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국가정보원(국정원)은 여직원의 선거개입 의혹을 제보한 국정원 직원들을 파면 조치했다. 과거 중앙정보부에서 수십 년간 근무했던 조웅 목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추문을 폭로해 긴급 체포됐다. 내부고발자의 낙인이 찍힌 이들의 인생을 염려하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내부고발자 보호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실정이다. 과연 이들의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지, <일요시사>가 ‘내부고발자들의 잔혹사’를 추적해보았다.
1997년 6월14일 아침,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 감찰실의 지하 조사실. 5일째 이곳에 감금된 김필원씨는 갑자기 들이닥친 남자들에 의해 순식간에 구급차에 실렸다. 그대로 서울 삼성서울병원 정신병동 903호 특실에 갇힌 김씨는 영문도 모른 채 ‘정신병자’가 됐다.
김씨는 온몸이 포박된 채 강제로 정신질환약을 먹었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했다. 국가와 병원에 이 모든 상황을 문의하고 항의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는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한 채 국가기관과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28년 근무한 직원
열흘 만에 정신병자
김씨는 육군사관학교 26기 졸업생으로 장교생활을 하다가 1972년 6급 공무원으로 당시 중앙정보부에 공채 입사했다. 김씨는 중정과 안기부에서 국내 주요 정보를 수집하고, 언론 대외협력관, 국회 연락팀장, 정치과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김씨는 국가기관으로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고,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 돼가는 안기부를 목도하며 ‘국가정보기관이 오염되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고 판단, 부당인사에 항의하는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그리고 열흘이 되기도 전에 안기부 지하 조사실에 감금됐고, 얼마 후 정신병자 낙인이 찍혔다. 바로 이것이 내부고발자를 대하는 대한민국의 끔찍한 실상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보호의무자 1인의 동의, 정신의료기관에 소속된 1인, 그리고 전문의의 판단만 있으면 정신의료기관의 장이 대상자를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도록 돼 있다. 요건이 허술하다 보니 누구라도 본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강제입원이 가능하다는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퇴원 조건 서약서
내용은 재산 양보
실제로 김씨가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과정은 너무도 간단했다. 안기부 직원의 설득과 김씨 전부인 A씨의 서명, 그리고 주치의의 진단서, 병원장의 동의가 전부였다.
김씨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지하 조사실에 있을 때 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사람이 나를 3~4초 동안 빤히 쳐다보더니 그냥 나갔다. 나중에 그가 의사였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말했다.
이날 김씨를 보고 간 사람은 삼성서울병원의 주치의 L씨. 6월13일 그는 바로 진단서를 작성했다. 진단서(표1)에는 “당분간 (적어도 한 달)의 입원가료가 필요한 것으로 사료됨”이라는 치료소견이 적혀있다.
<일요시사>와 통화한 한 전문의는 “진단서를 작성하려면 검진소견서가 필요하다. 한번 훑어보고 진단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진단서가 작성되기 하루 전날 A씨가 이미 김씨 입원동의서에 서명해 안기부에 제출한 사실이 소송기록을 통해 확인됐다. 안기부 직원과 A씨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긴밀히 만나 김씨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문제를 두고 ‘대책회의’를 열었다.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김씨가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준비작업이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입원동의서는 명백한 불법이다”라고 주장했다.
4초 응시하더니 진단서에 ‘인격장애’ 한 달간 입원 필요 의견 작성
입원 요건 허술해 보호자·병원소속인·전문의 3인만 공모하면 직행
이후 김씨와 A씨의 소송 속기록에 의하면 김씨가 정신병원에 입원하자 안기부 직원들은 A씨에게 김씨가 불륜을 저질렀다고 전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김씨는 “단식투쟁을 하고, 안기부 조사실에 감금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면서 가정이 완전히 파탄 났다”라며 그간의 고통을 토로했다.
정신병원에서 악몽의 시간을 보낸 김씨는 4개월 후 병원에서 한 가지 제안을 받았다. 김씨를 마냥 감금할 수만은 없었던 병원은 김씨에게 서약서<표2>를 작성할 것을 요구했다. 퇴원 조건이었다. 당시 김씨에게는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하지만 서약서의 내용이 심상치 않다. ‘통원치료를 할 것, 퇴직금 1억8천여만원과 연금을 부부합의로 사용한다’는 내용이다.
안기부와 A씨의 거래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김씨가 서약서를 작성할 당시는 이미 A씨가 김씨의 퇴직금과 연금을 수령한 후였다. 김씨가 정신병원에 있는 동안 A씨가 김씨 명의의 통장을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김씨, A씨, 안기부 직원 사이에 고성이 오간 사실도 A씨의 진술을 통해 확인됐다.
문제는 비단 김씨만 이 같은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수많은 국가기관 내부고발자들이 이 같은 국가기관의 횡포에 시달리고 있다.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었던 한영수씨도 꽤나 유명한 내부고발자다. 한씨는 김씨처럼 정신질환 진단을 받거나 정신병원에 감금된 적은 없지만, ‘정신병자’라는 수식어에서 좀처럼 자유롭지 못하다.
“정신병자의 말
들을 필요 없다”
심지어 한씨 면전에서 “정신병자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는 기자들이 있을 정도니, 이들에게 정신병자라는 족쇄가 얼마나 끔찍한지 알 수 있다.
한씨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정신병자 낙인이 찍힌 계기는 선관위 내부공문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씨와 관련해 선관위에서 내린 공문의 요지는 “한영수는 정신병자이니, 이와 관련해 어떠한 정보수집도 하지 말 것”이었다.
이 공문으로 한씨의 모든 주장은 그저 정신병자의 말장난 정도로 취급받았다. 그럼에도 내부 투쟁을 멈추지 않은 한씨는 허위사실을 유포한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몸담았던 조직에서 결국 해임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씨의 부인 B씨에 대한 공무원 감찰도 이어졌다. 당시 우체국장이었던 B씨는 수년간 소송에서 국가기관과 싸웠다. 지칠 대로 지친 B씨는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공무원이 아닌 일반시민이 정신병원에 감금된 사례도 있다. 3년간 수차례 정신병원에 감금돼 주검과 다름없는 몸으로 살고 있는 이는 바로 박일남씨. 그는 내부고발자가 아닌 외부고발자임에도 이 같은 만행에 치를 떨어야만 했다.
1995년 박씨는 한 식품가공업체에서 판매하는 음식을 먹고 며칠간 고생했다. 이에 박씨는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에 해당 업체를 신고하고 해당 식품에 대해 검사를 의뢰했다. 결과는 식품으로 쓸 수 없다는 ‘부적합’ 판정이 나왔으며, 박씨는 이를 인정받아 포상금 10만원을 받았다. 이후 박씨는 부적합 식품을 판매한 사람을 고발했지만, 웬일인지 경찰은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은 채 ‘혐의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놨다.
공무원 가족에 대한 억압까지, 감찰·소송으로 이어져 우울증 발병도
부적합 식품 보건환경연구원에 신고, 검찰에 고발해 정신병원에 감금
그러자 박씨는 검찰을 찾아가 고발장을 접수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박씨는 길거리에서 누군가에 의해 납치돼 그대로 정신병원에 끌려가 11개월 동안 강제로 감금당했다. 의정부의 한 개인병원은 박씨에게 강제로 수십 차례 마취제를 주사하고, 약을 먹였다. 박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퇴원 당시 뇌가 거의 마비된 상태였다. 깨어나 보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금 기억이 날 정도”라고 말했다.
퇴원 후 1년이 지나자 박씨는 다시 정신병원에 감금됐다. 박씨는 “공무원들이 직무유기죄 시효를 넘기려고 시간을 끌면서 나를 가뒀다. 정신병원에 다녀온 후 나는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박씨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 전 인수위원회에 이 같은 내용을 진정한 상태다.
외교부 내부고발자로 6년째 국가와 소송을 벌이고 있는 황규환씨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법 정비는 완벽한 수준이다. 부패방지 및 권익위법, 공익신고자포상법, 국가공무원법, 그리고 각 부처 행동지침을 보더라도 내부고발은 장려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임면권자와 국가기관장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권력을 휘두르고, ‘조직의 안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내부고발자를 억압하고 있어 법이 아무 소용이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수차례 마취제 투여
“죽은 것과 다름없어”
‘선의 방관이 악을 키운다.’ 이 말은 근대 보수주의의 아버지인 에드먼드 버그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를 두고 한 말이다. 내부의 비리와 부패를 바로잡고자 목소리를 내는 구성원에 대한 억압이 끈질기게 반복되면, 과연 우리사회는 어떠한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
한국부패학회의 고문이자 전 회장인 오필환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조직에서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기관의 장, CEO들과 굉장히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내부고발이 꺼려진다”라면서 “사실 부패에 대해서는 외부사람이 알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내부에서도 일부 사람만 알고 있고, 알려진 부패는 빙산의 일각이다”라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이어 “이러한 분위기가 일종의 한국문화가 됐다. 남 잘못을 드러내기보다 덮어주고 모른척하고 넘어가는 것.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보니, 이것이 인지상정처럼 됐다. 이런 후진적인 문화 때문에 내부고발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면 부패를 묵인하는 것이 정의가 된다. 사회는 균열되고 결국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