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춘 때문에 재론되는 ‘희대의 사형수들’ 현주소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6.14 10: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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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특실 감방서 럭셔리하게 지낸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길을 지나던 20대 여성을 납치해 엽기적으로 살해한 오원춘에게 사형이 구형됐다. 수원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지석배)는 지난 1일 수원지법 제11형사부 심리로 열린 오원춘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사형을 구형했으며, 30년의 전자장치 부착도 요구했다. 이 가운데 과연 재판부가 사형선고를 내릴지 사형집행을 할지, 또 사형제 존폐여부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은 사실상 사형폐지국이 맞는 것일까. 사형제의 역사를 통해 현재 사형수들을 되돌아보고 사형제 존폐논란을 들여다봤다.

오원춘(42). 지난 4월 1일 경기도 수원시 20대 여성의 사체를 280여 조각으로 나눈 희대의 살인범이다. 수십 년간 범죄현장을 지켜봐온 현장관계자들과 범죄 심리 전문가들도 이렇게 참혹한 광경은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범행 수법은 처참했다.

때문에 그의 사형 구형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러한 잔혹범에 대한 재판이 진행될 때마다 사형제 존폐여부가 또 다시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원춘 사형 구형
죄책감 없어

검찰은 사형 구형 이유에 대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러 놓고 죄책감이나 반성하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며 “오원춘 사건이 우리 사회에 끼친 파장과 인간의 고귀한 존엄성을 짓밟은 범죄행위에 대해 법의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오원춘은 그러나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결심재판 내내 “잘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등의 대답으로 일관, 시신을 잔인하게 훼손한 이유 등에 대한 의문점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 심문에서 “밤을 새가며 시체를 훼손한 데에는 시체 유기 이외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특히 “피해자를 여행가방에 담아 버리기 위해 시체를 절단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집안에 있는 소형절단기를 사용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절단과 상관없는 시체 훼손이었다”고 오원춘을 추궁했다.

오원춘 사형구형, 선고 및 집행 이뤄질까?
“사실상 사형 폐지국…한국 사형수 61명”

재판부는 또 오원춘이 강간을 시도하다가 피해여성이 거세게 반항해 이를 포기했다는 기소내용에 대해서도 “강간을 목적으로 피해여성을 납치 살인까지 한 피의자가 피해여성이 반항한다고 해서 당초의 목적을 포기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오원춘은 “나도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며 중요 사실에 대한 진술을 거부했고, “피해자가 112에 신고한 사실도 알지 못했다”며 경찰과 검찰 수사과정에서 밝혀진 내용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오원춘의 이런 모습에 대해 피해 유가족은 “가족의 삶이 처참하게 짓밟혔다”며 “법의 힘으로 피고인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선고공판은 오는 15일 오전 10시에 열릴 예정이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사형제가 다시 도마 위로 오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실제 사형을 집행하지도 않으면서 사형제를 유지해오고 있는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이다.

1948년 건국 이후 사형제를 도입한 우리나라는 1949년 7월 처음으로 사형을 집행했고, 지금까지 모두 998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한국의 사형수
그들은 누구인가

정권별 집행 현황을 살펴보면 이승만 정부(월 2.4명), 박정희 정부(월 1.9명) 시절에 사형이 가장 많이 집행됐다. 사형 확정자 수는 박정희 정부 때가 414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승만 정부 335명, 전두환 정부 76명, 노태우 정부 60명, 윤보선 정부 14명, 김영삼 정부 12명 등의 순이었다.

범죄 유형별로는 살인 등의 강력 범죄자 562명이 사형을 통해 생을 마감했으며, 정치·사상범 가운데 사형을 당한 사람도 254명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 1997년 12월 30일 23명을 사형집행 한 이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는 사형집행이 없었다. 당시 마지막으로 사라진 사형수는 1991년 시력장애로 직장에서 해고된 데 앙심을 품고 승용차로 서울 여의도광장을 질주해 2명을 살해하고 17명에게 상처를 입힌 김용제(27) 등 23명이었다.

현재 확정 사형수는 2010년 말 기준 61명이다. 이중 2명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현재 사형수는 서울·부산·대구 등지의 구치소에 분산 수감돼 있다.

가장 오래전 사형이 확정된 사람은 1992년 ‘살인 및 현주건조물 방화치사’로 구속돼 93년 사형이 확정된 원언식이다. 그는 자신의 아내가 특정종교에 심취한 데 불만을 품고 교회 건물에 불을 질러 15명을 숨지게 했다.

이후 친부모를 살해해 충격을 준 박한상, 폭력조직을 운영하며 다른 조직원 병원까지 쫓아가 살해 후 출동 경찰관 2명까지 살해한 강영성, 배신한 동거녀로 오인해 길 가던 여성을 살해하고 임시 의탁하던 사찰 주인과 할머니를 칼로 난자해 살해한 임명기 등이 1990년대 사형이 확정됐다.

보복범죄에서
금전·성욕으로

2000년대 초반에는 금전적 이익을 얻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거나, 성욕을 채우기 위해 사람을 살해해 사형 확정을 받은 사형수들이 많았다. 

2000년 부산·울산에서 23건의 강도사건을 일으켜 9명을 살해한 정두영은 과도한 공격성을 보여 피해자의 온몸을 짓밟아 장기파열로 죽게 하거나 야구방망이나 망치로 머리를 집중적으로 내리쳐 살해했다. 당시 그는 “10억원을 모은 뒤 성인오락실이나 실내야구장을 차려 동거녀와 행복하게 살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김중호는 2002년 재혼한 아내가 데려온 딸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하다 구속됐다. “더는 자신과 아이를 괴롭히지 말아 달라”는 조건을 내걸며 아내가 고소를 취하해 풀려난 그는 곧바로 아내와 의붓딸, 자신과 아내 사이에 낳은 두 자녀를 망치와 가위 등으로 살해해 2003년 사형이 확정됐다. 이후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로는 연쇄 살인범 유영철·강호순, 혜진 예슬 사건의 피의자 정성현 등이 있다. 

이들 사형수 61명이 살해한 피해자는 모두 210명이다. 사형수 한 명에게 평균 3.4명이 희생된 셈이다. 유영철이 20명을 살해했고, 강원 원주시 왕국회관에 불을 지른 원언식이 15명의 희생자를 냈다.

강호순은 보험금을 타기 위해 아내와 장모를 불을 질러 살해하고, 성적 쾌락을 얻기 위해 부녀자 8명을 납치해 성폭행한 뒤 죽였다. 부녀자와 초등학생 13명을 연쇄 살해한 정남규는 2009년 말 구치소 안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범죄유형 다양…사형수 1인당 평균 3.4명 살해
‘범죄 억제’ vs ‘생명권 침해’ 사형제 끝없는 논란

전문가들은 사형수 1인당 살해 피해자 수는 증가 추세를 보인다고 진단했다. 2000년대 후반 12명의 사형수에게 희생된 피해자는 67명(평균 5.6명)이었다. 반면 최근 사형수들은 1997년 이후 사형집행이 없어  예전에 비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라는 전언이다.

상황이 이러자 국제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AI)는 지난해 연례 사형현황보고서 발표를 통해 한국을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했다. 실제 사형집행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무차별적인 살인을 저지른 흉악범에 대한 재판과정이 진행될 때마다 사형제 존폐여부는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오원춘 사형구형 소식을 놓고도 인터넷을 통해 찬반논쟁이 또 다시 점화되고 있다.

사형 찬성자들은 타인의 고귀한 생명을 잔혹하게 빼앗은 흉악범에게는 인권 및 생명권을 보장할 필요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가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사회의 정의를 올바르게 잡고 범죄예방 효과를 위해서는 당연히 사형집행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사형수들의 숙식을 해결해야 하니 비용차원에서 생각하면 당연히 사형을 시켜야 맞다는 입장도 있다. 실제 법무부에 따르면 사형수 1명에게 들어가는 연간 예산은 약 160만원 정도다.


사형수 1명에게 들어가는 예산은 2008년 기준으로 연간 식비가 113만7000원(끼니당 약 1000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의료비 21만원, 연료비 10만1000원, 수용비 9만4000원, 피복비 5만3000원이 들어간다.

사형제 존폐 여부
끊임없는 찬반 논란

반면 사형제도 폐지론자들은 사형이 범죄예방효과가 없고 강력범죄를 유발할 우려가 있는데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타인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아무리 흉악범이라고 해도 죄를 뉘우칠 기회를 준다는 측면에서도 사형제는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반된 입장 속에 키를 쥐고 있는 정치권은 여론의 눈치를 보며 해묵은 논쟁에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있다. 워낙 논란이 많은 사안이다 보니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한 네티즌은 “그간 사형제 존폐론을 두고 말들이 많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국회부터 반성해야 한다”며 “범죄예방을 위해 심리적 압박감을 주고 흉악범을 일벌백계해 다른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국가의 임무인 만큼 사형제를 폐지시키든지 재개여부를 결정하든지 사형제를 둘러싼 논란을 정리해 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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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