던 속옷과 스타킹 등을 판매한 2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힌 사례가 있다. 지난 7월 충남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입던 속옷과 아동음란물 등을 판매한 혐의로 이모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3월 인터넷 변태카페 게시판에 속옷과 스타킹을 입은 사진을 판매하기 위해 글을 올렸다. 이를 보고 연락해 온 남성 9명에게 속옷을 판매해 19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결과 이씨는 자신이 입은 속옷임을 증명하기 위해 구매 남성들과 이른바 ‘착용샷’을 주고받았다. 입던 속옷의 거래 가격은 3만∼5만원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씨에게 속옷을 구매한 남성 가운데 아동음란물을 함께 구입한 남성 2명은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법망 사각지대
경찰 속수무책

이처럼 변태적인 속옷 거래를 막는 법적 장치는 마련된 상태다. 하지만 문제는 ‘직거래’다. 직거래는 이것으로 막을 수 없다. 직접 만나서 물건을 주고받고 변태적인 행위까지 이어지는 작금의 속옷 거래는 매우 음성적으로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상의 변태문화의 확산은 막을 수 있을지언정, 음침한 곳에서 몰래 직거래하는 판매자와 페티쉬 마니아들을 막는 건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최용환 기자 <cyh@ilyosisa.co.kr>

 

[미니인터뷰] 속옷 판매자 A씨
“단골은 ‘대딸’서비스”

-중고속옷 거래는 어떻게 알았나?
▲얼마 안 됐다. 지난해 중고 카페에서 우연히 접했다. 한 판매자가 자신의 속옷을 판매하는 글을 올렸는데, 궁금해서 클릭해보니 입던 속옷을 원하는 남성들의 댓글이 수두룩했다.
 
-언제부터 시작했나?
▲중고 속옷 거래가 충격적이었지만 ‘이렇게도 돈을 벌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나도 똑같이 글을 올렸다. 나에게 쪽지가 쇄도했다. 그때부터 중고속옷 거래에 빠졌다.

-가격은 얼마?
▲팬티 3만원, 브래지어 3만원, 스타킹 2만원. 팬티와 브래지어를 세트로 사면 4만원에 준다. 스타킹까지 다 산다면 총 5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양말은 덤으로 주기도 한다.

-한달에 얼마나 벌고 있나?
▲거래량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매주 한 번은 거래를 하기 때문에 20만∼30만원 정도 버는 것 같다.

-직거래만 고집하는 이유는?
▲인터넷 거래는 위험성이 있다. 그리고 직거래를 하게 되면 좋은 점이 ‘단골’이 생긴다는 것이다. 택배를 보내는 것보다 근처로 불러서 속옷을 전해주는 게 더 편하다.

-직거래는 어떻게 이루어지나?
▲보통 인적이 드문 화장실에서 거래한다. 화장실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구매자가 보는 앞에서 속옷을 벗어준다. 구매자가 원할 경우 직접 벗길 수 있는 기회도 준다.

평범한 30대 직장 여성
투잡…용돈벌이로 짭짤

-성매매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나?
▲브래지어를 벗기면서 가슴을 만지거나, 팬티를 벗길 때 엉덩이를 만지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성매매를 요구한 적은 없었다. 가벼운 스킨십 정도는 그냥 넘어간다.

-거래 중 자위를 해준 적이 있나?
▲솔직히 말하면 그냥 해주진 않는다. 팬티를 3만원에 살 경우 팬티를 내리고 2만원을 추가하면 그 자리에서 ‘대딸’을 해준다. 꾸준히 대딸을 요구하는 단골이 있다.

-구매자의 연령대는?
▲ 10대부터 40대까지 있었다.

-문제의식은 없나?
▲성매매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속옷을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건 없다고 본다. 물론 간혹 ‘대딸’을 요구하는 남성들이 있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다.

-앞으로 계속 할 건가?
▲나의 속옷을 찾는 단골 고객이 끊이지 않는 이상 계속할 생각이다.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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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